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살수대첩 (11)
수의 별동대는 압록수를 건넌 뒤, 전승을 거두며 진격하였다.
이들이 거둔 승리는 모두 우중문이 기병을 이끌고 맹렬히 추격하여 거둔 승리였다.
우중문은 일곱 번째 승리를 거두었을 때, 황제 양광에게 전령을 보내어 승전을 고하였고 살수 앞에 당도하였을 무렵, 황제의 답신을 받을 수 있었다.
[신기묘산의 을지문덕을 상대로 일곱 번 싸워 모두 승리를 거두웠다니, 이 어찌 어여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소.
장군은 과연 신중하고 계획성이 뛰어나며, 담대함과 용맹함은 비할 장수가 없으니, 이 모두가 나의 천복이 아닐 수 없소.
모든 장수가 장군을 본받는다면, 내 무엇을 걱정하리오.
부디, 장군이 앞장서 고구려를 벌하여 천하의 근심을 덜어주기 바라오.]
이에, 우중문의 기세는 하늘을 뚫었고, 우문술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은 우중문의 눈치를 더욱 살피게 되었다.
더구나, 아직 황제 양광은 물론, 평양으로 직공 중인 별동대에겐 내호아의 참패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기에, 을지문덕을 추격해 사로잡아야 한다는 우중문의 주장은 더욱 거세졌다.
“이 살수란 강의 폭은 넓으나 물이 빠져 무릎에도 오지 않소이다.”
우중문이 운을 떼니, 설세웅이 바로 이견을 달았다.
“강폭이 이토록 넓은데도 불구하고 지나치도록 강이 깊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침, 저녁은 물론 밤에도 물안개가 짙어 고구려 군이 바로 앞에 숨어 있어도 눈치 채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에, 우중문이 불쾌한 듯 언성을 살짝 높였다.
“하여, 장군은 강을 건너지 않겠다는 게요?”
“신중을 기하자는 말이지요. 눈앞에 을지문덕이 보인다고 하여 무작정 쫓지 말고, 천천히 진을 갖춰 강을 건너고 평양성으로 향해야 한다는…….”
“그만하시오! 지금 당장 이 군막을 나서면, 살수 너머 삼족오 기가 보이는데도, 그대는 을지문덕을 쫓지 않겠단 말이오? 저 을지문덕이 이 살수에서 우리를 막아보겠다고 진을 펼쳤으니, 우리는 일거에 도하를 강행하여 을지문덕을 물리치고 평양성으로 향해야 하오!”
우중문이 설세웅에게 역정을 내니, 우문술이 살며시 나서 말하였다.
“우장군, 그리 역정 낼 일이 아니오. 나와 장군이 좌우장군으로 군을 이끈다고 하지만, 실상은 아홉 장수가 각기 아홉 군을 이끌고 있으니, 서로 논의하여 의견을 모으는 것이 좋지 않겠소?”
우문술이 좋은 말로 달래 보았으나, 우중문은 황제의 서신을 들어 올리며 기세 좋게 소리쳤다.
“보시오! 삼십만의 병동대 병력을 가지고서 능히 소적을 깨뜨리지 못한다면 무슨 낯으로 황제를 뵙겠소? 나도 이 걸음이 반드시 성공하리라 장담할 수는 없소. 그 이유가 뭔지 아시오?”
우중문의 물음에 우문술이 답을 못하니, 우중문이 입꼬리를 실룩여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무릇! 옛날의 명장들이 능히 성공한 것은 결정권이 한 사람에게 있었기 때문이었소. 우리를 보시오! 이렇듯 사람마다 각 마음을 갖고 있으니 어떻게 적을 이긴단 말이오?”
우문술을 비롯한 여러 장수들은 노기가 치밀어 올랐으나, 황제의 신임을 받는 우중문을 감히 누를 수 없어 고개만 푹 숙였다.
결국, 우중문은 다음 날 아침, 물안개 가득한 살수를 오만 기병을 이끌고 건너 을지문덕의 진영을 급습하였다.
을지문덕은 제대로 응전도 못 한 채 진을 버리고 도주하기 바빴고, 우중문이 기세 올려 뒤쫓았다.
우문술을 비롯한 장수들도 살수를 건너 우중문의 뒤를 따랐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고구려의 매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살수를 건너고도 밤이 깊을 때까지 쉬지 않고 내달려서야 겨우 우중문과 군을 합친 우문술이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혼자 너무 깊이 들어가시지 마시오. 쫓아오는 우리도 힘들고, 장군도 위험하오. 여기는 적진이란 말이오.”
“이제 곧 평양성인데 무엇이 두렵단 말이오? 이미 수군총관 내호아도 수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 해안가에 진을 치고 우리를 기다릴 터인데,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오.”
우중문이 이렇듯 담대히 말하였으나, 이번에도 설세웅이 이견을 대었다.
“물론 나 역시 내호아 총관이 상륙해 우리를 기다린다 생각하오. 허나, 고구려의 성들은 아직 건재하고,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하나, 을지문덕의 사만 군사도 역시 그 수가 크게 줄지 않았소이다.”
“…….”
