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45화 (245/328)

245화 오해와 진실 (1)

야수의 만류에도 단 사부는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기세였다.

이에 개소문이 살기등등한 단 사부에게 시선을 옮겨 물었다.

“그대는 나를 따르는 이를 공격할 생각이오?”

“공자, 소인은 충심으로 막리지 합하를 따랐지요. 합하께서 명하시길 소인에게 이들 남매를 지키라 하셨습니다.”

단 사부가 단호히 답하니, 개소문도 담담히 말하였다.

“그렇소? 공녀는 나를 따르고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화목하시오.”

개소문이 단 사부는 물론, 모용설과 모용상에게 엄히 말하고는 공손향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부친을 따르던 분들이오. 그대가 나를 계속 따를 생각이면, 저들과 화목해야 하오.”

공손향이 살포시 미소를 짓고는 모용설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말하였다.

“너와 나는 작은 원한이고, 주군을 천하인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대업이다. 나는 이제 너를 죽일 생각이 없으니, 너도 나를 경계하지 마라.”

그러나 모용설과 모용상이 믿지 못하여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경계하니, 개소문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들은 중원에서부터 요동성에 이르기까지 숱한 전장과 사지에서 함께한 사람이오. 그대들이 선친을 섬겼듯 나를 믿고 따르길 바라오, 허니, 공녀 또한 믿어 주면 좋겠소.”

담담하면서도 위엄을 갖춰 개소문이 말하였으나, 모용설은 냉기를 담아 답하였다.

“우리 남매, 막리지를 믿고 의지하며 전장을 함께 하였나이다. 하온데 공자께선 어찌하여 우리 남매가 지켜본 막리지의 죽음을 인정하시지 않으시며 온달을 두둔하시옵고, 오해라 말하시옵나이까?”

“…….”

“의관 오옥을 빼낸 죄를 온달도 이미 인정하고 있사오니, 결코 오해는 아니옵니다.”

이에 연정토와 연수영도 모용설을 두둔하여 말하였다.

“형님, 모용설과 모용상 남매는 아버님의 죽음 이후 우리 가문을 지켜왔습니다. 이들이야 말로 믿고 의지할 사람들입니다.”

“오라버니, 이들 남매는 평양성 내의 오부 귀족들로부터 어린 우리를 지켜준 사람들이에요. 공손향, 저 여인이 오라버니에게 중하듯 우리에겐 이들 남매가 소중합니다. 이들은 우리 일가와 다름없습니다. 이들을 믿고 온달을 적으로 인정하셔야 합니다.”

이에, 개소문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더니 진중히 입을 열었다.

“내가 오해라 말한 것을 번복하면, 그대들은 화목히 지내며 나를 따를 것이오?”

“공손향님께서 그간의 원한은 작은 일이라 말하였으니, 우리 남매 또한 공자께서 대업을 이루도록 돕고 따를 것이옵니다.”

모용설의 대답에 개소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오해란 말은 번복하오. 나는 내일 온달 장군께 의관 오옥을 빼간 진의를 묻도록 하겠소.”

개소문이 말을 정정하니 모용설, 모용상 남매도 더는 이견을 댈 수 없었다.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들자, 뒤에 서 있던 당진평이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공자를 따라온 우리 모두는 서로 적으로 만났으나, 지금은 공자로 인하여 하나가 되었소이다. 의심하지 않아도 되시오. 이것이 진실이오. 허허허.”

* * *

전공을 인정받은 온동은 입궐하여 국상을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의 공도 인정받지 못한 개소문은 입궐할 자격이 없었다.

“상복을 준비하라.”

개소문이 상복을 준비하라 명하니, 공손향이 가만히 다가와 나지막이 말하였다.

“온달을 다그치지 마시옵소서.”

“나도 선친의 일은 오해라 여기고 있소. 다만, 동생들과 선친을 따르던 이들이 온달 장군께 감정이 좋지 못하니, 진의는 파악해야 할 것 같소.”

“하오면, 파천신검 비급을 돌려줘 보십시오.”

“파천신검을?”

“그렇습니다. 파천신검 비급을 온달에게 주십시오. 하오면, 온달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지, 그자의 태도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온달을 만나면 파천신검 비급을 돌려주고자 생각해왔던 개소문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리다.”

입궐해 국상을 치를 수 없는 신세였으나, 개소문은 상복으로 갈아입고 홀로 궁으로 향하였다.

“막리지 연태조의 장자, 연개소문이 국상을 치르기 위해 입궐한다 아뢰거라.”

궐문을 지키는 수문장에게 엄히 말하니, 놀란 군사들이 일제히 물러나 길을 열었다.

