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사로잡힌 막바우 (2)
삼천 기의 기병을 이끌고 막바우와 강혁수를 대동해 안시성을 나선 온달은 멀리 들판을 가득 메운 백성들의 비명 소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수였고, 백성들은 너무도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를 안고 업은 아낙네와 늙은 부모를 지게에 매고 내달리는 사내들 그리고 이들의 뒤로 흙먼지를 날리며 쫓는 당의 기병.
하늘엔 백성들의 시신을 탐내는 독수리와 까마귀들이 가득하였고, 저항하지 못하는 백성들의 비명 소리는 전장에서 군사들의 비명보다 더욱 참담하였다.
이에, 막바우가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소장이 백성들의 후미로 달려가 당 군이 허튼짓 못하게 하겠습니다.”
“나도 가겠네.”
“아닙니다. 장군은 혹여 적이 뭔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여기 남아 백성들이 무사히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지키십시오!”
마치 명하듯 막바우가 단호히 말하고는 온달의 다음 말도 기다리지 않고 기병 일천 기를 이끌고 말을 내달렸다.
“이 사람 막바우!”
온달이 급히 막바우를 불렀으나, 돌아볼 막바우가 아니었다.
이에, 강혁수가 불안한 듯 말하였다.
“장군, 우리도 뒤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네. 막바우의 말이 옳네. 당 군이 뭔 수를 내고자 백성들을 앞세운 듯하니, 우린 여기를 지키며 당 군이 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하세.”
사실, 설인귀는 성문이 열리면 백성들을 앞세워 안시성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으니, 온달과 막바우의 판단이 옳은 셈이었다.
온달과 강혁수가 남은 기병 이천 기를 넓게 펼쳐 진형을 갖추고 당 군의 돌발 행동에 대비를 하는 사이, 막바우는 어느새 백성들의 후미로 향하고 있었다.
“성문이 열렸으니 속히 들어가시오! 서두르시오!”
스쳐 지나는 백성들에게 막바우가 소리치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힘내시오! 곧 안시성이오!”
막바우를 따라 기병 일천 기도 백성들이 힘내어 달리도록 외치니, 살길이 열린 백성들이 기뻐 눈물 흘리며 내달렸다.
“저놈들이로구나!”
멀리 백성들의 후미가 보이고, 말발굽과 창으로 백성들을 살육하는 당의 기병이 막바우의 시야를 자극하였다.
들판은 이미 피로 붉게 물들었고, 겁 없는 독수리들이 백성들의 시신에 내려앉고 있었다.
“이 찢어 죽일 놈들!”
막바우가 눈에서 불꽃을 튀기며 질풍처럼 말을 몰아나가니, 따르는 기병 일천 기도 죽음을 각오하고 당의 기병 삼만 기를 향해 돌진하였다.
“불패 장군 막바우이시다!”
“일장산의 도살자 막바우 장군이시다!”
기병 일천 기가 소리높여 막바우를 연호하며 돌격하니, 설인귀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명하였다.
“적은 소수다! 단숨에 짓밟아라!”
이에, 고구려 기병 일천 기와 당의 기병 삼만 기가 단숨에 충돌하며 병장기를 부딪쳤다.
긴 말울음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백성들의 비명을 대신하여 양측 군사들의 비명이 대지를 뒤덮었다.
“한발도 더는 갈 수 없느니라!”
단창을 쥔 막바우가 용맹히 당의 기병 사이를 내달리며 독고창법을 펼쳤다.
일반적인 기병창보다 짧은 막바우의 단창이었으나, 현란한 독고창법은 빠르고 정확하여 적의 급소만을 노렸다.
설인귀는 전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이 바위 같은 사내의 무용에 혀를 내두르며 부장들에게 명하였다.
“온달 휘하의 맹장 막바우다! 생포하라!”
이에 부장 다섯이 일제히 막바우에게 달려들었다.
눈치가 빠른 막바우는 당 군의 규모를 파악한 후, 적의 기세를 꺾고 백성들이 도망칠 시간만 번 뒤 빠르게 퇴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설인귀의 부장 다섯이 일제히 달려드니 도저히 몸을 뺄 여력이 없었다.
‘이런 제길! 아무리 내가 독고창법을 열심히 수련했어도 이렇게 에워싸면 몸을 뺄 수 없는데… 너무 자만하였구나. 제길!’
이미 후회한들 돌이킬 수 없음을 빠르게 판단한 막바우가 부장을 돌아보며 급히 명하였다.
“나는 되었고! 너희는 백성들을 지키며 안시성으로 돌아가라!”
그러나 이미 혼전이 벌어진 뒤였기에, 쉽게 퇴각할 수 없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 할 따름입니다!”
