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누렁이의 죽음 (2)
온달마저 자신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으니, 고정의가 크게 당황하였다.
그러나, 아직 당 군이 건재한 상황에 서로 반목할 수 없어 재차 설득하였다.
“온달 장군, 당 군은 아직 건재하오. 우리와 그대가 화합하여야, 당 군을 물리칠 수 있소. 장군도 이미 알고 있을 것 아니오?”
“알고 있소.”
너무도 담담히 온달이 짧게 답하니 고정의가 말끝을 흐렸다.
“헌데 어찌…….”
“나 역시, 당 군이 건재한 이 상황에 그대들과 일전을 벌일 생각은 없소. 하여, 거리를 벌려 싸움을 미연에 방지하자 말하는 것이오.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접근한다면… 일전을 벌일 수밖에 없소.”
온달은 전혀 흥분하지 않은 듯 담담히 말하였으나, 자신의 제안을 고정의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일전을 벌일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이에, 고정의가 한숨을 내쉬며 군을 물리려 할 때, 안시성 성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군사들이 나왔다.
온달이 고정의를 경계하며 시선을 옮겨 살펴보니, 성주 양만춘이 선두에 섰고 그 양옆으로 평강과 개소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연개소문!”
온달이 놀라 부르짖고는 누렁이를 몰아 바람을 가르듯 질주하였다.
“연개소문!”
온달이 천둥처럼 소리치며 운철대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누렁이가 거리를 좁히면 단 일격에 개소문의 머리를 으깰 듯 매우 기세가 험악하였다.
이에, 양만춘이 놀라 손을 내저었고, 평강도 온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소리쳐 말하였다.
“장군님! 고정하소서!”
무엇이든 평강의 말이라면 결코 이견 없이 따르던 온달이었으나, 개소문을 향한 분노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개소문! 이 천하의 대악인! 태왕 폐하와 대장군의 원한을 갚겠노라!”
어느새 내달려온 온달이 운철대검을 크게 휘둘러 개소문의 머리를 노렸다.
이에, 개소문도 허리춤의 쌍검을 양손에 쥐고 급히 파천신검을 펼쳐 방비하였다.
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천하의 그 어떤 공격도 막아내던 파천신검의 단단한 방벽이 깨지고 말았다.
온달의 신력과 운철대검의 무게가 더해진 파산귀검이 쌍검을 분지르며 곧장 개소문의 머리를 노렸다.
이에, 개소문이 급히 허리를 젖혀 간신히 피하자, 운철대검이 개소문이 탄 말의 머리를 으깼다.
“대막리지!”
개소문이 말과 함께 쓰러지자, 공손향이 놀라 부르짖고는 그대로 몸을 날려 온달에게 쌍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팽무일과 야수도 각기 무기를 뽑아 들고 온달에게 달려드니, 온달의 뒤를 쫓아온 막바우와 경우, 강혁수도 각기 무기를 뽑아 들고 달려와 맞섰다.
이때, 말에 깔렸던 개소문이 급히 몸을 추스르곤 일어나 소리쳤다.
“멈추시오! 싸워선 아니 되오!”
이에,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노려보니, 온달이 말에서 내려 개소문에게 운철대검을 겨누었다.
“내 너를 부족하게 대한 일이 많았을 것이다. 하여, 네가 파천신검 초식도 훔쳐 달아났겠지. 나는 그 부분에 대하여 내게 죄를 물을 생각은 없다. 허나, 태왕 폐하와 대장군을 시해한 죄는 결코 씻을 수 없으니, 오늘 내가 네 죄를 물어 벌하겠노라.”
결코, 길게 말하는 법 없던 온달이 이처럼 장황히 말하니, 일순 주위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직 개소문만이 운철대검이 내뿜는 살기에 질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으니,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도 개소문이었다.
“장군! 장군께 해명은 할 생각이 없습니다. 허나, 당 군을 물리칠 때까지 제 목에 유예를 주신다면 단언컨대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유예?”
“그렇습니다. 당 군을 물리친 다음, 그때 우리가 겨뤄도 늦지 않다 여깁니다.”
온달의 일격에 두 자루 검이 부러졌으나, 아직 등에 다섯 자루의 검이 있었으니, 개소문은 결코 자신이 패했다고 여기지 않고 있었다.
이에, 온달이 코웃음을 치며 말하였다.
