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313화 (313/328)

313화 토산이 무너지는 날 (5)

고구려의 반격을 연개소문이 언급하니, 좌중은 모두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공손향이 차분히 물었다.

“안시성이 가장 위급한 순간, 적의 배후를 공격하여 혼란케 하여 타격을 준다는 말씀이시군요. 하온데, 안시성이 과연 대막리지를 받아들이겠습니까?”

“다른 이라면 결코 성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나, 내가 직접 왔다면 문을 열어 줄 것이다.”

연개소문이 이처럼 장담하니, 공손향이 바로 되물었다.

“어찌 그렇습니까?”

“나를 원수로 여겨 복수하고자 모인 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안시성이다. 당장 목을 칠 수 있는 내가 왔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이에, 팽무일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 나같아도 문을 열고 맞이해서 목을 칠 거야. 성문은 열어주겠지.”

“아니, 그럼 큰일 아닙니까?”

공손향이 다시 물으니, 이에 팽무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이지. 목이 날아갈 수 있으니 이보다 큰일은 없지.”

그러나 개소문과 야수는 매우 차분하였다.

“내… 목. 은… 내가… 지킨다. 거북이. 네 목은… 네가 지켜라.”

야수가 더듬더듬 말하니, 팽무일이 화가 치밀어 역정을 냈다.

“뭐? 거북이? 이런 버벅이가? 안시성이 아니라 여기서 목이 잘리고 싶은 게냐?”

“그만들 하라.”

개소문이 눈살을 찌푸리며 짧게 꾸짖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격을 고대하는 마음과 안시성에 들어갈 자신을 염려하는 시선들이 읽혔다.

이에, 개소문이 표정을 굳혀 자신있게 말하였다.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는 법.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과 평강 공주, 온동 등은 그리 다혈질의 인물이 아니오. 그들은 나의 목을 벤다고 하여 당 군이 물러날 것도 아니기에, 당 군을 우선 물리치는 데 동의할 것이오.”

“그들이 동의하지 않고 덤비면? 죽여도 되나?”

팽무일의 물음에 개소문이 손을 내저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제자는 일어 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지 말라.”

“장담은 제길… 아무튼 사부가 간다니, 나도 여기 남을 수 없어 따라는 가는데… 가능하면 살 수 있는 방안으로 하자고. 안시성 놈들이 죽자고 달려들면 어쩔 수 없이 놈들의 목을 베어야 해.”

이에, 개소문이 단호히 말하였다.

“그들을 죽이면, 이 전쟁 이길 수 없다.”

* * *

오호도가 점거된 뒤 보름이나 지나 황제 이세민에게 그 소식이 전해졌다.

아마도 아직 건안성이 건재하여 전령이 길을 빙 돌았던 모양이다.

“뭐라? 오호도가 점거돼?”

황제 이세민이 불같이 화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모든 장수들이 차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였다.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군막 안 장수들을 하나하나 둘러 본 황제 이세민이 자리에 앉아 열을 식혔다.

잠시 군막 안에 침묵이 흐르고 이 무거운 침묵을 황제 이세민이 깼다.

“토산은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가?”

이에, 장손무기가 나서 답하였다.

“오십 보 남짓이옵고, 열흘 안에 안시성 성벽과 닿을 듯합니다.”

“오십보 남짓이라… 그래, 부복애가 토산 정상에 궁수를 배치하여 안시성을 공략하고 있다지? 성과는 있는가?”

황제 이세민의 물음에 장손무기가 이마의 땀을 훔쳤다.

토산은 설인귀가 그 주위를 지키며 방패와 방책으로 토산을 쌓는 군사들을 지켰다.

끝도 없이 날아들던 말린 진흙더미도 토산이 성벽에 근접하니 성벽에 가려 토산을 쌓는 군사들을 공격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안시성의 발석거들은 말린 진흙더미를 토산의 정상만 노려 날렸고, 부복애가 방패와 방책을 세워 정상에서 공사 중인 군사들을 지켰다.

또한 부복애가 명하여 당 군도 궁수들을 토산 정상에 배치하니, 오히려 안시성의 성벽을 굽어보며 공세를 펼치게 되었다.

서로 화살과 화살이 닿을 거리였으나, 위를 올려다보고 화살을 날리는 안시성 군에 비해 방패와 방책으로 보호받으며 아래를 굽어보고 화살을 날리는 당 군이 유리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양만춘도 중장보병으로 하여금 궁수들을 보호하게 하며 맞섰으나, 연일 이어진 당 군의 공세에 피해가 속출하였다.

