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전장의 신, 이세민 (7)
전장의 상황은 황제 이세민이 뜻한 대로 막힘 없이 흘러갔고, 요동 각 성의 사기는 저하되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황제 이세민이 친정군을 이끌고 요동성에 당도하니, 요동벌에 황제의 깃발이 펄럭였다.
이세적과 이도종은 급히 황제를 맞아 예를 올렸고, 황제 이세민은 이들을 크게 칭찬하며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였다.
그리고 쉬지 않고 천여 기의 근위군만 이끌고 친히 요동성 앞으로 나아갔다.
이때 황제 이세민을 곁에서 지킨 이는 근위장 황무문으로 이세민은 그를 천하제일검이라 칭하며 매우 아끼었다.
“성벽 위에 집을 지었구나. 특이한지고.”
황제 이세민이 요동성 성벽 위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리던 그 순간,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던 요동성 성주 고영의가 활을 겨누어 날렸다.
휙!
강한 바람을 타고 화살이 날아드니, 근위장 황무문이 급히 황제의 앞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왼손을 뻗어 날아드는 화살을 낚아채고는 사뿐히 착지하였다.
“훌륭하다!”
황제 이세민이 황무문의 무예를 칭찬하며, 여유롭게 요동성 성벽 위로 시선을 옮겼다.
화살을 날린 요동성 성주 고영의가 매우 놀라 당황한 듯하였고, 이를 지켜보던 고구려 군은 안타까워 탄식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황제 이세민의 곁을 지키던 근위군과 멀리 떨어져 진을 펼친 당 군이 기뻐 천지를 뒤흔들 듯한 함성을 질렀다.
황무문의 무예로 요동성의 고구려 군은 크게 사기가 꺾였고, 당 군은 하늘을 찌를 듯 사기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폐하, 저들이 또다시 화살을 날릴 수 있으니, 이만 물러나심이 좋을 듯하옵니다.”
황무문이 말에 오르며 이처럼 말하였으나, 황제 이세민은 여전히 여유롭게 천천히 말을 몰아 요동성 주위를 돌았다.
“전투는 칼과 칼이 부딪쳐야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는 요동성을 공략하기 전, 저들의 사기를 꺾고자 하니, 너무 근심하지 말라.”
그러나, 혹여 황제 이세민이 화살에 상할까 염려된 이도종이 기병을 이끌고 나오고, 요동성 성주 고영의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궁수들에게 명하였다.
“황제만 겨누어라. 이번이 기회다. 살려 보내지 말라.”
한눈에도 누가 황제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궁수들은 금빛 찬란한 황제 이세민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살을 날려라!”
단숨에 이천여 대의 화살이 황제 이세민을 향해 날아들었고, 황무문이 말을 몰아 앞을 지키며 검을 휘둘러 검막을 형성하였다.
챙! 챙! 챙!
황제 이세민을 향해 날아들던 화살들은 황무문이 일으킨 검막에 부딪쳐 맥없이 떨어졌다.
그러나, 황무문은 황제 이세민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날아드는 화살은 쳐내지 않았기에, 세 대의 화살이 어깨와 허벅지에 박히고 말았다.
화살도 뽑지 않은 채, 황무문이 황제 이세민에게 날아들던 화살들을 마저 쳐내고는 포효하든 소리쳤다.
“내가 있는 한! 이따위 화살로는 감히 폐하를 해할 수 없다! 나는 황제 폐하께서 명하신 천하제일검 황무문이다! 자신 있다면 성 밖으로 나와 겨뤄 보거라!”
웅후한 내공이 실린 황무문의 외침이 요동성 내를 쩌렁쩌렁 울렸고, 이에 군사들과 백성들이 두려워 몸을 떨었다.
“됐다. 이만하면 충분할 듯하구나. 이제 그만 돌아가 치료하도록 하자.”
황제 이세민이 황무문을 칭찬하여 말을 돌리던 그 순간이었다.
멀리 요동성 북동쪽 방면에서 흙먼지가 일며 밀려오더니, 요동성을 살피던 황제 이세민을 향해 돌진해오기 시작하였다.
흙먼지는 쇳소리를 품고 있었기에, 황제 이세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개마무사?”
흙먼지가 가까워지자 말발굽 소리가 쇳소리와 함께 황제 이세민의 귀를 자극하였다.
“황제 이세민을 잡아라!”
개마무사의 선두에 선 모용상이 금빛 찬란한 갑주를 걸친 황제 이세민을 한눈에 알아보고 소리쳐 명하였다.
요동성을 구원하기 위해 사만 기의 개마무사를 이끌고 온 모용상은 이세적이 삼면으로 매복시킨 당 군과 일전을 벌였고, 간신히 일만 기의 개마무사만 수습하여 사지를 뚫고 요동성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이때 마침 요동성 앞에서 금빛 찬란한 갑주를 입은 이를 발견하였으니, 이를 하늘이 내린 기회라 여겨 맹렬히 돌진해 온 것이다.