연태조의 장자 연개소문이 입궐했다는 소리에 대소 신료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고, 온동도 반갑고 놀라워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형님이… 개소문 형님이…….’

어득구를 죽인 사실을 떠올리면 원망스러웠으나, 쉽게 정을 뗄 수 없는 온동이었다.

온달은 태왕을 통해 개소문이 살아있음을 들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연태조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여기고 있기에, 개소문에게 미안하여 마음이 무척이나 불편하였다.

이에, 곁에 있던 강이식이 등을 다독이며 말하였다.

“내가 경황이 없어 말하지 못하였네만, 개소문이는 나와 함께 요동성을 지키고 있었다네. 공이 무척 컸으나, 안타깝게도 논공행상에서 누락 되었으니, 모두가 내 탓일세.”

“…….”

“다행스럽게도 개소문이의 그릇이 커 나를 탓하지 않으니, 자네도 연태조에 대한 일은 그만 잊게나. 자네를 탓하지 않을 걸세.”

“그랬군요. 공을 인정받지 못하였음에도 원망하지 않으니, 큰 사람이 되었군요. 다행입니다.”

온달이 담담히 답하며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개소문에게 시선을 고정하였다.

십 년의 세월은 개소문을 온달 못지않은 사내대장부로 만들었다.

장대한 기골은 물론, 범을 닮은 눈매는 바라보는 모든 이를 주눅 들게 하였다.

‘을지문덕공의 수하 어득구를 죽였다지?’

온달은 온동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개소문을 천천히 살폈다.

자신도 모르게 공연히 투지가 샘솟았다.

‘내가… 개소문을 두려워하며 경계하고 있구나. 죄는 내가 지었거늘… 허허.’

단 한 번도 남을 시기하거나 이유 없이 경계한 적 없는 자신이었기에, 온달은 내심 허망하고 자신이 우스웠다.

마침내, 당당히 온달의 앞까지 다가온 개소문이 짧게 고개 숙여 예를 표하고는 태왕의 빈소가 있는 궁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네와 개소문은 반가운 재회일 터인데, 어찌 저리 바쁜가?”

강이식이 의아해 말하였으나, 온달과 온동 두 사람은 그저 아무 말도 없이 개소문의 등만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뒤, 예를 올리고 온 개소문이 강이식과 함께 서 있는 온달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소인, 장군을 스승처럼 여기며 따랐고, 파천신검 비급을 지켰나이다.”

개소문이 품 안에서 파천신검 비급을 꺼내 온달에게 건넸다.

이에 온달은 아무 말 없이 파천신검 비급을 받아 근처 횃불에 가져가 불을 붙였다.

“장군!”

개소문이 놀라 부르짖으니, 온달이 담담히 말하였다.

“나는 너의 스승도 아니고, 이 비급은 내 것도 아니다. 나도 배워선 안 되고, 너도 허락을 얻지 못하였으니, 배워선 아니 된다.”

“장군…….”

“네가 이 비급을 되찾기 위해 고생한 것은 이 비급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해진님께 허락을 얻지 못하였으니, 너는 이후 비급을 통하여 익힌 무공을 사용해선 아니 된다.”

“이미 몸으로 익힌 무공을 어찌 사용하지 말라 말하십니까?”

개소문이 조금 언성을 높여 물었다.

“안타까우나, 조의선인의 계율이 그러하니, 따름이 옳겠구나. 만일 해진님이 살아계셨다면 허락하셨을지 모르겠으나, 그분께선 이미 돌아가셨으니, 네가 스스로 사용하지 않음이 옳겠구나.”

해진이 살아 있었다면 개소문의 근골을 끊어 무공을 폐할 수도 있었으나, 온달은 개소문 스스로 자제하여 파천신검 초식을 사용하지 않길 원하였다.

허나, 개소문은 온달의 진심을 의심하여 노기를 띠며 물었다.

“사용하지 말라 말하시면 사용자지 않도록 하지요. 헌데, 장군?”

“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묻거라.”

“장군이 의관 오옥을 빼내어 선친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나이까?”

개소문의 물음에 강이식이 놀라 급히 손을 내저으며 온달의 말을 끊으려 했고, 온동도 놀라 개소문과 온달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움직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

“장군…….”

“나를 탓하거라. 모두가 내 잘못이다. 파천신검 비급을 만들어 너를 곤경에 처하게 한 것도 내 탓이고. 의관 오옥을 데려가 막리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모두 내 탓이다. 모두가 나의 잘못이다.”

온달이 선선히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 답하니, 오히려 개소문이 당황하였다.