“한순간의 위기를 모면해 목숨을 구하고자 꾀를 내는 것 같지는 않구나. 허나! 내가 네게 유예를 줄 이유는 없다. 너는 태왕 폐하와 대장군께 유예를 드렸는가?”
말을 마친 온달은 개소문이 변명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빠르게 달려들며 운철대검을 휘둘렀다.
이에, 개소문도 별수 없이, 등으로 손을 돌려 검을 쥐었다.
‘비검술을 펼치면… 온달 장군께서 상처 입을 터인데…….’
잠시 온달이 걱정되었으나, 그보다 먼저 자신의 머리가 으깨질 처지였으니, 망설일 겨를이 업었다.
개소문이 뒤로 빠르게 물러나 운철대검과 거리를 벌리고 두 자루 검을 양손에 쥐었다.
그리고, 비검술의 보법을 밟으며 온달을 겨누었다.
온달이 한발이라도 다가올 시, 날릴 듯 사뭇 기세가 사나웠다.
허나, 온달은 이를 비웃듯 입꼬리를 실룩거리고는 오히려 대담히 거리를 좁혔다.
“훔쳐 배운 비검술인가? 시건방지기가 이를 데 없는 놈이로구나.”
이에, 개소문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검을 쥔 개소문의 손목이 살며시 움직였다.
이때, 온동이 빠르게 지면을 날듯 내달려오더니, 금강대도를 전광석화와도 같이 뽑아 일자로 곧게 뻗었다.
갑작스럽게 온동이 거리를 좁혀 공격해오니, 개소문이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온동!”
그와 동시에, 개소문이 뒤로 훌쩍 몸을 날려 거리를 벌렸으나, 온동의 경공이 더욱 뛰어났다.
앞도 보지 못하는 온동은 오직 소리에 집중해 개소문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계속 거리를 좁혀 그대로 금강대도를 개소문에 목에 대었다.
천하의 보도, 금강대도의 차가운 칼날이 목에 닿자, 개소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동, 어찌 이러는 것이냐?”
개소문의 물음에 온동은 대답 대신 더욱 금강대도의 칼날을 개소문의 목에 바짝 대었다.
서늘한 칼날이 목을 파고들며 개소문의 옷을 피로 물들였다.
“대막리지!”
공손향이 놀라 부르짖으니, 개소문이 양손에 쥔 검을 떨구고는 손을 내저어 안심시켰다.
“그만! 안심하고 다가오지 말라.”
공손향의 발이 멈추고, 개소문의 검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온동이 천천히 입을 열어 온달을 불렀다.
“장군!”
“동아, 말해 보거라.”
온달이 차분히 답하니, 온동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장군, 소인은 고구려인도 아니었고, 장군과 피를 나누지도 못하였습니다. 허나, 장군께선 소인을 일가로 맞아 성을 내려주시고, 아껴주셨으니, 그 은혜가 하늘과 같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동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온달이 운철대검을 땅에 박아 세우며 물었다.
“동아,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이에, 온동이 머뭇거림 없이 답하였다.
“피는 제가 묻히겠나이다. 장군! 비록 소인 앞을 보지 못하오나, 장군의 은혜로 무예를 익혀 장군께 맞서는 이의 목은 언제든 벨 수 있나이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개소문의 목을 벨 수 있다는 듯한 말이었다.
이에, 개소문이 온동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고, 온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 모습을 온동은 볼 수 없었다.
“장군! 소인 언제든 개소문 형님의 목을 벨 수 있고, 대군 속에 있다 한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단 한 사람의 목은 취할 수 있다 자신합니다. 하여!”
“하여?”
온달의 짧은 물음에 온동이 마저 말을 이었다.
“하여, 개소문 형님의 목은 소인이 언제든 취해 바칠 수 있사오니, 장군께선 심려치 마시옵고, 당 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데 전념해 주시옵소서. 개소문 형님의 죄는 소인이 반드시 묻겠습니다.”
온동의 이 말은 당 군을 물리치기 전까지 개소문과 힘을 합치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온달도 온동의 말을 이해하였는지 대답을 대신하여 껄껄 웃었다.
“하하하. 핫하하하!”
