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누렁이의 죽음 (5)
도망치는 당 군을 거침없이 추격하던 누렁이가 긴 울음을 남기고 쓰러졌다.
이에, 온달도 중심을 잃고 쓰러지니, 누렁이가 온달의 몸을 덮었다.
“살을 날려라! 온달이 말과 함께 쓰러졌다!”
설인귀가 기뻐 목이 터져라 외쳤고, 도주하던 주위 궁병들이 온달을 향해 시위를 당겼다.
그러나 생명이 꺼져가면서도 누렁이는 주인을 지키고자 자신의 머리로 온달의 몸을 덮었고, 날아드는 화살은 모두 누렁이의 목과 머리에 박혔다.
“계속 살을 날리고 창병들은 돌격하여 온달의 명줄을 끊어라!”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설인귀가 연신 명을 내리니, 누렁이의 몸 위로 화살이 비처럼 내리꽂혔고, 창병들이 달려들었다.
이때, 한들이 급히 말을 몰아 달려오며 소리쳤다.
“안 돼! 장군!”
한들의 갑주와 말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화살을 방패처럼 막아내었고, 이 모습을 누렁이에 깔린 온달이 모두 지켜보았다.
“노인장!”
온달이 급히 정신을 수습하여 누렁이의 시신을 치워 몸을 일으키고는 운철대검을 휘둘러 검기를 날렸다.
“파산귀검!”
운철대검이 일으킨 검기가 광풍처럼 사위를 휩쓸고 지나니, 힘겹게 서 있던 한들의 말이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리고 말 위에 앉은 채 절명한 한들이 고개를 푹 떨구니, 그 사이로 달려드는 당 군의 모습이 온달의 시야를 자극하였다.
“이놈들이!”
온달이 이를 바드득 갈며 크게 소리치고는 당 군 속으로 내달렸다.
우드득.
순간, 온달은 자신의 발목을 타고 오르는 고통에 미간이 일그러졌다.
누렁이에 깔리며 발목을 다친 듯하였다.
온달이 고통을 참으며 오른발을 질질 끌고 앞으로 나오니, 당 군의 기세가 살아났다.
“온달이 다리를 다쳤다!”
“온달이 부상을 입었다!”
함성이 일며 기세 오른 당 군이 창을 앞세워 달려들었다.
이에, 온달이 운철대검을 가로로 휘둘러 파산귀검을 펼쳤다.
“윽!”
그러나, 고통에 겨운 신음과 함께 운철대검을 쥔 손에 힘이 풀렸다.
온달이 운철대검을 떨구고,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니 손목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어느새…….”
고통도 느끼지 못할 만큼 흥분하였던 모양이었다.
급히 화살을 뽑아내니, 그사이 달려든 당 군이 창을 찔러왔다.
이에, 온달이 뽑아 든 화살을 날려 당 군의 명줄을 끊고는 땅에 떨군 운철대검을 줍고자 손을 뻗었다.
“아…….”
그러나, 좌측에서 찔러온 당 군의 창이 온달의 옆구리를 뚫었다.
“나도… 누렁이가 나이가 들듯… 나이 들었던 것인가?”
힘없이 중얼거린 온달이 옆구리에 박힌 창을 쥐어 부러뜨리고는 달려드는 당 군을 후려쳐 쓰러뜨렸다.
그사이에도 화살은 쉴 새 없이 온달을 향해 날아들었고, 기세 오른 당 군이 온달의 명줄을 끊고자 달려들었다.
“이 건방진 놈들이!”
마침내 온달이 격분하여 고통도 잊고, 달려드는 당 군들을 향해 부러진 창을 마구 휘둘렀다.
의식이 흐려져 파산귀검 초식도, 비검술과 백두검벅 초식도 잊은 채 그저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적을 향해 후려치고 후려칠 뿐이었다.
비록 온달이 중상을 입고, 의식마저 흐렸으나, 그의 신력만큼은 여전하여 창에 맞은 당 군은 머리가 으깨지고 흉곽이 으스러지며 나뒹굴었다.
“이놈들이… 더 오너라! 더 오너라!”
온달이 흐려지는 시야 속으로 달려드는 당 군을 노려보며 소리치던 그때, 당 군을 향해 비호처럼 내달리는 인영들이 들어왔다.
거북이처럼 두툼한 상체와 목 없이 둥근 머리의 사내, 봉두난발한 머리를 휘날리며 박도를 휘두르는 사내 그리고 백의를 곱게 차려입고 두 자루 검을 휘두르는 여인.
팽무일과, 야수, 공손향이 개소문의 명을 받아 온달을 지키고자 당 군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거냐? 정신 차려! 온달!”
