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사로잡힌 막바우 (4)
“야습이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불화살에 놀란 군사들이 당의 진영 곳곳을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막바우도 자신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불화살에 놀라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말갈족을 건드린 대가를 치르는구나.”
굶주린 동족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라면, 고작 한 자루의 곡식이라도 목숨을 걸고 싸워 약탈하는 민족이 말갈족이었다.
황제 이세민이 이런 끈끈한 동족애를 지닌 말갈인을 산 채로 매장하였으니, 백산부의 말갈족 전사 삼만여 명이 죽음을 각오하고 육십오만 당 군에게 야습을 강행한 것이다.
정상적 셈법으로는 결코 생각하지 못할 야습이었으니, 당 군도 예상하지 못함은 당연하였다.
“불을 꺼라! 황제 폐하를 지켜라!”
불화살이 가장 거대한 군막을 노리고 날아드니, 기겁한 장수들이 불붙은 군막 안으로 뛰어 들어가 황제를 구하기 바빴다.
막바우도 자신의 목줄이 묶인 말뚝에 불화살이 박히자, 급히 몸을 일으켜 불붙은 말뚝에 밧줄을 가져다 대었다.
손은 뒤로 묵여 밧줄을 쥘 수 없기에, 입으로 줄을 물어 불에 가져다 대니, 화기가 입을 타고 눈까지 치밀었다.
“아! 뜨거!”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니, 입에 문 밧줄이 떨어졌다.
이에 다시 밧줄을 물어 불에 태워 끊고자 머리를 숙이던 순간, 막바우의 등을 서슬 퍼런 칼이 노렸다.
“멈춰라!”
막바우가 몸을 돌려 바라보니, 자신을 생포한 설인귀였다.
갑작스러운 야습에 당황한 설인귀가 황제를 지키기 위해 무작정 달려오다가 불에 밧줄을 태워 도주하려는 막바우를 발견한 것이다.
이 순간에도 이들의 머리 위로 불화살이 쉴 새 없이 날아들었고, 갑주를 걸친 황제 이세민이 군막에서 나오고 있었다.
야습을 알리는 호각과 북소리가 넓게 펼친 당 군 진영 곳곳에서 울리며 사방에서 황제를 구하기 위해 장수들이 말을 몰아 왔다.
그리고 막바우는 자신의 목을 겨눈 설인귀의 칼날과 자신의 목과의 거리를 재었다.
“세 뼘…….”
낮게 중얼거린 막바우의 눈이 빛났다.
이 순간, 막바우의 머릿속엔 경우의 날렵한 발차기가 그려졌고, 자신도 설인귀의 검을 발로 걷어차 날려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얍!”
크게 기합을 넣으며 막바우가 힘차게 땅을 밟고는 그 힘을 이용하여 오른발을 휘둘렀다.
머릿속엔 멋진 자신의 품세가 그려졌으나, 실상은 뻣뻣한 몸뚱이와 굳은 다리로 매우 볼썽사나웠다.
“뭐 하자는 짓이냐!”
발길질하고자 허우적거리는 막바우를 비웃으며 설인귀가 날랜 몸놀림으로 주먹을 휘두르니 눈을 얻어맞은 막바우가 털썩 쓰러졌다.
눈동자를 맞았는지, 눈물샘이 터져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이건 아파서 우는 게 아니야!”
막바우가 고함을 질렀으나, 설인귀의 가혹한 주먹은 다른 눈마저 후려쳤다.
양쪽 눈에서 눈물샘이 터진 막바우가 눈물을 줄줄 흘리니, 그 모습이 가관이라 설인귀가 껄껄 웃었다.
“허허, 이놈 봐라… 하하하, 뭐 이런 놈이 일장산의 도살자라니… 기도 안 차는구나. 하하하.”
이때, 설인귀의 등 뒤에서 군사들의 비명이 들리더니,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들었다.
다행스럽게도 화살들은 설인귀가 아닌 이제 막 군막 밖으로 나온 황제 이세민을 노리고 있었다.
“폐하를 지켜라! 놈들을 막아라!”
어느새 내달려온 이세적이 방패를 들어 황제 이세민을 지키며 외쳤다.
그리고 동시에 여인의 날카로운 음성이 밤하늘을 찢었다.
“저놈이 황제다! 저놈을 죽이고 우리도 죽는다! 돌격하라!”
동족의 원한을 갚기 위해 야습을 강행한 귀니수였다.
