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97화 (297/328)

297화 주필산 전투 (2)

건안성과 신성의 강한 저항과 신라의 최정예 상주 군의 패전, 그리고 당항성 수군의 기동을 기대할 수 없게 된 황제 이세민은 더 이상 자신의 예측이 틀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요동 일대의 당 군을 모두 요동성 앞에 집결한 황제 이세민은 팔십만 대군을 이끌고 친히 안시성을 공략하고자 말하였다.

“고구려가 우리를 대적함에 있어, 세 가지 방안이 있을 것이다.”

황제 이세민이 몸을 돌려 넓게 펼쳐 세워진 지도를 응시하였다.

“상책은! 우리가 직격하는 이 안시성과 연계하여 우리 군 주위로 보루와 목책을 세우고 버티는 한편, 기동력이 좋은 말갈 기병을 동원하여 우리의 배후를 급습하며 말과 소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황제 이세민도 자신의 대군이 안시성으로 향하게 될 경우, 북동 방면은 신성의 고구려 군이 막고, 북서 방면은 건안성이 막아 육상 보급로가 끊길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남에서 올라오며 장량이 점령한 비사성을 공략한다면 우리 대군의 보급이 끊겨 싸우고자 해도 싸울 수 없고, 물러나고자 해도 길이 막혀 다시 늪지대와도 같은 요택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어느덧 여름으로 접어들며 잦은 비로 요하 너머에 요택이 또다시 늪지대로 변해 있었으니, 황제 이세민의 판단은 매우 정확하였다.

이에, 장손무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구려가 상책을 택한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북쪽은 동과 서가 막혔으니, 애써 뚫을 필요 없이 병력이 적은 안시성을 공략한 후 비사성을 안정화시키고 남으로 직격하여 평양성을 함락시키면 된다.”

비사성이 안정화되면 보급은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장손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오면 폐하, 고구려가 택할 수 있는 중책은 무엇이옵나이까?”

장손무기가 다시 물으니, 황제 이세민이 빙그레 웃었다.

“안시성의 곡식을 태우고, 모든 집의 벽과 지붕을 허문 채 도주하는 것이다. 허면 우리는 성을 뺏고도 얻은 것이 없게 된다. 이후는 우리와 고구려 모두가 평양성에 힘을 집중해야겠지.”

이에, 장손무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하오면 우리가 이대로 직격하여 안시성에 당도하였을 때, 양만춘과 온달이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겠지. 이 경우 비사성의 전력이 온전하였다면 타격을 줄 수 있었겠으나, 지금은 비사성을 지키기도 버거운 상황이니, 패주한 안시성 군은 두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오면 폐하, 고구려가 택할 수 있는 하책은 무엇이옵나이까?”

장손무기가 다시 물으니, 황제 이세민이 껄껄 웃으며 안시성 인근 주필산을 가리켰다.

지도에서 보이는 주필산 앞은 드넓은 대지가 펼쳐져 있고 작은 강이 흘렀다.

“고구려가 택할 수 있는 전략 중 하책은 모든 전력을 끌어모아 바로 이 주필산 앞에서 대회전을 벌이는 것이다.”

“대회전 말씀이옵니까?”

“그렇다! 대회전이다.”

황제 이세민이 대회전을 단언하니,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몇 차례 피해를 입었다고는 하나, 당의 대군은 아직 건재하여 팔십만에 육박하였다.

그렇기에, 이 대군을 상대로 고구려가 대회전을 벌일 여력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세적이 지도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신성과 건안성이 우리 대군의 배후에 건재하오나, 과연 고구려가 우리 대군을 상대로 대회전을 벌일 수 있겠나이까?”

이에, 황제 이세민이 단호히 답하였다.

“여력이 있느니라.”

모두가 또 한 번 다시 놀라니, 황제 이세민이 지도에 표시된 주필산 앞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산을 등지고 강이 펼쳐진 들판이다. 우리가 안시성을 공략하기 위해 직격한다면 필히 이 주필산 앞을 지나야 한다. 이때 고구려가 신성과 건안성의 군을 모아 반격해 온다면 바로 이 강을 건너 주필산 앞으로 오게 될 것이다.”

이에, 이세적이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물었다.

“하오나, 신성과 건안성의 군사들만으로 고구려가 우리 대군과 대회전을 벌일 수 있겠나이까?”

“필경, 연개소문은 이 한 번의 반격을 위하여 신성에 개마무사를 숨겨 두었을 것이다.”

“개마무사 말씀이옵니까?”

“그렇다. 반격을 가하기엔 개마무사만 한 병종도 없을 것이다. 고구려는 필경 평야에서 기병 일색으로 반격을 꾀할 것이니라.”

“하오면, 고구려가 하책을 택할 것이란 말씀이시옵나이까?”