팽무일이 온달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소리치며 날아드는 화살을 파천신검을 펼쳐 막았다.
물샐 틈 없는 검막을 팽무일이 펼쳐지니, 야수는 두 자루 박도를 휘둘러 달려드는 당 군을 베었다.
이에, 한숨 돌린 공손향이 말을 끌고 와 온달을 태우고자 했으나, 그녀의 힘으로는 온달을 감당하기 어려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좀! 누가 좀 도와주시오!”
공손향이 이처럼 소리치니, 개마무사를 이끌고 당 군 속으로 돌진하던 막바우와 강혁수가 급히 말을 달려왔다.
“장군!”
“온달 장군님!”
이어서 경우도 말을 달려오더니, 막바우에게 급히 소리쳤다.
“여긴 혁수에게 맡기고 너는 어서 하던 돌진이나 마저 해!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너무도 냉정한 경우의 외침에 막바우가 입을 떡 벌리고, 공손향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해! 지고 싶어? 여기서 지면 다 끝장이야! 하던 돌진이나 마저 하고, 하던 싸움을 끝내라고!”
이에, 막바우가 급히 말을 돌려 당 군 속으로 내달리며 개마무사를 다시 이끌었다.
“우린 이기고 있어. 이기고 있다고! 당 군을 거침없이 몰아붙이고 있단 말이야. 그러니, 혁수, 네가 장군을 지켜 본진으로 돌아가야 해. 나는 이 싸움을 마저 끝내야 한다고.”
강혁수에게 당부를 남긴 경우가 공손향을 힐끔 쳐다보고는 가볍게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궁기병을 이끌고 도주하는 당 군을 쫓기 시작하였다.
“기사를 펼쳐라! 놈들을 요하로 몰아라!”
경우의 앙칼진 외침과 함께 궁기병이 날린 화살이 전장을 뒤덮었다.
* * *
육화진은 각종 병종이 어울러져 장기전을 펼치기 용이하였고, 공수 전환이 빨라 적의 약점을 노린 반격이 강점이었다.
황제 이세민은 숱한 위기 속에서 이 육화진으로 반격을 가해 승리를 취하였고, 이번 전투에서도 반드시 육화진이 승리를 마련해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뿔 달린 투구를 쓰고 검은색 갑주를 걸친 고구려의 철기병 개마무사는 마치 성난 들소 떼와도 같이 오직 돌격 일변도로 공격을 가해 왔다.
사람은 물론 말까지 철갑을 두른 개마무사들은 날아드는 화살을 모두 튕겨내었으며, 극과 방패마저 짓밟았으니, 당 군이 느낀 공포는 실로 상당하였다.
“도망쳐라! 괴물들이다!”
“개마무사를 피하라!”
이미 주필산에서 개마무사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던 당 군이었으나, 안시성에서의 패배가 너무도 충격적이었기에, 자신들의 승리는 잊은 지 오래였다.
선두의 군사들이 겁에 질려 도주하기 시작하니, 육화진은 허물어졌고, 황제 이세민이 노린 반격도 물거품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구릉 위에서 뿔나팔 소리가 길게 울리더니, 삼족오 기를 펄럭이며 개소문이 후미의 개무무사들을 이끌고 돌진을 시작하였다.
“모두 짓밟아 버려라!”
개소문의 외침에 개마무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니, 그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당 군은 개소문의 개마무사마저 구릉을 내달려 돌진해 오는 모습에 기가 질려 비명을 질렀다.
“연개소문이다! 도망쳐라!”
“삼족오가 몰려온다! 개마무사다!”
순식간에 설인귀와 장검의 부대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미 온달과 고정의, 고돌발이 이끈 개마무사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였으니, 그 공포는 더했을 것이다.
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며 내달려온 개마무사들이 도주하는 당 군을 짓밟으며 당 군의 본진을 노리고 계속해 밀고 들어갔다.
이에, 황제 이세민도 자신의 계책이 또다시 틀어졌음을 깨닫고 명을 내렸다.
“속히 도하를 강행한다. 서둘러라!”
* * *
단숨에 구릉을 내달려 질주해온 개소문이 강혁수 앞에 말을 멈추었다.
“개마를 했어야 했거늘…….”
누렁이에게 철갑을 두르지 않음을 한탄하며 말에서 내린 개소문이 강혁수에게 물었다.
“장군은 어떠신가?”
이에, 개소문을 선친의 원수라 여겨 복수를 꿈꿔왔던 강혁수가 잠시 낭아봉을 굳게 쥐고 머뭇거리다가 답하였다.
“중상이시오.”
개소문이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단호히 명하였다.
