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유격작전 (3)
온동과 공별이 앞장서 퇴각하는 설인귀의 군사들을 베고 또 베었다.
설인귀는 애써 응전하지 않고 퇴각에만 전념하며 급히 산을 내려갔고, 산 위에 만든 발석거는 고구려 군에 의해 모두 불태워졌다.
황제 이세민은 아직도 불길이 치솟는 안시성의 동문 방향을 바라보며 매우 만족해 물었다.
“필경 저곳에 군량미 창고가 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고연수가 자신하여 답하니, 황제 이세민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저 정도의 불길이면 반드시 군량미 창고도 불길에 휩싸였을 게야. 하하하.”
“소장의 생각 또한 군량미 창고가 소실되었다 확신하옵나이다.”
“저곳 말고 다른 곳에 따로 마련된 군량미 창고는 없는가?”
“내성에 군량미 창고가 있사오나, 그 크기가 작고 여기서도 드나드는 움직임을 살필 수 있으니, 안시성의 군량미 현황은 이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게 되었나이다.”
고연수가 머리를 조아리며 이렇듯 답하니, 황제 이세민이 등을 두드려 치하하였다.
“그대의 공이 크다. 내 그대를 중히 여길 터이니, 이후에도 내게 충심을 다하도록 하라!”
“황공하옵나이다.”
고연수가 엎드려 절을 하니, 만족한 황제가 이세적에게 명하였다.
“날이 밝으면 공세를 더 하여라! 몸이 바쁘면 쉽게 허기가 지고, 허기가 지면, 소실된 군량미 창고가 떠올라 고구려 군의 사기가 저하될 것이니라!”
“명을 받나이다.”
* * *
날이 밝자, 배를 든든히 채운 당 군이 정란을 앞세워 공격을 강행하였다.
이에, 양만춘은 전날과 다름없이 응전을 명하였으나, 황제 이세민의 판단처럼 고구려 군사들의 사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크게 저하되어 갔다.
전날보다 정란이 쉽게 성벽에 다가와 문을 내려 걸치고 군사들을 쏟아내니, 부월수를 이끄는 기 씨 사형제가 죽을힘을 다해 막았다.
온동도 금강대도를 휘두르며 성벽에 걸린 밧줄을 끊고 성벽 위로 오른 당 군의 목을 베고 또 빼었으나, 고구려 군의 피해도 매우 컸다.
날이 저물 무렵까지 전투가 지속되었고, 정란들이 모두 불타오르자 황제 이세민이 퇴각을 명하였다.
장수들을 군막으로 불러 회의를 연 황제 이세민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명하였다.
“전날에 비해 정란이 불타는 시기가 늦어지고 있다. 장손무기는 다시 밤을 새워 정란을 만들게 하라!”
“명을 받습니다.”
장손무기가 더 많은 수의 정란을 만들기 위해 먼저 군막을 벗어나니, 황제 이세민이 이번엔 이세적에게 명하였다.
“내일은 하루 쉬고, 모레 총공세를 가하라.”
“하루를 쉬면 적이 휴식을 취할 터이온데…….”
“하하하, 결코 휴식을 취할 수 없을 것이니라. 우리가 언제 공격해 올지 두려워하며, 소실된 군량미 창고를 떠올리게 될 터이니, 오히려 사기만 더 저하될 게야. 하하하.”
이에, 이세적이 황제의 혜안에 탄복하여 머리를 조아렸다.
* * *
한편 기병으로 구성된 온달의 유격부대에도 안시성의 군량미 창고가 소실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안시성의 군량미 창고가 불탔습니다.”
경우가 전령이 전해온 소식을 온달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온달이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놀랐다.
“어찌하면 좋겠소?”
온달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막바우와 강혁수, 귀니수 등이 답하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바라보니, 경우가 답답한 듯 말하였다.
“어찌하긴요. 부족한 군량미를 채워줘야지요.”
“채운다고? 우리가?”
막바우가 의아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이에, 경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한마디 하였다.
“그 머리 좀! 긁지 말라고! 더러워 죽겠네.”
“아니지, 자네가 죽으면 안 되지. 우리 유격부대의 지능을 책임지는 자네가 죽으면 안 되지. 내 안 긁을 테니 죽지 말게나.”
막바우가 즉시 긁던 손을 내리고 이처럼 말하니 경우가 지도를 펼쳤다.
“육십오만이야. 육십오만! 당 군은 하루하루 먹는 식량이 어마어마하다고.”
“그래! 싸는 똥도 엄청나겠구먼.”
“아! 그 입 좀!”
