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305화 (305/328)

305화 유격작전 (2)

당 군의 진영에서 화살이 날아들고 하늘을 가리니, 양만춘이 즉시 명하였다.

“방패를 들어라!”

이에, 부월수들의 뒤에 서 있던 중장보병들이 앞으로 나와 커다란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 짧은 순간에 맞춰, 당의 돌격부대가 속도를 더해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파바박!

방패에 화살이 박히는 소리가 사방에서 일고, 미처 피하지 못한 군사들이 성벽 위에 쓰러졌다.

“응사하라!”

양만춘의 명에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리자, 성벽을 향해 달려오던 당의 군사들이 들판에 널브러졌다.

그러나 사다리와 밧줄을 든 군사들이 계속해 뒤를 이으니, 양만춘의 입에서 재차 명이 터져 나왔다.

“계속해 살을 날려라!”

고구려 군이 화살을 날리니, 당의 진영에서도 응사하며 돌격부대를 엄호하였다.

이에 맞서 양만춘이 손을 들어 올리자, 기수가 깃발을 올리고 이를 신호로 외성과 내성 사이에 준비한 발석거가 웅장한 굉음을 일으켰다.

휘이잉!

삼십여 대의 발석거들이 일제히 거대한 돌을 날리니, 미리 조준하였는지 정확히 들판을 내달려오는 당의 돌격부대 머리 위로 쏟아졌다.

콰과과광!

당 군의 비명은 지면과 충돌을 일으킨 거대한 돌들의 굉음으로 묻혔고, 흙과 돌이 날리며 시야가 흐려진 당 군을 노리고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당 군도 포차와 발석거가 응전하니, 돌과 거대한 화살 그리고 화살비가 하늘을 덮었다.

이에 성벽 위도 어수선해지며 쓰러지는 군사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충차가 안시성 서문에 닿고, 사다리와 밧줄이 성벽 위에 걸쳐졌다.

이에, 기다리던 끓는 기름이 성벽 아래로 부어지고 불붙은 거대한 나무가 떨어져 내려 충차를 으깼다.

“불을 붙여라!”

끓는 기름이 부어진 성벽 아래를 가리키고 양만춘의 명이 떨어지자, 군사들이 횃불을 던져 성벽 아래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산 채로 불태워지는 당 군의 처참한 비명이 일고, 이틈을 노려 성벽에 걸쳐진 사다리를 군사들이 긴 봉으로 밀고, 밧줄을 잘랐다.

그러나 황제가 친히 전장을 지휘하며 계속해 돌격부대를 보내는 한편 전장의 거인 정란까지 동원하였다.

지금껏 보왔던 정란보다 곱절은 큰 정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자, 고구려 군사들이 겁에 질렸다.

정란의 수는 모두 삼십여 대로, 화살을 쏘며 점차 성벽과 거리를 좁혔다.

부월수들이 긴장해 도끼를 단단히 들고 정란을 노려보았고, 궁수들은 정란을 밀고 있는 당의 군사들을 노려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화살에 맞아 쓰러지면 다른 군사가 다시 정란에 붙어 밀으니 정란은 점점 더 성벽과 가까워졌다.

그리고 정란의 등장으로 사기가 오른 당 군이 다시 사다리와 밧줄을 들고 내달려와 성벽에 걸치니, 마침내 성벽 위로 당 군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였다.

“감히! 어디를 오르는 것이냐!”

부월수를 이끈 기악이 도끼를 내리쳐 올라오는 당 군의 머리를 으깨고는 손을 들어 명하였다.

“한 놈도 성벽에 오르지 못하게 하라!”

이에, 기범, 기룡, 기훈 등이 각기 부월수를 이끌고 성벽을 오르던 당의 군사들을 막았다.

온동도 이들과 함께 성벽 끝에 바짝 붙어 연신 금강대도를 휘둘렀다.

금강대도는 팽운이 온동을 염려하여 빌려준 것으로 온동이 휘두를 때마다 그 무엇이든 거침없이 절단되었다.

성벽 위에서 난전이 벌어지자, 어느새 다가온 정란이 성벽에 바짝 붙더니, 문이 내려져 성벽에 걸쳐지고는 당의 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다! 정란을 불태워라!”

대식의 외침에 황우가 이끈 군사들이 기름을 정란에 뿌리고 노궁수들이 불붙은 화살을 날렸다.

이에 성벽에 걸쳐진 문이 불타고 쏟아져 나오던 당의 군사들이 화염에 휩싸여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평강과 독고영이 백성들을 이끌며 기름을 계속해 성벽 위로 나르고, 공별이 군사들을 동원해 성벽 위에 가마솥을 걸고 불을 피워 기름을 끓였다.

이를 황우가 군사들과 함께 날라 부으니, 곳곳에서 정란이 불타고 시커먼 연기가 치솟았다.

