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310화 (310/328)

310화 토산이 무너지는 날 (2)

안시성의 모든 백성들은 일치단결하여 땅굴을 팠고, 밤낮 가리지 않고 말린 진흙더미를 날려 당 군을 괴롭혔다.

군사들 또한 성벽을 단단히 지키며 혹시 모를 당 군의 도발에 대비하였다.

당 군이 아직 안시성에서 땅굴을 파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 듯하였으니, 거대한 토산을 땅속으로 무너뜨리기 위한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다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좁고 어두운 땅굴 속에서 작업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적이었다.

이에 비하여 넓은 들에 토산을 쌓는 당 군은 그 인원이 오십만 명에 달하였다.

어느덧 천여 보가 넘던 안시성과 토산의 거리가 한 달 사이 삼백여 보로 줄어 있었고, 황제의 명을 받은 부복애가 토산 위에 궁수를 배치하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토산은 점차 더 거대해지며 하루가 다르게 안시성과 거리를 혔고, 토산이 높아질 수록 안시성을 점차 굽어 보게 되었다.

안시성 외성 서문에 바짝 붙어 파고 있는 땅굴도 조만간 토산 정상에서 내려다보게 될 듯하였다.

당 군은 쉬지 않고 흙을 퍼 날라 앞에 쌓고, 토산의 뒷부분을 다지며 대군이 일시에 오를 수 있도록 길마저 만들었다.

이 가파르지 않은 길로 군사는 물론 수레와 말마저 오를 수 있었으니, 정상에 쌓이는 흙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갔다.

이에, 안시성의 군사들은 성벽 위에서 화살을 날렸고, 백성들은 더욱 거세게 발석거로 진흙더미를 날려 토산 공사를 방해하였다.

그러나, 황제 이세민은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기피코 토산을 안시성 성벽에 바짝 붙이고자 고집하였다.

이에, 토산을 쌓아 옮기는 당 군은 계속된 안시성의 공격으로 피해가 속출하였고, 불만도 가중되었다.

안시성의 군사들과 백성들 또한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거대해지며 다가오는 토산의 위용에 차츰 기가 질리고 공포를 느꼈다.

“토산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입니까?”

토산을 볼 수 없는 온동이 거리를 가늠하고자 양만춘에게 물었다.

“삼백 보… 거리가 좁혀지고 있구나.”

“많이 좁혀졌군요. 높이는 어느 정도입니까?”

“성벽보다 높구나. 그리고 곧 성벽 너머를 굽어볼 수 있을 듯하구나.”

“허면, 저들이 곧 우리가 파고 있는 땅굴을 파악하겠군요.”

“그렇구나.”

황제 이세민의 성정상 땅굴을 파악하게 된다면 토산 공사를 더욱 독려할 것이 분명하였다.

“성주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도 알고 있으나, 저리도 단단히 지키고 있으니, 달리 뾰족한 수가 없구나.”

양만춘이 한숨을 내쉬니, 온동이 잠시 진흙더미가 하늘을 나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성주님, 저들이 혹시 토산 주위에 방벽을 쌓지 않았나요?”

온동이 볼 수 없으니, 양만춘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세히 설명하였다.

“토산이 무너지지 않도록 나무로 방벽을 단단히 쌓았구나. 말린 진흙더미로 방벽을 무너뜨리곤 하였는데, 점차 토산이 가까이 근접하며 방벽을 맞추지 못하고 있구나.”

토산이 다가올수록 외성 성벽으로 인하여 토산의 아랫부분을 발석거로 공격할 수 없었다.

온동도 이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분히 의견을 내었다.

“토산이 다가오는 것을 막지는 못하겠으나, 적이 대비할 때까지 잠시 시간을 벌 수는 있을 듯합니다.”

온동이 계책을 마련한 듯하여 양만춘이 기뻐 물었다.

“그래? 수가 있느냐?”

“토산을 정상에서부터 불태워 방벽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불길로 인하여 정상의 당 군이 물러날 것이고, 방비하기 전까지 잠시 공사가 중단될 것입니다.”

이에, 양만춘이 기뼈 환하게 웃으며 공별을 불러 명하였다.

“당장 기름을 모으고, 화공을 펼칠 준비를 하라.”

* * *

황제 이세민은 날이 갈수록 토산이 거대해지며, 단단해지고, 안시성에 근접하니, 무척 기뻐하였다.

“안시성 놈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토산을 쌓고 옮기니, 나의 군사들이 참으로 고생이 많도다.”