경우의 지청구에 막바우가 입을 다무니, 귀니수가 고개를 갸웃하였다.
“틀린 말도 아니지 않소? 어찌 그리 사람을 쥐잡듯이 잡는 게요?”
“뭐? 이 조그만 게! 확 그냥!”
성미 사나운 경우가 귀니수를 쥐어박을 듯 윽박지르니, 온달이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어허, 주먹질은 좀 자제하시오.”
이에, 경우가 주먹을 거두고는 다시 지도를 가리켰다.
“보소서! 당 군은 요동성과 백암성 등에서 군량미를 확보하였을 것입니다. 허나, 이들은 대군이라 예비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상황인데, 육로는 건안성이 막고 있으니, 오직 해상 보급로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건 알고 있고.”
막바우가 심드렁히 말하니, 경우가 눈을 부라렸다.
“좀 닥쳐 줄래?”
풀 죽은 막바우가 입을 꾹 다무니 경우가 다시 말하였다.
“당 군은 우리가 유격부대를 꾸리고 있음을 모르기에, 필경 비사성에서 예비분을 수송할 것입니다. 바로 이 길이겠지요.”
서문 앞들에 진을 펼친 당 군과 이어진 길이었다.
“빙 돌아 수송하는 일은 없겠는가?”
온달의 물음에 경우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먼길로 수송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최단 거리를 이용할 것입니다.”
“허면, 언제쯤 수송이 시작될 듯한가?”
온달의 물음에 경우가 자신하여 답하였다.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 그것을 어찌 자신하는가?”
“어제 비사성의 당 군 척후가 이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여, 오늘 수송이 이뤄질 것이라 예상하였지요. 저도 척후를 보내 살피게 하였으니, 곧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 * *
비사성의 장량은 그간 군량미 수송이 실패하였던 과오를 씻고자 직접 지휘에 나섰다.
백여 대의 수레에 호위 군사 삼천을 이끌고 성문을 나선 장량은 곧장 안시성으로 향하였다.
좁은 산길이라 한 줄로 열을 지어야 했으나, 가장 거리가 짧고 안시성 인근에 이미 황제 이세민이 대군을 이끌고 진을 펼쳤으니, 걱정은 없었다.
“서둘러라! 곧 당도할 것이다!”
좁은 산길을 돌고 돌아 작은 야산을 넘을 무렵, 거대한 검을 어깨에 걸친 사내가 홀로 길을 막고 있는 것이 장량의 시야에 들어왔다.
‘갑주를 걸치지 않은 것이… 장수는 아닌 듯한데… 무엇 하는 놈인고?’
장량이 의아해 사내를 살피며 물었다.
“너는 누구고, 어찌 길을 막고 있느냐?”
이에, 사내가 어깨에 걸친 거대한 검을 내려 땅에 세우며 답하였다.
“일전에는 고구려 장수였으나, 지금은 산적이다. 지금부터 이 길을 지나는 통행세를 징수할 터이니, 성실히 응하기 바란다.”
사내가 부리부리한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이렇듯 말하니, 그 기세가 매우 사나웠다.
이에, 장량은 등골이 오싹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 혼자가 아니로구나.”
장량의 물음에 사내가 피식 웃었다.
“그럼 설마 내가 미쳐서 혼자 대군의 앞을 막는다 생각한 것이더냐?”
이에, 장량이 크게 당황하여 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이를 오히려 신호로 삼아 산길 양옆에서 고구려 군의 함성이 일고, 화살이 날아들었다.
좁은 산길에서 매복에 걸린 장량이 크게 당황하니, 부장이 길을 열고자 앞을 막은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길을 열거라!”
장량의 부장이 기세 좋게 소리치며 검을 휘두르던 그 순간, 사내가 땅에 세웠던 거대한 검을 가볍게 들어 올리더니, 크게 휘둘렀다.
이에, 부장은 말과 함께 베어져 땅에 처박혔고,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절명하였다.
이 광경에 장량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급히 말 머리를 돌려 도주하였다.
총관이 너무도 허무하게 도주하니, 군사들도 전의를 상실해 도망치기 바빴다.
한참을 도주하던 장량이 비사성 앞에서 간신히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니, 장수들이 다가와 물었다.
“어찌, 길을 열지 않으시고 그리 쉽게 퇴각하셨는지요?”
이에, 장량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안 된다. 결코 길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어찌 그러십니까?”
“그놈… 그놈은 검신 온달이었다. 만일 길을 열고자 달려들었다면, 나와 너희의 머리가 으깨졌을 것이다.”
장량의 말에 장수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하오면 총관, 앞으로는 어찌해야 합니까?”