그리고 점차 토산이 가까워지면서, 수일 내로 성벽에 바짝 붙어 땅굴을 파는 백성들도 노출될 상황이었다.

“성주님, 우리도 성벽 위에 방벽을 쌓아 적의 화살을 막는 게 좋을 듯합니다.”

온동이 한 가지 계책을 내니, 이른바 성벽 위에 벽돌로 집을 짓고 그 안에 군사들을 배치하여 적의 화살을 피하며 공세를 취하자는 방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땅굴을 파며 퍼낸 흙은 끝도 없었고, 땅굴 옆에 거대한 웅덩이마저 마련되어 있으니, 진흙과 물을 섞어 벽돌을 만들 수 있었다.

양만춘은 온동이 어리고 맹인이라 하여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책사이자 동지라 여겨 모든 의견을 받아들이니, 성벽 곳곳에 벽돌로 지은 방어선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고구려 군이 안시성 외성 성벽에 벽돌로 단단히 집을 짓고 맞선다는 소식을 오호도가 점거되어 격분한 황제 이세민에게 장손무기가 전하게 되었다.

“어찌 대답이 없는가? 부복애가 토산 정상에 궁수들을 배치하였다고 들었는데, 성과가 없는 것인가?”

황제 이세민의 추궁에 장손무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시성 놈들이 진흙을 말려 벽돌을 만들더니, 성벽 위에 지붕까지 있는 집을 지었나이다. 그리고는 그 안에 궁수를 배치하여 맞서니, 우리의 화살이 벽돌을 뚫지 못하여 타격을 줄 수 없는 실정이옵니다.”

장손무기가 사실대로 아뢰니, 황제 이세민의 눈이 불을 뿜듯 빛을 내었다.

“뭐라? 그놈의 진흙! 도대체 고구려 놈들은 진흙으로 어찌 이다지도 우리를 괴롭힌단 말이더냐?”

장수들이 두려워 고개를 들지 못하니, 황제 이세민이 한숨을 내쉬며 엄히 말하였다.

“좋다! 저들이 피해가 없다 하나, 우리 또한 토산 정상에 방책과 방패로 피해가 없을 터! 장손무기 그대는 토산 공사를 독려하여 한시라도 빨리 안시성에 붙이도록 하라! 또한 토산을 더욱 높이 쌓아 놈들이 진흙을 다져 벽돌을 만들지 못하도록 화살을 날리도록 하라!”

이에, 장손무기가 명을 받으니 황제 이세민이 이도종을 응시하며 명하였다.

“그대는 들으라!”

“하명하소서.”

“안시성 고구려 놈들의 모든 시선은 저 거대한 토산에 집중되었느니라. 하여! 그대는 별동대 오만을 이끌고 안시성 북문을 공략하여 성문을 열도록 하라!”

황제 이세민은 오호도가 고구려 군에게 점거된 이상, 언제 성벽에 닿을지 모를 토산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 여겨 안시성의 가장 취약한 성문 공격을 명한 것이다.

이에, 이도종이 명을 받아 즉시 군막을 나서 별동대를 구성하기 시작하였다.

안시성은 서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성자산의 산등성이를 타고 성벽을 쌓고 성문을 내었으니, 북문도 이 중 하나였다.

북문은 남문과 동문에 비해 산세가 덜 험하고 가파르지 않았다.

건안성으로 길마저 이어져 있어 북문을 포위한 당 군을 수시로 건안성의 성주 고돌발이 급습하였기에, 다른 곳에 비하여 포위가 촘촘하지 못하였다.

또한 동문 일대는 당 군이 수시로 나무를 베었고, 남문은 비사성과 연결되어 있어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경계를 강화하였다.

이에, 한정된 인원으로 모든 성문 경계를 강화할 수 없어 북문 수비는 상대적으로 다른 성문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 이세민이 이점을 간파하여 이도종에게 별동대로 급습을 명하였으니, 날이 어두워지기 무섭게 불도 밝히지 않은 당의 별동대가 어두운 산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날이 밝을 무렵엔 성문이 열릴 것이다.”

황제 이세민이 군막에 나와 어둠에 휩싸인 영성자산을 올려다보았다.

* * *

소리 죽여 산을 오른 당의 별동대가 모두 발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어둠 속에서 북문에 밝혀진 불빛이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거리는 오백 보 남짓, 아직 험한 산을 더 타고 올라야 접근할 수 있었으나,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은 확실하였다.

