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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양녕에 빙의함-24화 (24/300)

갑자기 양녕에 빙의함 024화

24화

"저놈들 화살이 별거 아닌 건 맞지만 방심은 하지 마라! 방패는 확실히 들고! 포수들은 화려한 갑옷 입은 놈, 활 든 놈부터 쏴라!"

전방에서 지휘 중인 군관 한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북풍에서 북동풍으로 바뀐 바람을 타고 생각보다 멀리 날아온 적의 화살이 누군가의 투구에 맞고 튕겨 나가자 그 근처에 있던 병사가 뭐라 크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바람이 북동풍이 되었다! 지금 불붙인 것만 최대한 멀리 쏘고 인화살 사격 중지! 인화살 사격 중지다!"

백린 파편이 역풍을 타고 아군에게 날아오는 것을 미리 막으려 누군가 또 외치고, 지시 전에 불을 붙였던 인화살 두 개가 날아올랐다.

한 개는 심지가 잘못되었는지 날아가던 중간에 터져 백린 파편을 나가강 물 위로 흩뿌렸지만, 나머지 하나는 비교적 정확히 날아가 적 머리 위에서 터졌다. 백린 파편 하나가 활시위에 붙어 버린 운 없는 적 궁수 하나가 불에 타 끊어지며 튕긴 활시위에 맞고 비명을 지른다.

"괜찮은 것 같소?"

수천 대 수천으로 투사 무기를 쏘아가며 맞붙는 전투는 처음이었던 양녕이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이지실에게 전황을 물었다.

"물론입니다. 저들의 활은 조선의 활이 아니라 야인들이 들고 다니는 활에 비교해도 활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 아닙니까. 최전열에 세운 병사들은 가려 뽑은 정예들이니, 저런 물건에 무너질까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조선인에 버금가게 활에 능한 여진족들을 상대하던 공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 말이 맞는 것일 테니, 괜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함길도에서 도절제사로 행정과 군사, 특히 여진족의 회유와 견제를 최전방에서 담당했던 이지실의 대답에 양녕은 조금 마음을 놓았다.

"사실 조금 우려되는 것은 있습니다."

"무엇이오?"

혹시라도 이쪽으로 화살이 날아올까 둘 다 전방으로 시선을 고정한 상태에서 양녕이 조용히 물어보았다.

"아군이 예상한 범위를 벗어나서 적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군이 도하를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거리가 가까워지면 저들의 화살도 아군에게 위협이 됩니다."

"일단 막 전투가 시작한 참이니 벌써 걱정하기는 이르오. 설령 우리가 도하를 해야 하더라도 그쯤이면 아군 대포들의 발사 준비가 끝났을 테니 엄호를 받으며 도하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양녕의 말이 별안간 울려 퍼지는 태평소 소리에 끊겼다.

이어서 태평소 소리가 들려온 나가강 상류인 남쪽, 즉 조선군 우익방향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남쪽에 대규모 적 발견! 빠른 속도로 접근 중!"

"일단 여기까지는 예상대로구려."

양녕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 *

"망할! 역시 예측하고 있었나!"

1번대를 이끌고 조선군 진영으로 진격하던 요시토시가 소리쳤다.

조선군이 접근을 알아채자마자 깃발을 세우고 칼을 뽑아 들고 소리를 지르며 반달음질로 접근하는데도 조선군은 위축되기는커녕, 큰 피리 소리를 내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부카와군이 절반 정도 가까이 갔을 때 이미 조선군 우익은 본대와는 별도의 중익, 좌익, 우익으로 나뉘어 진형을 갖추었다. 돌진 중인 시부카와군을 바라보고 중익 쪽이 우묵하게 들어간 진형이었다.

"학익진이다! 속도를 올려라!"

큰소리로 외쳐 부대에 알리면서 최대한 빨리 머리를 굴린다.

학익진은 모든 병사가 같은 곳을 향할 수 있는 진형이라 정면에서 오는 적에게 투사 무기를 집중시킬 수 있다. 그런 학익진을 신호 한 번에 병사들이 일제히 짠 것을 보면 측면에서 기습이 올 것을 예상하고 대비한 것이 분명했다.

"형님! 적들이 학익진을 준비했으면 투사 무기들도 분명 이쪽으로 모아 배치했을 겁니다!"