“만에 하나 실수라도 장군께서 패하실 경우, 사기가 저하될 수 있으니 부디 신중해야 합니다.”
허나, 우중문은 우문술과 설세웅이 자신을 시기한다 여겨 껄껄 웃었다.
“그대들도 내호아 총관이 기다리고 있음을 인지하면서 어찌 고구려의 꾀에 넘어가려 하시오?”
“꾀에 넘어간다니요?”
우문술이 의아해 물으니, 우중문이 바로 답하였다.
“을지문덕은 우리가 지치길 바라고 있소. 하여, 그는 우리가 내호아 총관과 합치기를 원치 않고 계속 앞을 막는 게요. 우리가 신중을 기해 천천히 진격하면 그들은 필경, 주위 성들의 군사를 모아 내호아 총관을 급습할 것이오. 이 전쟁은 오직 속공을 통한 직공만이 정답이라 할 수 있소이다.”
너무도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일견 타당하였기에 우문술과 설세웅도 더는 이견을 댈 수 없었다.
“내일 날이 밝으면 그대로 군을 이끌고 평양성 앞까지 진격하도록 합시다. 가는 길에 패수와 해안가로 척후를 보내어 내호아 총관에게 연통을 넣는 것도 좋겠소이다.”
우중문의 이 의견에 모든 장수가 동의하니, 처음으로 논쟁 없이 의견이 일치한 밤이었다.
* * *
수의 별동대 삼십만이 살수를 건넜다는 소식은 평양성을 들끓게 하였다.
이에, 대전 안은 대소 신료들의 고성이 오고 갔다.
“강화를 맺겠다고 하지 않았소? 막리지는 어찌 연전연패하면서도 강화를 맺지 않는 게요?”
북장원이 먼저 나서 을지문덕을 꾸짖으니, 상장군 대건상도 말을 보태었다.
“막리지는 처음부터 황제 폐하께 강화를 청할 생각이 없던 것 아니오? 우리가 수의 수군을 물리쳤다고는 하나, 황제 폐하께서 선별한 삼십만의 정예가 평양성 앞까지 당도했으니, 이제 더는 머뭇거려선 아니되오. 막리지는 속히 황제 폐하께 강화를 청하도록 하시오!”
국장 북장원을 믿고 대건상이 막리지를 업신여기듯 함부로 말하니, 동금호가 호랑이 눈을 하고 나와 소리쳤다.
“닥치시오! 황제 폐하께라니… 그대가 모시는 이는 수의 황제요? 대 고구려의 태왕 폐하시오? 또한! 그대는 막리지의 지휘를 받는 무장이란 사실을 잊은 것이오?”
이에, 대건상이 무안해 답을 못하니 사선종유가 나서 말하였다.
“작은 말실수로 꼬투리를 잡음은 옳지 않소이다.”
“작은 말실수라니요? 궁에는 허언이 없는 법! 용납되지 않는 실수도 있소이다!”
동금호가 물러서지 않고 이처럼 소리치니, 사선종유가 오히려 한발 물러나야 했다.
이때, 상황을 지켜보던 을지문덕이 앞으로 나와 품 안에서 서신을 꺼내었다.
“압록수에서 이미 저들에게 항복 의사를 밝혔으나, 믿지 않고 저를 사로잡고자 쫓아오니, 도망쳐 온 것이옵니다. 이에 소인이 다시 서신을 보내어 좋은 말로 달래 군을 물리도록 하겠습니다.”
“서신?”
북장원이 의아해 물으니, 을지문덕이 빙그레 웃으며 서신을 펼쳐 읽었다.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그대의 신기한 계책은 천문에 통달했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그대의 묘한 계략은 땅의 이치를 알았도다.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전투마다 이겨 그대의 공적이 이미 높았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해 돌아가는 것이 어떠하리오.]
북장원을 비롯한 대소 신료들이 들으니, 수의 별동대 우장군 우중문을 칭송하는 시였다.
“우중문 장군께서 매우 흡족해하시겠구려.”
북장원이 만족해 말하니, 사선종유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동금호가 노해 소리쳤다.
“그대들은 벌써 수의 황제를 섬기다 못해 우중문에게 마저 충성을 바치는 게요?”
북장원이 인상을 구기니, 대건상이 동금호를 노려보며 말하였다.
“이보시오! 막리지가 쓴 글에 어찌 국장 어른을 나무라는 게요?”
상장군 대건상은 북장원보다 직책이 높은 막리지 을지문덕을 낮춰 보고 있으니, 이미 전쟁에 패해 고구려의 막리지 목이 땅에 떨어졌다 여기는 듯하였다.
오직 북장원에게만 충성하는 대건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을지문덕이 빙그레 웃었다.
“맞습니다. 이 시는 소인이 쓴 시입니다. 국장 어른, 만족하시었나이까?”
“그 시가 마음에 든다고 하여 우장군께서 군을 물리시지는 않을 듯한데…….”
북장원이 막리지 을지문덕을 하대하며 말하니, 동금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을지문덕은 전혀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답하였다.
“소인도 국장 어른과 생각이 일치하옵지요. 하여, 태왕 폐하의 말씀을 받아 서신 한 통을 더 작성하여 좌장군 우문술에게도 보내려 합니다.”
