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318화 (318/328)

318화 토산이 무너지는 날 (10)

설인귀의 백색 피풍의가 밤바람에 펄럭였다.

토산 정상에서 아래를 굽어보던 설인귀의 시야에 검을 휘두르며 군사들을 독려하는 장수가 들어왔다.

등에는 검은색 철궁을 매고, 단단한 갑주를 걸쳤으며 체구가 다부져 한눈에도 대단한 근력을 지녔음이 느껴졌다.

“저자가 안시성의 성주로구나.”

설인귀가 입가의 미소를 머금고는 손을 들어 올리니, 대기하던 돌격대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다리와 사다리를 들고 달려가 성벽에 걸쳤다.

그리고는 단숨에 다리와 사다리를 건너니, 설인귀도 이들과 함께 공격해 들어갔다.

“단숨에 성벽을 점령한다! 방어선을 뚫어라!”

돌격대를 독려하며 내달린 설인귀가 앞을 막는 안시성의 부월수 목을 베고는 몸을 날렸다.

“양만춘!”

설인귀의 등 뒤와 머리 뒤에선 여전히 토산 정상에서 날린 화살이 빗발쳐 그 역시도 화살에 맞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설인귀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백색 피풍의을 휘날리며 새처럼 날아 양만춘을 노렸다.

이에, 양만춘도 이 화려한 당의 장수에게 시선을 옮기고는 검을 굳게 쥐고 맞섰다.

챙!

쇠와 쇠가 부딪치며 불꽃이 일었고, 두 사내의 근력이 겨뤄졌다.

서로 맞닿은 검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 두 사내의 근력이 비등함을 알 수 있었다.

이때, 황우가 양만춘을 돕고자 쇠망치를 휘두르며 설인귀에게 달려들었다.

쾅!

그러나 황우의 쇠망치는 설인귀가 아닌 근위장 황무문의 쌍검에 막히고 말았다.

“제법 힘이 좋구나.”

황우의 쇠망치를 막아낸 황무문이 이처럼 낮게 말하고는 오른발을 들어 황우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아악!”

황우가 비명을 내지르며 나뒹구니, 공별이 놀라 부르짖었다.

“황우!”

공별은 자신의 주위 당 군을 두고 황우를 구하고자 내달렸다.

그러나 이내 곧 등 뒤에서 찔러오는 칼날에 등이 베이고 어깨가 찔려 부상을 입고 말았다.

공별이 휘청이자, 이때를 노린 당 군이 사납게 달려들었다.

“안. 돼!”

야수가 짧게 소리치고는 몸을 솟구치며 두 자루 박도를 휘두르니, 공별에게 달려들던 당 군의 머리가 쪼개져 피를 뿌렸다.

겨우 목숨을 건진 공별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쓰러진 황우에게 달려가니 이 모습에 황무문이 빙그레 웃었다.

“함께 저승에 가서 의좋게 살거라!”

황무문의 냉소와 함께 그의 검이 공별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이때, 두 자루 비도가 황무문의 얼굴과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챙! 챙!

황무문이 급히 쌍검을 휘둘러 비도를 쳐내니, 이번엔 다시 세 자루의 비도가 날아들었다.

그리고는 비도를 날린 개소문이 두 자루의 검을 양손에 들고 몸을 솟구쳐 황무문의 머리를 노렸다.

“연개소문!”

황무문이 바삐 쌍검을 휘둘러 세 자루 비도를 쳐내고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개소문의 공격을 피하였다.

그러자, 이번엔 팽무일이 경공을 펼쳐 허공을 내달려오더니, 황무문의 머리를 노리고 짧은 다리를 크게 휘둘렀다.

퍽!

팽무일의 발길질에 머리를 차인 황무문이 비틀거리자, 개소문이 그대로 달려들어 두 자루의 검을 황무문의 목과 가슴팍에 찔러넣었다.

“크윽!”

고통을 삼키며 황무문이 버티자, 개소문이 이를 비웃듯 검을 비틀어 검날로 살을 헤집었다.

“끄아아악!”

마침내 황무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자, 어느새 내달려온 야수가 박도를 휘둘러 황무문의 목을 베었다.

천하제일검, 중원제일검 등의 온갖 칭호와 수식어로 칭송받던 황제의 근위장 황무문의 머리가 이처럼 허무하게 잘리니, 토산 정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당 군이 크게 놀라 자신들도 모르게 탄식하였다.

그리고 성벽으로 진입한 당 군과 설인귀의 돌격대들도 크게 당황하여 사기가 꺾이니, 이를 만회하고자 설인귀가 양만춘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챙!