그사이에도 하늘엔 돌과 화살이 계속해 날아다녔고, 양측 진영의 발석거와 포차는 쉬지 않고 굉음을 일으켰다.

이를 지켜보던 양만춘이 손을 들어 올리자, 대식이 노궁수들에게 엄히 명하였다.

“적의 발석거와 포차를 노려라!”

기름을 묻혀 불을 붙인 화살이 시위를 벗어나 당의 진영으로 길게 날았다.

그리고 발석거와 포차 주위에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발석거와 포차가 하나둘 불타올랐다.

시커먼 연기가 당의 진영 앞에서 피어오르니, 시야가 흐려진 황제 이세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이에 퇴각을 알리는 북소리가 크게 일었다.

* * *

안시성의 저항이 만만치 않으니, 황제 이세민이 바로 회의를 열었다.

“발석거와 포차의 피해는 어찌 되는가?”

“고구려의 활이 생각보다 사정거리가 길어, 우리 측 피해가 상당하옵니다. 발석거와 포차가 절반가량이나 불탔고 정란은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장손무기가 피해 상황을 아뢰니, 황제 이세민이 낮게 신음을 토하였다.

“쉽게 항복하지는 않겠단 소리로군.”

안시성이 그려진 지도를 내려다보며 황제 이세민이 이처럼 중얼거리니, 주필산 전투에서 투항한 고연수가 입을 열었다.

“폐하, 소장이 한 말씀 아뢰겠나이다.”

“듣겠노라.”

“안시성이 요충지라 하나, 변방의 작은 성에 불과합니다. 굳이 안시성을 함락시킬 필요는 없나이다.”

“어찌 그런가?”

“안시성은 고구려 입장에서도 요충지이면서도, 변방의 작은 성에 불과합니다. 안시성이 빛을 발하려면, 비사성이 고구려의 성이어야 합니다.”

“…….”

“안시성은 고구려의 수군 기지인 비사성을 지키는 최전방의 성일 때만 그 가치가 있습니다. 허나, 지금은 비사성에 우리 당 군이 있어 해상 보급로가 확보된 상황입니다.”

“음…….”

“하여, 애써 안시성을 공략할 필요 없이 이대로 직격하여 평양성을 공략하신다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옵나이다.”

이에, 고해진도 나서 고연수의 말을 거들었다.

“폐하, 고연수의 말이 타당합니다. 현재 평양성은 연개소문의 아우 연정토가 지키고 있는데, 군사가 적어 방비가 약하니, 공략이 수월하리라 판단되옵니다.”

고구려의 사정을 잘 아는 고연수와 고해진이 이처럼 말하니, 모든 장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황제 이세민은 여전히 지도 속 안시성을 주시할 뿐 답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군막 안을 감돌고, 황제 이세민의 손이 지도 속 안시성을 짚으며 침묵을 깼다.

“고구려 입장에서도 변방의 작은 성일 뿐이라… 허면, 내가 고작 변방의 작은 성조차 함락시키지 못하고 빙 돌아 평양성으로 향해야 한단 말인가?”

이에 고연수와 고해진이 땀을 뻘뻘 흘렸다.

“폐하, 소장이… 아둔하였나이다.”

“용서하소서…….”

이에, 황제 이세민이 장손무기에게 시선을 옮겨 명하였다.

“정란과 발석거, 포차의 수를 더 늘려라. 발석거의 힘만으로 안시성의 성벽을 허물어 버리겠노라!”

“명을 받습니다!”

장손무기가 머리를 조아려 명을 받으니, 황제 이세민이 고연수를 응시하며 물었다.

“안시성의 식량 상황은 어떠한가?”

“성주 양만춘이 제법 잘 다스려 평시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나, 지금은…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넉넉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가? 안시성의 군량미는 어디에 보관하는가?”

이에, 고연수가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동문 방향이옵니다.”

“동문?”

“그렇습니다. 동문이 서문보다 지세가 높아 공격을 피하기 용이하기에, 동문에 군량미 창고를 두고 있습니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지도를 들여다보며 다시 물었다.

“내성인가? 외성인가?”

“군량미 창고는 외성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지요.”

고연수가 가리킨 지점은 동문과 그리 멀지 않았고, 영성자산 중턱에 해당되었다.

“내성에 군량미 창고를 마련하지 않은 이유가 있던가?”

“노출되기 때문이지요.”

“노출?”

“안시성은 영성자산의 산등성이를 타고 외성을 쌓았고, 내성은 계곡에 자리한 탓에, 들에서 바라보면 내성의 움직임을 환하게 살필 수 있습니다. 하여, 군량미 창고가 어디 있는지만 알아도 오가는 군사들의 움직임만으로 군량미 현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에, 산 아래에서 살피기 어려운 이곳 동문에 창고를 마련한 것입니다.”

