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누렁이의 죽음 (1)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설인귀의 눈이 번득였고, 그의 방천화극이 허공에서 온달의 등을 노렸다.
설인귀가 뿜어내는 살기에 온달이 급히 몸을 돌려 운철대검을 휘둘렀다.
깡!
운철대검이 방천화극의 날에 부딪히며 파열음을 일으켰다.
그리고, 강한 타격에 방천화극의 날이 쪼개져 허공에 뿌려졌다.
그러나 설인귀는 여전히 허공에 몸을 날린 상태 그대로 온달을 향해 덮쳐왔다.
이에, 온달은 설인귀의 이 무모한 행동에 실소를 머금으면서도 황제를 지키고자 목숨을 거는 용기에 차마 운철대검을 재차 휘두르지 못하였다.
“성가신 놈이로고!”
온달이 크게 호통을 치며 주먹을 곧게 뻗어 설인귀의 명치를 가격하였다.
날아들던 기세에 온달의 주먹이 더해지니, 설인귀는 숨도 쉴 수 없는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진 채 땅에 처박혔다.
“목숨은 거두지 않겠다. 다음엔 쉬운 상대를 찾아 겨루거라!”
온달이 꾸짖듯 말하고 누렁이를 몰아 내달릴 때까지 설인귀는 여전히 쓰러져 힘겹게 숨을 내뱉어야 했다.
온달이 다시 질주하니, 도주하는 당 군이 겁에 질려 바다가 갈라지듯 흩어졌고, 이세적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어 부장들에게 엄히 명하였다.
“온달을 잡아라! 놈의 목을 베고 검신의 칭호를 취하라!”
이에, 이세적 휘하 장수 십여 명이 일시에 말 머리를 돌려 온달을 향해 내달렸다.
온달은 자신을 노리고 질주해 오는 장수들의 수를 세어보고는 운철대검을 고쳐 쥐었다.
“모두 열넷. 오너라!”
온달의 외침에 누렁이가 호응하듯 긴 울음을 남기고 한 치의 두려움 없이 곧장 질주하였다.
그리고, 온달이 다시 수를 세기 시작하였다.
“하나!”
외침과 동시에 운철대검을 빠르게 가로로 베니, 가장 선두에서 달려들던 장수가 비명을 내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둘! 셋!”
누렁이는 계속 질주하며 황제를 쫓았고, 온달을 노리고 달려들던 장수 둘은 머리와 어깨를 맞아 말에서 떨어졌다.
“다섯! 여섯! 일곱!”
또다시 온달이 수를 세며 운철대검을 길게 가로로 베어 동시에 세 장수를 말과 함께 베었다.
“여덟! 아홉! 열!”
그리고 다시 온달이 운철대검을 휘두르니, 겁 없이 달려들던 장수들이 말과 함께 운철대검에 맞아 나뒹굴었다.
이어서, 온달이 심호흡과 함께 정면에서 돌진해오는 장수들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파산귀검!”
마상에서 펼친 파산귀검 초식이 길게 뻗으며 땅을 가르고 흙을 날리며 나머지 장수들의 갑주와 말 머리를 으깨며 길을 열었다.
“황제! 머리는 두고 가시오!”
더 이상 자신의 앞을 막는 이가 없으니, 온달이 더욱 누렁이를 재촉하여 황제 이세민의 뒤를 쫓았다.
비록 당 군이 패주 중이라고는 하나, 적의 대군 속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는 온달의 용기에 고구려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당 군은 더욱 처참한 심정이 되었다.
이때, 더는 온달이 활약하도록 두고 볼 수 없다 여긴 이세적이 크게 소리쳐 명하였다.
“진을 펼치고 온달을 에워싸라!”
마상에서 뿔나팔이 울리고, 호각이 메아리치니 정신없이 도주하던 이세적의 부대가 일시에 발을 멈추었다.
이에, 온달은 이들 당 군이 무척 훈련이 잘 된 정예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가 퇴각 중이나, 온달 저놈만큼은 요절을 내고 물러날 것이다. 돌격하라!”
주위 오만여 명의 당 군이 창을 앞세워 달려드니, 일기당천의 온달이라 할지라도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누렁아, 더는 무리인 듯하구나.”
온달의 말을 알아들은 누렁이가 말 머리를 돌려 내달리니, 노련한 이세적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화살을 날려라! 온달을 맞춰라!”
이에, 궁수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와 온달을 겨누웠다.
이때 경우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웃기지 말라 하셔!”
그리고 이어서 경우가 날린 한 대의 화살이 빠르게 바람을 가르더니, 이세적이 탄 말의 눈을 맞췄다.
고통에 겨워 비명을 내지르며 말이 쓰러지니, 이세적도 함께 쓰러져 말에 깔렸다.
