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78화 (278/328)

278화 고립무의(孤立無依) 안시성 (5)

위증의 간에 황제 이세민이 표정을 굳히니, 장량이 이를 살피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위증! 그대는 틀렸소이다! 온달은 선대 태왕의 처남으로 연개소문에 대한 복수심이 상당할 게 분명하오! 그대는 어찌 이다지도 고집이 세고 자신의 주장만 펴려는 게요?”

“제 주장만 펼치는 것은 그대가 아니오? 그대는 무슨 망상을 하기에, 온달이 안시성을 바칠 것이라 꿈꾸는 게요?”

위증과 장량이 서로를 비난하며 제 주장을 굽히지 않으니, 황제 이세민이 소리쳐 꾸짖었다.

“그만들 하시오!”

이에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니, 황제 이세민이 엄히 말하였다.

“연개소무은 극악무도한 역도로 내가 책봉한 고구려 왕을 죽이고, 시신마저 훼손하였소. 이에 나는 폐도 연개소문을 벌하고, 무참히 살육당한 고구려 왕의 넋을 위로하며, 연개소문의 악행에 저항하는 성을 구원코자 군을 일으킬 것이오! 그대들은 그리 알고 출병 준비를 서두르기 바라오.”

황제 이세민이 개소문에게 시해당한 선대 태왕 건무의 혼령을 위로하고 안시성을 구하기 위해 군을 일으킨다고 말하니, 위증은 말없이 눈을 감았고 장량은 크게 기뻐하였다.

‘황제께서 내 주장을 살피신 게야! 황제께서 온달이 고립무의의 안시성을 바치리란 내 주장을 들으신 게야! 저 거만한 위증이 내게 패한 게야! 하하하.’

모두가 황제 이세민의 위엄을 거스르지 않고자 머리를 조아려 따르니, 황제 이세민이 이어서 다시 말하였다.

“내 친히 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향할 것이며, 수군으로 하여금 비사성을 치고 해상으로 보급을 수송케 하겠노라.”

이에, 침묵하던 위증이 다시 입을 열어 이견을 내었다.

“폐하, 비사성은 삼면이 바다와 접한 절벽이옵고, 오직 한 면만이 공략할 수 있는 성문이온데, 이 성문을 공략하고자 한다면 배후로 진입하는 수밖에 없나이다. 수의 주나후도 비사성 공략을 시도하였으나, 패한 바 있사오니,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위증 그대의 말은 옳으나, 나는 수의 주나후와 다르다.”

황제 이세민이 고개를 저으며 고집을 굽히지 않았으나, 위증 또한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폐하, 비사성 앞 해상은 고구려 수군이 주요 거점을 지키고 있어 제압이 불가하옵니다.”

이에 황제 이세민이 눈살을 찌푸리니, 장량이 나서 아뢰었다.

“폐하, 요동으로 대군이 진입하여 고구려군의 발을 묶고, 우리 수군이 평양성으로 향할 것이라 고구려군이 믿게 한 후, 바다를 건너 빠르게 상륙하여 야습한다면 제아무리 비사성이라 할지라도 함락될 것이옵니다.”

장량의 계책이 옳다 여긴 황제 이세민이 크게 기뻐하였다.

“역시 장량이로다! 그대가 수군을 지휘하여 비사성을 함락하라!”

이에, 장량이 머리를 조아려 명을 받으니 위증이 머리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었다.

* * *

당이 고구려 정벌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평양성에도 전해졌다.

“당의 애송이 황제 이세민이 겁도 없구나!”

다섯 자루의 검을 등에 메고 양 허리춤에 검을 찬 개소문이 크게 소리치니 대전 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에, 태왕 보장이 개소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대막리지,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태왕 폐하, 적이 출병을 준비한다면! 우리도 맞이할 준비를 하면 그만입니다. 저 무도한 당 군이 요동에 발을 들인 순간, 우리 고구려의 개마무사들이 적의 시신마저 짓밟으며 만리장성을 넘어 정벌에 나설 것입니다!”

개소문이 이처럼 장담하였으나, 태왕 보장은 이를 믿기 어려워 수심이 가득하였다.

이에 개소문이 태왕을 꾸짖듯 크게 소리쳐 말하였다.

“폐하! 우리 고구려는 개마무사 십오만을 양병 중에 있으며, 이미 당의 침공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 대비도 철저히 하고 있었나이다. 심려치 마소서!”

“대막리지만 믿겠소.”

태왕 보장이 눈치를 살피며 겨우 답하니 개소문이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돌려 대소 신료들에게 명하였다.

“그간 요동에 전시조정이 마련되었으나, 이번 전쟁은 전시조정을 이 평양성에 두겠소. 모두 그리 알고 준비하기 바라오!”

이에, 태대사자 극우여가 의아해 물었다.

“하면, 요동성에 대막리지가 가지 않는 겁니까?”

“나는 요동성에 가지 않소.”

