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316화 (316/328)

316화 토산이 무너지는 날 (8)

토산은 점차 더욱 거대해지고 높아졌으며, 그 크기가 불어나는 것만큼 안시성과의 거리도 좁혀졌다.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안시성의 성벽과 이십여 보 남짓으로 거리를 좁혔고, 서로 오가는 화살은 더욱 거세졌다.

안시성은 성내 가옥들의 기둥과 지붕은 물론 싸리나무까지 꺾어 화살을 만들어 날렸고, 점차 보급이 줄어들기 시작한 당 군도 나무를 베어 화살을 깎아 날려야 했다.

여기에 더하여, 상대가 날린 화살도 주워 모아 다시 재사용하였으니, 끝없는 소모전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온동의 계책으로 성벽 위에 세운 벽돌집 덕분에 안시성의 군사 피해는 적었다.

그러나 토산을 쌓던 당 군은 토산을 오르는 순간에도 화살에 맞을 수 있었으니, 모두가 두려워 사기가 극히 저하되어 있었다.

이때, 토산 공사를 지휘하던 장손무기가 급히 황제의 군막으로 뛰어 들어와 아뢰었다.

“폐하! 큰일이옵니다.”

숨을 헐떡이는 장손무기를 황제 이세민이 의아해 바라보며 말을 이으라 손짓하였다.

이에, 장손무기가 겨우 숨을 고르고는 아뢰었다.

“고구려 놈들이… 안시성의 고구려 놈들이…….”

“그래, 어서 말해 보시게.”

황제 이세민이 답답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재촉하였다.

이에, 장손무기가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간신히 말하였다.

“놈들이 서문에 바짝 붙어 땅굴을 파고 있었나이다.”

“뭐라?”

황제 이세민이 놀라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땅굴을 판단 말인가?”

이에, 장손무기가 손발을 벌벌 떨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토산 아래까지 굴을 파서 토산을 붕괴시키려는 수작인 듯합니다.”

“뭐라?”

황제 이세민이 크게 놀라 뛰어나가더니, 즉시 말에 올라 토산으로 내달렸다.

이에, 근위장 황무문이 뒤를 따르고 이세적과 이도종, 장검, 설인귀, 장손무기, 부복애 등도 수하 장수들을 이끌고 황제를 호위하였다.

당 군의 진영에서부터 토산 정상까지는 경사진 길이 나 있었는데, 수레와 말까지 오를 수 있도록 잘 다듬어져 있었다.

토산이 안시성에 닿으면 대군이 일거에 정상에 올라 토산을 넘어 내려간 뒤 안시성의 성벽까지 한 번에 넘을 수 있도록 길을 낸 것이다.

잘 다듬어진 길로 말을 몰아 내달리기 시작한 황제 이세민이 정상과 가까워질수록 안시성에서 날아드는 화살이 거세지니, 그는 말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토산 수비를 담당한 부복애가 급히 황제의 앞으로 나와 군사들에게 크게 소리쳐 명하였다.

“무엇하느냐? 속히 방패를 들어 폐하를 지키거라!”

군사들이 방패를 들어 날아드는 화살을 막고, 심지어 방책마저 뽑아 황제를 지켰으나, 날아드는 화살의 수가 너무도 많아 말을 타고 정상까지 갈 수는 없었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걸어서 토산을 오르기 시작하니, 그의 앞을 지키고, 뒤따르는 군사의 수가 일만에 달했다.

이로 인하여 토산 공사는 일시 중단되었고, 안시성에서도 토산 위 당 군의 움직임이 수상하여 바짝 긴장하였다.

뜨거운 차가 식을 무렵, 정상에 오른 황제 이세민이 앞을 지키는 방패 너머로 안시성을 굽어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야 속으로 성벽 위에 지은 벽돌집이 들어왔고, 그 너머로 거대한 웅덩이도 들어왔다.

웅덩이는 내성에서 수로를 내어 계곡의 물을 끌어온 듯하였고, 웅덩이의 옆에 거대한 초막이 보였으니, 이곳이 바로 땅굴 진입로가 분명하였다.

초막으로 안시성의 백성들이 줄을 지어 들락거렸고, 등에 자루를 매었는데 그 안에 든 것은 필경 땅속에서 퍼낸 흙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이 흙을 웅덩이 옆으로 가져가 물과 진흙을 섞어 거대한 진흙더미를 만드니, 이 진흙더미가 바로 옆에 줄지어 선 발석거로 당 군을 괴롭히던 바로 그 애물단지였다.

안시성 서문 상황을 모두 살필 수 있을 만큼 높아진 토산 덕에 황제 이세민은 그제야 안시성이 노리고 있는 한 수가 무엇인지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지독한 놈들…….”