“황제만 잡으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황제가 진으로 돌아가기 전 앞을 막고 잡아야 한다!”
모용상이 크게 소리쳐 명하니, 개마무사들이 더욱 기세를 올려 황제 이세민의 앞을 막고자 달려왔다.
“속히 돌아가야 하옵니다.”
황무문이 급히 황제 이세민에게 아뢰고는 곁을 지키며 진영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이때, 요동성의 성문이 열리고 군사들이 쏟아져 나오니, 황제 이세민도 크게 놀라 안색이 창백해졌다.
“큰일이로다!”
황제의 탄식과 함께 요동성 앞에 혼전이 벌어졌다.
성 안에서 쏟아져 나온 고구려 군은 악착같이 황제 이세민을 사로잡고자 달려들었고, 황무문이 이끈 근위군은 황제를 지키고자 이들의 앞을 막기 바빴다.
그리고 그사이에 모용상이 개마무사들을 이끌고 지척까지 몰려오니, 황제 이세민은 말까지 철갑을 두른 이 강철부대의 모습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개마무사… 개마무사 하더니, 눈으로 보니 실로 그 위용이 대단하구나.”
황제 이세민이 이처럼 중얼거리던 그때, 이세적이 이끈 기병 삼만 기가 바람처럼 밀려와 기사로 살을 날리니, 맹렬한 기세로 황제를 사로잡고자 돌격해오던 개마무사들이 주춤하였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도종이 이끈 기병 삼만 기가 개마무사의 배후를 들이쳤고, 이세적의 기병들도 기세를 더하여 개마무사의 우측 진형으로 돌격해 왔다.
개마무사의 장점은 정면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단단한 갑주였으나, 배후와 측면은 상대적으로 취약하였다.
또한 기동력도 경기병에게 밀렸기에, 한번 배후를 잡히면 이를 뿌리치기 어려웠다.
황제 이세민을 향해 돌격해오던 개마무사들의 진형이 무너지고 혼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선두의 모용상은 혼자만이라도 황제 이세민에게 달려들어 사로잡고자 더욱 속도를 높였다.
“이세민! 목을 내놓거라!”
모용상의 외침이 어느새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황제 이세민이 두려워 급히 말머리를 돌리려던 그때, 곁을 지키던 근위장 황무문이 말을 몰아 앞으로 내달리며 모용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에, 모용상도 맞서 검을 휘두르니, 검과 검이 부딪쳐 불꽃을 만들어냈다.
챙!
경쾌한 쇳소리가 일고, 모용상의 검이 둘로 나뉘었다.
부러진 검이 허무하게 허공에 떠오르는 광경이 모용상의 시야에 들어오던 그 순간, 이보다 더욱 빠르게 황무문의 검이 모용상의 안면을 가로로 베었다.
“아악!”
모용상이 얼굴을 피로 물들이며 비명을 질렀고, 황무문은 모용상의 목에 검을 쑤셔 박으며 마무리하였다.
황무문이 검을 뽑으니, 모용상이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말에서 떨어져 절명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광경에 성 안에서 쏟아져 나온 고구려 군이 기세가 꺽여 패주하였고, 이세적과 이도종이 나란히 말을 몰아 황제 앞에 섰다.
이들의 등 뒤에선 개마무사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몰살시키는 것이 요동성의 사기를 꺾는 데 좋을 것이다.”
황제 이세민이 이처럼 말하니, 이세적이 장수들을 불러 명하였다.
“고구려의 자랑 개마무사를 요동성의 군사들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모두 죽여라.”
한식경이 지나지 않아 개마무사들은 모두 쓰러져 명을 달리하였고, 황제 이세민은 이들의 시신을 그대로 두어 요동성의 성벽을 지키는 고구려 군사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뜻하지 않게, 내가 스스로 미끼가 되어 적을 유인한 셈이 되었구나, 하하하.”
황제 이세민은 요동성 공략을 시작하기 전에 이처럼 승리를 거둬 매우 기뻐하였고, 요동성 성주 고영의는 이젠 원군을 기대할 수 없어 매우 절망하였다.
* * *
“다시 묻겠소. 우린 어찌 될 것 같소?”
요동성 성주 고영의가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자 타인의 죽음을 보는 여인 모용설에게 자신의 운명을 물었다.
동생 모용상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겼던 모용설은 그저 말없이 고영의를 빤히 바라만 보았고, 고영의도 모용설의 마음을 읽고는 허허 웃었다.
“내가 괜한 것을 물은 듯하구려. 허허허. 말하지 않아도 좋소.”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서는 고영의에게 모용설이 차분히 말하였다.
