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유격작전 (1)
당장이라도 살을 날릴 듯 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는 말갈 기병들의 모습에 막바우가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안 돼! 쏘지마!”
온달도 말갈 기병의 태세에 살의를 느꼈는지 기병들에게 기사를 명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장군! 안 돼! 온달아! 하지 마! 쏘지 말라고!”
막바우가 다급히 온달을 향해 아무 말이나 마구 소리치고 귀니수에게도 손을 저으며 외쳤다.
“하지 마요. 제발 좀요.”
이에, 귀니수가 온달과 안시성의 기병들을 잠시 바라보고는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공격을 알리는 신호였다.
“안 돼! 제발…….”
막바우가 벼락치듯 크게 소리지르며 귀니수에게 달려와 무릎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 소리에 온달이 급히 손을 저어 안시성 기병들의 활을 내리게 하며 질주를 멈추니, 귀니수도 쥐었던 주먹을 펼쳐 말갈 기병들에게 활을 내리게 하고는 막바우와 온달을 번갈아 살폈다.
‘참으로 가벼운 무릎이로다.’
잠시 두 진영간 긴장이 흐로고, 온달이 홀로 누렁이를 몰아 천천히 다가왔다.
이에, 막바우가 손을 들어 온달을 멈추게 하고는 귀니수에게 말하였다.
“나를 믿어도 돼요. 안시성도 고구려의 일부고, 고구려와 말갈은 하나잖아요. 괜찮아요… 나를 믿어도 돼요.”
귀니수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막바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온달이 누렁이에서 내려 운철대검을 땅에 꽂아 세우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막바우 괜찮은가?”
온달의 물음에 막바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귀니수에게 차분히 말하였다.
“저분이 온달이에요. 믿어도 돼요. 온달 들어는 봤지요? 봐요. 운철대검도 없이 다가오잖아요. 보라고요. 공격할 생각도 이유도 없어 보이지요?”
“…….”
“온달님과 나는 머리가 나빠서 누굴 속이진 못해요. 그러니, 믿어도 돼요. 날 보라고요. 누가 나같은 놈에게 속겠냐고요.”
막바우의 이 말에 귀니수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고, 팽팽히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말갈 기병들도 모두 따라 웃었다.
* * *
막바우가 생환하자, 안시성의 모두가 매우 기뻐하였다.
더구나, 곧 당도할 황제 이세민의 대군에 맞설 말갈 기병 삼만 기까지 함께 왔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늘면 그만큼 식량이 부족해지기에, 곧 바로 작전 회의가 열렸다.
한참 동안 막바우가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니, 모두가 귀 기울여 들었다.
이야기 도중 황제 이세민이 고구려인을 모두 풀어주고, 말갈인은 생매장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귀니수가 이를 바드득 갈며 분노하였다.
“반드시 뼈까지 갈아 마셔줄 것이다.”
귀니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와 동의를 표하였고, 평강과 온동은 동시에 뭔가를 떠올렸다.
‘당이… 군량미에 문제가 생겼구나.’
‘황제가 필경 군량미를 근심하는 것이다.’
평강과 온동이 이렇듯 생각을 정하는 동안 막바우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막바우 고생이 많았네. 자네는 이제 좀 더 치료를 받고 쉬는 게 좋겠네.”
온달이 위로하며 말하였으나, 막바우가 큰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하였다.
“쉬는 건 죽어서 쉬어도 충분하고, 지금은 죽기를 각오애 싸우기도 바쁩니다. 곧 황제가 올 것이잖아요. 장군은 참 한가도 하십니다요.”
이에 온달이 더는 권하지 못하니, 평강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막바우 장군께서 참으로 공이 크십니다.”
“공이요? 그저 살아 돌아온 것 뿐인데… 공까지야…….”
“아닙니다. 막바우 장군께서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가져오셨으니, 그 공이 실로 크다 하겠습니다.”
“제가요? 제가 중요한 정보를요?”
막바우는 자신의 이야기 속 무엇이 중요한 정보인지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알 수 없어 의아해 하였다.
이는 온달과 양만춘은 물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오직 온동만이 평강의 말을 이해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막바우의 물음에 평강이 빙그레 웃으니, 온동이 대신하여 답하였다.
“당 군의 군량미 사정이 여의치 않음을 파악하시어 알려주셨으니, 어찌 그 공이 작다 하겠습니까.”
“내가? 내가 당 군의 군량미 사정을 파악해서 알려줬다고? 내가 언제?”
막바우가 되물으니, 이번엔 평강이 귀니수를 잠시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답하였다.