숱한 공격을 버티고 또 버티며 안시성의 백성들과 군사들이 노린 것은 토산을 땅속 깊이 빨아들여 무너뜨리는 것이었음 깨달은 황제 이세민은 할 말을 잃었다.

한참 동안 돌이 된 듯 서서 안시성을 내려다보던 황제 이세민이 무겁게 발을 돌려 토산을 내려갔다.

황제의 군막 안은 장수들이 숨소리조차 낼 수 없어 쥐 죽은 듯 고요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황제 이세민이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언제쯤 토산이 안시성에 닿겠는가?”

이에, 장손무기가 망설임 없이 바로 답하였다.

“총력을 다한다면… 삼일이면 족하옵나이다.”

황제 이세민이 거칠게 손을 내저었다.

“틀렸다!”

순간 장손무기가 얼어 넙죽 엎드려 용서를 구하였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단호히 명하였다.

“이틀 뒤, 날이 밝으면 우리의 대군이 안시성을 넘을 것이다. 너희는 그리 알고 총력을 다하거라.”

이로써 황제 이세민이 명한 총공세 일시가 이틀 뒤 동녘으로 정해졌으니, 모든 장수들은 이에 맞춰 총력을 다해 전술을 세워야 했다.

그리고, 당 군을 갈아 넣으며 거대한 운석이 지면에 충돌하듯 토산이 점차 안시성의 성벽과 거리를 좁히기 시작하였다.

이에, 안시성에서도 긴급회의가 열리지 않을 수 없었다.

* * *

“토산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공별의 이 말에 양만춘이 평강을 바라보았다.

이에, 평강이 깊은 시름을 담아 말하였다.

“내일 저녁이면 토산이 십 보 이내로 좁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거리는 당 군이 토산 위에 다리를 내리면 우리 성벽으로 대군을 쏟아 낼 수 있는 거리입니다.”

“아쉽게도 우리의 함정은 토산을 송두리째 땅속으로 끌어들일 만큼 마련되지 못하였으니 큰일이군요.”

양만춘이 이처럼 말하니, 이미 결심을 굳힌 개소문이 입을 열었다.

“결국! 놈들의 총공세를 성벽 위에서 막아내고, 그사이 신성과 건안성의 군사들이 당 군의 배후를 치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이미 공손향이 전서구로 고정의에게 안시성의 상황을 알렸기에, 안시성에서 황을 태워 누런 연기가 피어오르면 고정의가 총공세를 가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이에, 대식이 근심을 담아 물었다.

“저들의 총공세를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막고 버티면, 반드시 배후를 급습당한 당 군이 진을 물리게 될 것입니다.”

개소문이 이처럼 자신하였으나, 육십오만의 대군이 일거에 토산을 넘어 공격해오는 상상에 모두의 안색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이에, 기훈이 양만춘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었다.

“지금이라도, 땅굴에 물을 쏟아부어 토산을 무너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때 온동이 단호히 잘라 말하였다.

“그것은 안 됩니다!”

“어찌 안 되는가?”

기훈이 의아해 물으니 온동이 차분히 설명하였다.

“지금 땅굴에 물길을 낸다면 함정이 아직 미완성이기에 토산은 우리 안시성의 성벽으로 기운 채 쓰러질 것입니다. 이때는 당 군이 다리를 건너 성벽으로 진입하는 것이 아닌, 토산을 타고 성벽을 넘을 수 있게 됩니다.”

다리는 불태우고 막아 볼 수 있으나, 토산 전체가 허물어지며 성벽을 덮친다면, 당의 대군이 거친 파도와도 같이 서문 일대 성벽을 덮쳐 올 것이 분명했다.

“다리를 건너는 적을 막는 것이 붕괴된 토산을 타고 넘는 당 군을 막는 것보다 방어가 낫습니다.”

온동이 이처럼 덧붙여 말하니, 기훈도 더는 이견을 내지 못하였다.

이에, 평강이 양만춘에게 한 가지 계책을 내었다.

“성주님, 아직 토산과 우리 성벽과의 거리는 십여 보 남짓입니다. 이는 결코 사람이 뛰어넘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닙니다. 필경 적들은 다리와 사다리를 걸쳐 성벽을 넘고자 할 것이니, 이에 대비하여 화공을 준비하시지요.”

“다리를 불태우자는 말씀이십니까?”