또다시 검과 검이 부딪치며 불꽃이 일었다.

“내 목이 탐나는 게냐?”

설인귀의 검을 막아낸 양만춘이 비웃듯 말하며 그대로 몸을 날려 설인귀의 안면을 이마로 들이받았다.

쾅!

눈앞이 환해지고, 다리가 풀린 설인귀가 자신도 모르게 두어 걸음 물러나더니,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이에, 양만춘이 검을 고쳐 쥐고는 설인귀에게 다가갔다.

“네놈 목이 나의 목보다 먼저 잘리겠구나.”

양만춘의 검이 높이 올라갔다.

그때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더니, 양만춘이 치켜든 검으로 벼락이 내리꽂혔다.

콰과과광!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에 설인귀가 겨우 정신을 수습해 양만춘을 바라보니, 벼락 맞은 양만춘의 검이 붉게 달아올랐고, 양만춘 또한 그 충격에 정신을 잃었는지, 눈이 풀려 있었다.

“이놈! 이제 내가 네놈의 목을 베겠노라!”

설인귀가 기뻐 크게 소리치며 일어서니, 양만춘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기악이 거대한 전투 도끼를 휘두르며 앞을 막았다.

“성주께는 못 간다.”

백발을 휘날리며 기악이 악착같이 설인귀를 막았으나, 차츰 설인귀의 검술에 밀려 뒤로 물러났다.

이에, 기범과 기룡, 기훈이 기악을 구하기 위해 달려와 함께 파천진을 펼쳤다.

챙! 챙! 챙!

설인귀의 빠르고 화려한 검술도 거대한 도끼들이 진형을 갖추니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기 씨 사형제가 서로 호응하여 진을 펼치자, 설인귀에겐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다.

‘아니, 어찌 이리도 철벽같단 말인가?’

크게 당황한 설인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빈틈을 노려 기훈에게 검을 찔러 들어갔다.

그러나, 한 명 한 명의 무예는 크게 높지 않으나, 서로 호응하여 펼치면 철벽과도 같은 파천진이 갖춰지니 쉽게 뚫을 수 없었다.

이에, 설인귀가 점차 파천진에 밀려 성벽 끝으로 몰리던 그때, 총관 이세적이 토산 정산까지 말을 타고 올라 굽어보더니 손을 들어 명하였다.

“나팔을 불고 불을 울려라!”

이세적의 명에 토산 정상에서 뿔나팔이 길게 울리고 북소리가 이어지니, 당 군 진영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뿔나팔과 북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천둥과도 같은 함성이 토산 정상에서 일더니, 빗발치듯 화살이 성벽으로 날아가고 당 군이 뒤이어 다리와 사다리를 걸쳐 돌격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더하여 멀리 떨어진 당 군의 진영에서도 대군이 일시에 토산을 향해 내달리더니, 끝도 없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황제 이세민이 크게 흡족하여 껄껄 웃었다.

“육십오만 대군을 모두 토산에 올려 성벽을 넘게 하고 말 터이니, 어디 막아 볼 수 있으면 막아 보거라! 하하하.”

이때,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굵은 빗방울이 황제 이세민의 이마에 떨어졌다.

이세민이 이마에 떨어진 빗방울을 훔치며 어두운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그의 머리 위로 더욱 굵어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투두두둑.

“비? 어제에 이어 오늘 밤도 비?”

점차 거세지는 빗방울에 황제 이세민은 순간 불길함을 느꼈다.

* * *

성벽 끝까지 밀린 설인귀는 벼랑 위에 선 듯 매우 위태로웠다.

“가랏!”

기범이 설인귀의 빈틈을 노려 도끼를 휘두르자, 순간 파천진이 흐트러졌다.

이때를 노린 설인귀가 급히 몸을 굴려 기 씨 사형제와 거리를 두고는 급히 다리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가 오른 다리는 이미 온동이 노리고 파산귀검 초식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파산귀검!”

다리 위에 설인귀가 있는지 몰랐으나, 온동은 당 군이 다리를 타고 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소리에만 집중해 연신 파산귀검을 펼쳤다.

이에, 검기가 일자로 쭉 뻗어 날아드니, 기겁한 걸인귀가 급히 다리를 내달려 황급히 토산 정상 위로 도망쳤다.

이때 이미 하늘이 열린 듯 폭우가 쏟아져 토산 정상은 온통 진흙투성이었다.

그러나 이세적은 황제의 지엄한 명에 따라 대군을 모두 토산 위에 올려 안시성을 함락시키고자 계속해 명을 내렸다.

“나팔을 불고 북을 울려라! 돌격하라! 전군 총공세를 펼쳐라!”

