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307화 (307/328)

307화 유격작전 (4)

유인책이라 단정 내린 막바우의 얼굴이 무척 상기되었다.

아마도 이런 계책을 낸 당 군에게 화가 치민 모양이었다.

“아니, 이놈들이 누굴 바보로 알고 이런 꾀를? 아무리 사람이 반푼이라도 이런 수작에 놀아날 줄 알고! 안 그렇소? 장군?”

온달에게 동의를 구하였으나, 온달의 표정이 묘하였다.

“유인책이라…….”

낮게 중얼거리는 온달의 모습이 왠지 불길한 막바우가 다시 물었다.

“장군, 유인책 맞죠?”

“유인책?”

“유인책 맞다고요! 맞다고 어서 말하시라고요! 유인책!”

윽박지르며 동의하라 강요까지 했으나, 온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막바우의 심장을 내려앉게 하였다.

“유인책이라 해도 다시 산길로 가야겠네.”

“뭐? 왜? 왜!”

“산길로 당의 보급이 지날 것이지 않은가? 가야 하네.”

“아니! 유인책인데 거길 왜 가냐고! 바보야? 가면 뒈진다고! 거길 왜 가?”

막바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강혁수와 귀니수는 눈치만 살피며 소리도 못 내었다.

그러나 온달은 막바우의 이런 태도를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막바우.”

“왜요, 장군?”

“자넨 그럼 이 군량미가 안시성을 포위한 당 군에게 가도 좋단 말인가?”

“누가 좋다 했소? 당연히 안 좋지!”

“그러니, 가서 이 보급을 끊어야 하네.”

“유인책인데도?”

“유인책이라 하여도 이 보급이 당 군에게 가면, 안 되지 않은가? 우리가 겁을 내어 통과시켜 준다면 계속 지나다닐 것인데… 이럴 거면 왜 우리가 안시성을 나와 유격을 하는 겐가?”

유인책임을 알면서도 군량미가 원활히 당 군에게 수송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잠깐! 장군, 생각 좀 해봅시다.”

막바우가 눈을 질끈 감고 생각에 잠기니, 온달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경우가 없는 이 상황에서 그나마 자신이 제일 눈치 빠르고 영리하다 여긴 막바우가 안간힘을 쓰며 머리를 쥐어짰다.

‘경우도 없고, 강혁수나 귀니수는 전혀 똘똘해 보이지 않고, 그래도 장군님보단 내가 좀 나으니, 뭔가 수를 내야 해! 수! 묘수!’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던 막바우가 눈을 번쩍 뜨더니 온달에게 말하였다.

“머리를 쥐어짜 보았는데 말입니다요.”

“그래, 묘수가 나왔는가?”

“아뇨. 아무것도 안 나와요. 이건 포기해야겠어요.”

이에, 온달이 한숨을 내쉬더니 땅에 지도를 펼치고 말하였다.

“그럼 내 생각을 말해 보겠네.”

“아니, 장군님이 뭔 생각이 있으시다고. 하지 말아요.”

“아니네. 나도 좀 생각해 보았네.”

“아니, 되었다고요. 일단 경우를 기다려 논의하자고요.”

“아니네. 경우가 올 때면 이미 늦네.”

“그럼 이번은 그냥 통과시켜 주자고요.”

“그러지 말고 내 이야기 좀 들어봐 주게. 금방 되네.”

온달이 이처럼 사정하니, 강혁수와 귀니수도 온달을 거들었다.

“온달 장군께서 묘수가 나오신 모양인데 들어 보시죠.”

“온달 장군이 그대의 상관인데 어찌 이리 무례하단 말이오? 들어나 봅시다.”

이에 막바우도 자신의 행동이 심했다고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 말씀해 보시오.”

온달이 기뻐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보게나. 이 산길은 좁고 양옆으로 가파른 고개가 있으니 우리가 매복해 급습하기 참 좋은 곳이네.”

“그건 알고 있고요.”

“그래, 그래서 이 산길 앞을 내가 개마무사로 막고, 자네와 강혁수가 좌우 양옆에서 매복해 급습하면 보급을 수송하던 적은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네.”

“아니, 그것도 알고 있잖아요. 이미 사용했던 것인데. 헌데 적이 장군님의 배후로 나타나 급습하면 군량미를 탈취하던 우리가 오히려 앞뒤가 막혀 당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 그것이네. 적은 필경 나의 배후로 나타나 역습을 가할 것이네. 앞은 비사성의 보급부대로 막히고, 좌우 양옆은 고개라 꼼짝없이 당하게 되지. 그런데 말이네. 이렇게 우리가 좌측 고개로 도주하면 어떻겠는가?”

“어떻긴? 쫓겠지! 놔주겠소?”

