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떨어지는 별들 (2)
수의 황제 양광이 일 년 만에 다시 군을 일으켜 요하를 건널 무렵, 개소문 일행도 간신히 요동성에 돌아올 수 있었다.
황제 양광은 지난 전쟁의 패배를 상기하여 모든 전력을 요동성에 투여했다.
각종 공성 병기들이 더해졌는데, 성을 넘기보단 성벽 위 군사들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한 병기들이었다.
황제 양광은 베로 만든 주머니 백만 개를 마련하여 군사들에게 흙을 담아 쌓으라 명하니, 그 넓이가 삼십 보에 달했고 성벽보다 높았다.
황제 양광은 이것을 어량대도라 불렀으며 수의 군사들은 그 위에서 요동성 성벽을 내려다보며 화살을 날렸다.
또한 동차, 운제, 비루, 지도도 각기 요동성 사면에 배치하여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요동성을 공격하였다.
여기에 더해, 바퀴 여덟 개 달린 누거를 만들어 어량대도와 함께 요동성을 내려다보며 화살을 날리게 하였다.
이에, 개소문은 강이식을 도와 요동성을 지키며 수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과연 수나라는 강대국이었다.
이십여 일간의 거센 공격에 요동성 내의 화살이 바닥을 보였고, 성벽 위 군사들은 쓰러져 갔다.
이에, 신성에서 군사 일만이 요동성을 지원하러 왔으나, 황제 양광이 친히 군을 이끌고 요격하였다.
신성의 군사들은 패해 도주하였고, 요동 각지의 성들은 황제 양광을 두려워하여 성문을 굳게 닫고 방비하기 바빴다.
“제가 나가 황제의 목을 가져오겠나이다.”
개소문이 참지 못하여 말하니, 강이식이 고개를 저었다.
“황제는 영리한 인물이다. 관풍행전을 불태울 때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허면 이대로 성이 함락되는 것을 기다려야 합니까?”
“을지문덕을 믿거라.”
강이식이 짧게 말하며, 성벽 위에서 군사들을 독려하니, 개소문도 더는 주장을 펼치지 않고 지도에서 솟아오르는 수나라 군사들을 막기 위해 달려갔다.
다행스럽게도 해자로 대비하였기에, 수나라 군사들의 침입은 막을 수 있었으나, 이는 황제 양광도 예상한 일이었다.
“지도는 고구려 군을 성벽 위에서 내리기 위함이다. 모든 공격은 성벽 위 고구려 군의 수를 줄이는 데 집중하라! 요동성 성벽 위 고구려 군이 모두 사라지면 누가 우리를 막겠는가?”
황제 양광의 판단은 정확했다.
애써 성벽을 넘지 않고, 누거와 어량대도 위에서 화살을 날려 공격하니, 수나라 군의 피해는 적고 고구려 군의 피해는 늘어만 갔다.
이때, 요동성 함락을 목전에 둔 황제 양광에게 급보가 날아들었다.
번자개와 위문승이 각기 보낸 전령이었다.
“보급을 담당한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켜 그 세가 십만에 달하며 동도를 포위 중이옵니다.”
“위문승 장군께옵서 군사들을 몰아 반란군을 공격하였으나, 양현감의 거센 반격에 패하였나이다.”
고구려 원정에 나선 장수들과 대신들의 가족들이 있는 낙양을 포위했다는 소식에 황제 양광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양… 양현감이… 어찌 반란을?”
아비가 자결하고도 자신에게 충성을 바쳤던 양현감이었기에, 놀람은 당연하였다.
“왕박이란 도적놈이 난을 일으켰사온데, 그 수가 십만에 달하였사옵니다. 이 도적놈이 보급물자를 급습하였고, 양현감은 황제 폐하의 진노가 두려워 반란을 꾀한 듯합니다.”
번자개가 보낸 전령이 고하니, 황제 양광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허면, 왕박이란 놈이 보급을 탈취하여 세를 키우고 있단 말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이미 양현감의 끈기와 무용은 황제 양광도 지켜보았기에, 낙양을 포위한 그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왕박마저 군세를 키우고 있다고 하니, 언제 함락될지 알 수 없는 요동성 공략은 이제 중요치 않았다.
여기에 더해 양현감과 친분이 깊은 곡사정이 몰래 진중에서 도망쳐 요동성에 귀순하니, 황제 양광이 크게 진노하였다.
“당장 군을 돌려 양현감과 왕박을 잡겠노라! 곡사정 따위는 버려도 좋다. 철군하라!”
황제 양광이 급히 명을 내리니, 공성병기들은 버려지고 철군이 이뤄졌다.
* * *
황제 양광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고, 결국 양현감과 왕박의 반란은 진압되었다.