도망쳐온 설인귀를 무시하듯 외면한 채 이세적이 계속해 명을 내리니, 당 군은 진흙투성이의 토산을 끝도 없이 올랐다.

그러나, 안시성도 당 군을 성벽 위로 진입시키지 않고자 사력을 다하였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양만춘이 기 씨 사형제에게 명하여 부월수들과 함께 성벽 끝에서 파천진을 펼치게 하였고, 중장보병과 창병도 함께 진형을 갖춰 다리를 막았다.

그리고 연개소문과 팽무일, 야수 등도 각자가 지닌 무용을 있는 힘껏 펼치며 다리를 넘어 성벽에 진입하는 당 군의 머리를 쪼갰다.

여기에 더하여 온동도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은 무조건 베었으니, 당 군은 쉽게 다리를 건널 수 없었고 점차 토산 정상에 몰리기 시작하였다.

“다리 너머를 노려 화살을 날려라!”

어느새 정신을 수습한 대식이 이처럼 외치며 독려하니, 궁수들이 다리 너머의 당 군에게 집중하여 화살을 날렸다.

이에, 시신이 쌓여 다리에 오르기조차 어려워졌다.

비는 더욱 거세지고, 급히 다리를 건너던 당 군은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발을 헛디뎌 추락하였으니, 토산 정상 위 이세적의 마음이 타들어 갔다.

“비가 더욱 거세지면 우리 군사들도 지칠 것이다. 단숨에 다리를 건너 놈들을 제압해야 한다.”

이세적이 이처럼 중얼거리고는 직접 북채를 쥐고 북을 치며 독려하였다.

“다리를 건너라! 안시성을 함락하라!”

이에, 안시성의 상황과 토산 위의 형편도 모른 채, 진영 앞에 도열한 당 군들이 계속하여 토산을 올랐다.

그리고, 더욱 거세진 비로 인하여 안시성 서문 성벽 아래 웅덩이가 마침내 넘치기 시작하였다.

전날 밤과 달리, 군사들은 모두 성벽 위에 올랐으니, 백성들만으로 제방을 쌓아 불어나는 물을 막아 보았으나, 점차 높아지는 수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초막으로 물이 흘러 들어간다!”

누군가의 외침처럼 영성자산의 비탈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이 초막 주위에 쌓은 제방을 넘고 있었다.

그리고 내성에서부터 이어진 수로도 드디어 물이 넘쳐났고, 웅덩이 역시 버티지 못하였다.

콸콸콸!

영성자산의 비탈에서부터 계곡에서 이어진 수로 그리고 웅덩이가 넘쳐 흐른 물들이 일제히 초막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는 마치 초막 속 땅굴이 빗물을 빨아들이는 듯하였으니, 순식간에 성벽에 막혀 고여 있던 빗물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빗물을 모두 빨아들인 거대한 지하 수로로 인하여 토산이 들썩였다.

그러나 토산 정상 위 이세적은 이러한 사정도 모른 채, 연신 북채를 휘두르며 군사들을 독려하였다.

“몰아쳐라! 단숨에 다리를 건너 안시성을 점령하라! 성벽을 넘어라!”

총사령관 이세적이 직접 북채를 쥐고 연신 북을 치니, 그 주위 군사들 또한 뿔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사기를 높였다.

이에, 토산을 오르는 당 군의 수가 더욱 늘었다.

그러나, 안시성은 결코 쉽게 이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으니, 다리를 건너지 못한 당 군이 점차 토산 정상부터 비탈까지 쌓여만 갔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답답하여 이도종과 장검을 불러 명하였다.

“그대들도 군사들을 이끌고 성벽을 넘으라!”

황제의 명은 지엄하여 이도종과 장검도 군사들을 이끌고 일제히 토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쿠쿠쿠.

한쪽 비탈에서부터 정상까지 당 군이 가득하니, 힘에 겨운 듯 토산이 굉음을 내었다.

그러나, 머뭇거릴 여유가 없는 당 군은 흙탕물이 비탈을 타고 흐르는 토산을 오르고 또 올랐고, 안시성의 모든 이들은 당 군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으니, 토산은 당 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연신 비명을 질렀다.

쿠우우웅!

이에, 소리에 민감한 온동의 검이 순간 멈추었다.

그리고 바람이 전해오는 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쿠우우웅!

‘소리? 땅속에서…….’

순간 온동이 뭔가 깨달았는지 크게 소리쳤다.

“땅울림이다! 땅울림!”

쿠우우웅!

“토산이 무너진다!”

온동의 외침에 화답하듯 토산이 연신 비명을 질렀다.

쿠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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