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살육 (11)
“대역죄인 강이식을 쏴라!”
성난 범처럼 달려드는 대장군 강이식의 노한 모습에 상장군 대건상이 급히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그리고 명을 받은 궁수들이 일제히 강이식을 향해 살을 날렸다.
연회장 좌우에서 활짝 열린 문들로 화살이 날아드니, 강이식은 앞뒤로 화살을 맞는 형국이었다.
“대장군!”
개소문이 급히 소리치며 강이식을 구하고자 달려가 배후를 지키며 파천신검 초식을 펼쳤다.
그러나 연회장 한쪽 면을 모두 열어젖힌 문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전부 막아내기란 불가능하였다.
이에 백두검법의 보법을 밟으며 몸을 계속 이동해 파천신검 초식을 펼치니, 개소문의 손끝이 닿는 모든 곳의 화살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개소문이 배후를 지키니 강이식도 뒤를 걱정하지 않고 대건상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며 양손에 쥔 상다리를 휘둘러 화살을 쳐내었다.
그러나 막아내야 할 화살의 개수가 너무도 많아 어깨와 팔다리에 무수히 많은 화살이 박혀 점차 근골이 상해 갔다.
“컥!”
점차 다리가 무거워지고 상다리를 휘두르는 강이식의 팔이 둔해지니, 정면에서 날아드는 화살조차 막아내기 어려워졌다.
“쏴라! 계속해서 쏴라! 상처 입은 범은 이리 떼의 먹이가 되는 법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치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대건상이 계속해 명을 내렸다.
화살에 맞고도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강이식이 두려운 궁수들은 쉴 새 없이 화살을 날리며 애써 공포를 이겨 내기 바빴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이를 바드득 갈며 날아드는 화살을 상다리로 쳐낸 강이식이 마침내 궁수들과의 거리를 삼 보 이내로 좁혔다.
그러나 거리가 좁혀지자, 정면뿐만 아니라 좌우 양옆까지 방어가 필요했고, 날아드는 화살은 더욱 빨라졌다.
“쏴라!”
대건상의 명에 일제히 궁수들의 살이 날아들고 강이식의 좌우 양쪽이 위태로워졌다.
“대장군!”
이때 흑비걸과 상장군 주용이 좌우에서 달려와 술상들을 밟고는 몸을 날려 강이식의 양옆에서 날아드는 화살을 몸으로 막아냈다.
“상장군! 대모달!”
근접에서 날아든 화살들을 몸으로 막아낸 주용과 흑비걸이 무너지듯 고꾸라지니, 강이식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여 외치고는, 다시 화살을 시위에 먹이는 궁수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으아악!”
전신을 피로 물들인 강이식이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처럼 상다리를 휘두르니, 정면의 궁수 다섯이 비명과 함께 머리가 으깨져 쓰러졌다.
이에, 병장기를 지닌 군사들이 강이식을 막고자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대건상… 이놈! 네놈이 감히 역모를 꾸몄느냐?”
달려드는 군사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상다리로 후려쳐 쓰러뜨린 강이식이 불타는 눈으로 대건상을 노려보았다.
대건상은 감히 강이식과 눈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뒤로 물러났고, 궁수들도 겁에 질려 흩어졌다.
이때, 모달 유협이 대건상의 뒤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나타나더니, 강이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대장군! 검귀 칭호를 가져가겠소!”
그리고 개소문을 향해 화살을 날리던 궁수들의 뒤에서 모달 구진충이 군사들을 이끌고 나타나 크게 명하였다.
“저놈이 역모를 일으킨 놈들이다. 남은 놈들을 모두 베어라!”
연무장에서 연회를 즐겨야 할 군사들이 대연회장으로 들이닥쳤음은, 연회장 앞을 지키던 태왕의 호위 백여 명이 모두 죽었음을 의미했다.
“우리가 왜 역적이냐? 네놈들이 역적 아니더냐!”
고돌발이 분해 소리쳤으나, 이내 곧 군사들의 함성에 묻혔다.
* * *
“태왕의 목을 가져와라!”
병풍에 묻힌 태왕과 단공을 향해 달려가는 군사들에게 북장원이 재차 명하며 미소 지었다.
“천하제일검이라던 단공도 별것 아니었구나. 하하하.”
북장원의 웃음이 끝나기도 전에 병풍 속에서 한 줄기 빛이 천장을 향해 쏘아 올라가더니 방향을 틀어 정면에서 달려드는 군사들을 향해 쭉 뻗어 나갔다.
“아아악!”
한 줄기 빛이 한 일자로 길게 베어 나가자, 달려들던 군사들의 몸이 둘로 분리되며 별실 안엔 온통 비명만이 난무하였다.
군사들의 몸에서 뿌려진 피가 바닥을 흠뻑 적셔 온통 붉은색이었고, 무너진 병풍 앞엔 군사들의 시신이 쌓여 시야마저 가렸다.
