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주필산 전투 (3)
팔십만의 당 군이 주필산 앞 평야에 당도하니, 이와 때를 같이하여 신성에서 출병한 고구려의 개마무사들도 강 건너에 당도하여 진을 펼쳤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산에 올라 고구려 진영을 살폈다.
마침 날이 맑아 시야가 훤하여 강 건너에 펼쳐진 고구려 진영을 살피기 수월하였다.
“사십 리… 족히 사십 리는 넘을 듯합니다.”
장손무기가 고구려 진영을 바라보며 놀라 말하였다.
이에, 황제 이세민도 고구려 진영을 주시하고는 탄식하였다.
“이럴 수가… 많아야 육만 기의 개마무사라 예측하였건만… 신성에 숨겨둔 고구려의 개마무사가 이토록 많을 줄이야…….”
또 한번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하며 고구러 군의 수에 두려움마저 느끼는 황제 이세민이었다.
산에서 내려온 이세민이 굳은 표정으로 지도를 살피고 또 살피니, 모든 장수들이 침묵하며 눈치만 살폈다.
“기병 한 기는 보군 여덟 명을 대적하는데… 저 개마무사들은 창과 화살도 두려워하지 않고 돌격하니… 능히 보군 열 명은 대적할 것이다.”
황제 이세민의 이 중얼거림에 모든 장수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연개소문… 이놈이,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자… 오직 공격 일변도의 병종으로 반격을 꾀하였구나. 우리는 다양한 병종으로 구성되어 변화무쌍한 전장에 대처하기 능하나, 저처럼 돌격 일변도의 개마무사를 대적함에는 취약할 수 있다.”
황제 이세민의 말처럼 궁병과 보군, 창병은 철갑을 두른 개마무사의 돌진을 막기 어려웠다.
또한 대회전에선 경기병과 궁기병이 개마무사를 괴롭힐 수는 있으나, 오직 본진만을 노려 대군을 이룬 개마무사가 돌진해 올 경우, 이 역시도 마땅한 대책이 못 되었다.
“필경 날이 밝으면… 강을 건너 배수진을 친 후… 총공세를 벌일 것인데… 놈들의 돌격을 막으려면…….”
지도를 바라보던 황제 이세민의 눈이 순간 빛났다.
방법을 찾은 듯 이세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장손무기, 개마무사의 수가 십오만 가량이 맞는가?”
수에 능한 장손무기가 즉시 답하였다.
“소신이 살펴본 바로, 사십 리에 펼쳐진 고구려 군의 수는 십오만 가량이옵나이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확신에 찬 황제 이세민의 외침에 모든 장수들이 긴장하여 바라보았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지도를 가리키며 명하였다.
“이세적은 들으라!”
“하명하소서!”
“너는 장손무기와 함께 도하하는 고구려 군의 선봉을 맞아 패하여, 이곳으로 끌고 오라!”
황제 이세민이 가리킨 곳은 주필산 계곡 앞이었다.
이에, 이세적이 망설임 없이 답하였다.
“소장 맡은 바 책무를 다하겠나이다!”
“하면! 나는 고작 사천의 군사로 이 계곡에서 적을 맞이하겠노라!”
이에, 모든 장수가 놀라 소리쳤다.
“아니 되옵나이다.”
“폐하! 어찌 고작 사천의 군사로… 불가하옵나이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껄껄 웃었다.
“나의 금색 찬란한 갑주와 깃발을 본 고구려 군은 머뭇거리지 않고 계곡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때! 너희가 총공세를 가하라!”
스스로 미끼가 되어 개마무사가 기동하기 힘든 계곡 안으로 유인하여 섬멸코자 하니, 모든 장수들은 이 상황이 두려우면서도 황제의 대담함에 탄복하였다.
“개마무사를 평지에서 상대할 수는 없다. 내가 아니면 저들은 결코 계곡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니, 당연히도 내가 미끼가 되어야 한다. 놀라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는 그저 전술의 일환일 뿐이다.”
이처럼 대범하게 황제 이세민이 명하니, 그 누구도 감히 이견을 대지 못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날이 밝으니, 황제 이세민이 예견하였듯 고구려의 개마무사들이 도하를 강행하였다.
이에, 이세적이 장손무기와 함게 군사 일만오천을 이끌고 앞을 막았다.
“감히 대역무도한 연개소문의 잔당들아! 누가 나서 나를 대적하겠는가?”