이도종이 북문의 불빛을 잠시 응시하더니, 다시 앞장서 걸었다.

이에, 오만의 별동대가 최대한 숨소리조차 삼키며 뒤를 따르니, 이내 곧 북문 공략이 시작될 듯하였다.

초인적으로 귀가 밝은 온동이라 할지라도 서문에서 북문의 소리를 들을 수는 없기에, 이들 오만의 별동대를 그 누구도 눈치챌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십 보 이내로 거리를 좁히자, 이도종이 손을 들어 주먹을 쥐어 신호를 보내었다.

이에, 오만의 별동대가 함성도 지르지 않은 채, 빠르면서도 소리 죽여 성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타다다닥.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밟히는 소리가 들리자, 북문 경계를 담당한 군사들이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둠에 묻힌 산은 무척이나 시야가 짧았다.

그리고 이때, 최대한 거리를 좁힌 당의 별동대가 달리며 활을 당겼다.

획! 획! 획!

촘촘히 화살이 날아드니, 성벽 위 고구려 군은 피할 겨를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제야 당 군의 공격을 눈치챈 북문 수문장이 놀라 소리쳐 명하였다.

“적의 공격이다! 호각을 불고 북을 울려라! 횃불을 던져 성벽 아래를 밝혀라!”

둥둥둥! 삐이익! 삐이익!

적의 급습을 알리는 북소리와 호각소리가 크게 울려 펴졌다.

이에 맞서 당 군이 성벽에 바짝 붙어 갈고리를 단 밧줄을 던지고는 맹렬한 기세로 타고 올랐다.

“밧줄을 끊어라! 적이 오르지 못하게 막아라!”

수문장이 크게 소리쳐 명하며 군사들을 독려하였다.

그러나 오만에 달하는 별동대가 일시에 성벽을 타고 맹렬히 오르니, 성벽은 금세 당 군에게 점령될 듯하였다.

이때, 호각과 북소리를 듣고 가장 먼저 달려온 이들이 있었으니, 평강과 독고영, 팽운 그리고 이들과 함께 진흙을 나르던 백성들이었다.

“모두 성벽 위로 올라 돌을 던져요!”

평강의 외침에 백성들이 일제히 성벽 위로 오르더니, 등에 멘 진흙을 던지고 삽과 호미로 당의 별동대와 맞섰다.

평강과 독고영, 팽운도 머리에 이고 있던 광주리에 담긴 진흙더미를 던지며 당 군이 성벽 위로 오르지 못하게 막았다.

그러나, 수적 우세인 당 군이 점차 성벽 위로 오르기 시작하니, 북문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미 목이 베어 싸늘한 시신이 된 수문장을 대신하여 평강이 군사들과 백성들을 독려하며 맞서야 했다.

“곧 성주님이 군사들을 이끌고 오실 거예요! 그때까지 막아야 합니다! 결코 성문이 열려선 안 됩니다!”

평강의 외침에 군사들과 백성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성벽 위로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 당 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하나를 밀어 떨구면, 둘이 성벽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둘을 밀어 떨구면 넷이 오르니, 지쳐가는 것은 고구려 군사들과 백성들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요!”

“버텨야 해요!”

“밀어내요!”

평강과 독고영, 팽운이 목이 터져라 외치며 악착같이 당 군을 밀어내었다.

그러나, 성벽에 바짝 붙어 오르는 당 군의 수는 끝이 없었고, 고구려 군사들과 백성들은 지쳐 하나둘 쓰러져만 갔다.

그리고 점차 성벽 위로 오른 당 군의 수가 늘더니, 고운 자태로 명령을 내리는 평강을 발견하고는 성난 이리 떼처럼 달려들었다.

이에, 독고영이 독고창법을 펼치고 팽운이 온동에게 배운 팽가도법을 펼치며 평강을 지켰으나, 당 군의 수는 계속 늘어만 갔다.

그리고 어느새 아래로 내려간 당 군이 북문마저 열고자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안 돼! 성문을 지켜야 해! 저들을 막아요!”

평강의 외침과 함께 성벽에 오른 이도종의 명령이 당 군을 들끓게 하였다.

“저 여인을 잡아라! 사로잡는 이에게 황금 백 냥을 하사하겠노라!”

이에, 당 군이 눈을 빛내며 평강을 향해 밧줄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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