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92화 (292/328)

292화 천하무적 (天下無敵) 연개소문 (1)

비사성의 장량은 연이은 승전보를 접하며 매우 기뻐하였다.

“백암성마저 함락되었구나! 하하하. 싸우지 않고 성을 바쳤다니, 이 얼마나 기특한고. 하하하.”

비사성에서 출병한 고구려 수군 함대를 찾지 못하여, 해상으로 보급 물자를 나르기 껄끄러웠기에, 육상 보급로가 마련됨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침 잘 되었다. 고구려 군선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편히 수송할 수 있겠구나.”

장량은 이내 곧 명을 내렸다.

“일진은 정명진이 지휘하여 건안성 앞에 진을 친 장검의 부대로 군량미를 나르고. 이진은 왕대도가 지휘하여 백암성으로 군량미를 나른다. 즉시 준비하라!”

이에 부총관 왕대도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총관, 하오나… 안시성이 걸리옵니다.”

“안시성?”

“그렇습니다. 안시성은 아직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상태로 그 성에는 검신 온달이 있습니다. 그가 만일 급습이라도 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장량이 왕대도의 말을 크게 소리쳐 끊었다.

“초, 총관…….”

험악한 표정의 장량을 왕대도가 조심스럽게 살폈고, 장량은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황제 폐하께서 하교하시길, 안시성은 고립무의 상태라 하였소. 폐하께옵선 단 한 번도 틀림이 없으신데, 그대가 감히 폐하를 능멸하는 것이오?”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목을 칠 듯 서슬이 퍼런 장량의 모습에 왕대도는 그만 기가 질려 무릎 꿇고 사정하였다.

“소장이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소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왕대도를 내려다보며 장량이 크게 인심을 쓰듯 명하였다.

“좋소! 내 그대의 명을 좀 더 늘려 주리다. 그대는 이제 두려워 말고, 군사들을 이끌고 군량미를 나르도록 하시오.”

“즉시 준비하여 떠나도록 하겠나이다.”

이런 절차로, 장량의 명에 따라 정명진과 왕대도는 각기 군사 오천을 이끌고 군량미 수송을 호위하였다.

* * *

외부와 교류를 단절하였으나, 안시성은 사방으로 군사를 보내어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들려오는 소식은 모두 고구려 군의 패전 소식뿐이었으나,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건안성과 신성이 건재하여 안시성 내의 모두를 기쁘게 하였다.

“당의 대군을 맞아 건안성과 신성이 건재함은 실로 대단하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경우가 눈을 빛내며 이렇듯 말하니, 막바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바로 말하였다.

“이보게 경우.”

“뭐? 왜?”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거야? 대단하지 않다는 거야?”

“뭐?”

“아니, 자네가 대단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해서 말일세. 그러니까 자네 말은 건안성과 신성이… 대단하다는 거야? 대단하지 않다는 거야?”

“뭐? 이 멍청이가!”

경우가 버럭 소리 지르며 냅다 막바우의 이마를 쥐어박으니, 막바우도 주먹을 쥐고 벌떡 일어났다.

“이 젓가락 같이 생겨 처먹은 놈을 그냥!”

당장이라도 주먹다짐을 할 듯한 두 장수를 온달과 양만춘이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니, 경우의 아비 대식과 강혁수가 나서 두 장수를 간신히 떼어 놓았다.

아직도 씩씩거리는 경우와 막바우를 바라보며 평강이 입을 열었다.

“분풀이는 당 군에게 하시지요.”

“당 군이 와야 분풀이를 하지요.”

막바우가 이처럼 퉁명스럽게 답하니, 평강이 빙그레 웃었다.

“안 오면 오게 해야겠지요.”

“오게 한다고요?”

막바우의 물음에 평강이 지도를 가리켰다.

“마침 이 두 곳으로 비사성을 점령한 장량이 군량미를 수송하려는 모양입니다.”

이에, 경우가 눈을 빛내며 말하였다.

“그럼 이것들을 요절내면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평강이 담담히 답하니, 그동안 무료하였던 경우와 막바우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껄껄 웃었다.

“내가 요놈을 맡겠네.”

경우가 건안성으로 향하는 정명진의 일진을 가리키니, 막바우도 질세라 왕대도의 이진을 가리키며 큰 소리쳤다.

“그럼 난 요놈! 난 경우 자네와 달리 아주 개박살을 낼 것이니 그리 알게나 하하하.”

두 장수가 당장 뛰어나갈 듯 서두르니, 기훈이 근심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하오나, 적의 보급을 끊게 된다면… 황제 이세민이 결코 우리 안시성을 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온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히 말하였다.

