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토산이 무너지는 날 (13)
효시가 울리면, 반드시 효시가 향한 곳으로 오겠다던 온달의 약속이 지켜졌다.
그리고 효시가 울던 그곳에 황제 이세민이 있었으니, 온달은 오직 하나의 목표만 노리고 질주할 따름이었다.
“황제! 목을 내놓으시오!”
온달의 우렁찬 외침에 공포에 질린 황제 이세민이 죽기 살기로 말에 올랐다.
황제를 부축해 말에 올린 장손무기도 정신없이 말에 올랐고, 이 순간에도 금군의 비명이 귓전을 때렸다.
온달은 자신의 앞을 막는 이는 그 누구든 운철대검으로 말과 함께 베었다.
그리고 온달의 뒤를 막바우가 바짝 따르며 창으로 찌르고 후려치며 온달을 지켰고, 경우 역시 화살을 연신 날리며 온달을 엄호하였다.
이에 더하여 귀니수의 말갈 기병들이 기사를 펼치며 금군을 살상하니, 당 군의 후미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군막은 부서지고, 불태워졌으며 기세 좋던 황제 이세민은 살기 위해 무작정 앞으로 내달렸다.
“폐하를 구하라! 폐하를 모셔라!”
장손무기가 죽을 힘을 다해 소리쳤다.
이에, 토산으로 질주하던 장검이 군사들을 돌려 황제 이세민을 구하고자 내달려 왔다.
“온달! 여기 돌궐 제일의 무장 계필하력이 있느니라!”
가장 선두에 서서 달려온 계필하력이 벼락치듯 소리치며 온달의 앞을 막았다.
그러나, 온달의 목표는 계필하력 따위가 아니었다.
“시끄럽다!”
경우의 앙칼진 목소리가 울리고, 이어서 날아든 화살에 계필하력이 어깨를 맞아 말에서 떨어졌다.
온달은 너무도 싱겁게 말에서 떨어진 계필하력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황제의 뒤를 쫓았고, 토산에서 이를 지켜본 설인귀가 크게 놀라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기 씨 사형제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어딜 가는 게냐? 온달 장군께 머리가 으깨지고 싶은 것이냐?”
기악이 수염을 휘날리며 도끼로 후려치니, 설인귀의 말이 머리가 쪼개져 쓰러졌다.
이에, 설인귀가 비호처럼 쓰러지는 말에서 몸을 날려 몸을 굴리니, 토산을 굴러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아니! 저놈이!”
기범이 설인귀를 놓치지 않고자 내달렸으나, 아직도 토산을 가득 메우다시피 당 군에게 앞이 막히고 말았다.
기범이 정신없이 도끼를 휘둘러 당 군의 몸을 가르고 설인귀의 뒤를 쫓고자 했으나, 어느새 주위 당 군이 몰려와 그를 에워쌌다.
이에, 기악이 기룡과 기훈을 이끌고 기범을 구하고자 달려왔다.
그러나 이들도 수적 열세로 당 군에게 에워싸이기 시작하였다.
이때, 온동이 위기에 처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소리를 내어 위치를 알려주시오!”
영리한 기훈이 호응하여 소리쳤다.
“여기다! 동아! 여기 있느니라!”
기훈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내달려오며 금강대도를 휘둘러 당 군을 벤 온동이 정상을 등지고 서서 소리쳤다.
“내 뒤에 있는 이들만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금강대도를 휘둘러 파산귀검을 펼쳐 앞에서 달려드는 당 군의 몸을 갈랐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개소문이 혹여 온동의 배후를 당 군이 급습할까 염려되어 급히 달려와 온동의 등 뒤를 지켰다.
“파천신검!”
개소문이 그 어떤 공세 막을 수 있는 극강의 방어기 파천신검을 펼쳐 뒤를 지키니, 온동은 최강의 공격기 파산귀검을 펼쳐 앞에서 달려드는 적을 베었다.
이 모습에 토산 위 군사들과 백성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사기를 드높이니, 양만춘이 소리 높여 명하였다.
“화살을 퍼붓고, 토산을 오르는 당 군의 목을 베어라! 온달 장군께서 황제의 목을 베어 오실 것이다! 버텨라!”
황제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에 이세적과 이도종도 급히 군사를 물려 토산을 내려갔다.
“폐하를 구하라!”
“시건방진 온달의 목을 베어라!”
이세적과 이도종의 명에 당 군이 빠르게 토산을 내려갔으나, 이들의 등 뒤를 노리고 토산 위에서 화살이 날아드니 산비탈에 당 군의 시신이 쌓여만 갔다.
* * *
“황제! 어딜 그리 바삐 가시오!”