“전장에서 포로는 서로 교환하거나, 노역에 동원할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화살받이로 사용할 수도 있기에 함부로 죽이지 않습니다. 하여, 이번 당 군의 행태는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지요. 이는 당 황제가 군량미 보급을 염려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요? 딱히 부족해 보이지 않던데…….”
막바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하니, 이번엔 온동이 말하였다.
“당 황제는 매우 치밀한 인물인 듯합니다. 우리 안시성을 공략함에 있어 대군이 모두 함께 움직이니, 당과의 육상 보급은 건안성이 끊을 것이라 여긴 것이지요. 믿을 것은 당에서 비사성으로 이어진 해상 보급로인데, 바다는 기후를 예측하기 어려우니 불안하여 미리 조심하는 듯합니다.”
“아! 그런 거였어? 그래서, 성급히 포로를 풀어주고… 그런 짓을 한 것이구먼.”
생매장당한 말갈인을 떠올린 막바우가 귀니수의 안색을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이에, 귀니수가 평강을 바라보며 물었다.
“좋은 정보를 알았다고 하니, 다행이오. 허면 우리는 앞으로 어찌해야 하는 것이오?”
잠시 생각에 잠긴 평강이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이곳이 바로 비사성이지요. 당 군은 이 비사성에서 보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사성에서 수송될 보급을 끊어야 합니다.”
경우가 지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찌 끊어야 합니까?”
“유격전을 펼쳐야겠지요.”
“유격전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평강의 담담한 대답에 경우가 다시 물었다.
“하오면, 이 안시성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안시성도 지켜야겠지요.”
“군을 분리해 유격전을 펼치자는 말씀이시옵니까?”
“그렇습니다.”
평강의 대답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똘똘 뭉쳐 대항해도, 황제의 대군을 막아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군을 분리하자니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모두가 서로 눈치만 살피니,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마침내 결심한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군을 나누어 수성과 유격전을 동시에 진행함은 좋은 방책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요?”
평강이 물으니, 양만춘이 기침 한 번 하며 답하였다.
“유격전을 펼칠 군은 군량미를 어찌 조달하실 생각이신지요?”
이에, 평강이 빙그레 웃으며 비사성을 가리켰다.
“여기서 나오는 보급을 탈취하여 충당해야겠지요.”
이에, 양만춘이 근심을 담아 물었다.
“가능하겠습니까? 적의 보급을 탈취하지 못한다면 유격전을 펼치는 군사들이 굶주릴 터인데…….”
“탈취하지 못한다면, 황제의 당 군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반드시 탈취해야겠지요.”
평강의 단호한 말에 양만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가 반드시 성을 지켜낼 터이니, 부디 적의 보급을 끊어 주십시오.”
이에, 평강이 서둘러 군을 둘로 나누었다.
이로써, 양만춘과 온동, 대식, 기 씨 사형제, 공별과 황우 등이 남아 안시성을 사수하며, 온달과 막바우, 경우, 강혁수, 귀니수가 기병을 이끌고 유격전을 펼치게 되었다.
또한 평강과 독고영, 팽운 등이 안시성에 남아 백성들을 돌보며 양만춘을 돕기로 하니, 유격부대는 황제의 대군이 당도하여 성을 포위하기 전 서둘러 안시성을 빠져나가야 했다.
* * *
유격부대는 개마무사 일만 기와 궁기병 일만오천 기, 말갈 기병 삼만 기로 구성되었다.
새벽이 오기 전 온달이 유격부대를 이끌고 성을 빠져나가니, 해가 떠오를 무렵 황제 이세민의 원정군이 안시성 서문 앞 넓은 들에 당도하였다.
“진을 세우고 안시성 각 성문을 단단히 지켜라!”
언제나 전장을 직접 살피며 지휘하는 황제 이세민의 명에 따라 안시성 서문 앞에 진영이 세워지고, 각 성문 앞을 단단히 지켜 안시성을 철저히 고립시켰다.
“도망갈 곳이 없어야 항복을 생각하는 법이지.”
황제 이세민이 말을 몰아 안시성 주위를 살피며 말하였다.
아마도 안시성의 각 성문 앞마다 배치된 당 군의 포위가 무척이나 흡족한 모양이었다.
“저 성안에 온달과 양만춘이 함께 있단 말이지? 성주는 양만춘이나, 온달이 그의 아랫사람은 아닐 터이니, 명령 체계가 무척이나 혼란스럽겠구나. 머리가 두 개인 뱀은 스스로 다퉈 자멸하는 법이니, 필경 안시성은 오래 버틸 수 없을 게야.”
이에, 장손무기가 황제 이세민의 식견에 탄복하여 말하였다.
