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사로잡힌 막바우 (3)
황제 이세민이 이끈 대군이 안시성 동쪽에 당도하였고, 포로가 된 막바우도 이때 황제 이세민의 앞에 끌려오게 되었다.
마침 해가 저물어 황제 이세민은 군막을 세우고 진을 펼치라 명하고는 친히 막바우를 심문하였다.
“네가 그 유명한 온달 휘하의 맹장 막바우더냐?”
산을 허물어 신라 군을 생매장시킨 막바우의 악명을 황제 이세민도 아는 모양이었다.
“나를 아시오?”
몸에 박힌 화살도 뽑지 못한 막바우가 황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막바우의 퉁명스런 물음에 장손무기가 노해 소리쳤다.
“이런 오만불손한 놈이!”
“오만불손? 이렇게 무릎까지 꿇었는데, 뭐가 오만불손이야! 보면 몰라?”
막바우가 오히려 목청 높여 소리치니, 장손무기가 기가 막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황제의 앞이라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으나, 명만 떨어지면 막바우의 얼굴을 뭉개버릴 듯 표정이 무척 사나웠다.
그러나 이에 기가 꺾일 막바우가 아니었다.
“그 주먹 뭐야? 버릇없이 황제 앞에서 주먹질이라도 하려고? 옛끼! 이 사람아! 황제가 심문 중인 거 안 보여? 아주 오만불손하기 그지없구먼!”
기세 좋은 막바우의 입담에 황제 이세민이 껄껄 웃었다.
“허허, 그거 참… 물건이로다. 허허허.”
“난 물건이 아니고, 사람이오. 장수 중에서도 장수인! 대고구려의 장수올시다. 하하하.”
막바우가 이처럼 말하고 껄껄 웃으니, 황제 이세민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허허 웃었다.
“참으로 기세 좋은 장수로다. 그래, 너는 어찌 우리 당 군에 맞선 게냐?”
이에 막바우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황제를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하였다.
“허, 참… 황제…….”
“그래, 할 말이 있느냐?”
황제 이세민이 궁금하여 물으니, 막바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혹시… 실성하였소?”
이에, 충성심 깊은 이세적이 불같이 화내며 막바우를 꾸짖었다.
“뭐라? 이 어찌 감히!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아니! 정녕 살고 싶다!”
“이놈이 정녕!”
“왜 이놈아!”
꼬박꼬박 대꾸하는 막바우의 기세에 황제 이세민이 껄껄 웃으며 손을 내저어 이세적을 진정시켰다.
“그만… 그대는 너무 흥분하지 말게나.”
이세적이 겨우 분을 삭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서니, 황제 이세민이 다시 막바우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 내게 실성한 것이냐 물었느냐?”
“아니, 실성하지 않고서야 어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황제가 할 수 있단 말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소!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우리 고구려 강산을 침략하였는데, 장수된 이로써 맞서 싸움이 당연한 것 아니오? 황제가 어찌 그것을 몰라 물을 수 있단 말이오?”
오히려 막바우에게 꾸중을 들은 황제 이세민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으나, 주위 시선을 의식하여 금세 표정을 풀고는 껄껄 웃었다.
“그래! 너의 말이 옳다. 외적이 쳐들어오면, 장수된 이가 당연히 칼을 들고 맞서야지. 헌데, 고구려의 황은 내가 책봉한 신하이니라. 하여, 고구려의 장수들 역시 나의 신하요 백성이니라. 나는 외적이 아니니라.”
“뭔 궤변이오? 황제 그대는 우리 백성들을 죽이고 성을 빼앗지 않았소?”
“내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에 온 이유는 왕을 시해한 연개소문의 죄를 묻고자 함이니라. 만일 연개소문이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 예를 다한다면 나는 빼앗은 성을 돌려주고 군사들을 물릴 것이니라.”
“하하하! 이 또한 궤변이오! 우리 고구려는 당보다 역사가 긴 나라요! 중원의 국가가 세워지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우리 고구려는 영속하였고, 우리 고구려의 정변은 고구려인들끼리 해결할 일이오!”
“…….”
“이는 마치, 옆집의 가정사를 문제 삼아 담을 넘어 물건을 훔치는 도적과도 같은 행위요!”
막바우가 단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맞서니, 황제 이세민도 더는 분을 참지 못하였다.
“감히 이놈이! 저놈이 살려달라 빌 때까지 매우 쳐라!”
이에, 설인귀가 즉시 나서 막바우의 안면을 발로 걷어찼다.
“컥!”
막바우가 입에서 검붉은 피를 뿜으며 쓰러지니, 설인귀가 다시 힘껏 걷어차려 했다.
이때, 막바우의 입에서 급박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살려줘!”
