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64화 (264/328)

264화 살육 (6)

호랑이를 잡아와 시끌벅적 연회를 열겠다던 팽무일이 수레에 다 죽어가는 사람을 싣고 오니 개소문이 대문까지 뛰어와 대뜸 물었다.

“사람을 잡은 게냐?”

“뭐?”

난데 없는 개소문의 물음에 팽무일이 당황하여 되물었다.

이에, 개소문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호랑이 대신 사람을 맞춘 거냐 물었다.”

“뭐? 난 활 안 가져갔다고! 보면 몰라?”

팽무일이 자신의 검을 들어 올리며 말하니, 개소문이 팽무일의 등 너머를 힐끔 바라보았다.

팽무일의 말처럼 활은 없었다.

“그럼 이 자는 무엇이냐? 제자의 짓이 아닌 게냐?”

“아니라고! 내가 왜 사람을 해쳐! 곧 있으면 사부가 막리지에 오를 건데, 다 차려진 상을 발로 걷어찰 일 있냐고!”

꽤나 억울했던지, 자신의 가슴을 탕탕치며 소리치니, 개소문도 미안하여 팽무일의 민머리를 툭 치며 말하였다.

“그래, 나도 아닌 줄 알았다.”

“아닌 줄 알았다고? 그랬다고? 그런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여전히 팽무일이 억울해 소리 지르니, 듣다 못한 야수가 한소리 하였다.

“시. 끄. 러… 사람… 부터. 구하자.”

팽무일도 그 말이 옳다 여겨, 야수에게 눈 흘기며 수레를 마저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저자는 누구고 어찌하여 다 죽어간단 말인가?”

개소문이 수레를 끌고가는 팽무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에 팽무일과 함께 돌아온 공손향이 개소문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말하였다.

“당 장주가 잘 알 것입니다.”

공손향의 말에 개소문이 팽무일의 뒤를 따르는 당진평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시선을 의식했는지, 당진평이 발을 멈추고는 고개 돌려 개소문을 바라보았다.

“서부 누살, 일단 이 사람을 치료한 후 전후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그게 순서겠지.”

개소문도 고개를 끄덕여 답하니 이내 곧 당진평이 안으로 명림신을 들어 옮겼다.

“저도 돕겠습니다.”

타인의 죽음을 보는 여인 모용설이 당진평을 도와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이에, 개소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하였다.

밤이 깊어서야 치료를 마친 당진평과 모용설이 개소문의 처소로 들어왔다.

이미 안에는 연정토, 연수영, 팽무일, 공손향, 야수, 쇼락, 단 사부, 모용상, 가림 등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살 수는 있던가?”

개소문의 물음에 당진평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죽지는 않을 듯합니다. 허나, 언제 정신을 차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독물을 잘 다루는 당진평은 사람을 살리는 의술에도 정통하여 약방을 차리기도 하였기에, 개소문이 그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

“죽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깨어나겠지. 그래, 저자가 누구인가?”

개소문이 다시 물으니, 당진평이 모용설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하였다.

“저자에게서 무엇인가 본 것은 없소?”

“죽음을 읽지 못하였으니, 당장은 죽지 않을 것이오.”

모용설의 답에 당진평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개소문에게 답하였다.

“저자는 종리대형 명림신이며, 제가 이끄는 살수집단인 형제단에 종종 의뢰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종리대형?”

개소문이 놀라 다시 물으니, 당진평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아, 개소문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물었다.

“고구려의 종리대형이 살수집단에게 의뢰를? 그래 무엇을 의뢰하였는가?”

이에, 당진평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답하였다.

“당의 사절대를 급습하여 진대덕을 포함한 모두를 몰살하라는 의뢰였습니다.”

“뭐라?”

개소문이 놀라니, 팽무일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니, 우리 사부의 출세길이 계속 열리는구나! 당장 관에 발고합시다!”

“제자는 가만히 있으라.”

개소문이 진정시켰으나, 팽무일은 여전히 흥분하여 대꾸하였다.

“사부, 저놈이 감히 사절대를 급습하란 의뢰를 했다고 하니, 관에 발고하면 큰 상이 내려올 것이오. 사부의 출셋길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소. 하하하.”

괜히 신이나 떠드는 팽무일에게 그만 앉으라 개소문이 손짓하고는 당진평에게 다시 물었다.

“허면, 이 자는 누가 이렇게 한 것이오?”

이에, 당진평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차분히 답하였다.

“여범입니다.”

“뭐라? 여범?”

모달 여범은 개소문을 도와 요동 이십여 성을 보수하였던 인물이었기에,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말… 장담할 수 있소?”

개소문이 다시 물으니, 당진평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연정토가 소리 낮춰 개소문에게 말하였다.