요동도행군의 수장이자, 원정군 총사령관인 이세적이 직접 나서 소리치니, 고연수가 껄껄 웃었다.
“짖는 개는 겁에 질렸음을 의미한다. 저놈들이 우리의 군세에 기겁하여 발악하는 게로구나.”
앞을 막은 당 군의 수가 적음에 얕잡아 본 것이다.
이에, 고해진도 공을 뺏기지 않기 위해, 군을 몰아 달려들었다.
“적의 수가 적다! 우리가 먼저 섬멸하여 공을 세우자!”
고해진의 개마무사 이만 기가 폭풍처럼 내달리니, 고연수도 공을 뺏기지 않기 위해 명하였다.
“적의 총사령관이다! 돌격하라! 이세적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 금을 내리겠노라!”
이에 고연수의 개마무사 이만 기도 내달리니, 고작 일만오천의 군사로 앞을 막은 이세적과 장손무기는 겁에 질려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퇴각하라! 뒤를 잡혀선 안 된다!”
이세적이 급히 퇴각 명령을 내리며 도주하였으나, 성난 파도처럼 밀려든 개마무사들은 당 군을 짓밟으며 계속 쫓았다.
죽기 살기로 말을 내달린 이세적과 장손무기는 뒤따르는 군사들의 처참한 비명에 등골이 오싹하였으나, 맡은 바 책무를 다하기 위하여 계속 고구려 군을 자극하였다.
말을 달리면서도 이세적은 활을 들어 선두에서 달려드는 고연수에게 배사로 살을 날렸다.
텅!
단단한 철갑이 살을 튕겨내니, 이세적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충분히 고연수를 자극하였다.
“이놈이! 저 이세적을 잡아라! 놈을 놓치지 말라!”
고연수가 계속 선두에 서서 맹렬히 뒤를 쫓으니, 이에 고해진도 개마무사를 독려하며 뒤따랐다.
“공을 빼앗겨선 안 된다! 이세적을 잡아라!”
이미 한차례 패주한 과오를 이번 전투에서 갚기 위해 과욕을 부린 것이다.
이때, 도하를 마친 고정의는 선봉 고연수와 고해진이 앞을 막은 당 군을 물리치고 뒤쫓는다는 보고를 접하고는 크게 탄식하였다.
“너무 깊이 들어가선 안 된다! 즉시 돌아와 합류하라 일러라!”
이에, 전령이 급히 말을 몰아 내달렸다.
그러나 이미 주필산 계곡 앞까지 당도한 고연수와 고해진은 금빛 찬란한 황제의 깃발에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황제가 우리를 피해 이 계곡 안에 숨어 있었구나.”
고연수는 황제가 대회전이 벌어지는 평야를 피해 계곡 안에 숨어서 지휘한다고 여긴 것이다.
“황제의 깃발이다! 황제를 찾아라! 황제를 사로잡아라!”
이에, 고해진도 소리쳐 명하였다.
“전쟁을 끝낼 수 있다! 황제를 잡아라!”
사만 기의 개마무사들이 일제히 주필산 계곡으로 밀려들어 갔고, 고작 사천의 군사로 대군을 맞은 황제 이세민은 더욱 깊숙이 계곡 안으로 도주하기 바빴다.
“쫓아라! 더 들어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
고연수가 목이 터져라 외치니, 잔뜩 기세 오른 개마무사들이 험한 계곡 안으로 계속해 진입하였다.
그리고 이때,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나팔이 울리고 주필산 계곡 입구로 당 군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하였다.
“아뿔싸!”
배후에서 들이닥치는 당 군과 화살 비에 그제야 고연수는 자신이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험한 계곡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뒤였기에, 급히 말을 돌려 돌격하기도 어려웠다.
계곡은 사만에 달하는 개마무사들에게 너무도 비좁았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살 비와 배후의 당 군은 개마무사들의 치명적 약점을 노리고 있었다.
“정면은 무한히 강하나, 측면과 배후는 약하다. 개마무사들이 배수진을 치고 돌격해온다면 약점이 없으나, 이렇듯 계곡 안으로 들어온다면 능히 배후를 칠 수 있으니, 이제부터는 우리의 살육전이니라. 하하하.”
이미 산 중턱까지 오른 황제 이세민이 계곡을 내려다보며 껄껄 웃었다.
그의 말처럼 배수진을 펼쳐 돌진하는 개마무사는 배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약점 또한 없었다.