기세 좋던 막바우가 고작 발길질 한 번에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 외치니 오히려 설인귀가 당황하여 황제를 바라보았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크게 소리쳐 꾸짖었다.
“뭣하느냐! 저놈이 살려달라 빌 때까지 매우 치라 하지 않았느냐!”
설인귀가 다시 막바우의 안면을 걷어차려 하니, 막바우가 즉시 자세를 바로잡아 무릎 꿇고는 소리쳤다.
“살려달라고! 빌고 있잖아!”
이에, 설인귀의 발이 다시 멈추었고 황제 이세민도 당황하여 할 말을 잃었다.
잠시 군막 안에 침묵이 흐르고, 황제 이세민이 막바우에게 물었다.
“살려달라 비는 게냐?”
“살려달라고 비는 거 안 들리오?”
“허면, 투항하는 게냐?”
기세 좋은 막바우를 굴복시킨 기쁨에 황제 이세민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였다.
그러나 그의 귀에 전해진 막바우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아니.”
“뭐라 했느냐?”
“아니라 했소.”
“아니라? 뭐가 아니란 게냐?”
“투항하는 거 말이오.”
“뭐라? 살려달라 빌지 않았느냐?”
“살려달라 빌면 안 때린다고 하여, 살려달라 빈 것이오.”
“허면, 투항한 것 아니더냐?”
“투항한 것 아니오.”
“아니라?”
“아니오.”
천연덕스럽게 잘도 답하는 막바우의 모습에 황제 이세민이 기가 막혀 한참을 웃더니 자리로 돌아가 털썩 앉았다.
곧 있을 황제 이세민의 분노가 두려운 장수들은 모두 침만 꿀꺽 삼키며 막바우 같은 대책 없는 위인을 잡아 온 설인귀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저런 걸 왜 잡아 와서. 어휴… 그냥 전장에서 목을 벨 것이지.’
이때, 황제 이세민이 무겁게 입을 열어 침묵을 깼다.
“저놈을 데려가 화살도 뽑아주고 치료해주거라!”
아마도 자신이 쉽게 격분하여 막바우의 목을 베는 모습을 장수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에 막바우가 끌려나가며 소리쳐 말하였다.
“밥도 주시오! 고기!”
“주거라!”
황제 이세민이 기도 차지 않아 짧게 명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치료도 받고 한 상 가득히 고기를 받은 막바우는 마치 자기 집인 양 편안히 고기를 뜯고는 대자로 뻗어 편히 잠을 잤다.
잠든 막바우를 당의 군사들이 다시 손발을 묶고 목에 밧줄을 걸어 말뚝에 묶으니, 영락없는 짐승의 몰골이었다.
이는, 황제 이세민이 온달 휘하의 맹장 막바우에게 수모를 주어 포로로 잡힌 고구려 군사들과 백성들의 기를 꺾고자 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이 밝으니, 황제 이세민은 안시성으로 향하기 전 인근 작은 성인 후황성과 은성을 공략하라 명하였다.
이에, 이도종과 장검이 군사들을 이끌고 후황성과 은성을 공략하였다.
후황성과 은성의 군사들과 백성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맞섰으나 수에서 밀려 결국 함락되었고, 이도종과 장검은 포로를 끌고 진영으로 돌아왔다.
이로써 당 군의 진영 내에 사로잡힌 고구려 군사들과 백성 백성의 수가 삼만육천여 명에 육박하였고, 말갈인도 삼천삼백여 명이 넘게 되었다.
황제 이세민은 욕살 이하 관장 삼천육백여 명을 당으로 끌고 가게 하고, 나머지는 안시성이든 평양성이든 그 어디라도 자유롭게 가도록 석방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를 도운 말갈인 삼천삼백여 명은 산 채로 매장케 하였다.
이는 고구려를 고립시키기 위한 황제 이세민의 술책이었다.
황제 이세민이 백이십여 난을 평정할 당시 종종 사용했던 책략으로 석방된 백성들이 생환하면 오히려 적군의 투지가 꺾이곤 하였다.
또한 외부에서 돕는 세력을 참혹히 처형하여 고립시키는 전술도 성과를 내곤 하였다.
순식간에 당 군의 진영에서 살아있는 포로는 오직 막바우만 남게 되었다.
“너는 오늘 나의 처분이 관대하다 여기지 않느냐?”
고구려인을 석방한 자신에게 막바우가 감사를 표하리라 여겨 물은 듯하였다.
그러나 막바우는 산 채로 말갈인이 묻힌 땅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아마도, 말갈이 두려워 우리 고구려를 돕지 못하게 하고자 저 짓을 하였을 터이나, 그대는 말갈인을 모르오. 그들은 오늘 그대가 한 행동에 치를 떨며 반드시 대갚음할 것이오.”