황제 이세민의 말에 장손무기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곧 안시성 성벽을 굽어볼 수 있게 될 것이옵니다. 그땐 폐하의 군대가 저 오만방자한 안시성의 발서거를 불화살로 태울 수 있사오니, 더는 저항도 없을 것이옵나이다.”

“하하하, 그러한가? 설인귀와 부복애는 듣거라.”

황제 이세민이 흡족해 웃으며 부르니, 설인귀와 부복애가 허리를 굽혀 답하였다.

“하명하소서.”

“너희가 고생이 많구나. 허나, 아직 안시성의 공격이 거세니, 토산을 쌓는 나의 군사들이 무척이나 힘들 것이다. 하여, 너희가 토산을 쌓는 군사들을 지켜야 하느니라.”

“명을 받사옵나이다.”

황제 이세민의 명을 받은 설인귀가 즉시 토산으로 이동하여 군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안시성의 화살과 진흙더미를 막을 방책을 세워라!”

토산으로 흙을 나르는 군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인귀가 방책을 토산 주위에 세우니, 부복애도 이를 따라 명하였다.

“토산 위 곳곳에 방책을 세워라! 토산을 쌓는 군사들을 지켜야 하느니라!”

이에, 토산과 그 주위에 단단한 방책이 세워져 작업중인 군사들을 보호하였다.

화살을 막고, 돌처럼 단단한 말린 진흙더미를 방책이 막아주니, 당 군의 사기도 차츰 올라갔다.

* * *

“온동아, 네 예상대로 방벽은 물론, 토산과 그 주위에 방책이 세워졌구나.”

양만춘이 토산을 바라보며 말하니, 온동이 소리에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린 진흙더미가 단단한 방책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 듯하였다.

“적의 방책은 우리가 날린 진흙더미를 버텨내고 있습니까?”

“부서지고 무너지면 다시 세우니, 이전보다는 당 군의 피해가 적어진 듯하구나.”

“나무는 영성자산에서 베어오겠지요?”

“그렇구나, 동문 방향의 나무들을 베고 있구나.”

이에, 온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이제 시작하여도 될 듯합니다.”

온동의 말에 양만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들어 신호를 보내었다.

이에, 성벽 아래 공별이 백성들에게 명하였다.

“기름통을 발석거에 올려라!”

미리 준비한 기름통들이 발석거에 싣리더니, 그대로 토산을 향해 날았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안시성의 동문이 열리더니, 황우와 대식이 군사들을 이끌고 성문을 나섰다.

쾅! 쾅! 쾅!

토산에 부딪친 기름통이 박살나며 사방으로 기름이 튀었다.

기름이 토산을 타고 흐르는 광경을 지켜보던 양만춘이 크게 소리쳐 명하였다.

“불화살을 날려라! 화공을 펼쳐라!”

이에, 발석거에서 불붙은 짚더미와 나무를 싣어 날리고, 성벽 위 군사들도 불화살을 토산으로 날렸다.

흙으로만 쌓아 마땅히 탈 것이 없었던 토산 곳곳에 나무로 된 방책과 방벽이 세워졌으니, 토산은 이내 곧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이에 미처 피하지 못한 당 군은 토산과 함께 불타올랐다.

“불을 꺼라! 도망치지 말고 불을 꺼라!”

설인귀가 목이 터져라 외치며 불길을 잡고자 했고, 부북애는 활활 타오르는 토산에서 도망쳐 내려와 겨우 목숨을 구하였다.

설인귀의 명에 따라 당 군은 나르던 흙을 뿌려 불길을 잡고자 애썼으나, 안시성의 거센 화공에 좀처럼 불길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동문을 나선 황우와 대식도 중장보병으로 궁수들을 지키며 나무를 베는 당 군 앞으로 직격하여 화공을 펼쳤다.

갑작스럽게 불화살이 날고 사방에 불길이 일어나니, 당 군은 베던 나무를 포기하고 바삐 산을 내려갔다.

* * *

군막에서 나와 불타는 토산을 바라보는 황제 이세민의 안색이 매우 붉었다.

아마도 화를 참지 못하여 피가 끓는 모양이었다.

안시성의 동문 방향에서도 불길이 치솟으며 군사들이 도망쳐 내려오니, 마침내 황제 이세민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토산을 단단히 지키라 명하였거늘! 당장 설인귀와 부복애를 잡아들이거라!”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지금은 토산의 불길을 잡는 것이 우선이옵나이다.”

황제 이세민은 당장이라도 부복애와 설인귀를 벌하여 참형으로 다스리고 싶었으나, 이세적의 간청으로 간신히 화를 다스렸다.

