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80화 (280/328)

280화 고립무의(孤立無依) 안시성 (7)

강혁수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자, 팽무일이 히죽 웃으며 말하였다.

“애송이 맷집은 쓸 만하구나.”

그리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신을 차리는 강혁수를 향해 팽무일이 빠르게 몸을 날리며 접근하더니,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르며 강혁수의 머리를 노렸다.

아직 자세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강혁수의 머리가 속절 없이 쪼개질 듯하였다.

휙!

이때, 빽빽이 늘어선 나무 사이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더니 팽무일의 이마에 명중하였다.

“악!”

팽무일 비명을 내지르며 벌러덩 뒤로 자빠졌고, 그틈에 강혁수가 정신을 가다듬고 낭아봉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에, 추자형이 크게 놀라 급히 명하였다.

“화살을 날려라!”

궁수들이 앞으로 나와 활을 겨누자, 팽무일이 고통을 참으며 재빨리 몸을 일으켜 강혁수의 낭아봉을 검으로 막아내었다.

“화살 날리지 마!”

팽무일의 외침에 추자형이 손을 들어 궁수들을 제지하였다.

“팽무일도 위험하다. 화살을 날리지 마라!”

등 뒤에서 날아들 화살 걱정이 덜자 팽무일은 또다시 신바람을 내며 강혁수와 겨루기 시작하였다.

“애송이, 힘은 좋다만 여기까지다!”

팽무일이 벼락 치듯 고함을 지르며 몸을 솟구치더니, 오른발로 강혁수의 머리를 가격하였다.

“컥!”

강한 충격에 강혁수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팽무일이 잽싸게 강혁수의 몸을 올라타고는 대뜸 멱살을 잡았다.

휙!

이때 또다시 나무 사이에서 돌멩이가 날아들었고, 팽무일의 눈이 빠르게 돌멩이를 응시하였다.

퍽!

어찌 된 영문인지 날아드는 돌멩이를 바라보면서도 팽무일은 피하지 않고 이마를 내어주고는 또다시 벌러덩 뒤로 누웠다.

“아이고! 나죽네! 아이고!”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구르니, 그틈에 강혁수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낭아봉을 고쳐 쥐고 일격에 팽무일의 머리를 박살 낼 듯 힘껏 들어 올리던 그 순간, 팽무일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가소롭고!”

별안간 팽무일의 몸이 솟구치더니, 파천신검을 펼쳐 낭아봉을 막아내고는 강혁수의 턱을 발로 걷어찼다.

강혁수의 다리가 땅에서 떠오르고 몸이 뒤로 젖혀져 땅에 쳐박혔다.

이에, 팽무일이 먹이를 노린 독수리처럼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강혁수에게 내리꽂혔다.

깡!

그때, 나무 사이에서 누군가 뛰어나와 강혁수를 지키며 검을 휘두르니 팽무일의 검과 서로 부딪혀 강한 파열음을 만들어 냈다.

“네놈이 돌을 날린 게냐?”

땅에 발을 딛고 서서 팽무일이 물었다.

나무 사이에서 나온 사내가 두 눈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있었기에, 팽무일은 누군지 묻지 않고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온동, 오랜만이다. 눈은 좀 어떠냐?”

“팽무일! 이 도적놈아! 어찌 감히 안시성을 노리느냐? 내 오늘 너의 목을 베어 더는 못된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노라!”

온동이 엄히 꾸짖으며 주위 모든 소리에 집중하였다.

‘팽무일의 경공은 상당하다. 어디서 공격해 올지 모르니 주의해야 한다.’

온동이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하는 사이, 팽무일은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는 강혁수를 바라보고 히죽 웃었다.

“이 아둔한 놈과 온동 네놈이 나를 마중나온 모양이로구나. 두 눈을 잃은 네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구경이나 해보자!”

팽무일이 빠르게 발을 놀리며 온동에게 접근하더니, 곧게 검을 뻗었다.

이에, 온동이 뒤로 살짝 물러나고는 파산귀검 초식을 펼쳤다.

“파산귀검!”

온동의 외침과 함께 한 줄기 검기가 땅을 가르고 흙과 돌을 들어올리며 팽무일을 향해 밀려갔다.

그러나 팽무일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검을 고쳐 쥐고는 파천신검 초식을 펼쳤다.

“파천신검!”

순간, 팽무일을 향해 밀려가던 검기가 파천신검 초식에 막히더니, 흙과 돌도 흩어져 날아갔다.

“온동! 목을 내놓거라!”

발을 빠르게 놀린 팽무일이 온동의 정면으로 다가가며 소리쳤다.

이에, 온동이 다시 또 한 번 파산귀검 초식을 펼쳤으나, 극한의 방어 무공인 파천신검 초식에 막히고 말았다.

“소용없다, 온동!”