어느새 바짝 뒤를 좇아온 온달의 외침에 황제 이세민은 정신이 아득하여 대꾸도 못 한 채 그저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였다.
이때, 누렁이가 길게 울며 더욱 속력을 더하여 황제의 뒤를 쫓으니, 운철대검이 닿을 듯 가까웠다.
“잘 가시오!”
온달이 대뜸 소리치며 운철대검을 내리치니, 운철대검이 일으킨 바람이 등에 닿은 황제 이세민이 기겁해 비명을 내질렀다.
“으악!”
이때, 어느새 토산을 내달려온 설인귀가 피풍의를 휘날리며 질풍처럼 내달려와 온달의 가슴팍을 노려 방천화극을 급히 내질렀다.
이에 온달이 운철대검을 거둬 방천화극을 쳐내고는 그대로 주먹을 휘둘러 설인귀를 말에서 떨구었다.
온달에게 안면을 얻어맞아 코피를 흘리면서도 설인귀는 금군의 말을 빼앗아 타고는 황제를 구하고자 내달렸다.
오직 황제만을 노린 온달은 집요히 황제의 뒤를 또다시 바짝 따라잡았다.
설인귀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황제 이세민은 점차 온달과 거리가 좁혀지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저놈이… 저런 놈이… 아… 어찌하여 저런 놈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과연, 수나라가 그토록 온달을 두려워했던 연유가 있었구나.”
탄식하면서도 말을 재촉하여 내달렸으나, 늙고 늙어 살날이 얼마 안 남은 늙은 말 누렁이가 전력을 다해 쫓으니,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황제! 머리는 두고 가시오!”
온달이 조롱하듯 소리쳐 외치며 운철대검을 내리쳤다.
이때, 비호처럼 말을 몰아 내달려온 설인귀가 황제와 온달 사이로 뛰어들더니 검을 들어 운철대검을 막았다.
그러나 이는 설인귀의 과욕이었다.
“으악!”
온달의 괴력과 운철대검의 무게가 더해져 짓눌러오니, 기겁한 설인귀가 검을 떨구고는 몸을 틀어 피하였다.
이에, 온달의 운철대검이 설인귀의 말 등을 후려치니, 등뼈가 으스러진 말이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쓰러졌다.
말에 깔린 설인귀가 급히 기어나와 또다시 금군의 말을 빼앗아 타고 황제를 구하고자 내달리니, 이 광경을 지켜본 막바우가 기가 막혀 허허 웃었다.
“온달님도 대단하시지만, 저놈도 대단하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는가?”
이에, 경우가 씨익 웃으며 활을 당기니, 한 줄기 바람이 일고 설인귀의 어깨에 화살이 박혔다.
“아악!”
비명을 내지른 설인귀가 말에서 떨어질 뻔하였으나, 옆에서 말을 몰아 달리던 금군이 잡아 다시 말에 앉혀 주었다.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은 설인귀가 고개 돌려 경우를 힐끔 보고는 황제를 구하기 위해 말을 재촉해 내달렸다.
이에, 막바우와 경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인귀의 뒤를 쫓았다.
* * *
설인귀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황제 이세민의 앞으로 이세적이 군사들을 이끌고 내달려왔다.
“폐하! 소장이 왔나이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기뻐 말을 재촉하니, 어느새 이세적의 대군 속으로 쏙 들어갈 수 있었다.
눈앞에 대군이 펼쳐져 진을 갖추고 있었으나, 온달은 황제만 잡는다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여겨 목숨을 바쳐서라도 황제를 잡고자 누렁이를 몰아 돌진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더하여 이도종이 대군을 되돌려 이세적과 합치고, 장검마저 대군을 몰아 합세하니, 온달도 더는 돌진하지 못하고 누렁이를 멈추었다.
“어찌한다… 황제가 바로 저곳에 있건만…….”
온달이 아쉬워할 때, 간신히 목숨을 건진 황제 이세민이 소리쳐 명하였다.
“육화진을 펼쳐라! 방어진을 구축하고 반격하라!”
이에, 대군이 순식간에 진형을 갖추니 꽃잎이 만개한 형상의 진형이 펼쳐졌다.
그리고 진형 안에서 화살이 비 오듯 온달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에, 온달이 파산귀검을 펼쳐 간신히 화살을 쳐내고는 누렁이를 뒤로 돌려 피하였다.
육십만의 대군이 하나의 진형을 이토록 빠르게 펼치는 광경을 토산 위에서 내려다본 평강이 놀라 부르짖었다.
“육화진!”
각종 병종이 잘 어우러져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가능하며, 쉽게 약점을 드러내지 않아 장기전에 능한 진형이었으니, 상대적으로 군세가 약한 안시성의 군대와 온달의 유격부대가 감당하기 어려울 듯하였다.