을지문덕이 품에서 또 다른 서신을 꺼내니, 북장원이 기뻐 바로 물었다.
“태왕 폐하의 말씀을 담은 서신이라 하였소? 그래, 그 내용이 무엇이오?”
이에, 태왕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장인. 부끄러운 내용이 담긴 서신을 꼭 들으셔야겠소이까?”
“소, 송구하옵니다.”
북장원이 급히 허리 숙여 사죄를 고하니, 을지문덕이 다시 말을 이었다.
“소인은 이 전쟁 초기부터 꾸준히 강화를 언급하였고, 변함은 없으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이 두 장의 서신이 각기 수의 좌우장군에게 전달될 시엔 반드시 철군을 시작할 것입니다.”
* * *
다음 날 아침부터 행군을 개시한 수의 별동대 삼십만은 해가 머리 위에 머무를 때쯤, 평양성 삼십 리 밖에 당도하였다.
산을 등지고 진을 펼치고는 패수와 해안가로 보낸 척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니, 이보다 먼저 을지문덕이 보낸 사신이 당도하였다.
사신은 조의두대형 동금호였다.
백발이 멋지고 눈매가 사나운 동금호가 두 통의 서신을 좌우장군에게 건넸다.
“고구려의 막리지 을지문덕 공이 수의 좌우장군들에게 보내는 서신이외다.”
동금호의 당당한 태도에 우문술과 우중문이 내심 탄복하며 각기 받은 서신을 펼쳐 읽었다.
“허허… 이런, 과한 칭찬이로다.”
우중문이 매우 만족해 웃으니, 우문술이 고개를 갸웃하며 동금호에게 물었다.
“정녕, 이 서신대로인가?”
“태왕 폐하의 말씀을 받아 막리지 을지문덕 공이 작성한 서신이기에, 나는 그 내용을 알지 못하오.”
이에, 우문술이 잠시 눈을 감더니 짧게 말하였다.
“사신은 그만 돌아가시오.”
동금호가 떠나자, 우중문이 바로 물었다.
“어떤 내용이오?”
이에, 우문술이 서신을 건네니 우중문이 급히 펼쳐 읽었다.
[그대들은 내호아 총관을 기다릴 터이나, 내호아 총관은 그대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이미 바다 건너 되돌아갔느니라.
그대들의 군엔 소가 없어 보급을 운송하지 못하고, 사람이 직접 군량을 지고 행군하니, 이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하여, 대 고구려의 태왕이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군을 물려 요동으로 회군하면, 막리지 을지문덕과 함께 행재소를 찾아 조견하겠노라.]
서신을 다 읽은 우중문은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고구려의 태왕이 직접 황제 폐하를 알현해 강화를 청하겠다는 내용 아니오?”
우중문은 서신에 담긴 내호아의 철군과 별동대의 부족한 군량미 사정은 차마 언급하지 못하였다.
이에, 우문술도 해당 내용은 언급하지 못하며 입맛을 다셨다.
“내용이야… 그렇긴 한데… 허허… 이를 어쩐다…….”
이때 마침 패수와 해안가를 살피고 돌아온 군사가 돌아와 아뢰었다.
“패수엔 사백여 척의 우리 군선들이 불에 타 있고, 그 주위엔 우리 군사들의 시신이 가득하였습니다.”
“…….”
“또한 해안가 어디에도 우리 군선을 찾기 어려우니, 내일 다시 살펴야 할 듯합니다.”
이에, 우문술이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다. 정찰은 되었다.”
우중문도 한숨을 내쉬며 을지문덕이 보내온 서신을 내려다보았다.
“허… 이 시는 온갖 칭찬으로 가득하나, 실상은 반어로 나를 조롱한 듯하구려.”
그제야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깨달은 우중문과 우문술이 의견을 일치하여 결정을 내렸다.
“평양성은 높고, 군량미도 풍족하며, 우리는 제대로 된 공성 병기가 없고 군량미는 떨어졌소. 허나! 고구려 왕이 우리의 군세에 겁을 먹고, 항복을 알리는 서신을 보냈으니, 이만 요동으로 물러나 고구려 왕을 기다림이 좋겠소이다.”
우중문이 이처럼 호기롭게 말하니, 기다렸다는 듯 우문술이 답하였다.
“지금까지 우리의 승전으로 고구려가 마침내 항전을 포기하니, 이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 일이오. 자 이제 서둘러 회군하도록 합시다.”
실상, 군량미는 떨어졌고 기대했던 내호아는 철군했으니, 사기가 곤두박질치기 전에 서신을 핑계로 회군을 결정한 것이다.
이에, 설세웅이 나서 말하였다.
“조급한 회군은 군사들의 사기 저하가 우려되며, 야심한 밤에 군을 움직이다간 고구려 군의 야습을 받을 수 있으니, 내일 날이 밝으면 방진을 펼쳐 회군토록 합시다.”
우문술과 우중문도 옳다 여겨 동의하니, 평양성 삼 리 밖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밤이 깊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날이 밝을 무렵 그치니, 옷이 젖어 무척이나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