팽무일이 비웃으며 바짝 다가와 검을 휘두르니, 그 소리에 온동이 뒤로 빠르게 물러나 피하였다.

“파산귀검!”

연속해 흙과 돌을 품은 검기를 발산하는 온동과 이를 막아내는 팽무일의 놀라운 무공에 강혁수를 비롯하여 평양성의 군사들이 모두 입을 벌리고 경탄하였다.

“온동, 네놈의 무공은 실로 대단하나. 나의 파천신검은 모두를 막아낼 수 있으니, 내겐 아무런 상처도 입힐 수 없다. 포기하라.”

팽무일이 거만히 말하며 온동의 머리를 노려 몸을 솟구쳤다.

이때, 나무 사이에서 팽운이 뛰어나와 소리쳤다.

“오라버니! 이 검을 사용하세요!”

항상 등에 메고 다니던 금강대도를 날리니, 온동은 바람이 밀려오는 소리에 집중해 손을 뻗어 금강대도를 받아 내었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자신을 노리는 팽무일을 향해 금강대도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파산귀검!”

온동이 금강대도로 파산귀검 초식을 펼치니, 팽무일이 크게 놀라 급히 파천신검 초식을 펼쳐 몸을 지켰다.

깡!

그러나, 그 무엇이든 가로 막는 것은 베어 자르는 금강대도가 일으킨 검기는 팽무일의 검마저 잘라내었다.

“으악!”

자신의 검이 잘리며 검기가 밀려오자, 팽무일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경공술을 펼쳐 한 번 더 솟구쳤다.

팽무일의 다리 밑으로 매서운 검기가 스쳐 지나고, 멀리 떨어져 있던 평양성의 군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선두의 군사들은 금강대도가 일으킨 검기에 상처를 입고 땅에 쓰러졌으며, 추자형도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

이때, 팽운이 급히 달려와 온동의 소매를 쥐고는 강혁수에게 호통을 쳤다.

“당장 뛰어요!”

이에, 강혁수가 팽운과 온동의 뒤를 따라 나무 사이로 몸을 피해 숨으니, 그제야 안심한 팽무일이 땅에 발을 딛고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금강대도로 파산귀검 초식을 펼치니, 실로 무섭구나.”

그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파천신검 초식을 일거에 무력화 시킨 금강대도의 위력에 팽무일은 자신의 목이 몸에 붙어 있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저것들은 뭐였소?”

이때 추자형이 달려와 물었으나, 팽무일은 대답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외쳤다.

“화살 날리지 마! 내가 맞을 수 있다고! 화살 날리지 마!”

팽무일의 외침에 궁수들이 활을 내렸고, 이마가 터진 팽무일이 씩씩거리며 돌아와 말에 올랐다.

“여기 산길은 좁아 대군이 오르다간 안시성 군의 공격에 크게 패할 것 같소.”

팽무일의 말에 추자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산길을 벗어나 안시성의 유일한 평지 성문인 서남문 앞으로 이동하여 진을 치십시다. 헌데, 저놈들을 쫓지 않아도 되겠소?”

추자형의 물음에 팽무일이 바로 답하였다.

“유인책일 것 같소이다. 실성하지 않고서야 어찌 몇 놈이 산길을 막았겠소. 뒤쫓아 공연히 유인책에 걸려들지 맙시다.”

“옳은 말씀이오! 적의 꾀에 빠지지 말고, 우린 서남문 방향으로 속히 이동합시다.”

산과 평야가 맞닿은 서남문 방향은 온동과 팽운이 성벽을 타고 내려와 산을 타며 평양성 군으로 향하던 곳이었다.

팽무일과 추자형이 서로 의견을 일치하여 군사들을 뒤로 물려 산길을 벗어나 평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 * *

평양성의 군사들이 산길을 내려가 사라지자, 구릉 위에서 숨을 고르던 팽운이 강혁수를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혁수 오라버니는 도대체 생각이 있으신 거예요? 아니면, 그 큰 머리에 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아니… 난… 안시성을 공격하려는 평양성 군을 막아내려고…….”

“아니, 도대체 혼자서 어찌 막아내겠다고!”

“그게… 단기접전으로 장수만 베면… 군사들이 물러날 거라…….”

“무슨 낭만적인 소리예요? 적장이 왜 혁수 오라버니와 단기접전을 벌여요? 그냥 화살 날리고 말지! 죽고 싶어서 환장하신 거세요! 게다가 단기접전 벌여도 지잖아요!”

거침없이 퍼붓는 팽운의 말에 변변히 대답조차 못하던 강혁수가 안쓰러운 온동이 부드럽게 말하였다.

“운아, 그만하거라. 우리도 혁수와 비슷하지 않느냐. 누굴 탓할 처지가 못 된다.”