승승장구하던 양현감은 우문술, 내호아, 위문승, 굴돌통 등에게 포위되어 하루 세 번 패한 뒤, 자결하였다.
그리고 왕박은 또다시 도주하여 숨으니, 잠시 대륙이 조용하였다.
그러나 황제 양광이 반란 진압에 가장 공이 큰 인물로 이종사촌 형인 당국공 이연을 꼽으니, 장수들의 불만이 가중되었다.
당국공 이연은 태원에서 군을 움직이지 않았을뿐더러, 반란 진압에 그 어떤 공도 없었다.
그러나 황제 양광은 이연이 군을 움직이지 않은 것을 역심을 품지 않았기 때문이라 여겼다.
‘이연 형님이 역심을 품고 군을 일으켰다면, 낙양은 함락되었을 것이다. 양현감보다 이연 형님의 군사들이 더 사납고 용맹한데도 군을 움직이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충성스럽단 말인가?’
반란을 진압한 황제 양광은 다음 해 다시 군을 정비하여 고구려 정벌을 결심한다.
‘천하가 이토록 소란스럽고 혼란한 것은 모두 저 고구려 때문이다. 내 다시 군을 이끌고 정벌에 나서리라!’
그러나 그간의 고구려 정벌 실패로 수의 재정은 파탄이 났고, 민심은 흉흉했으며, 황제가 또다시 정벌에 나설 경우 누가 또 반란을 일으킬지 알 수 없었다.
이때, 별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황제 양광을 기쁘게 하였다.
“천문을 살피던 이가 말하길, 동쪽에서 빛나던 대장성이 떨어졌다 합니다.”
우문술이 이처럼 아뢰니, 황제 양광이 껄껄 웃었다.
“동쪽에서 빛나던 대장성이라면, 누가 죽는 것인가?”
이에 우문술이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답하였다.
“천문을 보던 이의 말로는, 고구려의 막리지 을지문덕이라 하옵니다.”
“뭐라? 대장성이 을지문덕이라? 을지문덕이 곧 죽을 것이란 말이더냐?”
황제 양광이 기뻐 다시 물으니, 우문술이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을지문덕의 생사 여부는… 고구려 조정 내에 심어둔 이들에게서 곧 정보가 올 것이옵니다.”
“아니다. 기다릴 필요 없다. 내 친히 군을 몰고 고구려에 가서 확인하겠노라! 만일 살아 있다면 내가 목을 베면 그만이니라.”
황제 양광이 이토록 승리를 자신하니, 고구려 정벌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황제 양광은 요동성으로 향하였고, 수군총관 내호아에게 명하여 비사성을 공략하게 하였다.
“평양성 따위는 신경 쓰지 마라. 비사성을 바다에서 포위해 고구려 수군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라!”
이에 내호아가 수군을 이끌고 급히 바다를 건너 비사성을 바다에서 포위하니, 고구려 수군이 포구에서 배를 띄우지 못하였다.
한편, 황제 양광은 요동성을 포위하고는 자신이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비사성으로 향하였다.
비사성의 앞을 지키던 안시성과 오골성이 합심해 황제 양광의 길을 막았으나, 수적 열세에 길을 내어주고 말았다.
길이 열리자 황제 양광은 그대로 군을 몰아 비사성을 육로로 공격하여 함락시키니, 이제 바다에서 수나라의 수군을 막아낼 고구려 수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구려의 수군이 없으면, 평양성 공략은 언제든 가능하다! 하하하.”
그러나, 승리를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나라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군사들의 사기는 계속 저하되었다.
밤이 되면 막향요동랑사가를 부르는 군사들이 늘더니, 원정 초기부터 시작된 탈영이 가속되어 더는 전쟁을 치르기 어려워졌다.
영리한 황제 양광도 원정 실패를 깨닫고, 비사성 함락에 만족한 채 철군을 고심하게 되었다.
이때 황제 양광에게, 고구려 태왕에게서 사신이 왔다.
“조의두대형 동금호라 합니다.”
태자의 장인 동금호가 사신으로 오니, 황제 양광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어찌 왔는가? 이곳 비사성에서 바닷길로 평양성은 지척인데, 고구려의 왕은 평양성에 잘 있는가?”
“황제께서 염려하신 덕분에, 태왕 폐하께옵선 강건하시옵니다.”
“그래, 다행이로군. 고구려 왕이 입조하지 않아 내가 이렇게 왔으니, 내친김에 평양성까지 찾아가 얼굴을 봐야겠구나. 그때까지 건강하길 바란다 전하거라.”
“송구하오나, 폐하. 태왕 폐하께옵선 수의 사정을 염려하시어, 황제 폐하께 항복을 하고자 하옵니아디. 천하의 근본은 수나라이온데, 근본이 소란스러우면 아니 된다 하시며 소신을 보내어 항복을 아뢰라 하시었나이다.”
