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96화 (296/328)

296화 주필산 전투 (1)

성충의 도움으로 신라 군을 일격에 패주시킨 개소문은 급히 요동으로 향하였다.

한편 성충은 한수 이남에 진을 펼쳐 대군이 지키는 듯 보이게 하였다.

그리고 즉시 당항성으로 군을 몰아가 다시 진을 세우니, 당항성은 수륙 양면으로 적을 맞이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에 당항성의 성주 석진이 놀라 책사 장솔에게 물었다.

“우린 어찌해야 하오?”

장솔이 한숨을 내쉬며 답하였다.

“성충을 너무 쉽게 여겼나이다. 저자가 당 황제는 물론, 우리와 고구려마저 속였으니, 당장 수를 내기 어렵사옵니다.”

“허면 이대로 있어야 한단 말이오?”

“다행스럽게도 포구로 들어오는 입구가 좁아 고구려 군선을 막아낼 수 있고, 절벽에 자리한 덕에 백제 군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으니, 우리 당항성은 이대로 버티며 당 황제가 평양성을 함락하길 바라는 것이 상책이옵니다.”

“허허, 이런… 기세 좋게 평양성을 점령하겠다 공언하였건만… 허허.”

고작 버티는 것이 상책이란 장솔의 말에 석진은 그저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 * *

전장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꿰고 있다 여기던 황제 이세민에게 예상치 못한 비보가 계속해 날아들었다.

“뭐라? 신라의 정예 상주군이 패했다고?”

격노한 황제에게 또다시 비보가 날아드니, 모든 장수들이 그저 머리를 조아릴 따름이었다.

“무엇이라? 당항성이 수륙 양면으로 포위되었다고?”

그저 전령은 머리를 조아리며 답도 못하였고, 분노한 황제가 지도를 내려다 보았다.

신라의 상주군과 당항성의 수군이 평양성을 공략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친히 군을 움직여 평양성을 함락시켜야 했다.

그러나 황제 이세민의 시선은 비사성 위 안시성을 떠나지 못하였다.

“온달… 이놈을 두고 평양성으로 갈 수는 없다.”

안시성을 시작으로, 실수가 없던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린 셈이었다.

이에 자존심 강한 황제 이세민으로선 이대로 안시성을 두고 평양성으로 향할 수는 없었다.

“안시성의 성주는 온달인가?”

황제 이세민의 물음에 이세적이 답하였다.

“아니옵니다. 안시성의 성주는 양만춘이라 하오며,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옵니다.”

“양만춘? 그럼 온달은 양만춘의 장수란 말인가?”

이에, 이세적도 정확한 답을 못내니, 장손무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폐하, 고구려 왕을 연개소문이 시해한 후, 갈 곳 없는 온달을 양만춘이 받아들인 듯하오니, 아마도 양만춘이 성주로서 온달을 휘하에 두고 부리는 듯하옵니다.”

“검신 온달을 휘하에 두었다라… 양만춘이 제법 기가 살았겠구나. 과연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내게 저항할 만하도다. 허나, 하늘이 얼마나 높고도 넓은지 논두렁 위 두꺼비는 알 수 없는 법! 내 친히 양만춘에게 가르침을 내리겠노라!”

기실, 신성과 건안성의 강력한 저항과 비사성에서의 군량미 수송이 끊겼으니, 안시성을 점령하지 않고서는 원정군의 보급 수급이 어려워질 상황이었다.

황제 이세민은 이런 상황을 애써 숨기고, 오직 안시성을 벌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그러나 원정군의 모든 장수들은 건안성이나 안시성을 점령하지 못한다면 대군이 굶주려 패퇴하리라 이미 알고 있었다.

* * *

요동에서 군을 재정비한 황제 이세민이 마침내 안시성 점령전을 명하였다.

이에 요동도행군의 제일군을 장사귀가 이끌고 선발대가 되어 먼저 출병하였다.

삼만에 달하는 당의 선발대가 안시성 인근에 당도하였다는 소식을 접한 양만춘이 곧 회의를 열었다.

“이곳으로 당 황제가 대군을 이끌고 옵니다. 그리고 선발대는 이미 출병하여 벌써 인근에 당도하였는데, 그 수가 삼만에 달한다 합니다.”

안시성은 준비가 나름 잘 되었고, 인근 백성들이 속속들이 성안으로 피난을 왔기에, 어느새 백성들의 수가 십오만에 달해 있었다.

이에, 군사들의 수도 늘어 개마무사 일만오천에 경기명 이만, 보군 오만에 달하였다.