“성주, 군사들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모두에게 말하겠나이다.”
“모두에게?”
“그렇습니다. 모두에게 우리가 싸워 이 성을 지킬 수 있음을… 말하겠나이다.”
이에, 고영의가 크게 기뻐 단을 세우고 군사들과 백성들을 불러 모았다.
곱게 단장한 모용설이 단에 오르니, 그 자태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인과도 같았다.
이에, 모든 이들이 모용설을 우러러보며 그녀의 예지를 기다렸다.
한참 동안 주위를 둘러보던 모용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타인의 죽음을 보는 여인이오! 내가 지금 단 아래의 그대들과 성벽 위를 둘러보았고, 많은 이들이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았소.”
모두가 놀라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모용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여기 모인 모두가 죽는 것은 아니오. 많은 이가 죽는 것은 분명하나! 요동성의 많은 이가 죽지 않음도 분명하오! 이는! 우리가! 죽음으로서! 살아남은 이가! 요동성을 지켜냄을 의미하는 것이오! 우리는 이 요동성을 죽음으로 지켜내며, 그로 인하여 많은 이가 죽지 않게 될 것이오!”
모용설은 누가 죽을지 말하지 않았다.
이에, 성벽 위와 단 아래 모인 이들은 한 줄기 희망을 지니게 되었다.
모용설은 모든 이들의 눈에서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읽으며, 마저 말을 이었다.
“살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이 요동성을 지켜내야 살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 요동성을 지켜냅시다!”
모용설의 외침에 단 아래 모인 이들이 함성으로 대답하였고, 성벽 위 군사들 이에 호응하여 창으로 바닥을 두드리며 함성을 질렀다.
요동성에서 강한 함성이 들려오니, 황제 이세민이 의아해 고개를 갸웃하였다.
“함성?”
요동성을 공략하기 위하여 포차를 세우는 광경을 지켜보며 황제 이세민이 이세적에게 물었다.
“어찌 요동성에서 함성이 들리는가?”
“소장도 파악하지 못하였사오나, 적이 기세를 올린들 열흘을 버티지 못할 것이옵니다.”
“열흘? 좋다. 열흘 안에 요동성을 함락하도록 하라!”
황제의 명을 받은 이세적은 요동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가하였다.
이전 수에서 사용하던 포차와 달리, 더욱 커진 포차는 거대한 돌을 요동성으로 날렸다.
요동성에서도 포차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누대를 세우고 그물을 걸었다.
그러나 거대한 돌이 하늘을 날아 강한 힘으로 충격을 가하니, 그물로는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물이 찢어지고 성벽이 패이며 성벽 위 군사들이 포차의 공격에 죽거나 크게 상하였다.
그러나, 모두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 이도 있다는 모용설의 말을 믿어 한사람이라도 살아남게 하기 위하여, 요동성을 지키고자 당 군의 공격에 맞섰다.
거대한 돌이 머리 위로 날아드는 공포를 죽음을 각오한 용기로 극복하였고, 성을 넘는 당 군에게 화살과 기름을 부어 강력히 저항하였다.
열흘이 넘도록 포차로 공세를 퍼부어도 마땅히 허물어진 성벽은 없었고, 고구려 군의 저항은 여전히 강경하기만 하였으니, 이세적은 황제를 볼 면목이 없었다.
이때, 황제 이세민도 요동성의 강한 저항에 매우 놀라 다시 요동성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하였다.
근위군 일천 기와 황무문이 황제 이세민을 지키며 따랐고, 요동성 남문에 이르러 강한 바람에 황제 이세민이 미소 지었다.
물기를 머금지 않은 건조한 바람이었다.
“매우 강한 바람이로다.”
“돌풍은 아닌 듯하옵니다.”
황무문의 말에 황제 이세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시 이세적을 불러 명하였다.
“바람이 불면, 불이 잘 번지는 법이다.”
이에, 이세적이 황제의 뜻을 이해하여 군사들에게 명하였다.
“포차에 돌 대신 불붙은 짚더미와 나무를 실어 날리고, 기름통과 불화살을 날려라! 화공을 펼쳐 요동성 남문을 태우겠노라!”
이에, 거대한 포차들이 쉼 없이 불붙은 짚더미와 나무를 날리고 기름통과 불화살을 요동성 안으로 날려 화공을 펼쳤다.
불길은 건조한 바람을 타고 성벽은 물론, 요동성 안으로 크게 번졌다.
이에 성벽 위로 돌과 끓는 기름을 나르던 백성들은 불길을 잡느라 매우 분주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황제 이세민이 불길이 치솟는 요동성 남문 방면을 바라보며 명하였다.
“성벽을 넘으라! 성문을 부서라! 총공세를 펼쳐 요동성을 함락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