용감히 답한 부장이 당 군의 수장으로 보이는 설인귀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이에, 백색 피풍의를 펄럭이며 설인귀가 백마를 몰아 내달려 오더니, 방천화극을 휘둘러 허공에 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 원의 끝에 막바우의 부장 목이 있었으니, 막바우는 목이 잘려 말에서 떨어지는 부장의 모습에 크게 분노하였다.
“이놈! 감히!”
막바우가 단창을 고쳐 쥐고 설인귀에게 달려들려 하였으나, 설인귀의 부장 다섯이 사방을 에워싸고 창을 찔러 공격해 왔다.
“네가 누군 줄 알고!”
등 뒤에서 공격해오는 창끝을 본능적으로 피한 막바우가 단창을 빙글빙글 돌려 좌우를 공격하고는 간신히 포위를 뚫었다.
그리고는 다시 설인귀를 노려 말을 몰아 내달리니, 설인귀가 피식 웃으며 손을 들어 명하였다.
이에 뒤에서 대기하던 궁기병들이 활을 들어 일제히 살을 날렸다.
휙! 휙! 휙!
십여 대의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드니, 막바우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단창을 휘둘러 화살을 막았다.
십여 대의 화살을 모두 쳐낸 막바우가 기세를 몰아 설인귀에게 달려들자 어느새 뒤쫓아온 당의 장수가 당황하여 힘껏 창을 날렸다.
막바우는 이번에도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단창으로 날아드는 창을 막고는 급히 몸을 돌렸다.
“악!”
순간 막바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말을 몰아 다가온 설인귀가 방천화극을 휘둘러 막바우의 어깨를 찌른 것이다.
“이놈!”
막바우가 이를 바드득 갈며 단창을 휘둘러 자신의 어깨를 찌른 방천화극을 쳐내고는 그대로 설인귀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이때, 막바우의 좌우에서 당의 장수 둘이 급히 말을 몰아오더니 동시에 창을 찔러왔다.
막바우는 왼손을 뻗어 좌측에서 공격해오는 창을 낚아채고는 그대로 휘둘러 우측에서 찔러오는 창을 후려쳤다.
이 순간에도 막바우의 단창은 설인귀의 목을 노리고 곧게 찔러 들어갔다.
설인귀는 너무도 빠른 막바우의 몸놀림에 그만 기가 질려 피할 엄두도 못 내었다.
“죽어라!”
막바우의 외침과 함께 설인귀의 목을 창날이 뚫을 듯하였다.
이때 설인귀의 부장 한 명이 급히 외쳤다.
“날려라!”
그리고 십여 대의 화살이 일제히 날아드니, 막바우는 고스란히 화살들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악!”
어깨와 가슴, 팔에 화살이 박힌 막바우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고는 단창을 떨구었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설인귀가 방천화극을 휘둘러 막바우를 말에서 떨구었다.
“잡아라!”
설인귀의 외침에 당 군이 몰려들었고, 혼전을 벌이던 고구려 기병들도 막바우를 구하고자 몰려들었다.
“장군을 구하라!”
“고구려 놈들을 몰살시켜라!”
고구려와 당 군의 외침이 들판을 뒤흔들었고, 피로 물든 막바우는 어느새 포박되어 끌려가고 있었다.
* * *
막바우가 혼전을 벌인 덕분에 백성들은 안시성 앞까지 도망칠 수 있었다.
“서두르시오!”
온달이 크게 외치며 백성들을 재촉하던 그 순간, 온달의 시야에 당의 기병들이 기세를 올리며 몰려오는 광경이 들어왔다.
“장군!”
강혁수도 이를 보고 소리치니, 온달이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막바우가… 돌아오지 못하였구나.”
막바우와 함께 떠났던 기병 일천 기도 돌아오지 못하였으니, 모두가 전사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시간을 버는 동안! 너는 서둘러 백성들을 안으로 들여라!”
온달이 급히 강혁수에게 명하고는 단기필마로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장군!”
강혁수가 온달을 불렀으나, 먼저 떠난 막바우처럼 돌아볼 온달이 아니었다.
“모두 서두르시오!”
강혁수가 크게 외치며 백성들을 재촉하였고, 어느새 밀려온 당 군의 말발굽 소리에 기겁한 백성들이 비명을 지르며 성안으로 뛰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 * *
“더는 올 수 없다!”
단기필마로 삼만의 기병 앞을 막아선 온달이 거대한 운철대검을 휘둘러 대지에 선을 그었다.
온달과 당의 기병 사이 대지를 가르며 그어진 선이 설인귀의 시야를 자극하였다.
‘검이 닿지 않는 거리에… 땅이 파였다.’