2번대를 이끄는, 요시토시의 사촌 동생 미츠나오가 외쳤다. 각자 거리를 두고 부대를 이끄는 탓에 소리를 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알고 있다! 절대로 섣불리 중앙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요시토시가 대답하며 이를 악물었다. 투사 무기에 능한 조선군이 자신들의 장점을 활용하기 좋은 학익진을 짰으니, 그 중앙으로 경솔하게 들어가는 건 죽여 달라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학익진의 파훼법은 둘. 중앙을 돌파하거나, 취약한 양익을 공략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중앙 돌파는 불가능했다.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나카가와를 따라 늘어선 조선군을 남쪽에서 치는 상황이었으니 중앙을 뚫어봤자 더 많은 조선군에게 포위될 뿐이다.

그렇다면 양익을 공략해야 하는데 전방에 보이는 조선군 좌익은 옆에 강을 끼고 있어 우회가 불가능하고 뚫는 데 성공해도 그 뒤의 진격로가 없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미츠나오! 조선군 우익을! 우리가 봤을 때 좌측을 깨야 한다! 좌측을 깨고 들어가면서 달라붙어 난전으로 만들면 승산이 있다!"

"적들도 분명히 그걸 알고 우익 쪽에 병력을 보강해 두었을 겁니다! 차라리 조금 돌아서 뒤를 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기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격 속도를 늦출 수 없었기에 이미 조선군과의 거리는 300보가량으로 좁혀져 있었다.

"뒤를 치려고 도는 동안 멀리서 공격을 당하면 불리하다! 조선군도 학익진을 미리 준비할 정도면 그쪽에 대포도 준비했을 가능성이 커! 최대한 빨리 근접해서 적이 화약 무기를 못 쓰게 하는 게 최선책이다!"

"하지만 그러면 처음 전투하는 부대의 피해가 너무 커집니다! 적 투사 무기의 온전한 화력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대화가 점점 다급해진다.

"그러니 내가 1번대를 이끌고 먼저 들이받겠다! 너는 뒤에서 오다가 상황을 보고 1번대를 따라 들어오거나 아니면 빙 돌아서 적의 뒤를 잡아라!"

"형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내가 앞서지 않는데 누가 사지로 들어가겠느냐! 그리고 나는 큐슈의 탄다이며 시부카와 가문의 무사다! 적을 앞에 두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몸을 사리지도 않는다!"

요시토시의 외침이 반쯤 1번대의 사기를 올려 목숨을 건 돌격을 하기 위함인 것을 눈치챈 미츠나오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2번대는 지금 속도를 유지해라! 1번대가 돌입한 다음 상황을 봐서 공격 방향을 정할 것이다! 기마대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라!"

투사 무기에 능한 조선군에게 말은 그저 맞추기 좋은 표적일 뿐이라 별도로 말을 몰아주어 편성한 기마대에게, 만일 요시토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구출해야 한다는 지시를 돌려서 했다.

"좋다! 이제 슬슬 적의 화살이 닿을 거리가 되었으니 각오를 다져라!"

그렇게 외친 요시토시가 스스로도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1번대 전원 돌격한다! 나무하치만다이보사츠!"

"나무하치만다이보사츠!"

무예의 신인 하치만신의 또 다른 이름, 하치만 대보살을 외치며 요시토시가 이끄는 1번대가 전방의 조선군을 향해 돌격을 개시했다.

* * *

"적들이 속도를 올렸다! 다들 대비하라!"

나가강을 따라 전개된 조선군 우익 끝에 배치되었고, 지금은 시부카와군을 향해 학익진을 펼친 제6 보병여단의 여단장, 이순몽이 외쳤다.

"적 200보 접근!"

"인화살 발사!"

인화살 십수 개가 날아가 돌격해오는 적들의 머리 위에서 터졌다. 백린 조각들이 적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지만, 그걸 뒤집어쓰고도 적들의 기세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한 돌격답게 몸에 불이 조금 붙은 정도로는 멈추지 않는 적들의 모습에 이순몽이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대처법을 찾았다.

"다음 인화살은 적들이 오는 조금 앞쪽 바닥에 쏴라! 적 선두가 화살에 도달했을 때 터지게 맞출 수 있으면 더 좋다!"

잔뜩 날아간 인화살들이 이순몽의 지시대로 적들이 달려오는 앞으로 드문드문 줄을 지어 박혔다.

"적 150보 접근!"

선두에서 달려오던 적들은 자신들 앞에 있는 것이 터지는 불화살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다 같이 돌격하던 상황이라 쉽게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인화살들이 바닥에서 터지자 눈앞의 폭발에 놀란 적 선두 몇몇이 고꾸라졌다. 대열에서 그 바로 뒤를 따라오던 적들은 거기에 발이 걸려 줄줄이 넘어지고, 바닥에 바로 뿌려진 백린 조각들이 연기를 피워 올렸다.

