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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299화 (299/328)

299화 주필산 전투 (4)

맑았던 하늘에 갑작스럽게 먹구름이 밀려들며 강풍이 일었다.

그리고, 벼락이 떨어지고 천둥이 울리니, 뿔나팔 소리와 북소리를 잠재웠다.

허나 아직 주필산 일대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황제 이세민은 폭우가 쏟아지며 시야가 흐려지니, 조금 전까지 보았던 안시성 방향에서 나타난 고구려 군을 찾고자 애썼다.

그러나, 어느새 한 치 앞도 살필 수 없는 비로 인하여, 안시성 군사들의 행방은커녕 주필산 일대 전투의 승패 여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비는 나의 예측 밖의 일이니, 이제 승패는 하늘에 달렸구나.”

황제 이세민이 이처럼 탄식하였으나, 귓청을 울리는 천둥 소리로 인하여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였다.

* * *

이세적의 수하 장수 우진달은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고구려의 선봉장 고연수와 고해진의 모습에 뛸 듯이 기뻤다.

“항복한 장수에겐 예를 갖추는 법! 내 어찌 두 분을 함부로 대하겠소.”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며 고연수와 고해진을 일으켜 세우고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즉시 계곡을 벗어나기 위해 서둘렀다.

이때 마침 황제 이세민도 폭우를 피해 산에서 내려오니, 고연수와 고해진을 생포한 우진달과 마주할 수 있었다.

“폐하! 고구려의 선봉장 고연수 장군과 고해진 장군이옵니다!”

우진달이 즉시 고구려의 선봉 두 장수가 항복했음을 알리니, 황제 이세민이 뛸 듯이 기뻐 한걸음에 달려왔다.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두 장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며 황제 이세민이 크게 치하하였다.

“어둠을 벗어나 밝음을 찾는 것은 세상 이치니라! 그대들이 이제 내게 투항하였으니, 그 누가 칭송하지 않겠는가!”

사실, 고연수와 고해진은 또다시 패주하여 고정의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 투항한 것으로, 이미 이들의 군사들은 대부분 몰살당한 상태였다.

갈 곳 없는 자신들을 황제가 이처럼 극진히 대하니, 고연수와 고해진은 나름 감동하여 충성을 맹세하였다.

“황제 페하를 거스른 불충한 저희를 부디 용서하소서!”

“폐하의 뜻을 따라 견마지로를 다하겠나이다.”

고구려의 선봉 두 장수가 이처럼 충성을 맹세하니, 황제 이세민은 크게 기뻐하였다.

이때 계곡 안에서 이세적과 장손무기도 군사들을 이끌고 합류하니, 마음이 든든한 황제 이세민이 서둘러 계곡을 벗어나고자 했다.

* * *

주필산 앞 넓은 들판은 쏟아지는 비로 인하여 시야가 무척이나 좁아져 있었다.

곳곳에서 혼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누가 승기를 잡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고, 이는 전장을 지휘하는 이에겐 크나큰 부담이 되었다.

고정의는 선봉 두 장수가 게곡 안으로 유인되어 필패했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들의 주력 개마무사는 건재하여 당의 대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였었다.

하나, 확신은 확신일 뿐.

눈으로 살필 수 없으니, 그 불안감은 너무도 컸다.

“대막리지가 오실 때까지 대군을 보전해야 한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후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개마무사를 보전해야 했으니, 군사들을 물리는 시기를 결정해야 했다.

“좀 더 타격을 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제 물러나야 할까?”

망설이며 전장을 살폈으나, 쏟아지는 비로 인하여 자신의 손바닥도 살피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우리의 개마무사는 강하다. 이번 공격을 위하여 기다리고 기다리며 인내하였다. 좀 더 몰아붙여야 할까?”

시야가 닿는 자신의 주위는 개마무사들이 당 군을 무참히 짓밟고 있어, 필경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곳의 상황은 알 수 없으니 노련한 고정의도 함부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이처럼 고정의가 망설이던 그때, 백색 피풍의를 펄럭이며 당의 장수 한 명이 백마를 타고 나타나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고정의가 깜짝 놀라 피하려다 말에서 떨어지니, 부장 셋이 급히 말을 몰아와 백마를 탄 장수를 대적하였다.

이 틈에 고정의가 땅을 기어 도주하였고, 백마를 탄 장수는 거침없이 방천화극을 휘둘러 자신의 앞을 막은 고구려 장수 셋의 목을 단숨에 베었다.

“설인귀가 여기 있다! 고구려 군의 총관은 거기 멈춰 내 창을 받거라!”

백마탄 장수는 무명소졸 설인귀였다.

설인귀가 거침없이 말을 몰며 기세 좋게 소리치니, 고정의는 등골이 서늘하여 뒤도 돌아보지 못하였다.

“저놈을 막아라!”