양만춘이 물으니, 평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성주님. 화공으로 토산에서 우리 성벽에 걸쳐진 다리와 사다리를 불태우고, 토산에도 기름을 날려 불길을 내는 것입니다. 하면, 적은 일거에 공세를 펼치지 못할 터이니, 그사이 신성과 건안성의 군사들이 배후를 급습한다면, 필경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에, 양만춘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니, 개소문도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성벽 방어는 제가 사력을 다해 막을 것입니다. 그리고 화공을 펼침과 동시에 성벽과 토산에 유황으로 누런 연기를 낸다면 막리지 고정의가 대군으로 당 군을 급습할 터이니, 공주님의 계책을 수용하심이 마땅하다 여깁니다.”

이처럼, 토산이 가까이 근접하여 당 군의 총공세가 예상되었으나, 화공으로 당 군의 진입을 막을 수만 있다면 승리는 장담할 수 있을 듯하였다.

그러나, 온동은 불길함을 떨칠 수 없어 공별에게 물었다.

“땅굴로 판 함정은 얼마나 완공되었습니까?”

“거의 십분지 팔은 되었네.”

“십분지 팔이라…….”

온동이 낮게 중얼거리니, 평강이 의아해 물었다.

“동아…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게냐?”

“공주님의 계책은 매우 훌륭하여 당 군을 크게 당황케 할 것이며, 이로 인하여 성벽 방어는 물론, 배후 급습 또한 용이하리라 여겨집니다. 하오나, 다리와 사다리를 불태워 화공으로 당 군을 막을 시, 토산 위에 당 군이 쌓여 그 무게로 혹여 토산이 붕괴될까 염려되옵니다.”

온동의 영민함을 신뢰하는 양만춘이 바로 온동에게 물었다.

“허면, 화공이 아닌 다른 방책이라도 있는 겐가?”

“최선은 공주님의 계책을 따르고, 후책으로 백성들에게 땅굴에 나무를 받치고 기둥을 세워 토산이 무너지지 않도록 방비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이에, 공별이 고개를 저었다.

“온동, 네 뜻은 알겠으나… 무너뜨리기 위해 만든 함정이네. 그런데 이제 와 무너지지 않도록 나무로 받치고 기둥을 세우라 하면, 백성들은 물론 군사들의 사기마저 저하될 것이네. 그간의 모든 노력이 헛일이란 소리니…….”

이에, 양만춘도 깊은 고심을 하고는 공별의 말에 동의를 표하였다.

“온동 네 말이 백번 옳으나, 무너뜨리기 위해 만든 함정이라… 언젠가는 기둥과 나무를 다시 제거해야 할 것이다. 명령이 자주 번복되는 것만큼 신뢰를 잃는 일도 없단다. 백성과 군사들의 신뢰를 잃은 장수는 승리할 수 없으니… 이번 네 계책이 옳다 하여도 따르기 어렵구나.”

온동은 안시성의 백성들과 군사들의 신뢰를 얻어야만 성을 지킬 수 있다는 성주 양만춘의 고심을 백분 이해하여 더는 이견을 내지 않았다.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어두운 밤하늘에 구름이 가득하였다.

서늘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니, 온동이 평강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여 비구름이 보이시옵니까?”

이에, 평강이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은 가득하였으나 날이 어두워 먹구름인지 알 수 없었다.

“구름은 많으나, 비를 품었는지 알 수는 없구나.”

평강의 답변에 온동이 손가락에 침을 묻혀 바람이 전하는 기운을 느껴 보았다.

한여름의 날씨에도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바람의 기운은 차가워 습기를 머금고 있는 듯하였다.

이에, 온동이 급히 평강에게 말하였다.

“즉시 땅굴에서 백성들을 나오라 하시옵고, 수로와 이어진 웅덩이의 물길이 땅굴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비하소서. 그리고 땅굴의 입구인 초막도 단단히 막아야 합니다.”

“어찌 그러느냐?”

평강이 이해할 수 없어 물으니, 온동이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답하였다.

“비가 올 것입니다. 큰비입니다. 큰비가 올 것입니다.”

이에, 평강이 놀라 당황하여 할 말을 잃으니, 개소문이 듣고 온동에게 다시 물었다.

“동아, 정녕 큰 비가 온단 말이냐? 큰비면 얼마나 큰비더냐?”

“며칠간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었고, 지금은 바람에 습기가 있으니, 필경 매우 큰 비가 내릴 것입니다. 땅속에서 작업 중인 백성들이 위험하며, 땅굴로 물이 들어가 지반을 약하게 만들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합니다.”

앞도 볼 수 없는 온동의 말이었으나, 평강과 개소문은 온동의 기재를 믿기에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즉시, 백성들에게 땅속에서 나오라 전하라!”

“수로를 막고, 웅덩이의 물이 넘쳐 땅굴 속으로 유입되지 않도록 초막을 단단히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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