“그 말씀 옳습니다. 하오나… 황제 이세민의 대군을 우리 안시성 앞으로 끌고만 올 수 있다면 이 전쟁을 승리할 기회가 마련되옵니다.”

“승리할 기회?”

기훈이 놀라 물으니, 마치 지도를 머릿속에 넣은 듯 온동이 답하였다.

“건안성이 아직 건재한 상태로 당 군이 우리 안시성으로 몰려올 경우. 건안성이 요하를 넘어 물자를 전달하는 당의 보급로를 끊고, 신성의 군사들이 당 군의 배후를 칠 수 있습니다. 또한…….”

“또한?”

“신라를 물리친 평양성의 군사들이 북진하여 비사성을 묶어 두고 당 군을 공격하면 당 군은 우리 안시성 앞에서 포위된 형국이 될 것입니다.”

“당 군을 몽땅 우리 안시성으로 끌어들인다?”

“그렇습니다.”

온동이 자신 있게 답하니, 기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안하여 다시 물었다.

“허나, 적은 대군인데, 우리 안시성이 적을 묶어두고 건안성과 신성, 평양성의 군대로 포위 공격할 수 있겠는가? 또한 당 군이 모두 안시성으로 몰려와도 버티기 어려울 것인데, 만일 황제가 군사 일부만 보낸다면 포위 공격하자는 네 계획은 어긋나지 않느냐?”

“황제는 실수가 없는 인물입니다. 스스로 그리 믿고. 따르는 장수들 역시 그리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황제가 우리 안시성에 군사를 보내지 않음은… 우리 안시성이 감히 대항하지 않으리라 여긴 것입니다.”

“…….”

“이에, 우리가 수송부대를 급습하면, 자신의 실수를 용납지 않는 황제는 필경 대군을 이끌고 친히 안시성으로 올 것입니다.”

온동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니, 경우가 슬그머니 주위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황제가 군사들을 몽땅 끌고 우리 안시성을 공격한다면… 큰일 아니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함락될 것 같은데…….”

이에, 온동이 빙그레 웃으며 답하였다.

“우리가 버티지 못한다면 당 군은 평양성까지 내려가겠지요.”

“뭐? 그럼 이 또한 큰일 아닌가?”

경우가 깜짝 놀라 소리쳐 물었다.

온동은 마치 눈이 보이는 듯 경우에게 고개 돌려 말하였다.

“큰일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막아내야 합니다.”

이에, 양만춘이 온동에게 물었다.

“동아, 우리가 막으면, 과연 이 전쟁… 이길 수 있겠느냐?”

“성주님, 여러 가정이 필요하옵니다만, 우리가 막으며 시간을 버는 동안, 평양성의 군대가 올라올 수 있다면, 우리 고구려가 이길 가능성이 생길 것입니다.”

“좋다! 내 너의 말을 믿어 보겠다!”

양만춘이 온동의 계획에 동의하니, 강혁수가 눈살을 찌푸려 말하였다.

“허나, 이는 저 간악한 평양성의 연개소문을 돕는 길 아닙니까?”

이에, 온달이 묵직한 어조로 말하였다.

“연개소문을 돕는 게 아니다. 고구려를 구하기 위함이다.”

온달의 말에 마음이 움직인 강혁수도 더는 이견을 대지 않았다.

이에, 온달이 자리에서 일어나 온동의 등 뒤로 다가가 어깨를 다독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연개소문을 증오하였으나, 한마음으로 고구려를 구하고자 당 군과 맞섬에 주저함이 없어 보였다.

“나는 온동의 계책을 따를 것이오. 간악한 연개소문을 벌함은, 강적 이세민을 우리 고구려 땅에서 몰아낸 후 합시다. 내 반드시 이 운철대검으로 연개소문의 머리를 으깨 놓을 터이니, 내 약조를 믿어 주시오!”

온달이 운철대검을 높이 치켜드니, 모든 장수가 일어나 병장기를 들어 올리며 뜻을 함께하였다.

이에, 평강이 미소 지으며 계책을 내었다.

“양만춘 성주와 경우 장군이 우리 안시성을 무시한 채 건안성으로 물자를 수송하는 적을 요격하시옵고. 우리 장군님과 막바우 장군께서는 백암성으로 향하는 적을 급습하소서.”

계책이 세워졌으니, 모두가 이를 따라 군사를 나누어 급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 * *

건안성의 예곤 역시 비사성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성주, 비사성의 장량은 우리 고구려의 군선을 찾지 못하여 감히 해상으로 물자를 나르지 못할 것입니다.”