“뭐라? 고구려 왕이 항복을?”
“그렇사옵나이다. 황제 폐하께서 간악한 반란 세력을 벌하시오면, 저희 태왕 폐하께옵서 입조하여 충성을 다짐하겠다 하시었나이다.”
영리한 황제 양광은 결코 고구려 태왕이 항복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허나, 비사성을 함락시켰으나, 군사들의 탈영은 끊이질 않았고, 수나라 도처에선 반란이 끊이질 않으니, 마냥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비사성까지 함락한 이상, 평양성 공략을 목전에 두어 퇴각할 명분도 부족한 형편이었다.
이때 시기적절하게 고구려의 태왕이 사신을 보내어 항복을 약조하니, 알면서도 속아 퇴각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대는 돌아가 고구려 왕에게 전하라. 약조를 지키지 않을 시, 내 반드시 군을 몰고 돌아와 엄히 벌하겠노라!”
이토록 엄히 말하였으나, 실상은 원정 실패였다.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어 친히 군을 이끌고 소국을 공격했음에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니, 만세에 웃음거리가 되었구나.”
이처럼 황제 양광이 탄식을 하였으나, 장수들과 대소 신료들 누구도 황제 양광을 위로하는 이 하나 없었다.
수나라 곳곳은 이미 기근과 반란으로 혼란스러웠고, 황제 양광은 국고를 탕진해 정벌에만 몰두했으니, 장수들과 신하들의 충성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황제 양광이 궁으로 돌아가니, 믿고 또 믿었던 당국공 이연이 군을 움직여 그 힘을 과시하였다.
“소신이 난을 평정할 터이니, 폐하께선 태상황에 오르시옵고, 황위를 마땅한 이에게 양위하시옵소서.”
이연이 갑주를 걸친 채 칼을 차고 청하니, 황제 양광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이연은 우문화급을 근위장에 임명하여 황제 양광을 모시고 강도로 떠나라 명하였다.
“크고 작은 반란이 도합 백이십여 건이다. 그대는 폐하를 모시고 안전한 곳에 있으라. 반란을 진압한 뒤, 모시러 가겠다.”
양유를 황제에 앉힌 이연이 이처럼 명하니, 우문화급은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태상황 양광을 모시고 강도로 떠나야 했다.
그러나, 평소 우문화급을 신뢰하지 않던 양광이었기에 사소한 일에도 꾸중이 잦았다.
이에, 우문화급은 태상황으로 물러났음에도 양광이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국력을 쇠락하게 하였다 비난하며 군사들을 이끌고 양광을 포박해 참형에 처하였다.
태상황 양광을 참형한 우문화급이 강도 일대에서 군을 모으기 시작하니, 백성들이 기뻐하며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내 곧 우문화급의 군세는 십만을 넘겼고, 이 소식은 이연에게도 전해졌다.
이연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에게 토벌대를 맡기며 당부하였다.
“태상황을 시해한 우문화급은 몰론, 각지의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오라!”
당국공 이연에게 난을 평정하란 명을 받은 이는 바로 그의 차남 이세민이었으니, 이때 세민의 나이 스물이었다.
“대장성이 동쪽에서 졌다고 하더니, 태상황이 죽었구나.”
난을 평정하기 위해 출정하며 세민이 이처럼 중얼거리니, 곁을 지키던 황 교두가 히죽 웃었다.
“누가 죽든, 죽으면 좋은 일입니다. 천하의 주인이 사라졌으니, 이제 공자께서도 천하인의 자리를 노려보십시오.”
“천하인이라… 황 교두가 참으로 오랜만에 길게 말하였구려. 하하하.”
강력한 지배자, 수의 황제 양광의 죽음으로 천하는 다시 어지러워졌고, 향후 대륙을 평정한 이는 또다시 눈길을 고구려로 돌릴 것이 분명했다.
필경, 고구려의 다음 상대는 수의 양광보다 더 강력한 군주가 틀림없었고, 당국공 이연이 가장 유력했다.
그러나 당국공 이연은 가장 강력한 세력을 지녔고, 기병 중심의 군사들도 잘 훈련되어 있었으나, 전쟁을 즐기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와 달리, 차남 세민은 야심만만하며 전장을 누비길 좋아했으니, 이연이 세민에게 난을 평정하라 명한 것이었다.
아비의 명을 받은 세민은 백이십여 개의 난을 평정하고, 우문화급의 목을 베었으며, 이밀의 항복을 받아내는 등 숱한 공을 세웠다.
마침내 이연이 난을 평정한 공을 인정받아 허수아비 황제 양유에게서 황위를 양위 받으니, 수를 대신하여 당이 중원에 세워졌다.
그리고, 때를 같이하여 고구려에서도 두 개의 별이 땅으로 내려오니, 또다시 전운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