이세적이 다시 물으니, 황제 이세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필산 앞을 손으로 짚었다.

“보아라! 바로 이곳이다. 연개소문은 이 한 번의 기회를 갖기 위하여 신성에 개마무사를 숨겨 두었고, 몇 차례 공방전으로 우린 그 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최소 육만 기 이상의 개마무사가 신성 안에 있을 것이다.”

기병 한 기는 보군 여덟 명을 능히 격파하였으니, 고구려의 정예 개마무사의 위용을 익히 잘 아는 장수들은 황제 이세민의 말에 주필산 앞을 다시 보게 되었다.

“고구려의 개마무사는 정면 돌파에 능하고, 말까지 철갑을 둘러 방어가 대단하기에, 활과 창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단 한 번의 돌격으로 우리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하려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그토록 기다려온 반격 작전이니라.”

황제 이세민이 이처럼 단언하며 장수들을 둘러 보았다.

육만 기 이상의 개마무사가 신성에서 나온다고 할지라도 두려울 것 없다는 자신감이 장수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만족하여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하였다.

“피할 수 없는 일전이다. 그리고 이 대회전 이후, 고구려는 감히 우리 앞을 막을 여력이 남지 않을 것이다.”

* * *

황제 이세민이 원정군 팔십만을 이끌고 안시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건안성과 신성에 전해졌다.

소식을 접한 건안성 성주 고돌발은 급히 장수들을 불러 논하였다.

“팔십만의 대군이오. 안시성이 감당할 수 있겠소?”

이에, 책사 예곤도 난처한 듯 지도만 바라보며 답하지 못하였다.

아마도 황제 이세민이 이처럼 급작스럽게 대군을 총동원하여 안시성을 공략할 줄은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혹여, 예상한들 팔십만의 대군을 대적할 방안은 건안성에 없었다.

이때, 신성에서 보낸 전령이 급히 안으로 들어와 예를 올리고는 품에서 서신을 꺼내 고돌발에게 건네었다.

“막리지께서 보내셨나이다.”

고돌발이 급히 서신을 펼쳐 읽고는 전령에게 물었다.

“대막리지도 이 계획을 아시느냐?”

이에, 전령이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답하였다.

“막리지께서 말씀하시길, 이 모든 계획은 당이 요하를 건너기 전부터 대막리지와 함께 논의하여 마련된 것으로, 대막리지께서도 신라 군을 물리치고 올라오시는 중이라 하셨습니다.”

“당이 요하를 건너기 전부터? 음… 알겠느니라. 너는 즉시 돌아가 막리지께 이 고돌발도 제 몫을 다 하겠다고 아뢰거라.”

전령이 예를 올리고 물러나자, 예곤이 바로 물었다.

“어떤 내용이옵니까?”

이에, 고돌발이 지도의 주필산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대회전이오.”

“당의 대군을 상대로 대회전을 벌인단 말씀이옵니까? 우리 고구려에 그런 여력이 있습니까?”

“막리지께서 서신으로 말씀하시길, 대막리지가 미리 준비한 개마무사 십오만 기가 신성에 건재하다 하였소.”

“십… 오만 기 말씀이옵니까?”

예곤이 놀라 물었고, 모든 장수들도 고돌발의 입만 바라보았다.

“그렇소. 십오만이오. 개마무사가 십오만 기나 있단 말이오!”

답하는 고돌발의 두 눈에 희망의 빛이 어려 있었다.

이는 모든 장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개마무사 십오만 기는 우리 고구려 역사상 단 한 차례도 지녀 본 적 없는 대군입니다. 과연 이 십오만의 개마무사가 일으키는 쇳소리를 당 군은 감당치 못할 것입니다.”

예곤도 기뻐 말하니, 고돌발이 고개를 끄덕이며 승리를 자신하였다.

“당 군은 우리 고구려가 십오만의 개마무사를 마련하였음을 모르고 있을 터이니,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마무리될 것이오. 우리도 제 몫을 다 하기 위하여 출병 준비를 서두릅시다.”

고돌발의 생각과 달리 당 황제 이세민은 신성에 개마무사가 숨어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그 수를 육만 기 남짓으로 산정하고 있었다.

이처럼, 황제 이세민의 예측보다 세 배나 많은 개마무사가 신성에 있었으니, 고돌발과 예곤이 기뻐하듯이, 고구려의 승리로 전쟁이 마무리될 듯도 하였다.

* * *

신성 성주이자, 막리지 고정의는 십오만의 개마무사를 총동원하여 주필산에서 당 군을 요격하고자 출병을 서둘렀다.

이에, 고연수와 고해진을 선봉으로 삼아 각기 이만의 개마무사를 이끌게 하였다.