이때 마침, 귀니수가 말갈 기병을 이끌고 기사를 펼치며 공세를 취하였으나, 중장보병이 방패로 화살을 막고, 궁병들이 응사하니, 귀니수도 별수 없이 말갈 기병을 뒤로 물려야 했다.
“당 군은 대군이라… 저렇게 버티며 약점을 보완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면, 다시 힘을 보충하여 공세글 가해 올 것입니다.”
평강이 근심을 담아 이렇게 말하니, 양만춘이 분해 이를 바드득 갈았다.
“황제의 목을 온달 장군께서 취하실 수 있었건만… 우리가 당 군을 계속 붙들고 있었어야 했거늘…….”
이때, 아쉬움이 묻어나는 양만춘의 목소리를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이 덮었다.
두두두두! 챙챙창챙!
너무도 요란하며 익숙한 말발굽 소리와 쇳소리가 저 멀리 흙먼지와 함께 밀려왔다.
“개마무사!”
평강이 기뻐 소리치니, 양만춘도 이미 확인하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개소문이 피운 유황 연기를 확인하고 주필산 앞에서 때를 기다리던 고정의가 개마무사를 이끌고 폭풍처럼 밀려온 것이다.
신성과 건안성 그리고 국내성 등에서 총동원한 개마무사 십삼만 기가 일제히 거센 파도가 되어 질주하니 전장이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두두두두!
주필산 전투와 달리, 당 군은 토산 위 전투로 심신이 지쳐 있었고, 온달의 위용에 기가 꺾여 있었으니, 여기에 더하여 개마무사 십삼만 기의 등장은 당 군의 전의를 상실케 하였다.
포기할 줄 모르고, 결코 꺾일 줄 모르는 기상을 지닌 황제 이세민조차 이미 온달의 위용이 기가 질려 있던 터라, 개마무사가 일으킨 흙먼지와 말발굽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군을 물려라! 퇴각하라!”
그간 그 어떤 전장에서도 패해 퇴각한 적 없던 황제 이세민이 퇴각을 명한 것이다.
이는 따르는 장수들의 사기를 크게 저하시켰고, 군사들에겐 공포심을 전파시켰다.
“퇴각하라! 퇴각하라!”
“군을 물려라!”
“후퇴한다!”
장수들과 군사들이 서로 앞다퉈 소리치며 퇴각하기 시작하니, 단단하기만 했던 육화진이 스스로 붕괴되었다.
그리고 이때를 노려 온달이 소리쳐 명하였다.
“퇴각하는 적의 배후를 급습한다! 돌진하라!”
이에, 막바우가 선두에서 돌진하였고, 경우가 궁기병을 이끌고 기사를 퍼부으며 추격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귀니수도 말갈기병을 이끌고 기사를 가하니, 당 군의 진형이 더욱더 흐트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고정의가 이끈 십삼만의 개마무사가 노도와도 같이 당 군의 측면을 들이받으니, 허리가 잘린 당 군의 진형이 무너져 내렸다.
비명을 내지르며 당 군이 뿔뿔이 흩어졌고, 이를 개마무사들이 돌파하더니,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이 틈을 노린 온달이 당 군 속 깊숙이 돌진해 들어가 황제 이세민을 찾았다.
“황제! 거기 서시오!”
비록 개마무사들에게 돌파당하였으나, 아직도 수십만의 대군을 유지하고 있는 당 군 속에서 온달이 포효하는 범처럼 황제 이세민을 쫓았다.
이에, 장검이 부장들을 이끌고 온달의 앞을 막았으나, 뒤따라 온 막바우와 경우, 강혁수, 귀니수가 온달을 대신하여 이들을 대적하였다.
“장군! 황제를 잡으시오!”
장검과 창을 맞댄 막바우가 이처럼 소리치니, 온달이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저 멀리 도주하는 황제 이세민의 뒤를 쫓았다.
“목은 두고 가시오!”
온달의 외침이 점점 더 가까워지니, 겁에 질린 황제 이세민의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때, 설인귀가 피로 물든 피풍의를 펄럭이며 말을 몰아와 온달의 앞을 막고는 크게 소리쳤다.
“폐하! 소장이 모시겠나이다.”
그러나 온달은 몰골이 처참한 설인귀를 힘끔 쳐다보고는 무시한 채 황제의 뒤를 쫓았다.
마치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온달의 태도에 설인귀가 격분하여 맹렬히 뒤를 쫓으며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온달! 나와 백 합만 겨뤄보자!”
그러나 온달은 오직 황제만 목표로 할 뿐 설인귀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이에 설인귀가 말을 재촉해 온달과 거리를 좁히더니 말 위에서 몸을 날려 온달을 덮쳤다.
“온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