“페하의 판단은 항상 절대적이옵나이다. 적은 필시 자중지란에 빠져 백기 투항할 것이오니, 무리하여 공세를 펼칠 필요조차 없을 듯하옵니다.”
“아니다. 적이 투항하고자 마음을 품어도 쉽게 행하지는 못할 것이다. 투항에도 명분이 필요한 법이다. 나는 양만춘과 온달에게 명분을 주기 위해서라도, 강공할 것이니라.”
이에, 장손무기가 연신 탄복하며 황제를 칭송하였다.
황제 이세민은 총공세를 가하기 전, 진영 앞에 단을 세우고 그 위에 올라 소리쳐 말하였다.
“우리는 싸워 이길 수밖에 없는 다섯 가지 이유를 지녔느니라!”
전군이 모두 다음 말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니, 황제 이세민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다시 소리쳐 외쳤다.
“싸움을 함에 있어,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치고! 순리로 역리를 치며! 안정된 나라로 어지로운 나라를 치니! 건강한 몸으로 지친 몸을 치게 되고! 기쁜 백성이 원망하는 백성을 치게 되었도다! 이는 바로 필승지세이니라!”
이에 육십오만의 당 군이 환호하며 기세를 드높였다.
“보아라! 저 안시성에 검신이라 칭송받는 고구려 최강의 장수가 있느니라! 우리가 이 안시성을 무릎 꿇린다면, 고구려에서 감히 우리를 막을 장수가 없을 터! 역사는 이 전쟁을 우리 당 군의 승리로 기록하게 될 것이니라!”
황제 이세민이 손을 들어올리자, 황제를 연호하는 군사들의 외침이 안시성까지 전해졌다.
이에, 서문 위 성벽에 올라 지켜보던 양만춘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 성의 성주는 나이건만… 황제가 나를 너무도 업신여기는구나. 반드시 안시성의 성주가 양만춘임을 각인시켜 주겠노라.”
양만춘의 등에는 온달이 출병하기 전에 건넨 철궁이 매어져 있었다.
온달은 이 철궁을 양만춘에게 건네며 이렇듯 말하였다.
“유격부대를 부르고자 한다면, 효시를 날리시구려.”
“제가 이 철궁을 당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철궁의 무게에 양만춘이 깜짝 놀라 이렇듯 말하니, 온달이 빙그레 웃으며 답하였다.
“성주, 나는 성주라면 능히 이 철궁을 당기고도 남을 신력을 지녔다 믿고 있소. 나는 이 효시가 우는 방향으로 말을 달려올 것이니, 성주는 그때까지 부디 안시성을 지켜 주시오.”
* * *
“포차로 인사를 건네거라!”
여전히 단에 오른 황제 이세민의 명에, 군사들이 포차를 밀어 줄지어 세웠다.
이백여 대의 거대한 포차들이 안시성 서문을 향해 늘어서니, 그 모습이 실로 장관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장정 키를 훌쩍 넘는 화살이 포차에 실리니, 군사 십여 명이 일제히 줄을 팽팽히 당기며 명을 기다렸다.
“날려라!”
마침내, 황제 이세민의 명이 떨어졌다.
이백여 대의 거대한 화살이 안시성의 서문을 향해 날아들었다.
위이잉!
마치 거대한 새가 우는 듯한 괴성이 안시성 군사들의 귀청을 때렸다.
콰과광!
그리고 성벽 위로 내리꽂힌 거대한 화살들이 굉음과 함께 흙과 돌조각을 날렸다.
자욱한 흙먼지가 안시성 군사들의 시야를 가리고, 저 멀리 들판에서 당 군의 함성이 일었다.
이에,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흙먼지 속을 노려보며 크게 소리쳤다.
“놈들이 온다! 살을 준비하라!”
이에 궁수들이 활에 살을 먹여 시위를 팽팽히 당겼다.
아직도 시야는 흐렸으나, 당 군의 거대한 함성이 밀려오고 있어, 곧 적들이 성벽을 타고 오를 것이 예상되었다.
“끓는 기름을 준비하고! 그물을 대기시켜라!”
양만춘의 다음 명을 따라 백성들이 끓는 기름이 담긴 가마솥을 성벽 위로 나르고, 군사들이 성벽 아래로 그물을 던질 준비를 하였다.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점차 시야가 확보되니, 성문을 노리고 밀려오는 거대한 충차가 시야를 자극하였다.
이에, 양만춘이 바로 명하였다.
“통나무에 불을 붙여 내릴 준비를 하라!”
군사들이 장정 키 세 배도 넘는 통나무에 불을 붙인 후, 양 끝에 쇠사슬을 매달아 양만춘의 다음 명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