“그렇지! 적이 쫓겠지. 그때 우측 고개 위에서 대기하던 귀니수가 말갈 기병을 이끌고 내달려와 좌측 고개를 오르는 당 군의 배후를 치는 것이네. 우리는 다시 몸을 돌려 고개를 내려오며 반격을 하고 말일세.”

“반격?”

“그렇네. 반격일세.”

온달의 계책이 생각보다 그럴싸하여 막바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니, 강혁수와 귀니수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이런 좋은 수를 어찌 장군이! 하하하.”

막바우가 격하게 감격하여 온달을 칭찬하였다.

이에, 온달이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였다.

“이제 나도 수를 좀 낼 때도 되지 않았는가. 어떤가? 괜찮은가?”

“괜찮지! 이것으로 합시다, 장군! 하하하.”

* * *

장량은 이번에도 자신이 직접 보급 호위를 이끌었다.

“이번엔 온달을 잡아 공을 세우게 되었구나! 하하하.”

이만에 달하는 군사들이 방패로 고구려 군을 막으며, 배후에서 설인귀가 급습하여 궤멸시키는 계책이었으니, 장량의 마음은 이미 승리를 거두기라도 한 듯 무척 들떠 있었다.

“곧 산길로 접어든다! 단단히 주의하거라!”

경계를 명한 장량이 말머리를 돌려 진형 가운데로 이동하였다.

아마도 온달이 거세게 저항할 것을 예상하여 안전한 곳을 찾은 모양이었다.

마침내 산길에 접어드니, 이번에도 온달이 홀로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놈! 역시 저놈이 있구나!”

장량이 기뻐 소리치니, 온달이 웃으며 말하였다.

“자꾸 보니 반갑다. 그래 밥은 든든히 먹었는가?”

“이놈 온달아! 군량미가 이렇듯 가득인데 설마 굶고 다닐 것 같으냐?”

장량이 소리쳐 도발하였다.

이에, 온달이 허허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오느라 고생했다. 수레는 두고 그만 돌아가거라.”

이에, 장량이 피식 웃으며 명하였다.

“단단히 방비하고 살을 날려라!”

선두의 당 군이 방패를 들고 방비하자, 궁수들이 온달을 노리고 활을 겨누었다.

이에, 온달이 운철대검을 길게 휘둘러 파산귀검을 펼치니, 땅이 갈라지며 당 군을 향해 검기가 밀려갔다.

“막아라!”

대지를 가르는 검기에 장량이 당황해 소리치니 군사들이 방패로 앞을 막았다.

그러나 흙과 돌을 날리며 밀려온 검기가 방패마저 가르고 군사들을 날리니, 장량이 기겁하여 소리쳤다.

“어서 살을 날려라!”

이를 신호로 온달의 등 뒤에서 길게 말 울음이 일더니, 쇳소리를 일으키며 개마무사들이 일렬로 질주해 왔고, 좌우 양 고개에서도 화살을 날리며 고구려 군이 질주해 왔다.

이에, 장량이 크게 소리쳐 명하였다.

“버텨라! 놈들이 걸려들었다. 버텨라! 이곳이 놈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당 군이 극을 세워 개마무사와 좌우 양옆에서 돌격해오는 고구려 군을 막으며 버티자, 온달이 당 군의 진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맹렬히 돌진하였다.

“파산귀검!”

온달의 외침과 함께 강한 검기가 전방을 일자로 가르며 쭉 뻗어 나갔다.

이에, 당 군의 비명이 일고 수레가 뭉개지니, 길이 열린 개마무사들이 기세를 올려 돌격하였다.

그때! 개마무사의 배후에서 크게 함성이 일며 당 군이 나타났다.

“유격대장 설인귀가 왔노라! 하하하.”

기세 좋게 설인귀가 외치더니, 멋들어지게 방천화극을 치켜들며 명하였다.

“돌격하라! 놈들은 독 안에 든 쥐와도 같노라!”

이에 오만 기의 기병이 개마무사의 배후를 노리고 맹렬히 질주하였다.

“아뿔싸! 매복이다! 퇴각하라!”

배후를 급습당하자 온달이 크게 놀라 소리치며 좌측 고개로 뛰어오르니 장량의 보급부대를 공격하던 고구려 군이 모두 그 뒤를 따라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고구려 놈들이 도주한다! 뒤를 쫓아라!”

이미 승리를 거둔 듯 설인귀가 크게 기뻐하며 추격을 명하였다.

이에 질세라 장량도 명하였다.

“온달은 우리가 잡는다! 쫓아라!”

장량의 군사들과 설인귀의 군사들이 모두 일제히 고개를 오르니, 서로 뒤엉켜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장 총관! 물러나시오! 놈들은 내가 쫓겠소!”