그리고 이어서 내달려온 귀니수가 손을 들어 기사를 명하였다.
“우리도 맞서 살을 날려라!”
이에, 말갈 기병들이 일제히 마상에서 시위를 당겼고, 온달을 겨누던 궁수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귀니수가 이끈 말갈 기병 뒤에서 막바우와 강혁수가 개마무사를 이끌고 맹렬히 돌진해왔다.
“돌격하라!”
막바우의 외침에 개마무사들이 삭을 일제히 앞으로 뻗으며 더욱 속도를 높이니, 급히 몸을 추스른 이세적이 부장의 말에 올라 소리쳤다.
“퇴각하라!”
이세적의 이 한마디에 도주하기만 고대하던 군사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뒤를 막바우와 강혁수가 개마무사를 이끌며 쫓았고, 이내 곧 고정의가 이끈 개마무사들마저 더해져 추격하였다.
황제 이세민은 두 시진 이상 내달린 뒤에야, 추격을 피해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손실은 얼마나 되는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황제 이세민이 물으니, 이세적이 아뢰었다.
“세심히 파악해야 정확히 알 수 있으나, 소장이 확인한 바로는 육십오만 대군이 오십만으로 그 수가 줄었나이다.”
단 한 번의 패배로 십오만에 달하는 군사를 잃었으니, 황제 이세민이 할 말을 잃었다.
잠시 황제의 침묵이 이어지니, 이세적이 이도종과 장검 등에게 진을 펼칠 것을 당부하였다.
“그대들이 진영을 갖추고, 손실을 확인해 주시구려.”
이에, 이도종과 장검이 군사들을 지휘하여 진영을 갖추었다.
그사이 이세적이 황제 이세민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었다.
“폐하, 소장이 생각하옵건대, 안시성 공략은 이미 어려운 실정이옵나이다. 하여, 대군을 안전한 요동성으로 물리시어 향후의 일을 논의하심이 옳을 듯하옵나이다.”
“요동성?”
“그렇습니다. 평양성 직격을 정할지, 영주로 군을 물려 군세를 가다듬을지 정하시는 것이 옳을 듯하옵니다.”
“그래, 그대의 말이 옳다. 오늘은 이곳에서 숙영하고 내일 요동성으로 진군하도록 하자.”
황제 이세민이 이처럼 이세적의 의견을 받아들일 때, 영주총관이 보낸 전령이 급히 달려와 아뢰었다.
“폐하, 영주성 앞에 북방 이민족이 천막과 양 떼까지 끌고 와 진을 치고 있나이다.”
“뭐라?”
황제 이세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전령이 겁에 질려 머리를 조아렸다.
* * *
적봉진에서 출전한 카사르의 올루스가 영주에 당도하여, 성 앞에 진을 펼치니 들판은 하얀 양 떼로 가득하여 무척이나 한가로워 보였다.
그러나 실상,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보이는 이 모두가 전사인 카사르의 올루스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대족장, 영주를 공략하실 생각이시오?”
호타크가 대족장 카사르에게 영주성을 가리키며 물으니, 카사르가 고개를 저었다.
“우린 저 성을 넘을 방도가 없다.”
이에, 우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사르를 대신하여 호타크에게 말하였다.
“대족장의 말처럼 우린 저 성을 넘을 수 없으니, 공성을 벌이기보단 이렇게 앞을 막아 숨통을 조이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됩니다.”
이때, 개소문의 명을 받은 쇼락이 카사르에게 말하였다.
“대족장, 대막리지 개소문 합하께서 원군을 청하셨고, 고구려는 지금 위태로운 상황이니, 여기서 머뭇거릴 여유가 없습니다.”
이에, 카사르가 쇼락을 잠시 응시하더니, 냉정히 말하였다.
“너는 이제 개소문이를 섬기는구나. 허나, 나는 나의 형제 온달을 돕고자 왔다. 그러니, 당분간 이곳에 머물 것이다.”
적봉진으로 원군을 청하러 떠났던 카사르는 마침 올루스를 이끌고 영주로 진군하던 카사르를 만날 수 있었다.
하여, 기쁜 마음에 그간의 사정을 소상히 설명하고, 오해를 풀고자 노력했으며, 한편으로 카사르의 대군을 요동으로 속히 이끌고 가고자 했다.
그러나, 카사르와 우랑은 오랜만에 만난 쇼락을 전혀 반기지 않았다.
이들은 쇼락이 개소문을 섬기며, 온달의 적일 수 있다 의심하고 있었기에, 결코 개소문을 도울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온달과 함께 개소문이 이끈 고구려군을 공격하여, 선대 태왕과 대장군의 원한을 풀고자 했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쇼락이 답답하다는 듯 카사르에게 이견을 내었다.
“대족장, 온달을 돕고자 하신다면, 서둘러 요하를 건너야 합니다.”
