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화 불타는 적봉진 (2)
흑룡강 지류에 당도한 계필하력은 이틀에 걸쳐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였고, 게르를 발견할 때마다 황산에 관하여 묻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나 인근 어디에도 황산은 보이지 않았고, 근처 어디에서도 보았다는 이들조차 없었다.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북방의 추위는 매서웠고 말들이 먼저 지쳐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날이 저물 무렵, 겨울밤을 맞이하기 위해 불을 지핀 계필하력의 진영으로 유성처럼 불화살이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장군! 야습입니다!”
천부장이 급히 계필하력의 군막으로 뛰어 들어와 소리치니, 계필하력도 서둘러 밖으로 나가 보았다.
한 손엔 커다란 도끼를 쥐었으며, 허리엔 두 자루 곡도를 차고, 등에 활을 멘 계필하력이 밖으로 나오니, 머리 위로 불화살이 날아다녔다.
“불을 끄고 공격에 대비하라!”
백부장들이 군사들에게 불을 끄라고 외치고 있었다.
“불 끌 여유가 없다. 당장 말에 오르라!”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계필하력이 명하니, 천부장이 손짓하여 백부장들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먼저 말에 오른 계필하력이 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불화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 방향인데… 거리는 삼백 보 이상이로구나.”
불을 끄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던 군사들이 무장을 갖추고 말에 오르자 그제야 진영 곳곳에서 뿔나팔이 울렸다.
뿌우우!
공격을 알리는 뿔나팔이 울렸으나, 공격할 적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어둠 속에 빛나는 불화살만이 적의 방향을 알려줄 따름이었다.
“장군! 적의 수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천부장이 다가와 말하니, 계필하력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쳐 명하였다.
“서북쪽이다! 돌진하라!”
이에 일만 기의 기병들이 횃불도 밝히지 못한 채 불화살이 날아드는 방향으로 말을 몰아 돌진하기 시작했다.
계필하력도 급히 말을 몰아 선두에서 달리며 군사들을 계속 독려하였다.
“거리가 좁혀질 것이다. 돌진 준비하라!”
이에, 창기병들이 적진 돌파를 위하여 속도를 가하여 앞으로 나오고, 후미의 궁기병들이 밤하늘로 화살을 날렸다.
머리 위로 날아드는 불화살로 적진의 거리를 가늠한 궁기병들이 말을 달리며 계속해 기사로 화살을 쉬지 않고 날렸다.
“돌파!”
천부장의 외침에 창기병들이 어둠 속에 숨은 적들을 향해 돌진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후미의 궁기병들도 쉬지 않고 화살을 날리며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응사를 가하였다.
맹렬히 돌진을 시도한 창기병들은 금세 적진을 돌파할 것이라 여겼으나, 천여 보를 넘게 말을 몰아도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화살은 머리 위를 날고 있었다.
“쉬지 마라! 적이 후퇴하고 있다. 돌진하라!”
창기병을 지휘하는 천부장이 목 터져라 외치니, 공격을 알리는 뿔나팔이 창기병을 독려하였다.
뿌우우!
뿔나팔 소리에 더욱 속도를 높여 어둠 속을 내달리기 시작한 창기병들이 한 식경 넘게 말을 달렸으나, 돌파를 강행할 적진을 찾지 못하였다.
밤이 깊어가며 어둠은 더욱 짙어졌고, 머리 위로 불화살은 여전하였으니, 불화살을 날리는 적들과의 거리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듯하였다.
“퇴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백부장이 말을 몰아 다가와 물으나, 천부장은 본진에서 퇴각을 알리는 뿔나팔을 울리지 않았기에 단호히 답하였다.
“퇴각은 없다. 적과의 거리를 좁혀라! 더욱 속도를 높여라!”
이에, 백부장이 뿔나팔을 울리게 하여 일천 기의 창기병을 독려하였다.
“뿔나팔을 불어라! 적이 저 앞에 있다. 속도를 높여라! 적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라!”
한참 동안 어두운 광야를 쫓았으나 적의 모습은 여전히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오직 불화살로 거리와 방향만 가늠할 수 있었으니, 창기병들의 마음속에 차츰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두려움은 이들의 말에게도 전해진 듯 명하지 않았음에도 말이 스스로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이에, 천부장이 소리쳐 명하였다.
“절대 속도를 늦춰선 안 된다! 더욱 속도를 높여라!”