사실, 온달은 개소문 휘하 장수 고정의가 십삼만에 달하는 개마무사를 이끌고 자신의 앞에 대치하니, 내심 일전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고정의가 군을 물려 거리를 둔다면 각기 당 군을 공격하여 물리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안시성에서 개소문이 나타나니, 선대 태왕 건무와 강이식의 죽음이 떠올라 분을 참을 수 없었다.
단칼에 개소문의 머리를 으깨고 싶었으나, 막상 개소문을 공격하면서도 내심 고정의가 이끈 십삼만의 개마무사가 개소문의 원한을 갚기 위해 안시성 군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온동이 내달려와 개소문을 손쉽게 제압하고는 당 군을 물리친 후 개소문의 죄를 묻겠다고 말해 근심을 덜어주니, 껄껄 웃으며 기뻐함은 당연하였다.
“오냐! 좋다! 온동 네 말대로 하겠다. 개소문의 목은 온동 네게 맡길 터이니, 내 너를 믿고 당 군을 이 땅에서 몰아낼 때까지 개소문의 목을 유예해 주겠다.”
온달이 이처럼 시원스럽게 말하니, 온동이 기뻐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였다.
“장군, 소인의 보잘것없는 재주를 믿어 주시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에, 개소문이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벨 듯 바짝 닿은 칼날을 살짝 치우고는 온동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동아, 네 덕분에 큰 살상이 벌어지지 않았구나. 나 역시 당 군을 몰아낼 때까지 내 목을 네게 맡기겠다.”
온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금강대도를 거두고는 개소문과 온달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번갈아 살피며 말하였다.
“개소문 형님! 우리가 당 군을 이 땅에서 몰아낸다면, 군사들의 피해가 없도록, 탁현 행군원수부에서 형님과 단둘이 겨뤄 죄를 묻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하자.”
개소문이 짧게 답하고는 온달을 향해 살짝 머리 숙여 예를 표하였다.
이에, 온달도 양측 군사가 피해 없이 개소문의 죄만 물을 수 있다면 마다할 리 없었으나, 온동이 아닌 자신이 직접 개소문의 죄를 묻고 싶어 이견을 내었다.
“동아, 개소문의 죗값은 내가 직접 받아야겠구나.”
“장군…….”
“허나, 지금은 아니니,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되느니라. 네 말대로 탁현 행군원수부에서 내가 직접 묻겠노라.”
이로써, 탁현 행군원수부로 고구려군이 진격할 때까지, 온달과 개소문의 일전은 미뤄지게 되었으니, 이 모두가 온동의 공이었다.
그리고 이때, 건안성에서 보낸 전령이 급히 고돌발에게 영주의 상황을 아뢰니, 고돌발이 놀라 고정의와 함께 개소문에게 달려와 말하였다.
“대막리지! 쇼락이 왔습니다.”
“쇼락이?”
개소문이 기뻐 되물으니, 고돌발이 고개를 끄덕여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쇼락이 적봉진의 원군을 이끌고 영주성 앞에 진을 치고 있다 합니다.”
“영주? 어찌 영주에 있단 말인가? 속히 요하를 넘어 요동으로 들어오지 않고?”
개소문의 물음에, 고돌발이 답하지 못하니, 평강이 뭔가를 깨닫고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우랑과 카사르가 개소문을 믿지 못해 영주에 머물며 우리의 연통을 기다리고 있는 게야. 개소문을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지 내심 염려하였는데, 마침 잘 되었구나.’
평강은 개소문과 힘을 합쳐야 한다 여기면서도, 혹여 수적 우위에 있는 개소문과 일전을 벌일 수도 있다는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하여, 카사르와 우랑이 원군을 이끌고 영주성 앞에 있다는 소식에 뛸 듯이 기뻤으나, 애써 개소문에게 속내를 들키지 않도록 짐짓 표정을 굳혔다.
“장군, 연통을 넣어야겠습니다.”
평강이 온달에게 나지막이 속삭이니, 눈치 빠른 공손향이 이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들은 대막리지를 믿지 않고 있다. 당 군을 몰아내면 필경 대막리지를 해하려 들 것이다. 탁현 행군원수부가 아닌, 이곳 요동에서… 대막리는 결코 해명도 변명도 할 분이 아니니, 싸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허면, 힘을 지녔을 때 눌러야 한다.’
이렇듯 생각을 정리한 공손향이 적당한 일시마저 마음속으로 고려해 정하였다.
‘당 황제가…. 요하를 넘는 바로 그날이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