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68화 (268/328)

268화 살육 (10)

난데없이 습격한 군사들에게 둘러싸인 팽무일이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도대체 왜 고구려군이 우리를 공격하는 거냐고!”

“닥치고 목이나 내어놓거라! 쳐라!”

우두머리로 보이는 군사가 소리치자, 팽무일을 에워싼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런 제길! 고구려군을 죽이면 안 되는데…….”

망설일 겨를 없이 팽무일은 파천신검을 펼쳐 몸을 지키고는 백두검법의 보법을 밟으며 포위망을 빠져나가려 애썼다.

이때, 별채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며 하인들이 도망쳐 오더니, 팽무일을 공격하는 군사들을 보고 놀라 되돌아 도망쳤다.

그러나 뒤쫓아온 군사들의 매정한 검에 하인들은 속절없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이놈들아!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면 어떡하냐?”

팽무일이 기가 막혀 소리쳤으나, 군사들은 칼날로 화답을 대신하였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갑작스러운 습격에 무장하지 못한 팽무일은 맨손으로 파천신검 초식을 펼쳐야 했고, 어느새 그의 손바닥과 팔은 피로 물들어만 갔다.

* * *

팽무일과 달리, 잠잘 때도 두 자루 박도를 허리춤에 차고 자는 야수는 상황이 조금 나았다.

“누. 구… 냐?”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감정을 싣지 않고 물으면서도 야수의 박도는 거침없었다.

앞에서 찔러오는 칼날을 가르고 가장 앞서 덤벼든 군사들의 머리를 쪼갠 야수가 눈을 빛내며 으르렁거렸다.

“이… 유는. 없다. 너희는, 모. 두. 죽. 는. 다.”

야수와 마주한 백여 명의 군사들이 오히려 기세에 눌려 흠칫 한발 물러서고, 그 틈에 야수가 괴성을 지르며 군사들 속으로 돌진하였다.

“죽! 어! 라!”

야수의 몸이 허공에 뜨며 앞을 막은 군사들의 머리를 밟고는 힘차게 박도를 휘둘렀다.

야수에게 머리를 밟힌 군사들이 고꾸라지고, 그와 동시에 야수의 박도에 베인 군사들의 살점들이 흩날렸다.

“으아아악!”

처참한 비명이 야수의 괴성을 덮었다.

* * *

연정토와 연수영을 구하기 위해 사병 이백을 이끌고 달려가던 가림은 담장에 올라선 군사들이 날린 화살에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이에, 사병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화살들이 쉴새 없이 날아들어 이들의 목숨을 마저 끊었다.

“안채로 진입한다. 연정토와 연수영의 목을 베라!”

누군가의 외침에 담장에서 군사들이 뛰어내리며 안채를 향해 내달렸다.

이에, 연개소문의 하인들이 몽둥이와 칼을 들고 맞섰으나, 수적 열세로 모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대역죄인의 가솔 한 명도 남기지 말고 목을 베어라! 모달께서 후한 상을 내리실 것이다!”

우두머리의 외침에 군사들이 기뻐 양 떼를 습격하는 이리 떼처럼 연개소문의 하인들을 마구 베며 안채로 달려갔다.

무예를 조금 익힌 하인들은 정병들의 상대가 되지 않아, 곳곳에서 비명과 함께 시신이 널브러졌다.

“속히 연정토의 목을 베라!”

기세 올라 안채로 향하는 문을 넘은 군사들의 선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누가 감히 살육을 펼치는가?”

연정토와 연수영을 구하기 위해 모용상이 담장을 내달려와 문 앞을 지키며 크게 호령하고 있었다.

“한 놈도 안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다. 살고 싶으면 돌아가라!”

모용상의 분노한 눈이 이글거리며 마주한 군사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고작 길을 막은 한명 때문에 돌아갈 군사들이 아니었다.

“쳐라!”

명이 내려지고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드니, 이에 맞서 모용상이 칼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칼날이 거리를 좁혀온 군사들의 살과 뼈를 베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군사들은 자신들의 앞에 쌓인 시신들을 짓밟으며 집요히 거리를 좁혀왔다.

“모용상! 내가 돕겠다!”

안채에서 연정토가 커다란 도끼를 들고 달려오며 외쳤고, 그 뒤를 연수영이 두 자루 검을 쥐고 바람에 실린 나뭇잎처럼 가볍게 몸을 날려 오고 있었다.

“저 두 연놈들이 연정토와 연수영이다! 목을 베라!”

우두머리의 외침에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연정토와 연수영이 가세하니, 모용상이 더욱 기세를 올려 칼춤을 추었고, 그의 칼날이 바람을 가를 때마다 잘린 팔과 목이 허공에 떠올랐다.

“모두 베어주마! 계속 오거라!”