설인귀가 답답하여 소리쳤으나, 물러설 장량이 아니었다.

“아니, 저놈이… 여태껏 고생은 누가 했는데, 공을 낚아채려 하다니! 고얀 놈! 물러서지 말고 쫓아라!”

장량의 재촉에 더욱 혼잡스러워지니, 설인귀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별수 없다. 함께 오른다! 쫓아라!”

말과 사람이 섞여 고개를 오르니 진형이 갖춰질 리 없었다.

이때, 우측 고개 위에서 귀니수가 말갈 기병을 이끌고 나타나 아래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뜻대로만 된다면, 전장만큼 즐거운 곳도 없구나. 돌격하라!”

귀니수가 앞장서서 말을 달리며 활을 당기니, 시위를 떠난 살이 바람을 가르며 당 군의 등에 명중하였다.

그리고 귀니수의 뒤를 따른 삼만 기의 말갈 기병이 일제히 살을 날리며 날듯이 고개를 내려오니, 화살이 하늘을 덮고 비명이 끝없이 메아리쳤다.

“매복이다!”

매복에 매복으로 맞서고 다시 또 매복이 이어지니,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은 설인귀가 급히 퇴각을 명하였다.

“퇴각하라! 당장 벗어나라!”

그러나, 우측 고개를 질주하며 내려오는 말갈 기병이 날린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사방에서 당 군이 쓰러지니, 좌측 고개로 도주하던 온달이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반격이다!”

크게 외친 온달이 운철대검을 일자로 내려치니, 바람을 갈리고 땅마저 갈렸다.

산을 가르는 무공이라 하여 파산귀검이라 불린 초식이 대지를 가르며 고개 아래로 길게 쭉 뻗었다.

그리고 막바우와 강혁수도 이에 질세라 맹렬히 질주하며 당 군 속으로 쑥 들어갔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노라!”

강혁수가 낭아봉을 휘두르며 이처럼 외치니, 그 기세에 질린 당 군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막바우도 멋들어지게 독고창법을 펼치며 장량을 찾았다.

“거기 너! 섰거라!”

험상궂은 인상의 막바우가 내달려오니, 기겁한 장량이 고개를 구르며 도망쳤다.

“설 장군! 나 좀 살려주시오!”

장량의 다급한 외침에 설인귀가 피풍의를 휘날리며 말을 달려왔다.

그러나 어느새 밀려온 귀니수의 말갈 기병이 에워싸니 죽을 둥 살 둥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간신히 길을 열어야 했다.

“장 총관! 내 손 잡으시오!”

간신히 길을 연 설인귀가 손을 뻗어 장량을 잡아 자신의 말에 태우고는 비사성을 향해 내달렸다.

“퇴각하라!”

이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당 군이 설인귀의 뒤를 따르며 도주하니, 귀니수가 이끈 말갈 기병들이 거친 산을 가뿐히 내달리며 추격하였다.

“장군 대승입니다.”

막바우가 사방에 널브러진 당 군의 시신과 군량미를 가득 실은 수레를 가리키며 기뻐 소리쳤다.

이에, 온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혁수에게 명하였다.

“귀니수가 너무 멀리까지 추격하지 않도록 호각을 불게나.”

이에, 강혁수가 호각을 부니, 당 군을 추격하던 귀니수가 말갈 기병을 이끌고 돌아왔다.

“너무 많은데?”

군량미가 가득 실린 수레를 바라보며 막바우가 중얼거리자, 온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하였다.

“일부만 챙기고, 나머진 불태운다.”

이에, 막바우가 아까워하면서도 모두 가지고 갈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망설임 없이 불태웠다.

검은 연기가 높이 피어오를 무렵, 온달의 유격부대는 산길을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안시성 서문 앞에 진을 펼친 당 군도 하늘 높이 피어오른 검은 연기를 볼 수 있었으니, 장손무기가 불안하여 황제 이세민에게 아뢰었다.

“폐하, 군량미가 불타는 듯하옵니다.”

이에, 황제 이세민도 이미 깨닫고 있었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설인귀의 매복이 실패한 게로군. 군사들의 동요가 없도록 단속하라.”

아직 보급은 충분하였으나, 추가 보급이 원활하지 못할 수 있음을 군사들이 깨닫고 동요하지 않도록 단속을 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하늘 높이 치솟은 검은 연기를 가릴 방법은 없었다.

이로써 당 군은 넉넉히 배급을 받아도 향후 자신들의 배급이 부족해질 수 있음을 걱정하게 되었다.

이는 이미 겪고 들었던 수나라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었으니, 황제 이세민으로선 군사들의 동요를 막을 대책이 시급해졌다.

“사기를 올리고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낮게 중얼거리며 안시성을 바라보던 황제 이세민의 눈이 순간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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