"좋아! 사격 준비! 궁수들은 갑옷 아닌 곳을 노려야 한다!"

이순몽이 지시를 내리며 적들의 상황을 살폈다. 폭발로 적 일부를 고꾸라뜨려 돌격 대형을 흐트러뜨린 것도 효과적이었지만, 이순몽이 노린 본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적의 속도가 느려졌으니 조총 포수들은 되도록 몸통을 노려라!"

바닥에서 일렬로 벽을 이루어 잔뜩 피어오르는 백린 연기가 적들에게는 맞바람인 북동풍을 타고 그대로 적들을 덮쳤다.

적들은 연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돌격의 기세가 늦춰졌을 뿐만 아니라, 갑옷을 입고 달려오느라 가쁘게 숨을 쉬고 있던 탓에 유독성인 백린 연기를 허파 깊이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넘어지고, 백린 연기를 너무 마셔 쓰러지고, 넘어진 앞사람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이들이 부지기수로 나온다. 그러나 백린 연기에 기침을 하고 눈이 빨개진 상태에서도 돌격해 오는 이들이 있었다.

"적 100보 접근!"

"발사!"

타타탕! 타탕!

화살 날아가는 소리를 뒤덮은 무수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화약 연기가 시야를 하얗게 뒤덮었다가 등 뒤에서 불어오는 북동풍에 밀려 천천히 흩어진다. 그 흐릿한 시야 너머로 시체들이 즐비한 가운데, 시부카와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 하나가 천천히 쓰러지고 있었다.

* * *

나카가와 건너편에서 그 방향을 바라보던 미츠사다가 초조함에 말고삐를 움켜쥐며 소리쳤다.

"쏴라! 안 맞아도 좋으니 계속 쏴서 적들이 지원 가지 못하게 붙잡아라!"

거리가 제법 있는 데다가 강 건너편의 조선군에 가린 탓에, 말 위에서 보고 있는 미츠사다에게도 시부카와군의 모습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시부카와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깃발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겨우 전투가 시작되었음만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깃발들도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쏘는 것만으로는 안 되겠다! 누가 소규모 부대 하나를 이끌고 천천히 나카가와를 따라 북쪽으로, 하류 쪽으로 움직여라! 건널 것처럼 행동하되 건너지는 마라!"

나카가와 하류로 이동해서 도하할 것처럼 움직이면 조선군 예비대가 시부카와군을 막으러 가는 대신 도하를 막으러 올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미츠사다의 말에 가장 하류 쪽에 있던 부대가 나카가와 동쪽 강변을 따라 슬금슬금 움직이자, 정말로 조선군 진영에서도 부대 하나가 나와 서쪽 강변을 따라 견제하듯 움직였다.

"좋아, 효과가 있다! 그대로 계속해라! 강에 너무 붙으면 조선군에게 공격당할 수 있으니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라!"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또 불꽃놀이가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병사들은 이제 별 신경도 쓰지 않았고, 말 몇 마리가 살짝 푸르륵 거릴 뿐이었다.

"조선 놈들은 생각이 없는 거냐, 화약이 남아도는 거냐? 이렇게 계속 터뜨려 대면 개나 소나 익숙해져서 누가 놀라겠느냐!"

미츠사다가 신경질을 내며 소리치는데 옆에 서 있던 쇼니 가문의 가신 하나가 말했다.

"이번 터지는 소리는 뒤에서 나지 않았습니까?"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에 미츠사다는 신경질 내던 것도 잊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뒤에서? 글쎄. 나는 계속 조선군이 작은 대포 쏘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가신과 미츠사다 둘 다 확신 없이 대화하는 도중에, 조선군이 쏘아올린 화살 하나가 쇼니군 진영 머리 위에서 터지며 녹색 불꽃을 사방으로 날렸다.

"조선군이 불꽃을 연달아서 쏜 적은 없지 않았는가. 이번 건 자네와 나 둘 다 눈으로 직접 봤으니, 아무래도 조금 전 소리는 둘 다 다른 소리를 헷갈린 모양이야."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다시 조선군 진영을 바라본 미츠사다의 머릿속에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조선군이 쏜 것 중에 녹색 불꽃이 있었나?'

가신에게라도 물어보려 마음먹은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외침에 미츠사다의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후방에 대규모 적 기병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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