개소문이 잘라 말하니, 극우여가 더욱 의아해 다시 물었다.

“당 황제가 친히 대군을 이끌고 나섰음에도, 대막리지께서 요동에 전시조정을 세워 진두지휘하지 않는 연유가 있으신지요?”

개소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잘라 말하였다.

“신라가 한수와 폐수로 침공해 올 것이기 때문이오.”

이에, 태왕 보장을 비롯한 모두가 놀라니 개소문이 손짓으로 명하였다.

명을 받은 장수가 앞으로 나와 지도를 세우니, 개소문이 다가가 가리키며 말하였다.

“신라는 상주 군으로 한수를 넘어 평양성 진입을 시도할 것이오. 또한 당항성의 수군도 군사를 일으켜 폐수로 평양성 공략을 노릴 것이오.”

“그렇다면 큰일 아니오?”

태왕 보장이 놀라 소리쳐 물었다.

이에, 개소문은 쳐다도 보지 않고 답하였다.

“폐하, 한 줌도 되지 않는 신라 따위는 심려치 않으셔도 되십니다.”

“허나, 당군과 신라가 삼면에서 공격해온다면 이를 어찌 막을 게요?”

태왕 보장이 겁에 질려 재차 물으니, 개소문이 오른발로 바닥을 크게 밟아 큰 소리를 일으켜 태왕의 말을 끊었다.

“폐하! 소장이 요동에 전시조정을 세우지 않음은 평양성을 노린 이 신라를 요절낸 후 이세민을 박살 내기 위함입니다. 시건방지기 이를 데 없는 신라는 심려치 마소서! 소장이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을 것입니다!”

개소문이 눈을 부라리며 이처럼 자신하니, 태왕 보장도 더는 묻지 못하였다.

이때, 새로 상장군에 오른 추자형이 나서 물었다.

“허면, 아직도 충성을 맹세치 않는 안시성은 어찌하실 생각이시옵니까?”

당 군을 대적하기 전, 아직도 따르지 않는 안시성을 남겨둠이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이에, 개소문이 담담히 명하였다.

“그대가 내 제자 팽무일과 함께 군을 이끌고 겨울이 오기 전 안시성을 제압하도록 하시오.”

개소문의 명에 상장군 추자형이 머리를 숙여 바로 답하였다.

“속히 군을 꾸려 안시성의 충성을 받아오겠나이다.”

* * *

상장군 추자형이 개마무사 일만과 보군 삼만을 이끌고 출병 준비를 마치자, 팽무일도 군사 일만을 이끌고 평양성 밖에서 합류하였다.

“그대가 아직 직책은 없으나, 내 그대를 아래라 여기지 않고 항시 상의하며 안시성을 제압하겠소.”

상장군 추자형이 개소문의 제자 팽무일을 반겨 맞이하며 말하였다.

이에, 팽무일이 민머리를 매만지며 히죽 웃었다.

“뭐, 그래 주면 나야 고맙고. 내가 군사들을 지휘한 경험은 없으나, 산적 떼들은 지휘한 경험이 풍부하니, 나름 쓸 만할 게요.”

팽무일의 말에, 상장군 추자형의 안색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이놈… 산적이었던 거야? 아니, 대막리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놈과 함께 안시성 공략을 하란 것이지? 제자라고는 하나, 합하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데?’

이때 팽무일이 마치 추자형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히죽 웃으며 말하였다.

“제자 맞으니, 너무 의심하지 말고. 그런데, 안 갈 거요?”

* * *

가을이 깊어가던 안시성에도 당의 황제 이세민이 침공하리란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평양성에서 오만의 군사가 안시성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결국, 우리의 행동이 늦어 평양성이 먼저 움직였군요.”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분해 입술을 깨물며 말하였다.

이에, 막바우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장군! 내게 군사를 주시오! 당장 상장군 추자형과 팽무일의 목을 베어오겠소!”

이에, 온달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우리 고구려군끼리 피를 흘릴 수는 없네.”

“그럼 가만히 목만 내밀 거요? 나 잡아가쇼! 하면서?”

이에, 온달이 답하지 않으니 평강이 대신 입을 열었다.

“봄이 오면 당 군이 요하를 건너 요동을 공략할 것입니다. 평양성의 개소문도 이를 알 터이니, 결코 장기전을 원하지 않을 테지요.”

“그렇겠죠. 당 군과도 싸워야 할 테니…….”

막바우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니, 평강이 빙그레 웃으며 마저 말을 이었다.

“우리 장군님께서 고구려 군사들 간의 피를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시니, 가급적이면 나가 맞서 싸우지 말고 수성을 하며 겨울이 오기를 기다립시다. 필경, 저들은 겨울이 오면 당 군과의 전쟁을 대비해야 하기에, 물러날 것입니다.”

이에, 침묵을 유지하던 경우가 입을 열었다.