“형님, 종리대형 명림신은 종리위두대형 북장원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범은 상장군 대건상의 휘하에 있었던 위인이며, 대건상은 명림신과 마찬가지로 북장원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북장원을 따르는 이들끼리 권력 다툼이라도 벌였다는 것인가?”

개소문이 이렇듯 물으니, 답을 지니지 못한 연정토가 난색을 표하였다.

“그 부분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허나, 북장원은 우리 연 씨 일족과는 정적 관계에 있으니, 명림신이 깨어날 때까지 이 일은 비밀로 함이 좋을 듯합니다.”

이에, 개소문도 동의하여 말하였다.

“모두 명림신이 깨어 날 때까지 이 일은 함구하도록 한다.”

그러나, 전후 상황을 이해 못 한 팽무일이 대뜸 물었다.

“왜 함구해? 발고 안 해?”

“종리위두대형 북장원의 수하가 당의 사절대 급습을 의뢰한 일이다. 아직 당의 사절대가 우리 고구려에 남아 있으니, 이 일이 알려지면, 당은 분명 우리 고구려에 책임을 물을 것이다.”

“…….”

“그리고, 모달 여범이 명림신을 암습하였으니, 분명 이 일에도 뭔가 내막이 있을 것이다. 하여, 사정을 파악할 때까지 함구해야 한다.”

개소문의 말에 그제야 팽무일도 이해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입 꾹 다물고 있지. 그런데, 모달 여범을 잡아와 문초하면 쉽게 해결되는 일 아닌가?”

이에, 공손향이 고개를 저으며 차분히 말하였다.

“아닙니다. 명림신이 죽지 않았으니, 깨어날 터이고, 그에게 우선 전후사정을 캐낸 뒤, 여범을 잡아와 물어도 늦지 않을 듯합니다.”

그제야 팽무일도 이해하여 고개를 끄덕이고는 당진평에게 크게 호령하였다.

“좋아! 당진평 자네는 명림신을 잘 치료하라고!”

팽무일의 명을 따를 당진평이 아니었으나, 개소문이 눈짓으로 명하였기에 팽무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팽무일이 더욱 기가 살아 벌떡 일어났다.

“고구려 땅에서 당의 사절대가 몰살당해선 아니 되니, 내가 잘 지키고 있겠네. 사부 너무 걱정 마!”

말을 마친 팽무일은 개소문이 만류하는 소리도 듣지 않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허허, 뭐가 저리도… 급한가.”

이에, 야수가 팽무일의 뒤를 따르며 개소문을 안심시켰다.

“사. 고… 못치게… 내가. 데려… 올게. 걱. 정. 마.”

* * *

평양성 내는 물론, 주변 지형까지 화공들을 시켜 지도를 완성한 진대덕은 당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무리하였다.

“내일, 고구려 왕이 연회를 연다고 하였지? 내가 이대로 돌아가면 고구려와 고구려 왕은 황제 폐하의 진노를 사게 될 터인데… 내일 연회에서 어찌 나올지 매우 궁금하구나.”

아직 태왕 건무가 천리장성 축조를 결정하지 않았을뿐더러 봉역도가 가짜임을 진대덕이 파악했기에, 이대로 당에 돌아갈 경우, 고구려는 전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경계를 서던 군사가 들어와 아뢰었다.

“종리위두대형이 대인을 뵙고자 하옵니다.”

“북장원이? 들라 하라.”

태왕 건무의 뜻을 전하기 위해 밤이 깊어 불쑥 찾아왔으리라 여겨 진대덕이 반겼다.

“그래, 이 야심한 밤에 어인 일로 오셨소?”

진대덕이 짐짓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이에, 북장원이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진대던에게 건네었다.

“이게 무엇이오?”

진대덕이 의아해 물으며 펼쳐보니, 고구려 전역이 그려진 지도였다.

“봉역도입니다.”

“봉역도?”

진대덕이 놀라 되물으니, 북장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일전에 우리 고구려 왕이 황제께 바친 지도는 허위 지도였습니다.”

“무엇이라? 어찌 감히 황제 폐하께 허위 봉역도를 바쳤단 말이오?”

이미 봉역도가 가짜임을 파악했으면서도 진대덕은 모른 척 화내며 물었다.

“송구하옵니다. 허나, 이 지도는 고구려 전역이 바르게 그려져 있으니, 황제 폐하께 다시 올려주십시오.”

“이제와 봉역도를 바친들, 황제 페하께서 고구려 왕과 고구려에 그 책임을 묻고자 하실 게요.”

“대인께서 우리 고구려를 불쌍히 여기시어, 부디 황제 폐하의 진노를 막아 주십시오.”

“나는 그런 능력이 없소이다. 종리위두대형도 아시다시피 나는 말직인 직방랑중일 뿐이라오.”