“너희는 속히 장군을 후송하여 지켜라.”
명을 받은 공손향이 강혁수의 도움을 받아 온달을 말에 올리고는 내달리니, 강혁수도 온달을 지키고자 뒤따랐다.
“제자, 우리는 다시 적을 친다. 말에 오르라.”
“좋아! 한바탕 내달려 보자고!”
팽무일도 말에 오르니, 개소문과 팽무일이 함께 파천신검으로 검막을 펼치며 질주를 시작하였다.
이에 질세라, 야수도 튼튼한 두 다리로 경공을 펼치며 힘차게 박도를 휘두르니, 미처 도주하지 못한 당 군은 처참히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갔다.
* * *
“도하하라! 요하를 건너라!”
장손무기가 황제 이세민을 호위하며 소리쳐 명하였다.
드넓은 요하는 병장기도 버린 채 강물 속으로 뛰어든 당 군으로 가득하였고, 사위에서 개마무사들에게 짓밟히는 당 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내가 너무도 자만하였도다.”
속히 요하를 건너 전투를 피했다면, 이와 같은 피해는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기에, 황제 이세민은 너무도 뼈저린 후회를 되씹으며 요하를 건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후미에 배치한 장손무기의 부대가 먼저 도하하여 진을 펼치고 있었기에, 뒤를 쫓는 개마무사들에게 화살을 날리며 추격을 막을 수 있었다.
평지에서 개마무사들에게 날린 화살은 헛된 공세였으나, 요하를 건너는 개마무사들을 막기엔 충분하였다.
요하 너머 당 군의 강한 저항에 개소문도 더는 공세를 고집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일단 물러나라!”
뒤좇던 개마무사들이 물러나니, 당 군은 그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강가를 지키며 고구려군의 도하를 막을 수는 없었다.
“군을 추스르고 퇴각한다. 놈들의 추격이 있을 것이다. 서둘러라.”
황제 이세민이 이처럼 명을 내리니, 당 군은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행군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토산을 무너뜨릴 만큼 거세게 내렸던 폭우가 요하 하류를 휩쓸었으니, 가을이 다가오는 이 시기에도 요택은 늪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높게 자란 갈대와 풀이 습지와 늪지를 가렸고, 무턱대고 발을 디딘 당 군은 발목에서부터 허리까지 빠지는 다양한 늪에 기겁하였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칼을 뽑아들고 앞장서 풀을 베며 소리쳐 명하였다.
“풀과 갈대를 베어 시야를 확보하라!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여유가 없느니라!”
풀과 갈대를 베며 행군하니, 그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고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늦여름의 늪지대는 온갖 벌레와 모기로 가득하였고, 젖은 땅에서 불도 지피지 못한 채 잠을 청해야 하니, 손발이 물러 부르트고 상처가 곪았다.
이에 장손무기가 황제 이세민에게 청하였다.
“폐하, 동북으로 방향을 틀어 요택을 벗어나심이 어떠하시온지요?”
그러나, 황제 이세민은 자신들이 요택을 헤매고 있는 동안 고구려군이 요하를 도하했다면, 필경 마른 땅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
“불가하다. 요택을 넘어 회군할 것이다.”
황제 이세민이 이처럼 단호히 말하니, 장손무기도 더는 청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황제 이세민의 생각처럼 요하를 건너 마른 땅에서 대기하고 있지 않았다.
대신하여, 영주 앞에 진을 펼쳤던 카사르의 올루스가 요택을 따라 당 군과 행군 속도를 맞추고 있었다.
* * *
중상을 입은 온달은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못하였고, 개소문을 비롯한 모든 장수들이 근심하여 군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부, 어찌해야 하냐? 온달은 안시성으로 이송하고, 우리는 당 군을 마저 추격하냐?”
팽무일이 소리죽여 물으니, 개소문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온달 장군님과 온동에게 약속하였다.”
“뭔 약속?”
팽무일이 의아해 물으니, 개소문이 짧게 답하였다.
“탁현 행군원수부.”
“아, 그 쓸데없는 약속? 그래서 온달을 데리고 탁현까지 황제를 쫓겠다고?”
“물론이다.”
이에, 팽무일이 어이없어 허허 웃고는 군막 밖으로 나가니, 공손향과 야수가 그 뒤를 따랐다.
“어찌해야 하나?”
팽무일이 머리를 긁적이며 공손향에게 물었다.
이에, 공손향도 답을 찾지 못해 말이 없으니, 야수가 대신 답하였다.
“온. 달… 이미, 중상이다. 그의… 말도. 죽. 었. 고… 요하를… 건널 때… 온. 달을… 공격하려던, 계. 획은… 이제.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