“공주님의 말씀도 옳습니다만, 저들이 물러난 후 내년 봄에 당 군이 몰려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이 물음에 막바우가 당연하다는 듯 평강을 대신하여 답하였다.

“당연히 당 군을 맞아 싸워야지! 몰라서 물은 거야?”

“허나! 우리 고구려군이 우리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지 않은가?”

경우가 몹시 분한 듯 소리쳐 물으니, 기가 죽은 막바우가 평강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에 평강이 방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 그것이라니요?”

경우가 의아해 물으니, 평강이 웃으며 답하였다.

“경우 장군께선 우리를 적으로 간주한 이들을 아직도 우리 고구려 군이라 말씀하십니다.”

“그, 그것은…….”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땅을 지키고, 우리 고구려군도 당 군이 쳐들어오면 우리가 아닌 당 군과 싸울 것입니다. 예로부터 부모가 죽으면 의가 나쁜 자식들은 재산을 두고 다툰다고 합니다. 허나, 집에 도적이 들면 다투던 자식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도적부터 물리친 후, 다시 재산 다툼을 하지요.”

평강의 말에 막바우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바로 그거요! 일단 당 군부터 요절을 낸 후, 개소문을 자근자근 씹어주면 그만입니다!”

경우도 더는 이견을 내지 않으니,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허면, 수성 준비를 하겠습니다. 들과 밭에 불을 내고 백성들을 성안으로 들인 후, 인근 마을 우물에 독을 풀겠습니다.”

이에, 침묵을 유지하던 온달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성주, 우물에 독을 풀지는 마시구려.”

혹여 고구려 군사들이 독이 든 물을 마실까 우려된 모양이었다.

이에, 양만춘이 고개를 끄덕여 답하니, 온달이 감사를 표하였다.

“고맙소, 성주.”

회의가 마무리되자, 구석에 앉았던 온동이 슬그머니 일어나 자리를 벗어났다.

앞도 볼 수 없는 온동이 발소리를 죽여 빠르게 걸음을 옮기니, 멀리 떨어져 바라보던 팽운이 쪼르르 달려와 물었다.

“오라버니, 회의 끝났어요?”

“…….”

온동이 아무런 답도 주지 않고, 그저 발만 빠르게 놀리니 팽운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뒤를 쫓으며 계속 물었다.

“오라버니, 어딜 그리 급히 가시는 거예요? 계속 말하지 않으면 소리쳐서 공주님을 부르겠어요!”

팽운이 으름장을 놓으니, 온동이 그제야 발을 멈추었다.

“쉿! 운아. 내가 급히 가야 할 곳이 있단다.”

“어디 가시는데요?”

팽운이 커다란 눈을 빛내며 물었으나, 온동은 팽운의 표정을 살필 수 없었다.

“우리 고구려군이 안시성을 공격하려는구나. 우리 장군님께선 고구려군의 피를 보고 싶어 하시지 않으니, 내가 도움이 되고자 한단다.”

“오라버니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팽운은 온동의 생각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으나, 짐짓 모르는 척 계속 물었다.

온동이 한숨을 내쉬며 소리 죽여 말하였다.

“장수가 없으면, 군사들은 평양성으로 물러날 것이다.”

“오호라! 우리 천하무적 온동 오라버니께서 장수의 목을 베러 가시는군요.”

“쉿!”

팽운의 목소리를 낮추기 위해 온동이 급히 손을 들어 제지하였다.

“좋아요! 가세요. 그러나, 저도 함께 가요.”

“그, 그건 안 된다.”

고작 열두 살의 어린 팽운을 데리고 갈 길이 아니라 여긴 온동이 단호히 잘라 말하였다.

그러나 팽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면, 공주님을 부르겠어요! 공주님!”

이에, 온동이 놀라 급히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손을 뻗어 팽운을 제지하였다.

그러나, 팽운도 그간 온동에게 가르침을 받은 덕에 몸놀림이 제법이었다.

빠르게 상체를 틀어 온동의 손을 피한 팽운이 다시 소리쳤다.

“공주님!”

이에, 온동이 크게 당황하여 급히 말하였다.

“알았다! 그만! 그만하거라. 따라와도 되니, 소리 내어 공주님을 부르지 말아라.”

“진작에 그럴 것이지. 제가 오라버니의 눈이 되어 목 잘릴 장수를 찾아 드릴게요. 자 어서 가요!”

마치 소풍 나가듯 팽운이 들떠 온동의 소매를 쥐고 앞장섰다.

“그런데 오라버니, 고구려군의 장수가 누구래요?”

온동도 장수가 누군지 아직 듣지 못해 제대로 답하지 못하였다.

“글쎄다. 이름은 못 들었으나, 장수를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구나.”

“앞도 못 보는 오라버니가 어찌 혼자 장수를 찾겠어요? 아무튼 이젠 염려 마세요. 제가 딱 찾아 드릴게요. 오라버니는 목만 치세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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