그러나, 이처럼 말도 돌리기 어려운 계곡 안으로 들어온 개마무사의 배후를 공략하기란 무척이나 수월하였다.
계곡 안은 개마무사들의 비명과 말 울음으로 가득하였고, 끝없는 화살 비와 창병을 앞세운 당 군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이때, 전령으로부터 고연수와 고해진이 계곡 깊이 들어갔음을 전해 들은 고정의는 또다시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과오를 씻게 해주기 위하여 선봉에 세운 나의 잘못이다.”
이에, 소식을 접해 달려온 고돌발이 급히 물었다.
“막리지! 저들을 구원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까지 계곡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소이다. 우리는 우리의 공격을 할 따름이오.”
이에, 고돌발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뿔나팔이 울리니, 신성과 건안성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비록 선발대 사만이 계곡 안에서 처참히 학살되고 있었으나, 건안성과 신성의 군사는 도합 십이만에 달해 있었다.
“공격하라! 적을 짓밟아라!”
고정의의 명에 돌격을 알리는 뿔나팔이 계속해 울렸다.
뿌우우!
이와 동시에, 신성의 개마무사 십일만 기가 일제히 당의 본진을 노려 돌격하였다.
건안성의 성주 고돌발도 일만 기의 기병을 이끌고 북서 방면에서 돌진을 강행하였다.
넓게 진형을 갖춘 개마무사들이 평야를 가득 메우며 돌격해오니, 부상당한 게필하력을 대신하여 좌위대장군 아사나두이가 돌궐 기병 일만 기를 이끌고 개마무사 진형 좌측을 공격하였다.
경기병 위주의 돌궐 기병이 기동력을 앞세워 기사로 공격하니, 당 군의 분진을 노리고 돌격하던 개마무사들이 주춤하였다.
이에, 고정의가 부장에게 명하여 좌익 개마무사들을 이끌고 아사나두이를 대적하게 했다.
“쉽게 약점을 내주어선 안 된다! 당장 아사나두이를 막아라!”
이에 부장이 일만 기의 개마무사를 이끌고 아사나두이를 쫓았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도종이 일만 기의 궁기병을 이끌고 개마무사의 진형 우측을 공격하니, 고정의가 즉시 명하였다.
“당장 요격하라!”
이에 명을 받은 부장이 일만 기의 개마무사를 이끌고 이도종의 궁기병 뒤를 쫓았다.
그리고 마침내 당의 본진을 고정의가 구만의 개마무사로 들이치니, 목책이 부서지고, 극으로 앞을 막던 창병들이 기겁해 도주하였다.
정면으로 날아드는 화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마무사들이 본진을 휩쓸자, 당 군은 제각각 부대를 꾸려 도주하기 바빴다.
그리고 고돌발도 기병을 이끌고 분리된 당 군을 공격하니, 주필산 아래 평야는 그야말로 혼전이었다.
일방적인 살육이 벌어지는 계곡 안과 달리, 그 누가 이기고 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상황 속에서 고구려 군을 독려하는 뿔나팔이 연신 울렸고, 당 군의 독전을 알리는 북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어느덧 주필산 정상에 올라 전장을 살피던 황제 이세민조차도 과연 누가 이기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 안시성 방향에서 한무리의 군사가 몰려오는 것이 황제 이세민의 시야를 자극하였다.
“삼족오기? 안시성에서 고구려 군을 돕고자 출병하였구나!”
황제 이세민이 급히 명하였다.
“깃발로 신호를 보내라! 안시성의 군사들을 요격해야 한다!”
이에, 깃발로 남서 방향의 적을 공격하라 알리니, 장검이 기병 육만 기를 이끌고 내달렸다.
그리고 이때, 주필산 앞 평야에서 유독 눈에 띄는 장수가 있었으니, 황제 이세민이 의아해 물었다.
“저 백색 피풍의를 걸치고 백마를 탄 장수가 누구냐?”
이에, 장손무기가 바라보니, 홀로 개마무사 속을 내달리며 무용을 펼치는 장수가 보였다.
“누군지 알 수는 없으나, 매우 비범하여 중히 사용하심이 옳을 듯하옵나이다.”
이때, 두려움 없이 개마무사 속을 누비던 백마 탄 장수가 고구려 군의 수장 고정의를 발견하고 방향을 틀었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바로 명하였다.
“저 장수를 지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