이는 개소문에게 저항하기 위해 평양성을 도망쳐온 오부 귀족들과 무신들의 사병이 더해진 덕분도 있었으니, 안시성은 개소문 덕에 군세가 확충된 셈이었다.

“우리 안시성은 팔만 오천의 대군과 십오만의 백성이 있습니다. 결코, 당에 맞서 패하지 않을 것이라 자신합니다.”

성주 양만춘이 이처럼 자신하니, 온달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였다.

“성주의 말이 옳소. 당의 대군이 그 수가 많다 하나, 우리가 일치단결한다면 능히 맞서 막아낼 수 있을 것이오.”

이에, 막바우가 답답하다는 듯 지도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건 알았고! 여기 이놈이나 처리할 방안을 마련하자고요! 당장 눈앞에 적군 삼만이 당도했는데, 뭘 자꾸 막는다고 하냐고. 나가서 공격해야지.”

양만춘과 온달이 무안해 입을 다무니, 온동이 지도를 머릿속에 넣어둔 것처럼 술술 말하였다.

“삼만의 대군이 진을 칠 수 있는 곳은 주필산 앞과 우리 안시성 앞이온데, 안시성의 삼면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오직 서문만이 들과 맞닿아 있으니, 필경 적은 서문 방향으로 빙 돌아올 것입니다.”

막바우가 신기한 듯 온동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으나, 온동은 개의치 않고 계속 말하였다.

“그리고 서문은 해안과 인접해 있고 비서성에서 보급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니, 향후 당의 황제 이세민도 이 방향으로 직격해 올 것입니다.”

온동의 말이 끝나니, 막바우가 바로 물었다.

“너 혹시… 눈 보이냐?”

이에 온동은 그저 미소 지어 대답을 대신할 따름이었고 독고영과 팽운이 막바우를 노려보았다.

보다 못한 경우가 막바우의 옆구리를 찌르며 핀잔을 주었다.

“아 쫌!”

“알았어. 난 그저 온동이 기특해서 농을 한 거라고. 눈도 보이지 않는 놈이 어찌 저리 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역시 온동이야.”

막바우가 연신 구시렁거리며 온동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에, 온동이 마치 앞이 보이는 듯 고개 숙여 답례를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여, 이 당의 선발대를 요격해야 하온데, 온달 장군님과 막바우 장군님, 강혁수가 나서 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듣고 있던 경우가 한마디 하였다.

“다 좋은데, 저렇게 부대를 편성하면… 부대 지능이 떨어지지 않나?”

이에, 온달은 그저 허허 웃고, 막바우와 강혁수가 무안해 얼굴이 붉어졌다.

“듣고 보니 일리는 있으나, 괜히 분하다.”

막바우의 구시렁에 경우가 피식 웃고는 말하였다.

“내가 막바우 대신 들어가는 게 옳지 않나?”

이에 온동이 미소를 담아 답하였다.

“단숨에 돌격하여 일거에 섬멸하는 돌격전을 생각하고 있기에, 저 세 분이 한 부대가 됨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 일거에 섬멸하는 돌격전? 그렇다면… 이런 구성이 옳긴 하네.”

경우가 동의하니, 평강이 한마디 더하였다.

“당 황제가 보낸 선발대이기에, 기선 제압이 필요합니다. 단숨에 승부를 가르소서.”

이에, 온달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바우와 강혁수도 각기 병장기를 들고 뒤따르니, 비로소 당 황제의 대군과 안시성의 전투가 시작된 셈이었다.

* * *

신속히 영성자산을 돌아 안시성의 서문으로 진격한 장사귀는 진을 펼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과 들이 맞닿고 있으며 비사성의 보급을 받기 용이해 진을 펼치기 최적의 지세였다.

“이곳에 진을 펼치고, 황제께서 오실 때까지 지킨다!”

이에 군사들이 바삐 군막을 세우고 목책을 나르기 시작하였다.

이때, 안시성에서 크게 북이 울리고 성문이 열리더니, 말까지 철갑을 두른 중장갑 기병들이 몰려나왔다.

갑주가 요란한 쇳소리를 일으키니, 진을 세우던 당 군이 모두 놀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삼족오기가 펄럭이고, 온달이 개마무사 선두에 섰으며 그 양옆으로 막바우와 강혁수가 늠름히 말에 올라 있으니, 당 군은 마치 거대한 바위를 보는 듯 위압감을 느꼈다.

온달이 아직 진영도 구축하지 못한 당 군을 바라보며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명령도 내리지 않고 누렁이를 몰아 질주하였다.