삼만 기의 말갈 기병들은 한 줄기 빛처럼 일직선으로 뻗어 오직 황제 이세민만을 노리고 내달려 왔고, 넓게 진을 펼친 당 군은 그제야 허겁지겁 황제를 구하고자 몰려왔다.
황제를 구할 공을 놓칠 설인귀가 아니었으니, 막바우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냅다 내달렸다.
“폐하! 소장 요격대장 설인귀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밝히며 설인귀가 황제 이세민의 앞에 다다르더니, 칼을 휘둘러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었다.
그러나 화살의 수는 너무도 많았고, 어둠이 시야를 가리니 모두 쳐내기란 불가하였다.
황제의 명줄이 경각에 달하던 그 순간, 근위장 황무문이 비호처럼 날아들더니, 쌍검을 휘둘러 황제 주위로 날아드는 화살들을 모두 쳐내었다.
검이 닿지도 않을 거리마저 화살들이 맥없이 떨어지니, 이세적과 설인귀는 황무문의 무용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이 틈에 막바우는 급히 밧줄을 입에 물어 말뚝에 번진 불길에 가져다 대었다.
“아 뜨거!”
얼굴까지 치민 화기에 막바우가 비명을 내지르던 그때, 불붙은 밧줄이 마침내 끊어졌다.
그러나 목에 매인 밧줄 끝에 불이 붙어 계속해 번지니, 막바우의 목이 타들어 갈 상황이었다.
이에, 막바우는 밧줄에 번진 불길을 끄고자 땅에 뒹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막바우가 뒹구는 땅 위로 말갈 기병들이 내달려오니, 막바우의 몸뚱이가 말발굽에 짓이겨질 상황이었다.
이에, 막바우는 당장의 위기를 면하고자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나 솟구쳤다.
‘말에 올라타야 산다. 이대로 있다간 밟혀 죽는다.’
마음은 높이 솟구쳐 단숨에 말 위로 올라 멋들어지게 말을 타고 도주하고자 했으나, 몸은 막바우를 저버렸다.
땅에서 뒹굴던 막바우가 높이 솟구쳤다고 생각하며 바라본 곳은 고작 말 등자였다.
손이 뒤로 묶인 막바우였으나, 오직 살고자 하는 일념으로 말 등자를 힘껏 물었다.
‘올라타고 가나, 입에 물고 가나 같은 것이다.’
이렇듯 막바우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였으나, 실상 말을 물고 가기란 불가한 일이다.
간신히 등자를 물고 끌려가던 막바우의 시야에 매섭게 눈을 치켜뜬 황무문이 보였다.
‘아! 저리 가면 안 되는데! 말 돌려서 도망쳐야 하는데!’
이에, 말 위에 앉은 귀니수가 어이없어 막바우를 내려다보더니, 발로 걷어차 막바우를 떨굴지, 이대로 내달려 황무문을 대적할지 망설였다.
이때, 이도종과 장검을 비롯한 당의 장수들이 군사들을 이끌고 몰려오고, 황무문이 무용을 펼치며 황제 이세민을 지키니, 귀니수도 더는 공격이 불가하다 여겨 퇴각을 명하였다.
“다음을 노린다! 퇴각하라!”
이에, 삼만 기의 말갈 기병이 일제히 말머리를 돌렸고, 귀니수도 막바우를 발로 걷어차 내치지 않고 말을 몰아 내달렸다.
* * *
장검이 돌궐을 비롯한 이민족 기병으로 구성된 부대를 이끌고 추격하였으나, 귀니수가 이끈 말갈 기병들은 산을 들처럼 내달리며 이들의 추격을 피하였다.
해가 떠오를 무렵, 산중턱에서 아침을 맞이한 귀니수가 아직도 말 등자를 물고 버티는 막바우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하였다.
‘인간이…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개도 아니고, 어찌… 여기까지 등자를 물고 늘어지다니… 필경 실성했음이 분명하다. 아마도, 당나라 놈들에게 가혹한 고신을 당하여 개가 된 모양인 게야.’
이제 갓 스물이 넘은 귀니수였으니, 세상에 별별 사람이 있음을 모름이 당연하였다.
그러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라 할지라도 등자를 물고 늘어지는 위인은 듣도 보도 못했을 것이다.
“이봐! 그만 됐으니, 입 벌려.”
귀니수가 조심스럽게 발로 막바우의 이마를 툭툭 치며 말하였다.
이에, 막바우가 입을 벌려 등자를 놓으니, 쿵하며 뒤통수를 땅에 처박았다.
“아이고!”