이에, 북장원이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천리장성을 축조하여 그 경계로 영토를 나누고, 요동성과 요동벌을 황제 폐하께 바치겠나이다. 부디, 폐하께옵서 진노를 거두시도록 도와주십시오.”

“그 말이 정녕 가능하겠소?”

아직 태왕 건무에게서 아무런 확답도 듣지 못였기에, 내심 기쁘면서도 사실 여부 파악이 필요하였다.

이에, 북장원이 표정을 굳히며 소리 낮춰 답하였다.

“황제 폐하를 속여 고구려를 전란에 휘말리게 한 왕은 그 죄를 물어 벌을 받게 될 것이며, 천리장성은 축조되어 영토 경계로 삼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장담하니, 진대덕이 고개를 갸웃하며 북장원의 표정을 살폈다.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허나, 신하된 자가 어찌 왕을 벌한단 말인가? 내가 이 말을 믿고 돌아가 폐하께 아뢸 수는 없지 않은가?’

진대덕의 속을 들여다본 듯, 북장원이 말을 이었다.

“대인께서 장안성에 당도하여 황제 폐하를 알현하기 전, 고구려 왕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될 것입니다. 만약 소식을 접하지 못한다면 황제 폐하께 아뢰어 고구려를 벌하라 간하시옵고, 소식을 접하였다면, 부디 황제 폐하의 진노를 풀어 드리소서.”

손해 볼 것 없는 제안이었으니, 진대덕으로선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황제 폐하께옵서 원하시는 것은 고구려의 천리장성 축조와 명확한 영토 경계요. 또한 고구려 전역이 그려진 봉역도는 이렇듯 그대가 내게 전하였으니, 천리장성 축조가 시작되고… 황제 폐하를 기만한 고구려 왕이 죗값을 치렀다면 고구려가 전란에 휩싸이는 일은 없으리라 장담하오.”

진대덕의 이 말 속엔, 황제 이세민이 원하는 바가 담겨 있으나, 자신이 황제 이세민에게 고구려를 위하여 간할 말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말단에 불과한 진대덕은 결코 고구려를 위해 황제의 격노를 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에, 북장원이 소매에서 작은 궤를 하나 꺼내 진대덕에게 건네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궤를 이리저리 살펴본 진대덕이 조심스럽게 여니, 촛불에 비친 궤에서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아니, 이것이 무엇이오?”

궤에서 어린아이 주먹만 한 진주를 꺼내 든 진대덕이 놀라 물으니, 북장원이 머리 숙여 예를 표하며 말하였다.

“고구려를 위한 마음을 담아 대인께 올리는 선물이옵니다. 부디, 우리 고구려를 가엽게 여기시어 전란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야광주처럼 빛을 뿜는 진주를 쥔 진대덕의 입이 귀에 걸렸다.

“종리위두대형께옵서 이처럼 조국을 애달프도록 사랑하시니, 내 어찌 모른 척하겠소. 고구려가 전란에 휘말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리다.”

성도 살 만한 보물을 선물 받은 진대덕이 이처럼 장담하니, 그제야 안도한 북장원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국인 당 황제를 속인 태왕 건무가 죽음으로 그 죄를 갚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리 진대덕에게 뇌물을 바친들 결코 전란을 피할 수는 없다. 이 일의 마무리는 역시 건무의 죽음뿐이다.’

* * *

다음 날, 환송연 중에도 태왕 건무는 진대덕에게 천리장성 축조에 대해 일체 답을 주지 않았다.

진대덕 또한 건무의 답을 듣고자 결코 재촉하지 않았고, 이로 인하여 고구려의 무장들과 오부 귀족들은 서로 눈치만 살피며 불안해할 따름이었다.

마침내 연회가 끝나고 진대덕이 물러나기 전 태왕에게 예를 표하니, 태왕 건무가 담담히 말하였다.

“천리장성 축조에 대한 답은 따로 사신을 보내어 황제께 아뢸 것이니, 심려치 마시구려.”

이에, 진대덕이 빙그레 웃으며 공손히 답하였다.

“태왕 폐하, 황제 폐하께 올릴 회신이 너무 늦지 않길 바라옵니다.”

“내일 사절대가 당으로 떠난 뒤, 대전에서 회의를 열어 논의할 터이니, 늦지는 않을 것이오.”

“저희 배가 느리게 바다를 건너면, 장안성에 당도하기 전, 답을 받아볼 수 있겠군요. 참으로 잘 되었습니다.”

“그럴 것이오. 사절대가 장안성에 돌아가기 전 반드시 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이오.”

태왕 건무의 장담에 진대덕이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며 내심 생각하였다.

‘내가 받아볼 답이 태왕의 답일지, 북장원의 답일지 무척이나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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