그러나 카사르는 여전히 차갑게 잘라 말하였다.
“아니다.”
“어째서 아니라 말하는 것입니까?”
쇼락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으니, 카사르를 대신하여 우랑이 답하였다.
“우리가 영주성을 이렇듯 봉쇄하면, 안시성을 포위한 황제에게 소식이 전해질 것이고, 그 소식을 안시성에서도 알 수 있을 것이오. 허면, 현명한 평강 공주께옵서 수를 내시어 우리에게 연통하실 터! 그때, 호응하여 움직여도 늦지 않소이다.”
“허나, 그사이 요동 일대가 초토화되고 수많은 성이 함락되며 고구려군의 손실이 무척이나 클 것입니다.”
그간 개소문과 함께 중원을 떠돌고, 고구려에 머물면서도 시야를 계속 넓힌 쇼락은 전황이 눈에 그려져 무척이나 마음이 조급하였다.
그러나, 우랑과 카사르는 고구려군의 손실과 요동의 피해는 조금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향후 개소문과의 일전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반길 일이었다.
이들은 카사르의 해명과 달리 개소문이 온달의 적일 수도 있다는 의혹을 품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족장! 여기서 지체하면 안 됩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요동의 전황이 걱정된 쇼락이 재차 재촉하였으나, 카사르는 여전히 차갑게 그를 대하였다.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나의 형제 온달에게서 연락이 오면 그때 움직이겠다고! 나의 적이 당 군일지, 연개소문이 이끈 고구려 군일지 온달이 정해 줄 것이니, 너는 조용히 기다려라!”
이에, 쇼락은 더는 간청하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쇼락의 이 속 타는 심정과 달리, 카사르와 우랑의 판단대로 영주총관은 황제에게 급히 전령을 보내었고, 이 소식은 안시성에도 전해지고 있었다.
* * *
성공적으로 반격을 이룬 안시성의 군사들과 고정의가 이끈 고구려군은 서로 잡아먹을 듯 안시성 서문 앞에 대치하였다.
온달과 막바우, 강혁수가 당장이라도 십삼만 대군을 향해 돌진할 듯 선두에 섰고, 경우와 귀니수가 궁기병과 말갈 기병을 이끌고 기사를 펼친 채비를 갖추었다.
이에, 신성 성주이자 막리지 고정의가 건안성 성주 고돌발과 국내성 성주 고즉리를 대동하고 앞으로 나와 맞섰다.
고정의는 온화한 미소와 적의 없는 눈빛으로 온달을 대하였으나, 온달이 공세를 펼친다면 응전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적이 아니오.”
고정의가 이처럼 차분히 말하였으나, 온달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이에, 고정의가 다시 온달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입을 열려고 하니, 눈치 빠른 막바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닥쳐! 개소문이는 당나라 놈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적이고, 우리는 당 군을 몰아낸 후 개소문의 목을 벨 것이야! 그것은 우리도 알고, 하늘도 알고, 너희도 알 것인데, 너희를 적으로 여기고 있는 우리를 너희가 이대로 두고 볼 리 없지 않은가?”
이에, 고정의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말하였다.
“대막리지에 대한 일은 오해가 있소이다. 그 오해는 당 군을 이 땅에서 몰아낸 후, 풀면 될 일이니, 그전까지 우리는 서로 화합함이 옳을 듯하오.”
“터무니없는 소리! 태왕 폐하와 대장군을 연무장에서 시해한 너희를 우리가 어찌 믿고 화합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너희를 적으로 여기고 있기에 서로 화합할 수 없음은 너희도 알고 있을 터인데, 이처럼 우리를 안심시키는 의도가 무엇이란 말인가?”
막바우가 이처럼 언성을 높여 물으니, 고정의도 조금 언성을 높여 답하였다.
“화합하지 않으면! 그럼 이곳에서 일전이라도 벌이겠단 말이더냐? 당 군이 아직 건재한데, 장수된 이가 어찌 이리 물정 없이 입을 놀릴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막바우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소리치려 드니, 경우가 이를 대신하여 쏘아붙였다.
“흥! 일전을 벌이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늙은이! 그 잘난 주둥이에 화살이 박히고 싶지 않으면, 속히 우리와 멀찍이 떨어져 각자 따로 군사 행동을 하거라!”
경우의 활이 고정의를 겨누니, 온달이 손을 들어 제지하였다.
“경우, 잠시 기다리게.”
이에, 고정의가 반색하며 온달에게 말하였다.
“역시, 온달 장군이시오. 우리 서로 화합하여 당 군을 몰아냅시다.”
그러나, 온달은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담담히 답하였다.
“우리와 거리를 벌리시오. 거리를 좁힐 경우,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할 의사를 품었다 여길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