“너희는 듣거라! 우리 고구려의 존망을 결정할 일전이니, 죽기를 각오하고 물러섬이 없도록 하라. 너희가 만일 이전처럼 또다시 싸우지도 않고 패주한다면, 내 친히 너희의 목을 벨 것이니라.”

서릿발 내린 고정의의 눈빛에 고연수와 고해진이 몸서리를 치며 답하였다.

“선봉의 책무를 다하겠나이다.”

“반드시 공을 세워 과오를 씻겠나이다.”

이에, 고정의도 만족하여 십오만의 개마무사를 이끌고 주필산으로 출병하였다.

* * *

딩 황제가 친히 팔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안시성으로 직격해 온다는 소식은 안시성에도 전해졌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신중한 기악이 조심스럽게 물으니, 막바우가 핀잔을 주었다.

“팔십만! 웃기지 말라고 해! 우리도 팔만은 된단 말이야! 오는 족족 모조리 대가리를 박살 내주겠어!”

막바우의 말처럼 당 군을 피해 요동 각지의 백성들이 안시성으로 피난을 왔고, 개소문을 피해 오부 귀족들이 사병들을 이끌고 왔기에, 안시성의 내성은 비좁을 정도로 북적이고 있었다.

산등성이를 빙 둘러 쌓은 외성과 달리, 영성자산 계곡에 세워진 내성은 물이 풍부하고, 비축된 곡식도 충분하였으나 갑작스럽게 늘어난 군사들과 백성들로 무척이나 비좁은 상황이었다.

이에, 양만춘은 평강과 상의하여 군사들의 군막을 외성으로 옮겨 세우고, 내성 내의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일부 백성들도 외성에 머물게 하였다.

본래 작지 않은 산성이었으나, 급격히 늘어난 군세와 백성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군세가 늘고, 백성이 더해진 것은 좋은 일이나,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성문을 굳게 닫고 더는 피난민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경우가 냉정히 말하니, 양만춘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받지 않으면, 누가 저들을 받아준단 말인가? 백성들에겐 항시 성문을 열어줘야 한다네.”

“허나!”

경우가 이견을 내려 하니, 양만춘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나의 벗 경우! 그만하게. 백성을 받지 말라는 말은 그 어떤 경우라도 듣지 않을 것이네.”

이에, 경우가 한숨을 내쉬니 막바우가 눈치를 살피며 좋게 말하였다.

“성주님 말씀이 옳아. 우리만 살자고 성문을 닫아걸 수는 없잖아. 누구를 지키기 위한 전쟁인가?”

경우가 즉시 답하지 못하니, 막바우가 미소 지으며 말하였다.

“땅도 태왕도 평양성도 아니네. 이 전쟁은 우리 고구려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전쟁일세. 백성이었던 나와 자네가 장수가 되어 백성들을 지키는 전쟁일세. 언젠가 또 다른 백성들이 나와 자네가 되어 또 다른 백성들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가 싸우는 것일세.”

“막바우 자네… 언제 그리 똑똑해진 겐가?”

경우가 감탄해 말하니, 막바우가 히죽 웃었다.

“응… 이 말… 실은, 성주님과 온달님이 나누던 대화를 어젯밤에 엿듣고 외운 게야.”

이에, 온달과 양만춘이 허허 웃었다.

“어젯밤 누가 밖에서 엿듣고 있더니, 그게 자네였구먼.”

온달의 말에 막바우가 히죽 웃으며 답하였다.

“뭔 작전 회의를 두 분이서만 논의하나 해서 엿들었지요. 두 분이서 머리 맞대 봐야 별거 없더만.”

이에, 평강이 빙그레 미소지으며 지도를 가리켰다.

“안시성 주변 마을은 모두 비웠으며, 들과 밭은 불태우고 모든 우물엔 독을 풀었습니다. 우리가 백성을 받지 않으면 피난민들은 물조차 마시지 못한 채 굶주리게 될 것입니다. 막바우 장군님의 말씀처럼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니, 계속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때 기훈이 수긍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이견을 내었다.

“우리 안시성이 패한다면, 성안의 백성들 모두가 위험합니다. 더는 받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야! 우린 패하지 않아! 패한 적이 없는 내가 있는데, 뭔 걱정인가?”

막바우가 가슴을 탕탕 치며 이처럼 자신하니, 온달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막바우의 말처럼 패하지 않으면 되오. 적은 우리 안시성의 군세가 이처럼 크고 강하리라 예상치 못하였을 터이니, 능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오!”

온달마저 자신하니, 기훈도 더는 이견을 내지 못하였다.

이처럼 고구려 군과 당 군 모두가 각기 승리를 자신하였고, 마침내 당 황제 이세민의 대군이 주필산 앞에 당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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