“허허, 그런 일이…….”

고구려의 장수만이 알 수 있는 정보였으니, 황제 이세민이 기뻐 입술을 실룩거렸다.

애써 웃음을 참는 듯하던 이세민이 다시 표정을 굳혀 명하였다.

“유격대장 설인귀는 듣거라!”

“명하소서.”

“너는 즉시 군사들을 이끌고 산 위로 이동하여 발석거를 만들어 안시성의 군량미 창고를 불태우거라!”

이에, 설인귀가 즉시 명을 받으니, 황제 이세민이 흡족해 말하였다.

“먹고 살기 위해 싸우는 것이 전쟁이다. 군량미가 불타고도 성문을 열고 투항하지 않을지 어디 두고 보겠노라.”

* * *

황제 이세민의 명을 받은 설인귀는 특별히 건장한 군사 오천을 뽑아 연성자산 위로 향하였다.

군사들은 산 위에서 조립할 발석거 재료까지 나르며 산에 올랐으나 매우 신속하고 은밀하였다.

마침내 산 위에 오른 설인귀가 내려다보니, 동문이 바로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산비탈이 너무도 가파르고 산세가 험하여 대군을 이끌고 동문을 공략하기 불가해 보였다.

“과연, 군량미 창고를 저곳에 두어도 안전하다 여길 만하구나.”

빙그레 웃으며 설인귀가 발석거 조립을 명하니, 밤이 깊을 무렵 발석거 십여 대가 완성되었다.

이에, 설인귀는 군사들이 가지고 올라온 기름통을 발석거에 싣게 하고는 명하였다.

“동문 뒤, 남서 방면으로 오백 보 거리다! 날리거라!”

이에, 기름통들이 일제히 날았고, 다시 설인귀가 명하였다.

“불붙여 날려라!”

불을 붙인 짚더미와 나무들이 목표 지점으로 날기 시작하니, 밤하늘이 환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궁수들이 일제히 불화살을 날렸으나, 거리가 멀어 동문 주위에 떨어졌다.

그러나, 기름통이 날아든 지점에 발석거에서 날린 불덩이들이 떨어져 크게 불길을 일으키니, 이내 곧 안시성 동문 일대가 소란스러워졌다.

* * *

서문 성벽 위에서 당의 진영을 살피던 양만춘에게 전령이 급히 달려와 아뢰었다.

“장군! 동문의 군량미 창고가 불타고 있나이다.”

이에, 양만춘이 급히 고개를 돌려 동문 방향을 올려다보았다.

성의 정반대 방향이었으나, 불길이 치솟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당장 불을 꺼라!”

이에, 온동과 공별이 급히 군사들을 이끌고 내달렸고, 북문과 남문, 내성에서도 군사들이 불길을 잡고자 동문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이때도 여전히 산 위에 자리 잡은 당 군이 계속해 발석거로 불덩이를 날리니, 불길은 계속 번졌다.

이에, 동문에 도착한 온동이 발석거가 날리는 불덩이 소리를 듣고는 급히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안 돼!”

공별이 급히 온동의 앞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눈도 보이지 않는 네가 어찌 밖으로 나간단 말이냐? 내가 가겠다.”

“그럼 함께 가겠습니다.”

온동이 고집을 꺾지 않으니, 공별도 더는 만류할 수 없었다.

“좋다. 그럼 내 곁에 항상 붙어 있거라!”

이내 곧 동문이 열리고 공별과 온동이 군사 일천을 이끌고 산 위로 급히 올랐다.

* * *

설인귀는 안시성 동문의 군량미 창고가 불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어 쉽사리 산을 내려가지 못하였다.

“이거야 원… 불타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 철수를 하지.”

불길은 치솟고 있으나, 그 불길 속에 군량미 창고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으니, 계속해 명하였다.

“불덩이를 날려라! 기름통을 날려 불길을 더욱 크게 일으켜라!”

이에, 발석거가 쉬지 않고 기름통을 날리고, 불덩이도 계속해 동문 주위로 날렸다.

이때, 이들의 위에서 거친 함성이 울렸다.

불덩이를 날리는 당 군을 빙 돌아 산 정상에 오른 고구려 군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돌격해 온 것이다.

배후에서 고구려 군이 나타나자 당 군이 크게 동요하였고, 설인귀도 놀라 정신이 아득하였다.

“이놈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온동이 날듯이 산비탈을 내달리며 크게 외쳤고, 그 뒤를 고구려 군사들이 따르며 불붙은 화살을 날렸다.

고구려 군이 날린 불붙은 화살은 마침 기름통에 박혀 불길을 일으켰고, 갑작스러운 급습에 당황한 설인귀가 급히 퇴각을 명하였다.

“물러나라! 퇴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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