이에, 막바우가 온달을 대신해 급히 명을 내렸다.

“돌격하라!”

일만의 개마무사가 질주하였고, 막바우와 강혁수가 온달의 뒤를 따라 내달리니, 이를 지켜보던 장사귀가 기겁하여 명하였다.

“이놈들이 진도 펼치지 않았거늘… 살을 날려라! 접근을 막아라!”

당 군이 급히 화살을 퍼부었으나, 정면에서 날아드는 화살 따위를 두려워할 개마무사들이 아니었다.

철갑이 화살을 튕겨내는 소리마저 더해지니, 이를 바라보는 당 군은 등골이 서늘하여 전의를 상실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어느새 내달려온 온달이 거대한 운철대검을 휘두르며 파산귀검을 펼치니, 검기로 인하여 땅이 파이며 흙이 날렸다.

“저놈이 사술을 쓰는구나! 저놈을 막아라!”

장사귀가 급히 말에 오르며 소리치니, 유군앙이 말을 몰아나가며 소리쳤다.

“소장이 온달의 목을 베어오겠나이다!”

기세 좋게 내달리는 유군앙의 모습에 장사귀가 안심하던 그 순간, 질풍처럼 내달려온 온달의 운철대검이 바람을 갈랐다.

운철대검은 유군앙의 말을 베어 쓰러뜨렸고, 말에 깔린 유군앙은 그저 허망하게 목을 내어놓아야 할 형편이었다.

이때, 당의 진영에서 백색 피풍의를 걸친 장수가 백마를 몰아 바람처럼 내달리더니,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온달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매우 화려하여 전장의 모든 이가 바라보았다.

“저 장수가 누구인가?”

장사귀가 백색 피풍의를 걸친 장수를 가리키며 물었으나, 아무도 이름을 아는 이가 없었다.

깡!

이때, 방천화극과 운철대검이 서로 맞닿아 파열음을 일으켰다.

“너는 누구냐?”

온달이 자신과 맞선 장수를 유심히 바라보며 물으니, 백색 피풍의를 걸친 장수가 방천화극을 다시 고쳐 쥐며 답하였다.

“나는 설인귀라 한다!”

이에, 온달이 강혁수에게 명하였다.

“강혁수! 당의 맹장이다! 이자를 물리치고 명성을 더하라!”

“감읍하나이다, 장군!”

온달이 공을 양보하니, 강혁수가 신바람을 내며 설인귀에게 달려들었고, 온달은 설인귀를 무시한 채 당 군을 향해 누렁이를 몰았다.

그리고, 그 틈에 말에 깔렸던 유군앙은 간신히 바닥을 기어 도망칠 수 있었다.

“감히 나를 두고 어디를 가느냐?”

무시당한 설인귀가 크게 노해 소리쳤으나, 어느새 달려든 강혁수의 낭아봉에 막혀 온달의 뒤를 쫓을 수 없었다.

설인귀를 강혁수에게 맡긴 온달이 개마무사들을 이끌고 질주하니, 당 군은 싸우기도 전에 도주하기 바빴고, 그 선두엔 장사귀가 있었다.

막바우는 창을 휘둘러 연신 당 군을 쓰러뜨리며 장사귀의 뒤를 쫓았고, 온달은 종횡무진 당 군 속을 누비며 운철대검을 휘둘렀다.

강혁수와 접전을 벌이던 설인귀도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깨닫고 허수를 날려 기회를 마련하고는 급히 도주하였다.

이에 결국, 제대로 저항조차 못 한 선발대 삼만이 안시성 앞에 시신이 되어 널브러졌다.

장사귀와 유군앙은 겨우 일천여 군사만 이끌고 패주하여 황제 앞에 무릎 꿇었다.

“진을 치고 나를 기다리라 했거늘, 너희는 어찌 이 모양인 것이냐?”

황제 이세민이 허망하여 이처럼 물으니, 장사귀는 그저 변변히 답도 못 하고 머리만 조아릴 따름이었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과연 온달이로다. 작은 수로는 안시성 앞에 변변히 진도 칠 수 없으니, 대군이 일시에 몰려가 진을 펼치도록 한다. 너는 이 수모를 반드시 온달에게 되갚아 주도록 하라.”

겨우 황제의 진노를 면한 장사귀가 감읍하며 밖으로 나와 설인귀를 불렀다.

“일개 군졸인 네가 큰 공을 세웠구나. 이후에도 네가 공을 세운다면, 내 반드시 황제께 네 공을 알리도록 하겠노라.”

이 말은 즉, 설인귀의 공을 알리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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