고정의의 외침에 개마무사 십여 기가 일제히 삭을 앞세워 설인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설인귀는 조금도 두려운 기색 없이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제 무용을 남김없이 펼쳤다.

등 뒤에서 끊임없이 개마무사들의 비명이 들리니, 고정의는 심장이 요동치고 식은땀이 흘러 정신없이 말을 몰며 도주하였다.

그리고 주위 개마무사들은 그를 구하기 위하여 설인귀의 앞을 계속해 막았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일생일대의 기회를 맞이한 설인귀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방천화극을 휘둘러 앞을 막은 개마무사들을 뚫고 고정의의 뒤를 쫓았다.

“목은 두고 가라! 내게 너무도 필요한 목이다!”

정의의 뒤를 바짝 쫓으며 설인귀가 외치던 그때, 건안성 성주 고돌발이 빗속을 뚫고 나타나 설인귀의 앞을 창으로 막았다.

“더는 갈 수 없느니라!”

이미 구면인 두 사내는 잠시 서로를 노려보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챙!

쇠와 쇠가 맞부딪치고, 두 사내의 머리 위로 번개가 내리쳤다.

번개는 쇠붙이에 이끌려 뒤엉키듯 맞부딪친 두 사내의 병장기로 빨려 들어갔다.

콰과광, 쾅!

그리고 뒤늦은 천둥이 울리니, 번개를 맞은 두 사내의 병장기는 불타오르고, 난데없이 벼락 맞은 설인귀와 고돌발은 그만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폭우와 벼락도 두 사내의 전의를 꺾을 수는 없었다.

호적수를 만난 두 사내는 곧바로 일어나 진흙투성이의 상대를 향해 몸을 날리며 주먹을 휘둘렀다.

“죽어라!”

설인귀의 외침이 빗속을 뚫고 고돌발에게 전해지던 그 순간, 고돌발은 자신의 안면에 날아든 설인귀의 주먹을 고스란히 받으며 더욱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네 놈이 죽거라!”

* * *

혼전이 벌어지는 전장 속으로 안시성에서 출병한 기병들이 진입하고 있었다.

이때, 비호처럼 내달려온 이도종의 육만 기병이 이들의 앞을 막으니, 막바우가 거침없이 내달려 이도종의 목을 노렸다.

“독고창법을 네가 아느냐?”

험상궂은 막바우가 빗속을 뚫고 돌진해오니, 이도종은 마치 악귀를 마주한 듯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말을 돌렸고 이에 뒤따르던 육만 기의 기병이 어수선해졌다.

이틈을 노린 온달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돌격하라! 뿔나팔을 불라!”

온달의 명에 따라 돌격을 알리는 뿔나팔이 울리고 강혁수가 낭아봉을 휘두르며 앞장서니, 고작 일만 기의 고구려 기병이 육만의 기병을 살육하기 시작하였다.

“한 놈도 남김없이 베라!”

온달이 재차 명을 내리며 누렁이를 몰아 당 군 깊숙이 들어가 운천대검을 휘두르니,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그 모습은 당 군의 두 눈에 각인되었다.

“저놈은 내가 잡는다!”

여전히 막바우는 이도종의 뒤를 쫓으며 단신으로 적진을 누볐고, 기가 질린 이도종은 목숨을 구하고자 쉴 새 없이 내달리기 바빴다.

이도종을 구하고자 부장들과 군사들이 막바우에게 달려들었으나, 어느새 온달과 강혁수마저 내달려와 도우니, 널브러지는 것은 온통 당의 장수들과 군사들이었다.

“기세를 올려라! 앞을 막는 놈들은 거침없이 베라!”

온달의 목소리가 천둥을 뚫고 울렸고, 안시성의 군사들은 사기 올라 더욱 거침없이 당 군을 베었다.

이때, 주필산 계곡 입구에서 크게 북이 울리더니, 천지가 떠나갈 듯한 함성과 함께 이세적이 군사들을 이끌고 내달려왔다.

“고구려의 선봉을 사로잡았다!”

“고구려의 명장 고연수와 고해진이 항복하였다!”

황제 이세민의 명을 받은 당 군의 외침이 천둥을 잠재우고 드넓은 주필산 앞 대지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또다시 북이 울리니 사방에서 혼전을 벌이던 당 군이 제각기 육화진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각종 병종이 어울러진 육화진은 방어가 튼실하며 적의 빈틈을 노린 공격이 용이하였기에, 전황을 살피기 어려운 이런 난전에 그 힘을 백분 발휘할 수 있었다.

둥둥둥!

계속해 북이 울리고 사방에서 당 군이 육화진을 펼치며 장기전에 들어가니, 기병 일색의 고구려 군은 공세를 펼치기 난감해졌다.

앞쪽 당의 부대를 공격하면 뒤쪽 당의 부대가 공격해 오고, 물러나면 화살을 날리니, 사방에서 고구려 군의 피해가 속출하였다.