“이… 이!”
일순 군사들의 발이 얼어붙고, 북장원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우드드득.
무너진 병풍 속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병풍이 들썩이다 날아갔다.
그리고 태왕을 부축한 단공이 북장원을 노려보며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대역죄인! 북장원은 속히 무릎을 꿇라!”
단공의 입에서 격노한 음성이 터져 나오니, 그 기에 밀려 군사들의 몸이 휘청였다.
북장원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다 발이 걸려 그만 뒤로 자빠지고는, 겁에 질려 크게 소리쳤다.
“막아라! 단공을 막아라!”
이에, 겨우 용기를 낸 군사들이 단공을 향해 달려드니, 단공이 한숨을 내쉬고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쥐고 군사들을 상대하였다.
왼팔은 태왕을 부축하고, 오른팔로 검을 휘둘렀으나,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검을 휘두를 때마다 군사들의 머리와 팔이 잘려 떨어질 따름이었다.
“괴물이다! 괴물!”
군사들이 겁에 질려 소리지르니, 북장원이 급히 일어나 독려하였다.
“겁먹지 마라! 고작 한 놈이다!”
그러나 북장원이 아무리 독려하여도 별실 안 군사들은 제대로 공격도 하지 못한 채 단공의 검에 목이 잘릴 뿐이었다.
단공의 검이 빠르고 절묘히 움직일 때마다 별실 안 군사들의 머리가 피를 뿌리며 날아다녔고, 북장원은 겁에 질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내… 내가, 다, 단공을… 너무… 얕봤구나… 태왕이… 단, 단공을 믿고 의지하는 이유가… 있구나.”
단공의 부축을 받던 태왕도 점차 의식을 차려 바닥에 떨어진 검을 쥐고는 북장원을 노려보았다.
“종리위두대형! 감히 역모를 꾸몄는가? 고작 이 정도 수에 당할 것이라 여겼는가?”
태왕 건무가 엄히 꾸짖으니, 북장원은 겁에 질려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태왕 폐하… 용서하여 주시…….”
이때, 북장원의 뒤로 모달 모석주가 군사들을 이끌고 달려오며 소리쳤다.
“종리위두대형을 구하고 태왕의 목을 쳐라!”
북장원이 겨우 정신을 차려 쳐다보니, 복도를 가득 메우며 군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모달 모석주! 어서와 나 좀 살려주시게!”
북장원의 외침에 태왕 건무와 단공이 시선을 복도로 옮기니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군사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단공…….”
태왕 건무가 마음을 굳혀 단공을 나지막이 불렀다.
이에, 단공이 건무의 앞으로 한발 나서며 검을 고쳐 쥐고는 천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쳤다.
“천! 하! 제! 일! 검! 단공! 명을 받나이다!”
웅후한 기를 담은 단공의 외침에 몸을 일으켜 세우던 북장원이 놀라 다시 주저앉았고, 복도를 내달려오던 군사들의 선두가 몸을 휘청여 쓰러졌다.
“고작 한 놈이다! 단공만 베어라!”
모달 모석주가 겨우 벽을 잡고 몸을 가누며 외치니, 두려움을 이겨낸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단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사방에서 호각이 울리며 군사들이 담을 넘어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
“제길!”
문을 지키며 군사들을 막아내던 모용상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좌우에서 담을 넘은 군사들이 모용상과 연정토, 연수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몸을 지키시오!”
모용상이 정면에서 달려드는 군사를 베며 소리치니, 연정토와 연수영이 좌우의 적을 베며 서로의 몸을 지켰다.
그러나 점차 몸은 느려지고, 군사들의 수는 늘어만 갔다.
이때, 정면에서 달려들던 군사들의 배후에서 함성이 울리더니, 군사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침입자들을 베어라!”
단 사부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단 사부의 뒤를 따라 사병 백여 명이 빠르게 달려오며 병장기로 군사들을 마구 베고 찔렀다.
단 사부가 별채를 지키던 사이, 후원으로 달려간 모용설이 그곳에서 사병들을 이끌고 왔던 것이다.
기세 오른 모용상과 연정토, 연수영은 사력을 다해 몸을 지키며 역공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 * *
“야수! 도우러 왔습니다!”
모용설이 군사 백여 명을 이끌고 달려와 소리치니, 홀로 백여 명이 넘는 군사들을 상대하던 야수가 봉두난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눈을 빛내며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이제… 모. 두… 베어… 주마.”
야수의 팔다리는 피로 물들어 있었으나, 기세는 여전하여 그가 내뿜는 살기에 주변 군사들이 겁을 집어먹고 주춤거렸다.
그 틈을 노린 야수가 벼락 치듯 고함을 지르며 두 자루 박도를 휘두르니, 한번 휘두를 때마다 두서넛의 군사가 몸이 나뉘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외마디 비명과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에 등골이 서늘해진 군사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치기 바빴고 야수가 먹이를 쫓는 짐승처럼 그 뒤를 노렸다.