“그, 그 말이 진정이옵니까?”

“그렇다. 모두가 나의 잘못이다. 선대 태왕께서 나를 책망하시지 않았으나, 네가 자식된 도리로 나의 잘못을 묻는다면, 나는 네 처분을 따를 것이다.”

이에 개소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온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발을 옮겼다.

“휴…….”

강이식이 겨우 한숨을 내쉬고는 개소문의 뒤를 쫓을까 망설이다가, 멍하니 서 있는 온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자네 어찌 그랬는가? 오랜만에 만난 개소문에게 쌀쌀맞게 말하면서도 모두 자신 탓이라 말하다니… 도대체 이유가 뭔가?”

“제가 다정히 말해 개소문이 선친의 원한을 풀지 못할까 염려되어 그랬습니다.”

“뭐라? 뭐 그런 소리가 있나? 막리지의 죽음은 오해 아닌가?”

“오해가 아닙니다. 제가 오옥을 데려간 것은 사실이며, 그로 인해 막리지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여 이제 와 뭘 어쩌자는 건가?”

“선대 태왕께서 큰 전쟁을 앞두고 죄를 묻지 않았으나, 개소문이 선친의 원한을 풀고자 한다면, 받아들임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니, 그래서 자네가 개소문에게 죽겠다는 겐가? 아니면 개소문이를 죽이겠단 말인가? 뭔 원한을 풀도록 받아준다고 말하는가? 허, 이 사람 참…….”

“저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개소문이가 찾아오면 그때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차라리, 선대 태왕께서 벌하셨으면 좋았을 것을…….”

“어허, 자네 탓이 아니라 해도 이러네. 허허… 을지문덕 그 친구는 어찌 국상에도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이럴 때 그 친구가 있으면 좋을 터인데… 허허.”

을지문덕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강이식이었기에 아쉬워 말하니, 온달이 급히 말을 끊었다.

“을지문덕공께서 계신들 제 잘못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분께선 적봉진을 정비하시느라 바쁘실 터이니, 책망하지 마시옵소서. 잘못했으면 벌을 받음이 당연하니, 제가 죗값을 개소문에게 치르면 되옵니다.”

온달이 이처럼 말하니, 강이식도 더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리고 오직 소리로만 모든 상황을 접한 온동은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여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 * *

온달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온동이 평강에게 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였다.

“우리 장군님답구나.”

평강이 한숨을 내쉬며 말하고는 온동에게 쉬라 권하였다.

온동이 물러나자, 평강은 급히 처소로 발을 옮겨 온달에게 물었다.

“그토록 마음이 불편하셨습니까?”

“온동에게 들으셨소?”

“온동이 무척 걱정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한을 푸는 것은 당연한 도리고, 나는 막리지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으니, 개소문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오.”

“개소문이가 죽을 수도 있고, 장군께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내 잘못이니, 내가 죽음이 마땅하나, 살고 싶어 큰일이오.”

온달의 솔직한 말에 평강이 호호 웃었다.

“그렇다면 더욱 큰일 아닙니까? 장군께서 살고자 한다면, 선친의 한을 풀려고 찾아온 개소문이만 화를 당할 터인데, 이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공주, 이래도 마음이 불편하고, 저래도 마음이 불편하니, 어쩌면 좋소?”

온달이 난감해 도움을 청하니, 평강이 빙그레 웃었다.

“도망치자니, 적봉진으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고향으로 내려간들 안 찾아올 개소문이도 아닐 것이고… 장군님 정말 큰 일이십니다.”

“허허… 그만하시오.”

“개소문의 손에 죽기는 싫으시고, 그렇다고 개소문을 해치기도 싫으시면서 어찌 찾아오라 하시었습니까?”

“공주 그만 놀리시오. 마음이 불편하여 그랬소. 허허…….”

“장군께서 화를 피하고, 개소문도 화를 피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우리는 짐을 꾸려 안시성으로 가 지내고, 개소문이는 이 평양성에서 막리지를 하면 되지요. 설마 막리지에 올라 바쁜 개소문이가 안시성까지 찾아오겠습니까?”

평강의 말이 그럴듯하여 온달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속에서 한 장의 서신을 꺼내 평강에게 건네었다.

“장군, 무엇이옵니까?”

평강이 서신을 펼치며 묻다가 놀라 온달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렇소, 공주. 을지문덕공께서 보내신 마지막 서신이오.”

을지문덕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평강이었기에, 적봉진에 있을 을지문덕의 마지막 서신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하였다.

“마지막 서신이라니… 어찌된…….”

서신을 읽기 시작한 평강의 눈은 이내 곧 놀라움에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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