이에, 장량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바로 답하였다.
“수송을 호위하는 군사들의 수를 늘리고, 수송로를 변경해야겠지. 그 산길은 온달이 지키고 있으니, 두 번 다시 이용할 수 없다.”
* * *
당 군이 수레만 두고 모두 도주하니, 온달은 경우에게 안시성 북문 방향으로 수송을 명하였다.
이에, 경우가 명을 받아 떠나기 전, 온달에게 당부하였다.
“적은 당분간 이 산길로 수송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경 멀리 돌아 수송할 것이니, 장군께선 미리 가서 기다리십시오.”
이에, 온달이 고개를 끄덕여 답하니, 경우가 서둘러 안시성 북문으로 향하였다.
* * *
동문의 군량미 창고가 소실되고 사기가 저하된 안시성의 군사들은 당 군이 공세를 가하지 않으니 더욱 불안해하였다.
“도대체 어찌하여 공세를 펼치지 않는단 말인가?”
양만춘이 적진을 바라보며 이처럼 중얼거릴 때, 북문의 군사가 급히 달려와 아뢰었다.
“경우 장군께서 군량미를 가져오셨나이다.”
“뭐라? 경우가?”
양만춘이 기뻐 한걸음에 달려가 보니, 군량미가 가득 실린 수레 백여 대 앞에서 경우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성주, 쌀 가져왔소이다. 하하하.”
당 군으로 향하던 군량미를 탈취해 가져왔다는 소식이 안시성에 퍼지고, 군사들의 사기가 다시 드높아졌다.
* * *
다음 날, 편히 하루를 쉰 당 군이 다시 공세를 펼쳤다.
이세적의 지휘로 정란이 굉음을 내며 진격하였고, 발석거와 포차도 공격에 가담하였다.
사다리와 밧줄을 든 군사들이 맹렬히 성벽을 향해 질주하니, 곧 안시성이 함락될 것이라 모두가 여겼다.
그러나, 전의가 상실되었으리라 여겼던 고구려 군이 오히려 하루의 휴식으로 사기를 드높여 이전보다 더 거세게 응전하였다.
고구려 군의 발석거가 힘차게 돌을 날리고, 궁수들도 끊임없이 화살을 날리니, 여유로웠던 당 군의 진영이 오히려 혼란스러워졌다.
들판에 다시 불길이 치솟고, 질주하던 당의 군사들이 불길을 피해 도망치기 바쁘니 전장의 거인 정란이 또다시 불타올랐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손을 들어 이세적을 불러들였다.
“안시성의 움직임이 매우 수상하다. 오늘은 이만 군을 물리도록 하라.”
이세적이 명을 받아 군을 물리던 그때, 비사성에서 보낸 전령이 황제에게 아뢰었다.
“온달이 군량미를 탈취하였나이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군막 밖으로 나와 안시성을 바라보았다.
“온달… 온달이… 군량미를?”
겨우 분을 가라앉힌 황제 이세민이 군막으로 돌아와 명하였다.
“서문뿐만 아니라, 남문과 북문, 동문도 철저히 지키고, 안시성 밖에서 움직이는 온달을 찾아라!”
이에 장검이 기병 육만을 이끌고 온달의 유격부대를 추적하기 시작하였다.
장검이 급히 군사들을 이끌고 떠나니, 마침 안시성 동문에 군사들을 배치하고 돌아온 설인귀가 조심스럽게 황제 이세민에게 아뢰었다.
“고양이가 생선을 노린다면, 그 생선을 미끼로 고양이를 잡으면 되시옵나이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무릎을 탁 치며 매우 기뻐하였다.
“과연! 그대의 말이 옳다! 즉시 비사성의 장량에게 명하여 군량미를 수송케 하라!”
여기에 더하여, 비사성에서 수송하는 군량미를 노린 온달을 잡기 위해 황제 이세민이 설인귀에게도 기병 오만을 내어주며 말하였다.
“장검이 이미 온달을 추격 중이나, 그대도 따로 군을 이끌고 온달을 유인해 잡도록 하게나.”
이에, 황제의 명을 받은 설인귀가 백색 피풍의를 휘날리며 군사들을 이끌고 출병하였다.
그리고 황제의 명에 따라 비사성에서 또다시 산길로 군량미를 수송하기 시작하니, 이 소식이 온달에게 전해졌다.
“아니, 어찌 산길로 군량미를 수송한단 말인가?”
온달이 놀라 이처럼 말하니, 막바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하였다.
“뭘 놀라고 그러슈? 유인책이잖소. 우리를 잡으려는… 장군은 그래 그것도 몰라 놀라는 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