* * *
“모달 사순이라 했나?”
암살대 십여 명이 합류하자, 당진평이 느긋이 물었다.
어느덧 사방에서 울리던 호각 소리는 멈추었고, 군사들의 비명만이 대신하고 있었다.
“모달 사순… 오늘 여기가 너의 묫자리가 될 것이다.”
자신감 넘치는 당진평의 말에 사순이 이를 바드득 갈며 명하였다.
“놈들은 고작 십여 명이다. 대역죄인들의 목을 가져와라!”
이에,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십여 명의 암살대를 이끈 당진평도 기세 높여 검을 휘두르며 모달 사순을 향해 달려갔다.
앞을 막는 군사들의 몸뚱이가 당진평의 검에 잘려 길이 열리고, 모달 사순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당진평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날렸다.
“모달 사순!”
* * *
팽무일은 더 이상 경공을 펼쳐 허공을 밟지 않아도 될 만큼 군사들의 수가 줄어들자, 히죽 웃으며 파천신검 초식을 거두었다.
“지금부턴 어릴 적 익힌 팽가도법으로 대적해주마.”
꽤나 자신감 넘치는 태도였다.
이와 달리 고작 이십여 명밖에 남지 않은 군사들은 겁에 질려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도망칠 궁리를 하였다.
“어딜 자꾸 슬금슬금 물러나는 거냐? 바쁘니 빨리 끝내자고. 어서 들어와!”
팽무일이 크게 호통치며 한 발 내딛으니, 겁에 질린 군사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내뺐다.
그러나, 이들의 뒤로 단 사부와 야수가 모용설이 이끄는 사병들과 함께 달려오며 도주하던 군사들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거. 북. 이… 괜찮은가?”
전신을 피로 물들인 야수가 팽무일을 염려하여 물었다.
이에, 팽무일이 기도 안 찬다는 듯 피식 웃었다.
“네 몰골이나 보고 남 걱정하라고. 버벅이 자식이…….”
이어서, 당진평이 모달 사순의 목을 들고 암살대 십여 명과 함께 나타나고, 단 사부가 모용상, 연정토, 연수영과 함께 사병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모두 무사했구려.”
연정토가 팽무일의 어깨를 다독여 격려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핏물과 시신들로 가득하였다.
이때, 모용상이 흐트러진 옷을 가다듬으며 말하였다.
“서부 누살께서 위급하십니다. 서두릅시다.”
“그래! 이놈들이 내게 대역죄인이라 하였으니, 필경! 사부가 역모 누명을 쓴 거야! 연무장으로 가야 해!”
팽무일이 동의하며 소리치니, 모두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고작 상다리를 분질러 휘두를 뿐이었으나, 강이식이 양손에 쥔 상다리를 휘두를 때마다 광풍이 일고 병사들의 처참한 비명이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우드드득.
발로 쓰러진 군사들의 흉곽과 머리를 밟아 으깨며 강이식이 대건상을 쫓아 계속해 전진하니, 급히 달려온 모달 유협이 황급히 명하였다.
“막아라! 막아야 한다.”
이에, 활짝 열린 문으로 군사들이 쏟아지듯 밀려 들어오며 강이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딜 감히!”
머리를 산발한 고정의가 검을 빼앗아 쥐고는 강이식을 돕기 위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 뒤를 쇼락과 공손향이 따르며 고정의를 지켰다.
이때, 개소문에게 화살을 날리던 궁수들 뒤로 선 모달 구진충이 개소문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놈이 대역죄인 개소문이다! 저놈을 잡아라!”
명을 받은 군사들이 맹렬히 달려들자, 개소문은 날아들던 화살을 낚아채 군사들을 향해 비검술을 펼쳐 빠르게 날렸다.
선두의 군사 대여섯이 일시에 쓰러지자, 기세가 꺾인 군사들이 주춤하였다.
그 틈을 노린 개소문이 바닥에 떨구어진 화살과 검을 닥치는 대로 쥐고는 쉴 새 없이 비검술을 펼쳐 날렸다.
“으아악!”
개소문의 신묘한 재주에 기가 질린 군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그저 도망치기 바빴다.
이때, 연회장 정면으로 들어선 여범이 개소문을 힐끔 쳐다보고는 궁수에게서 활을 빼앗아 바로 살을 날렸다.
방심했던 개소문의 옆구리에 화살이 박히고, 개소문이 고통에 몸을 굽히자, 물러났던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다시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이… 이런 제길…….”
황급히 화살을 뽑은 개소문이 이를 악물었고, 살점이 묻어난 화살촉에선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대역죄인 개소문의 머리를 가져와라!”
대모달 여범의 명에 개소문을 향해 삼면에서 군사들이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