피를 흠뻑 뒤집어쓴 모용상이 거친 호흡을 내쉬며 소리쳤다.

그리고 어느새 곁을 지킨 연정토와 연수영이 사력을 다해 군사들의 몸뚱이를 난자하기 시작하였다.

* * *

“설 공녀! 어디 계시오!”

이미 팔다리 어느 한군데 성한 곳 없는 단 사부가 모용설을 찾아 별당을 헤매였고, 그의 곁으로 다가온 군사들은 허무하게도 비명을 지르지 못한 채 명을 달리하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 수로 공격해 왔단 말인가? 가소롭구나!”

단 사부의 검이 마지막 남은 군사의 목을 베던 순간, 별채 담장 위로 백여 명의 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화살이 어둠을 찢고는 그대로 단 사부의 몸에 박혔다.

“컥!”

피를 한 모금 토한 단 사부는 이글이글 타는 횃불로 시선을 옮기고는 그대로 몸을 날려 횃불을 걷어차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 이어서 날아든 화살촉들이 횃불에 빛나자, 단 사부의 예리한 검날이 모조리 쳐내었다.

“어찌 살아온 인생이거늘… 너희 따위에게 죽을성싶으냐?”

담장 위 군사들을 노려보며 단 사부가 이를 바드득 가니, 등골이 서늘해진 군사들이 몸을 부르를 떨었다.

“고작 한 놈이다! 겁먹지 말고 목을 쳐라!”

이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군사가 애써 두려움을 떨쳐내고 소리치니, 군사들이 용기를 내어 담장에서 뛰어내리며 단 사부에게 달려들었다.

“시건방지기가 이를 데 없는 놈들이로다!”

별채에서 모용설을 찾기 전까지 켤코 물러설 수 없는 단 사부였기에 비호처럼 몸을 날려 군사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 * *

자신의 좌우 양옆에서 달려드는 군사들의 칼날을 양팔을 벌려 겨드랑이에 끼고 비튼 팽무일이 경공을 펼쳐 허공에 떠오르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드디어 나도 칼이 생겼도다! 하하하.”

양손에 칼을 쥔 팽무일이 허공에 뜬 채로 파천신검 초식을 펼치니, 군사들이 위를 올려다보며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땅에 발을 딛고 힘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도 팽무일이 펼친 파천신검 초식은 물샐 틈 없이 팽무일의 몸을 지켰고, 오히려 군사들의 칼날을 상하게 하였다.

쨍쨍쨍!

병장기 날이 상해 부러지는 소리가 울리고, 당황한 군사들이 급히 물러나자, 경공을 펼친 팽무일이 허공을 밟듯 내달리며 군사들의 머리와 어깨를 마구 밟고 찼다.

팽무일의 다리가 짧아 거침없이 내지르는 발길질처럼 보였으나, 정확히 백두검법의 보법을 밟고 있었다.

“으아악!”

공격 기술이 전무한 파천신검이었으나, 허공에 몸을 띄운 팽무일은 발재간으로 공격을 펼쳐 군사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오호라! 나도 이제 공격 수단이 생겼구나! 하하하.”

자신도 모르게 펼친 공격이었으나, 제법 흡족히 통하니 팽무일의 마음은 뛸 듯이 기뻤다.

“사부의 비검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이제 파천신검을 펼치며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구나. 하하하.”

재차 도약하며 발재간을 부려 군사들의 머리를 밟아 고꾸라지게 한 팽무일이 기뻐 크게 웃었다.

팔다리가 짧고 땅딸막한 팽무일이 두 자루 검을 들고 파천신검을 펼치니, 비록 몸이 허공에 떠 있었지만, 빈틈없이 전신을 지킬 수 있었다.

“담장을 포위한 군사들을 불러와라! 저놈을 잡아라!”

팽무일의 재주에 놀란 누군가가 급히 명하니, 이내 곧 호각이 울리며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지원을 요청하는 호각은 이미 사방에서 울리고 있었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곳곳에서 비명이 울리고, 연개소문의 가솔이 아닌 군사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 * *

명림신을 지키기 위해 적수공권으로 고군분투하던 당진평이 돌연 히죽 웃었다.

“왔구나.”

당진평이 나지막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에게 달려들던 군사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지붕 위에서 검은색 인영들이 사뿐히 내려서며 당진평에게 칼을 겨눈 군사들을 향해 빠르게 암기를 날렸다.

“으아악!”

군사들이 기가 꺾여 급히 한발 물러나는 사이, 당진평의 뒤로 형제단 암살대가 자리를 잡았고 뒤이어 네 명의 암살대가 커다란 향로를 들고 지붕 위에서 뛰어내렸다.

향로에선 누런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내력을 지닌 이의 내공을 소진시키는 산공독이었다.

이때, 사방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호각이 울렸다.

삐이익!