속도를 늦출 경우, 어둠 속의 적들이 역습해 올 것이 분명하였기에, 틈을 주지 않고자 천부장이 재차 명한 것이다.
“적들도 지쳤을 것이다! 속도를 높여라! 적의 뒤를 잡아 돌파를 강행해라!”
* * *
호타크는 뿔나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명하였다.
“적이 속도를 높였다. 우리도 속도를 높여 이동한다!”
어둠에 가려 적을 살필 수는 없었으나, 뿔나팔 소리로 거리는 가늠할 수 있었다.
호타크의 명에 따라 일천의 전사들이 말을 달리며 등을 돌려 화살을 날렸다.
밤하늘을 불태우듯 불화살들이 날아가니, 불화살이 지나는 광야가 일순 밝아졌다.
“속도를 높여라! 어둠 속으로 말을 몰아라!”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도록 빠르게 이동하며 불화살을 날렸고, 언뜻언뜻 말을 몰아오는 창기병의 모습이 불빛에 비쳐 드러나곤 하였다.
“일천 기 남짓.”
시력이 좋은 호타크가 빠르게 적의 수를 헤아리고는 불화살에 비친 적장을 주시하였다.
쉬지 않고 명을 내리며, 그 주위에 뿔나팔을 부는 기병들이 보이니, 필경 천부장 이상의 직책이 분명하였다.
활에 살을 먹인 호타크가 등을 돌려 살을 날렸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는 경쾌한 소리가 멀리 사라지고, 어둠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말 덕분에 비명소리와 거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깝구나.”
못 내 아쉬운 호타크가 손을 들어 올리며 명하였다.
“불화살을 날려라! 속도를 높여 이동하라!”
어느덧 동쪽 하늘이 붉어지고 있었다.
* * *
선두에서 돌진을 강행하던 창기병이 멈추니, 계필하력이 의아해 속도를 높여 다가갔다.
“어찌된 것이냐?”
몹시 노해 묻는 계필하력에게 백부장들이 말을 몰아 다가와 아뢰었다.
“천부장께서 전사하였습니다.”
“천부장이?”
놀라 되묻는 계필하력에게 백부장이 답하고는 천부장의 시신을 수습하는 군사들을 가리켰다.
“적이 날린 화살에 그만…….”
말에서 내려 천부장의 시신을 살핀 계필하력의 두 눈에 분노가 어렸다.
“적은 어디 있느냐?”
이를 갈며 묻는 계필하력에게 백부장이 떨며 답하였다.
“서북 방면으로 이동한 듯합니다.”
어느새 동녘이 밝아오고 있었고, 들판에 어지러이 찍힌 말발굽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동? 도주가 아니고 이동이라 했는가?”
계필하력이 크게 노한 표정으로 물으니, 백부장이 두려워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적은 도주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너희 창기병은 변변한 전투조차 벌이지 않고, 지휘관을 잃었으니, 내 너희의 목을 모두 베어도 시원찮구나. 허나, 지금은 추적이 우선이니, 네가 새로 천부장이 되어 창기병을 이끌고 적을 쫓아라. 실수는 용납하지 않겠노라.”
얼떨결에 천부장이 된 백부장이 죽을상을 하고 말에 올라 명하였다.
“뿔나팔을 불라! 속도를 높여 이동한다!”
그러나 의욕과 달리, 만리장성을 넘은 뒤로 쉬지 않고 광야를 내달리며 바이골에서부터 흑룡강 지류까지 행군해온 말들은 사람보다 먼저 지쳐 있었다.
북방의 매서운 추위로 단단히 언 땅을 연일 밟아 발굽이 상한 말들이 지난 자리엔 피가 맺혀 있었다.
계필하력도 말들이 지쳤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무척이나 조급했다.
“빨리 적봉진을 찾아 끝을 봐야 한다.”
* * *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구릉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호타크에게 백부장이 다가와 광야를 가리켰다.
넓게 진형을 갖춘 채 말을 몰아오는 적들이 보였다.
시력이 좋은 초원의 전사들은 이미 적들의 수를 가늠하여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에, 호타크가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곧 눈이 내릴 것이다. 해가 떴으나, 눈이 거세 시야가 무척 흐릴 것이다. 일격에 숨통을 끊고 이동한다.”
호타크가 자신들의 뒤를 쫓는 천여 기의 창기병을 단숨에 전멸시키고자 명하니, 커레이트 전사들이 모두 말에 올라 공격 준비를 갖추었다.