“좋다. 불길을 잡은 뒤, 불러들이도록 하라.”

날이 저물 무렵이 되어서야, 방책과 방벽을 모두 태운 토산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이에, 설인귀와 부복애가 재로 얼룩진 얼굴로 황제 이세민의 앞에 무릎 꿇었다.

“내 너희에게 토산을 단단히 지키라 명하였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방비를 게을리하였는가?”

설인귀는 그저 머리를 조아리며 황제의 처분만을 기다렸으나, 부복애는 살고자 변명하였다.

“이 모든 책임은 설인귀가 방책을 쌓은 탓이옵나이다. 나무로 된 방책이 토산과 그 주위에 세워지지 않았다면 흙으로 쌓은 토산이 화염에 휩싸일 일은 없었을 것이옵나이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부북애와 설인귀를 번갈아 바라보며 냉정히 말하였다.

“설인귀는 어리석었으나, 나의 명을 따라 방책을 세워 군사들을 보호하고자 한 것이니, 벌하지 않겠다. 그러나!”

부복애를 바라보는 황제 이세민의 눈빛이 무척이나 서늘하였다.

“부복애 너는 설인귀가 나무 방벽을 세울 동안 무엇을 했느냐? 적이 화공을 펼칠 수 있으니, 안 된다 말렸는가?”

이에, 부복애가 답하지 못하니, 황제 이세민이 검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며 간신히 화를 눌렀다.

“곧 토산이 안시성에 닿을 것이다. 내 그때까지 너의 목을 몸뚱이에 붙여 둘 터이니, 부복애 너는 공을 세워 목숨을 보전토록 하라!”

설인귀와 부복애가 엎드려 절을 올린 후 물러나자, 장손무기가 황제 이세민에게 아뢰었다.

“폐하, 방책과 방벽을 세울 나무를 구하던 군사들이 화공을 당했사옵나이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말하였다.

“안시성 인근에서 나무를 구하던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다. 조금 멀더라도 영성자산이 아닌 곳에서 나무를 구해 방책과 방벽을 세우라 명하거라.”

이에, 당 군은 방책과 방벽을 세울 나무를 구하기 위해 주필산 인근까지 이동해야 했으니, 토산을 쌓는 공사가 조금 늦춰지게 되었다.

* * *

잠시 시간을 번 양만춘이 회의를 열어 의견을 구하였다.

“공별, 땅굴은 진척이 있는 것이오?”

이에, 공별이 자리에서 일어나 답하였다.

“백성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땅굴을 파고 있기에, 땅굴은 이미 목표한 지점까지 당도하였고, 이제 그 끝을 둥글고 넓게 파, 함정을 만드는 일만 남았습니다. 예상컨대, 함정이 완성되기까지 보름의 시간이 필요하옵니다.”

“고생이 많소. 애썼소.”

양만춘의 격려에 공별이 머리 숙여 답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에, 앙만춘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그 보름이란 시간이오.”

양만춘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보름이란 시간을 우리 안시성이 버텨내지 못할 듯하기에, 함정이 어느 정도 완성되고 토산이 좀 더 근접하는 즉시, 물을 끌어들여 토산을 무너뜨렸으면 하오.”

이에, 온동이 고개를 저으며 짧게 답하였다.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된다?”

“그렇습니다. 보름이 아니라 한 달이 걸리더라도, 토산은 정확히 함정을 파서 무너뜨려야 합니다.”

“토산이 조금만 더 높아지고 근접한다면 당 군의 화살이 우리 발석거를 노릴 수 있게 되고, 성벽에 바짝 붙어 파고 있음도 당 군도 땅굴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온동, 시간이 없다.”

“성주님, 적이 우리가 땅굴을 파고 있음을 눈치챈다고 하더라도, 적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토산을 옮기는 일을 포기하는 것뿐이옵니다. 무리해 땅굴에 물을 끌어들일 경우, 토산은 그대로 땅밑으로 꺼지는 것이 아니라, 앞부분만 기울어 성벽으로 쓰러지게 될 것입니다. 이는 즉!”

“즉?”

“무너진 토산을 타고 당 군이 성벽을 넘게 됨을 의미합니다.”

이에, 양만춘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곧 고개를 끄덕이며 온동의 말에 동의하였다.

“내가 두렵고 조급한 마음에 서둘렀구나. 온동, 네 말이 옳다. 토산은 정확히 함정에 빠뜨릴 그 모습 그대로 땅속에 꺼지도록 하자꾸나.”

이에, 온동이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였고, 평강도 안도하여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