“허면 우리 성 앞에 진을 친 저것들은 황제가 보급을 보내겠구려.”

고돌발의 말에 예곤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황제는 대군을 이끌고 있기에 항시 물자 걱정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여, 결코 저들에게 물자를 나눌 여력은 없을 터! 반드시 비사성에서 저들에게 물자를 수송할 것입니다.”

이에, 고돌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육상으로 운송하겠구려. 아마도 여기로 운송하겠지?”

고돌발이 가리킨 곳은 안시성을 지나 올라오는 길이었다.

“필경 그러하리라 예견하옵니다.”

예곤이 공손히 답하니, 고돌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의 물자만 끊는다면, 성 앞에 진을 친 놈들은 굶주려 황제를 찾아갈 것이다. 싸우지 않고도 적을 물리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즉시 비사성의 수송부대를 요격할 채비를 하니, 고돌발이 정한 요격지점은 바로 안시성 앞이었다.

* * *

온달은 막바우와 강혁수를 대동하고 일천의 군사로 왕대도가 이끈 수송부대가 지날 길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에 매복하였다.

“적은 오천이라 들었다. 우리보다 그 수가 많으나 싸워 못 이길 상대는 아니다.”

온달의 말에 막바우와 강혁수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였다.

마침, 흙먼지가 일고 수레바퀴로 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구나!”

막바우가 괜히 신이나 소리치니, 강혁수가 급히 막바우의 입을 막았다.

“안 들려! 안 들린다고!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 내 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고! 너 생긴 거에 비해 겁이 많구나!”

막바우가 강혁수의 손을 뿌리치며 한참을 떠벌리니, 온달이 막바우의 방정맞은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온달의 손은 감히 뿌리치지 못한 막바우가 무안해하니, 강혁수도 괜히 무안해 고개를 떨구고 소리 죽여 웃었다.

왕대도의 수송부대가 시야에 들어온 그 순간, 막바우의 눈에 불길이 치솟는 광경이 들어왔다.

“헉! 저거 뭐야?”

막바우가 급히 온달의 손을 뿌리치고 큰 눈을 더욱 크게 뜬 채 바라보았다.

군량미를 실은 수레가 불타고, 산길에서 일대의 군사들이 쏟아져 나오며 당 군을 급습하는 광경이 막바우의 두 눈을 자극하였다.

“저… 저! 누구지?”

막바우가 중얼거리니, 온달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다가 급히 누렁이에 올라 명하였다.

“누군지 모르겠으나, 고구려 군이다! 수가 적어 매복이 실패할 수 있으니, 가서 도와야 한다!”

온달의 말처럼 산길에서 뛰어나온 고구려 군의 수는 고작 오백 남짓으로 보였고, 당황한 당 군이 반격을 가하면 금세 전멸할 듯해 보였다.

“공격하라!”

온달이 선두에 서서 외치며 내달리니, 막바우와 강혁수가 일천의 군사를 이끌고 황급히 구릉을 질주해 내려갔다.

* * *

왕대도의 수송부대를 급습한 고구려 군은 비사성의 패잔병들로 그 수는 오백여 명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지휘하는 이는 바로, 비사성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든 황우와 공별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진 이들이 비사성의 패잔병을 수습하여 왕대도의 수송부대를 급습하였으나, 애석하게도 중과부적이었다.

“수레를 태웠다. 퇴각하라!”

공별의 외침에 군사들이 급히 산림으로 퇴각하려 했으나, 격노한 왕대도가 이를 두고 볼 리 없었다.

“이 벼락 맞을 놈들이! 감히 수레를 불태워? 뒤를 쫓아 모두 섬멸하라!”

후일 다시 군량미를 수송하기 위해서라도 비사성의 패잔병들이 활보하게 둘 수는 없었다.

왕대도의 명에 오천의 군사들이 일제히 반격을 가하며 뒤를 쫓으니, 공별과 황우는 군사들이 무사히 산림 속으로 숨을 수 있도록 후미를 지키며 독려하였다.

“퇴각하라! 산으로 올라라! 서둘러라!”

그러나 당 군의 수는 많고, 패잔병으로 구성된 황우와 공별의 군사들은 굶주린 상태였기에, 제대로 퇴각이 이뤄지지 못하였다.

뒤를 잡힌 고구려 군은 도주를 포기하고 싸워야 했고,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당 군의 수에 질려 제대로 응전조차 못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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