황제 이세민이 난을 평정할 당시 한족에게 사용했던 술책이 말갈족에겐 결코 통하지 않음을 눈치 빠른 막바우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뭐라?”
황제 이세민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으니, 막바우가 냉소하며 답하였다.
“황제, 여기는 그대의 나라가 아니오. 오늘 그대의 만행으로 말갈은 그대에게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 우리 고구려와 함께 그대와 맞설 것이오. 허니, 다음에 말갈인을 사로잡거든 나처럼 고기를 한 상 가득 내어주고, 치료도 해주시구려.”
막바우의 조롱 섞인 말에 황제 이세민의 미간이 좁혀졌다.
애써 끓어오르는 분을 삭인 황제 이세민이 막바우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네가 그리 생각하는구나. 그래 향후 어찌 될지 두고 보겠는가? 말갈은 반드시 저항하지 않을 것이고, 너의 안시성은 나의 군사들이 짓밟을 것이니라.”
이에 막바우가 피식 웃으며 말하였다.
“그건 황제 당신 생각이고.”
“이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게냐! 개처럼 목이 매인 주제에!”
장손무기가 황제를 대신하여 호통을 쳤으나, 그렇다고 기가 죽을 막바우도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묶인 게냐? 네놈들이 개처럼 나를 묶어 놓고는 뭔 주제 타령이냐!”
당장이라도 황제의 명이 떨어지면 막바우의 목을 베고자 장수들이 저마다 칼에 손을 대었으나, 황제 이세민은 의연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그저 껄껄 웃었다.
“두거라! 저놈은 반드시 살려 안시성이 도륙 나는 꼴을 보여줄 것이다.”
* * *
말갈인은 여타 기마민족과는 다른 삶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발원지를 고구려와 동일한 백두산으로 여기고 있으며, 초원의 민족과 달리 산과 들 모두 말을 타고 달릴 수 있었다.
지구력은 북방 초원의 민족이 윗선이었으나, 빠른 질주와 거친 산악도 내달릴 수 있는 기마술은 말갈족이 윗선이었다.
또한 이들은 모두 일곱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서북 방면 말갈을 제하고는 오랜 세월 고구려와 영토를 공유하며 민족 정체성은 유지하고 있었다.
단지, 고구려의 북서 방면에 터를 잡은 속말부(粟末部)만이 매번 고구려에 쳐들어와 노략질하며 사이가 좋지 못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백돌부, 안거골부, 불열부, 호실부, 흑수부, 백산부 등은 고구려 백성들과 화합하여 같은 나라의 백성처럼 지내고 있었다.
이는 고구려가 이들을 차별하지 않고, 영토 밖으로 내쫓지 않아 서로 교류한 덕분이었다.
당 군이 후황성과 은성에서 생포하여 생매장한 말갈인 속에는 백산부의 부족장 귀여살이 있었고, 그의 여식 귀니수가 국내성에서 삼만에 달하는 말갈 기병을 이끌고 있었다.
석방된 고구려 군사들과 백성들은 살고자 바삐 내달렸고, 이들 중 국내성에 당도한 이들은 백산부의 족장 귀여살이 생매장되었음을 귀니수에게 알렸다.
이에, 격분한 귀니수가 국내성 성주의 만류조차 듣지 않고 삼만 기의 말갈 기병을 이끌고 내달렸다.
국내성 성주 고즉리는 즉시, 신성에 있는 개소문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이미 출병한 말갈 기병을 개소문이 되돌릴 수는 없었다.
삼만 기의 말갈 기병을 이끌고 쉬지 않고 말을 달린 귀니수는 안시성 동쪽에 진을 친 당 군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평지는 적고 작은 야산과 구릉이 굽이치는 곳에 진을 친 당 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귀니수는 즉시 가장 큰 군막을 찾고자 주위를 살폈다.
“누가 봐도 황제가 있을 군막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군막에 귀니수가 중얼거리고는 자신들과 당 군과의 거리를 재어보았다.
“천보 남짓…….”
자신들의 뒤로는 낮은 산들이 펼쳐져 있어 퇴로로 삼기 적당하였다.
어둠이 내려 자신들의 모습을 가리니, 야습하기 좋은 밤이었다.
문제는 당 군의 추격을 피해 국내성으로 귀환할 수 없다는 단점이었다.
“후황성과 은성도 함락되었고, 비사성도 함락되어 갈 수 없다. 건안성과 신성, 국내성은 당 군을 뚫고 가야 하니, 야습 후가 막막하구나.”
이처럼 중얼거리면서도 귀니수와 삼만의 말갈 기병은 생매장당한 동족의 복수를 하기 위하여 야습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 하여, 망설일 수는 없다! 모두 활을 들라!”
귀니수의 명에 삼만 기의 말갈 기병이 일제히 활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