막바우가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내지르니, 귀니수가 어이없어 한마디 하였다.
“땅에 발을 잘 딛고 입에 문 등자를 놓았어야지!”
“아! 그렇군! 그리 잘 알면서 순서를 설명 좀 해주지 그랬냐!”
막바우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오히려 귀니수에게 항의하였다.
이에, 주위 말갈 기병들이 곡도를 뽑아 들고 귀니수의 명을 기다렸다.
아마도 실성한 듯 보이는 막바우를 단칼에 요절낼 심산인 모양이었다.
이에, 귀니수가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하였다.
“실성한 사람이다. 당나라 놈들이 고신하여 저리된 듯하니, 잘 대해 주거라.”
귀니수의 명에 말갈 기병 한 명이 말에서 내려 막바우의 손을 묶은 밧줄을 끊고는 목에 매인 밧줄도 풀어주었다.
“와! 이제 좀 살겠구나야!”
막바우가 기뻐 손과 목을 푸니, 이를 지켜보던 귀니수가 고개를 갸웃하였다.
“전신이 피로 물들어 있고, 상처를 치유한 흔적이 보이는데… 필경 중상을 입었을 것인데, 어찌 저리 멀쩡하단 말인가?”
이 소리를 들은 막바우가 허허 웃었다.
“중상을 입고, 매도 맞고, 화살도 박혔다가 뽑히고… 그런데 어제 고기를 한 상 가득 먹어서 힘은 넘친다고! 하하하.”
“실성한 놈이 맞구나.”
이처럼 막바우를 무시하며 귀니수가 부장들을 불러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였다.
이에, 막바우는 해가 떠오른 방향을 바라보고는 등을 돌려 양팔을 벌리더니, 껄껄 웃었다.
“해를 등지고 서면 서쪽이요. 양팔을 벌리면, 왼손이 북… 오른손이 남이니, 우리가 저기에서 오고… 그래! 저쪽이 안시성이겠구나.”
당 군의 추격을 피해 어둠 속을 한참 동안 내달렸으나, 막바우는 지나온 길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듯하였다.
안시성 방향을 찾은 막바우가 기뻐 껑충껑충 뛰며 소리치니, 이 광경을 바라본 귀니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춤? 춤추는 건가? 이 상황에? 정말 당나라 놈들은 잔인하구나. 사람을 어찌 고신하였길래 저리 완벽히도 실성할 수 있단 말인가?”
막바우를 불쌍히 여긴 귀니수가 말린 고기를 던져주며 말하였다.
“배 꺼진다. 이거나 먹고 네 갈 길 가거라.”
이에, 막바우가 한입에 말린 고기를 욱여넣고는 우걱우걱 씹으며 말하였다.
“고기를 주다니! 너 정말 고맙다. 내가 너희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 터이니, 거기 쭈그려 앉아 대책 논할 것 없느니라.”
제법 의젓하게 말하였으나, 피로 물든 몰골이 너무도 너저분하고 참담하여 진정성이 귀니수에게 전해지지 못하였다.
“됐고, 이거나 더 먹거라.”
실성한 막바우가 게걸스럽게 말린 고기를 먹으니, 이 모습이 안쓰러운 귀니수가 계속해 고기를 던져주었고 막바우는 이를 사양하지 않고 다 받아먹었다.
해 질 무렵, 안시성 서문 방향으로 모습을 드러낸 삼만 기의 말갈 기병을 전령이 양만춘에게 알리니, 온달과 강혁수가 기병 일만 기를 이끌고 나갔다.
온달의 운철대검이 붉은 석양에 물들어 검붉게 타오르니, 멀리서도 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에, 귀니수의 말 뒤에 탄 막바우가 기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봐! 나를 마중 나올 거라 했잖아!”
“내 눈엔 우리를 공격하러 나온 것처럼 보이는데…….”
막바우를 믿고 안시성으로 향해도 될지 귀니수가 망설이던 그때, 막바우가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온달을 향해 소리쳤다.
“장군! 나요! 막바우가 살아 돌아왔소! 말갈 기병 삼만 기도 데리고 왔다고요! 하하하.”
막바우의 외침에 온달과 강혁수가 급히 말을 몰아 달려오니, 귀니수가 당황하여 손을 들어 올렸다.
안시성 군과 연개소문의 고구려 군이 불화를 겪고 있음을 귀니수도 잘 알고 있기에 긴장한 것이다.
이에, 말갈 기병 삼만 기가 일제히 활을 들어 온달과 강혁수를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