운철대검을 휘둘러 날린 검기에 당 군이 일시에 놀라 주춤하니, 온달이 다시 소리쳐 말하였다.
“이 선을 넘는 놈은 염라대왕일지라도 머리를 으깨 놓을 것이다! 돌아가라!”
홀로 삼만 기의 기병을 눈앞에 두고도 조금도 위축됨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에, 오히려 설인귀가 등골이 오싹하여 부장들을 바라보았다.
“누가 저놈의 기를 꺾어 놓겠는가?”
이에, 대부를 든 장수가 빠르게 말을 몰아 나오며 소리쳤다.
“소장, 황여두! 온달의 목을 잘라오겠나이다!”
황여두는 온달을 굽어볼 정도로 체구가 컸고, 그의 대부 또한 바위도 부술 듯 거대하였으니, 설인귀가 크게 기뻐하였다.
“그대가 온달의 목을 베어 검신 칭호를 갖도록 하시오! 하하하.”
이에, 황여두가 답도 하지 않고 곧장 온달을 향해 말을 몰았다.
그러나, 황희두가 대지에 그은 선을 넘는 순간, 온달의 운철대검이 바람을 갈랐다.
파산귀검 초식이 또다시 검기를 날리며 대지에 선을 그으니, 황여두는 말과 함께 흉곽이 으깨져 쓰러졌다.
이에, 설인귀가 입을 쩍 벌리며 놀라니, 온달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수장이냐?”
이에 설인귀가 변변히 대답도 못 하니, 온달이 피식 웃었다.
“맞는 모양이로구나. 네놈의 머리만 으깨면 되겠군.”
누렁이를 몰아 대지에 그은 선 앞에 온달이 서자, 간담이 서늘해진 설인귀가 급히 명하였다.
“일제히 돌격하라! 온달을 사로잡아라!”
이에 설인귀의 부장들이 일제히 말을 몰아 온달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여덟 명의 장수들이 몰려드니, 온달도 운철대검을 단단히 쥐고 맞섰다.
여덟 장수가 대지의 그은 선을 넘는 순간 온달이 운철대검을 휘두르니, 돌과 흙이 날리고 말 울음이 진동하였다.
그리고 세 명의 장수가 흉곽과 가슴이 뭉개져 땅에 처박혔고, 이들의 말도 목이 부러져 죽음을 맞이하였다.
설인귀가 또 한 번 기겁해 입을 쩍 벌리던 그 순간, 온달의 운철대검에 창이 부러진 또 다른 장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에, 겁에 질린 장수들이 급히 말머리를 돌리니, 온달이 설인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제 네놈 차례니라!”
천둥도 제압할 듯한 온달의 외침에 설인귀가 그만 정신이 아득하여 자신도 모르게 말머리를 돌려 도주하였다.
이에, 명도 듣지 못한 기병 삼만 기도 일제히 말머리를 돌려 도주하니, 온달의 앞은 흙먼지만 자욱할 따름이었다.
홀로, 단숨에 당의 기병 삼만 기를 물러나게 한 온달도 그제야 긴장을 풀며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쳤다.
“누렁이 네가 나보다 더 담대하구나. 나는 이토록 진땀을 흘렸는데도 너는 참으로 태연하구나.”
온달이 누렁이를 칭찬하며 마음을 추스르고는 안시성을 향했다.
온달 자신도 홀로 적의 기병 삼만 기를 막아 낼 줄은 자신하지 못하였는지, 여전히 이마에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만일 설인귀를 비롯한 당의 장수들이 조금만 신중하였거나, 온달이 운철대검을 휘둘러 흙먼지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필경 온달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눈치챘을 것이었다.
온달도 긴장하며 두려워하고 있음을 당 군이 눈치챘다면 한심스럽게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었으니, 실로 전장의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웠다.
온달이 무사히 생환하자, 성문 앞에서 기다리던 강혁수가 한걸음에 내달려오며 물었다.
“장군! 막바우 장군은 어찌 되셨습니까?”
이에, 온달이 한숨을 내쉬며 답하였다.
“시신은 찾지 못하였다. 필경 생포되었을 것이다.”
온달과 함께 단 한 차례의 패배도 겪지 않은 막바우가 생포되었다는 소식은 곧, 안시성 군의 사기를 급격히 저하시켰다.
온달이 홀로 삼만 기의 당 군을 물리쳤다는 무용조차도 막바우가 사로잡혔다는 사실이 덮었으니,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고심이 매우 컸다.
‘사기가 떨어진 군은 결코 수성할 수 없다.’
반드시 반전을 위해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각, 설인귀에게 생포된 막바우는 황제 이세민의 앞에 끌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