“모달 사순이라 했나? 너희 군사들이 죽어가는 모양이군.”

당진평이 피 묻은 손을 옷에 닦으며 물었다.

향로에서 누런 연기가 퍼졌으나, 내력이 미약한 군사들에겐 큰 타격이 없는 듯하였다.

그러나 당진평 한 명도 제압 못 한 상황에서 돌연 암살대 십여 명이 등장하니, 모달 사순이 당황하여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향로는 필요 없는 듯하구나.”

당진평의 말에 네 명의 암살대도 향로를 내려놓고 검을 뽑아 들었다.

“내게도 검을 다오.”

당진평이 손을 내미니, 근처 암살대 한 명이 공손히 검을 건네었다.

이에 당진평이 빙그레 웃으며 사순에게 말하였다.

“자, 다시 시작해보자고. 어때 좋잖아?”

* * *

대연회장에 마련된 별실로 태왕이 들어서니, 북장원이 공손히 의자를 빼어 태왕이 앉도록 시중을 들었다.

태왕의 곁을 지키고 선 단공은 자신을 대신해 태왕의 시중을 드는 북장원을 고요히 바라보았다.

태왕이 자리에 앉자 북장원이 입을 열었다.

“폐하, 아뢸 것이 있사옵니다.”

“그래, 무엇이오?”

태왕의 물음에 북장원이 조금 거리를 두고 앉으며 답하였다.

“봉역도가 가짜임을 진대덕이 파악하였나이다.”

이에, 태왕 건무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아무런 말이 없으니, 북장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는 우리 고구려의 절대적 위기이옵니다.”

“…….”

“폐하, 어찌하여 가짜 봉역도를 황제에게 바치어 고구려를 위태롭게 하시었나이까?”

무엄한 물음이었으나, 태왕 건무의 눈빛은 고요하기만 하였다.

“종리위두대형, 그래 내게 잘못을 따져 묻겠단 게요?”

태왕 건무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잘못을 따져 묻기보다 일을 수습하고자 하나이다.”

태왕 건무도 북장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껴 차갑게 물었다.

“수습이라… 그래, 그대가 어찌 수습할 생각이오?”

“폐하의 목이면, 황제도 노여움을 풀지 않겠습니까?”

“뭐라?”

건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단공의 손가락이 북장원을 향했다.

그리고, 태왕의 등 뒤 병풍에서 화살이 쏟아져 나와 태왕과 단공의 배후를 덮쳤다.

지척에서 발사된 화살에 단공이 급히 태왕의 몸을 감싸며 허공에 손가락을 그었다.

한 줄기 빛이 단공의 손가락에서 쏟아져 나오며 날아드는 화살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병풍과 거리가 가까웠고, 발사된 화살의 개수가 너무도 많아 단번에 모두를 떨굴 수는 없었다.

“컥!”

태왕 건무를 대신하여 단공의 목과 등에 무수히 많은 화살이 박혔다.

피를 한 모금 토한 단공이 병풍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자, 한 줄기 빛이 칼날처럼 병풍을 베었다.

“으아악!”

병풍 속에서 처참한 비명이 일며, 숨어 있던 군사들이 쓰러지니, 병풍도 함께 쓰러져 태왕과 단공을 덮쳤다.

그리고 북장원의 등 뒤에서 문이 열리며 숨어 있던 군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태왕을 죽여라! 목을 베고 사지를 절단하여 가장 처참한 몰골로 황제에게 바쳐 고구려를 구해야 한다!”

북장원의 외침에 군사들이 일제히 무너진 병풍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별실에서 비명이 울리자, 술잔을 들던 강이식이 놀라 벌떡 일어났다.

“흉수다! 폐하를 모셔라!”

이에, 개소문도 벌떡 일어나니 쇼락과 공손향도 급히 일어났다.

“대모달! 어찌된 것이오?”

개소문의 외침에 대모달 여범이 개소문과 거리를 벌려 상장군 대건상을 바라보았다.

이에, 상장군 대건상이 마저 술잔을 들이켜고는 거칠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이를 신호로, 대연회장의 좌우 문이 벌컥 열리더니, 매복해 있었던 백여 명의 궁수들이 난사를 가했다.

“아아악!”

인정을 살피지 않는 매정한 화살들이 날아들며 비명을 일으켰고 분노한 강이식이 상을 뒤엎어 화살을 막았다.

“아아악!”

그러나 쏟아지는 화살에 사선종유를 비롯한 오부 귀족들과 대소 신료들은 무방비로 비명을 지르며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좌우 문을 통해 병장기를 쥔 군사들이 쏟아져 들어오니, 그 수가 대연회장 내 인원보다 많았다.

“대건상, 이놈!”

상다리를 분질러 양손에 쥔 강이식이 노해 호통을 치며 대건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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