“삼백 보다! 삼백 보 안으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린다!”
호타크가 손을 들어 재차 명하니, 일천의 커레이트 전사들이 일제히 살을 먹인 후 시위를 팽팽히 당겼다.
* * *
“천부장! 적입니다!”
새로운 천부장에게 백부장이 다가와 외치며 손으로 멀리 떨어진 구릉을 가리켰다.
말에 오른 적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고, 하늘은 금세 눈을 퍼부을 듯 무척이나 흐렸다.
“천부장! 말을 돌려야 합니다. 적의 사격 범위에 들어가게 됩니다.”
백부장이 두려워 말하였으나, 새로운 천부장은 투지가 불타고 있었다.
“감히 우리 무적의 철륵부 전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뿔나팔을 불어라! 단숨에 저 언덕을 올라 적들을 짓밟아라!”
천부장의 명에 뿔나팔이 울리고, 밤새 달려 지친 말들이 애써 힘을 내었다.
“천부장 무리입니다!”
백부장은 새로운 천부장이 무리해 공격을 강행한다 여겨 재차 만류하였으나, 천부장 역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물러나면, 적들이 기세를 올려 공격해 올 것이다. 우리 말들은 시간이 갈수록 지쳐가고 있으니, 적이 거리를 두고 기사를 벌이며 우리의 수를 줄인다면 결국 전멸하고 말 것이다. 힘을 내 한 번에 적을 무너뜨려야 살 수 있다. 뿔나팔을 계속 울려라!”
이에, 진형 곳곳에서 뿔나팔이 울리고, 말들도 기세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거리가 좁혀진다. 힘을 내라! 돌진하라!”
목이 터져라 천부장이 외치며 말을 몰아 선두로 나서니, 백부장도 군사들을 독려하며 뒤를 따랐다.
그때, 차가운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오고 하늘에선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찬바람을 탄 화살이 거세게 밀려오더니 선두의 천부장을 쓰러뜨리고는 뒤따르는 군사들을 말에서 떨구기 시작하였다.
사방에서 비명이 울리고, 말 울음이 날카롭게 고막을 파고들었다.
이미 퇴각할 시기를 놓쳤다고 판단한 백부장이 크게 외치며 말을 몰아 나갔다.
“멈추지 마라! 등을 보이는 순간 놈들이 돌격해 올 것이다! 계속 돌진하라!”
그러나 그의 외침은 구릉 위 사내의 외침에 묻히고 말았다.
“커레이트의 대전사 호타크가 여기 있다! 누가 나와 대적하겠는가?”
이에, 백부장이 말을 몰아 나가며 당당히 소리쳤다.
“내가 상대하겠다! 거기 가만 있거라!”
백부장이 창을 단단히 쥐고 말을 몰아 나가니, 호타크가 활을 들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팽팽한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날리는 눈 사이로 날카로운 울음을 울었다.
쇄애액!
호타크가 날린 화살에 백부장의 두 눈이 놀랍고도 분해 일그러졌으나, 이내 곧 목에 화살이 박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하였다.
백부장의 시신을 떨군 말이 진형을 벗어나 달아나고, 구릉 위에서 쏟아져 내린 화살들이 돌진하던 창기병들을 말 위에서 떨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기세 오른 커레이트 전사들이 맹렬한 속도로 구릉을 질주해 오며 곡도를 휘두르니 하얀 눈과 피가 함께 흩날렸다.
두 식경이 지나, 도착한 계필하력은 피로 물든 설원을 둘러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천여 명이… 모두 전사했단 말인가?”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에 화도 치밀지 않았다.
단지, 시신들 위로 덮인 핏빛 눈이 너무도 아름다워 일그러진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어찌… 이리 허무히 전멸할 수 있단 말인가?”
애써 표정을 풀어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으나, 노력할수록 표정은 더욱 일그러져만 갔다.
“장군, 저기를 보십시오.”
천부장이 계필하력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천부장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긴 계필하력의 눈이 커졌다.
하얗게 덮인 눈 위로 말발굽이 찍혀 있었는데,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저곳이다. 놈들이 황산 적봉진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를 급습하고, 추격을 물리쳤으나, 눈 위에 찍힌 흔적은 지우지 못하였다. 아마도 계속해 내리는 눈이 가려줄 것이라 여겼겠지. 하하하.”
눈에 찍힌 말발굽 자국이 새로 내리는 눈에 덮이기 전에 추적을 서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