이에, 강혁수가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래, 너희는 어찌 온 거냐?”

이에, 눈치 빠른 팽운이 엄한 표정으로 답하였다.

“혁수 오라버니가 보이지 않아서 혼자 뭔 사고를 칠까 걱정되어 쫓아온 거예요!”

사실과 다른 팽운의 말에 온동이 허허 웃었고, 사실을 모르는 강혁수는 그저 고마워 연신 팽운과 온동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고맙다. 고마워. 너희가 아니었으면 저 거북이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붙잡혔을 거야. 저 거북이의 무공이 대단하더구나. 방어가 철벽과도 같아서 나는 도저히 뚫을 수가 없더구나. 그런 거북이를 물리치다니, 온동 너 참 대단하고 장하구나.”

눈이 보이지 않는 온동이 팽무일의 파천신검을 무력화시킨 것이 놀라워 강혁수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온동이 얼굴을 붉히며 답하였다.

“운이가 금강대도를 빌려주지 않았다면, 나도 팽무일에게 당했을 거야.”

“아니에요! 동이 오라버니는 금강대도가 없어도 저 거북이 숙부를 물리치셨을 거예요.”

팽운이 크게 고개를 저으며 말하니, 그 말 속에 온동에 대한 깊은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거북이 숙부?”

강혁수가 의아해 물으니, 팽운이 표정을 굳히며 답하였다.

“네, 저 거북이가… 제 백부예요.”

이에, 강혁수가 입을 쩍 벌리며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품에서 뭔가를 꺼내 팽운에게 건네었다.

“아까 저 거북이 백부가… 내 멱살을 쥐었을 때, 내 품에 이걸 넣더라고.”

팽운이 받아 보니, 한 장의 서신이었다.

“뭐지?”

서신을 펼쳐 읽던 팽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속히 안시성으로 돌아가 온달님을 뵈야겠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팽운이 서두르니, 영문도 모른 채 온동과 강혁수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이때, 누군가 등 뒤에서 나타나더니 온동과 강혁수의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어이쿠!”

뒤통수를 맞은 혁수가 비명을 질렀고, 바람이 전하는 소리에 몸을 피한 온동이 금강대도를 고쳐 쥐며 소리쳤다.

“누구냐?”

“누구긴, 이놈아! 검 안 내려? 죽을래? 맞을래?”

경우의 음성이었다.

이에, 온동이 풀이 죽어 금강대도를 내리니, 경우가 다가와 귀를 잡아당기며 꾸중하였다.

“너희는 말이야, 이제 다 죽은 거야. 이 철도 없고, 대책도 없고, 겁도 없는 어린 것들아!”

사냥꾼으로 변장한 경우와 대식을 만난 온동 일행은 한참 꾸중을 들으며 안시성으로 돌아가 온달에게 서신을 전하였다.

[온달 장군, 양만춘 성주.

스스로 대막리지 지위에 오른 대역무도한 연개소문이외다.

당의 황제 이세민은 안시성이 고립무의 상태라 여기고 있고, 실상 그러하외다.

안시성은 새로 꾸려진 조정을 신뢰하지 않고, 요동의 각 성들과도 교류를 단절한 상태이며, 평양성의 내 목을 노리고 있을 것이오.

허나, 봄이 오면 당군은 요하를 건너 요동을 공격할 것이고, 신라의 상주군은 한수를 건너 평양성을 노릴 것이오.

여기에 더하여, 당항성의 수군 또한 폐수를 통하여 평양성을 노릴 터이니, 고구려의 운명은 풍전등화와도 같소.

하여, 내 은밀히 제자 팽무일에게 이 서신을 전하라 명을 내리니, 오해도 곡해도 없이 문자 그대로 이해하여 주기 바라오.

나는 고구려의 대막리지로서, 평양성을 노리는 신라의 상주군을 물리치고, 당항성의 수군을 묶어 놓기 전까지 평양성의 군사를 돌려 요동을 공격하는 당 군을 대적하지 못하오.

이에, 당 군은 파죽지세로 요동 각 성을 공략할 것이고, 우리의 요동은 극심한 피해를 입을 것이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당 황제 이세민은 안시성과 평양성이 반목한다 여기고 있으니, 이는 우리 고구려의 천운이 아닐 수 없소.

온달 장군과 양만춘 성주는 나를 증오할 터이나, 고구려 백성을 위하여.

내가 신라의 상주군을 격파하고 당항성의 수군을 묶어 놓을 때까지 요동이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기 바라오.

고구려의 내전은 당 군을 격파한 후, 시작하여도 충분하다 여기니 부디 힘을 보태 주기를 청하오.

내 제자 팽무일은 당 황제 이세민이 의심하지 않도록 적당히 진을 친 후, 겨울이 오면 물러날 것이니, 이는 의심치 않아도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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