온달도 이도종이 물러나 다른 부대와 함께 육화진을 펼치니, 무척이나 곤혹스러워 군사들을 뒤로 물렸다.

“달려들지 마라! 적이 방어진을 펼쳤다. 함부로 공세를 펼치지 말라!”

온달은 본능적으로 당 군이 펼친 육화진이 혼전 속에서 기병을 상대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느낀 것이다.

* * *

밤이 깊어서야 겨우 비가 멈추었고, 주필산의 드넓은 대지에도 적막이 찾아왔다.

결국, 주필산 앞은 당 군이 차지하였고, 신성과 건안성, 안시성의 군사들은 이미 물러난 뒤였다.

“피해는 컸으나, 이 주필산은 우리가 차지하였다. 우리의 승리이니라! 그대들의 공이 크도다!”

황제 이세민이 기뻐 장수들을 치하하였다.

이 전투로 고구려 군은 선발대 사만과 신성에서 출병한 일만의 개마무사를 잃었다.

건안성과 안시성의 군사들도 피해는 있었으나, 신성에 비하여 미비하였다.

당 군의 피해는 보군, 기군 포함 도합 십오만에 달하였으니, 피해 규모로만 보면 당의 피해가 더 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주필산은 당 군이 차지하였고, 아직도 육십오만의 대군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황제 이세민의 기쁨은 실로 컸다.

“고구려가 준비하고 준비한 반격이었다. 연개소문은 이 한 번의 반격으로 승기를 잡고자 했을 것이다. 허나! 주필산의 승자는 우리 당 군이니라! 연개소문이 아끼고 아껴 마련한 개마무사들은 이제 기가 꺾였으니, 다시 반격을 가할 여력은 없을 것이다!”

이미 고연수와 고해진에게 신성의 전력을 보고 받은 뒤였기에, 황제 이세민이 이처럼 말한 것이다.

“신성은 이 전투로 삼분지 일이나 되는 개마무사를 잃었다. 아직 십만의 개마무사가 남았다고는 하나, 부대를 다시 구성하고 진을 갖추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하하하.”

황제 이세민의 말처럼, 삼분지 일의 군사가 전멸한 경우는 부대 전체의 궤멸과도 같은 부정적 효과가 나타나기에, 반드시 부대 구성과 진을 다시 갖추어야 했다.

만일 이를 간과하고 다시 전투를 벌일 경우에 전쟁사는 반드시 필패로 증명해 오고 있었다.

“우리는 안시성으로 직격할 것이다. 이에, 안시성 놈들이 매복하지 못하도록 수를 내겠노라!”

황제 이세민이 이처럼 말하고는 백색 피풍의를 걸치고 전장을 누빈 설인귀를 불렀다.

“너의 공이 참으로 크다! 고구려의 막리지 고정의의 뒤좇고, 건안성의 성주 고돌발과 겨루며 우리 군의 사기를 드높였다. 내 너를 갸륵하게 여겨 요격대장에 임명하노라!”

일개 군졸에서 요격대장으로 벼락출세를 하니, 설인귀는 기뻐 넙죽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소장 반드시 공으로 은혜를 갚겠나이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좋다! 내 네게 막중한 임무를 내리노니, 반드시 공을 세우거라!”

황제 이세민의 명을 받은 설인귀는 다음 날, 요동성과 백암성, 개모성 등지의 고구려 백성들을 모두 주필산 앞으로 끌고 오기 시작하였다.

또한 아직 피난을 가지 못한 인근 고구려 백성들도 모두 끌고 오니, 그 수가 도합 십오만에 달하였다.

황제 이세민은 설인귀에게 명하여 이들 고구려 백성들을 안시성으로 도주케 하였다.

황제의 명을 받은 설인귀가 고구려 백성들 앞에 서서 외쳤다.

“너희가 살고자 한다면 안시성으로 도주하라! 한식경 뒤, 나는 기병을 이끌고 너희 뒤를 쫓을 것이니, 도주하지 못한 놈들은 말발굽으로 모두 짓밟아 죽이겠노라!”

겁에 질린 고구려 백성들이 비명을 지르며 안시성을 향해 도주하기 시작하였고, 이 광경을 황제 이세민이 껄껄 웃으며 바라보았다.

“저들이 몰려가니, 매복은 없을 것이니라! 하하하. 안시성이 저들을 받아 준다면, 식량이 부족해질 터! 결국 성문을 열고 항복하고 말리라! 하하하.”

황제 이세민의 웃음이 끝나기도 전, 설인귀가 기병 삼만 기를 이끌고 고구려 백성들의 뒤를 쫓기 시작하였다.

“뒤를 쫓아라! 목을 베고 짓밟아라! 저들의 비명 소리에 안시성 놈들이 기겁하게 하라!”

설인귀의 외침에 당의 기병들이 기세 올려 내달리니, 기겁한 고구려 백성들이 비명을 지르며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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