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살수대첩 (4)
보급을 다시 가져오라 명하였으나, 좌군과 어영군의 군량미가 당장 부족해질 상황이었다.
이에, 황제 양광이 급히 명하였다.
“좌군과 우군을 모두 불러들여라!”
요동 이십여 성을 공략하기 위해 나뉘었던 수나라 군이 일제히 진을 물리어 황제 양광이 있는 요동성 앞으로 집결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우군, 우중문에게는 보급이 전해졌기에, 이를 나누어 배급하면 양현감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만하였다.
“너희 중, 고구려 성을 함락한 장수가 있느냐?”
황제 양광이 고구려의 스무 개 성을 공격했던 장수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물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니, 점령한 고구려 성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요동 스무 개 성은 모두, 을지문덕의 지시로 날카로운 마름쇠를 성 아래에 뿌려 수나라 군사들의 접근을 막았고, 포차와 발석거로 반격을 가하며 버텼다.
이에, 수나라 군은 애꿎은 군사들의 발만 상하게 할 뿐 성과를 내지 못하였으니, 황제 양광의 화가 극에 달해 있었다.
“어찌하여 출병한 지 육십여 일이 지나도록 점령한 성이 없단 말인가?”
황제 양광이 기도 안 차 다시 물었다.
이에, 좌장군 우문술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폐하, 고구려의 성들은 모두 높고 단단하며, 성문은 돌아 들어가는 구조이기에 공격이 어렵사옵니다.”
“뭐라?”
황제 양광이 분노로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이에, 우장군 우중문이 눈치도 없이 나서 말하였다.
“요동의 고구려 스무 개 성은 오직 이 요동성을 제외하고는 산성들로서, 산이 가파르고 험준하여 공략이 쉽지 않나이다.”
“뭐라?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정녕 죽고 싶은 게냐!”
황제 양광이 격노하여 벌떡 일어나 칼을 뻬어들고는 우중문에게 달려드니, 장수들이 말리고 우중문이 엎드려 벌벌 떨었다.
양광이 겨우 진정하여, 자리에 앉으며 말하였다.
“요동의 성이 모두 산성이라… 그대들은 고구려의 지리를 아는가?”
이에 장수들이 답하지 못하니, 황제 양광이 한심한 듯 바라보며 말하였다.
“연에서 북주에 이어, 우리 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고구려의 압록강을 넘어 보지 못하였다. 허니, 그대들이 고구려의 지리를 모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길 수 있다.”
황제 양광이 잠시 말을 멈춘 후 다시 이었다.
“허나! 무릇 장수라 함은 사전에 미리 적의 지리를 숙지하고 또 숙지해야 하는 법이다. 헌데, 너는 어찌 고작 요동의 성들이 높다고 말하는 게냐?”
이에, 우중문이 답하지 못하니 황제 양광이 뒤에 펼쳐진 지도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고구려의 진정한 산성들은 이 요동벌에 있지 않다. 바로 이 압록강을 건너면, 더욱 험준한 산들이 펼쳐지고… 그 산맥들에 성이 자리하니, 결코 요동벌 산성들과 비할 바가 아니다.”
“하, 하오면?”
우문술이 황제 양광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해 물으니, 황제 양광이 미간을 구기며 말하였다.
“나는 압록강 너머 펼쳐진 산맥들에 자리한 산성 공략이 쉽지 않으리라 판단하여, 바로 이 요동벌의 성들을 점령하여 무력화한 후, 압록강 너머의 산성들은 무시한 채 평양성으로 바로 진군하려 했느니라.”
모든 장수가 그저 지도만 바라보며 말이 없으니, 황제 양광이 다시 말을 이었다.
“고구려 북방의 산들은 높고 겨울은 가혹하다. 백만 대군이라 하여도 해당 산성들을 모두 공략하며 나아가다간 속절없이 겨울을 맞이해야 한다.”
“…….”
“그렇기에 고구려의 대부분 전력이 집결한 이 요동벌만 제압한 후 빠르게 진군하여 평지에 자리한 평양성을 함락하려 했던 것인데, 너희는 너무도 무능력하여 요동을 제압하지 못하는구나.”
황제 양광의 꾸중에도 제대로 변명조차 할 장수가 없으니, 실로 암담한 상황이었다.
이에, 황제 양광이 지도의 평양성을 가리키며 크게 명하였다.
“우효위대장군(右驍衛大将軍) 내호아를 평양도해군총관(平壌道行軍総管)으로 임명하여, 바다를 건너 평양성 점령을 명하겠노라!”
내호아는 진나라 태생으로, 그의 선조는 한나라에서 고관을 지낸 한족 출신이었다.
어려서 고아가 된 내호아는 백부를 잃고 홀로된 백모 손에서 자랐다.
성인이 된 내호아는 키워준 백모의 은혜를 갚기 위해 백부의 원수를 찾아가 목을 베고는 그 길로 고향에서 도망쳐 장강에서 지내며 물에 관해 일가견을 쌓게 된다.
그리고, 그의 재주가 알려져 광릉에서 수군 대도독까지 지냈으며, 황제 양광은 고구려 원정에서 그를 더욱 중용하여, 평양성 공략이란 중임을 내렸다.
“내호아는 성정이 사납고, 어려서 살인을 저지른 죄인이옵나이다.”
우문술이 이견을 내었으나, 황제 양광은 고개를 저었다.
“성정이 사납다는 말은 곧 용맹하단 말이 되오. 어려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 역시, 어려서부터 용맹했다는 뜻이 되고 말이오. 바다를 건너 단숨에 평양성을 함락할 장수로는 내호아 만한 장수가 없으니, 더는 이견을 내지 마시오.”
백만 대군으로 요동의 그 어느 성 하나 점령하지 못하였으니, 그 누구도 감히 황제 양광에게 이견을 말할 처지가 못 되었다.
“우리가 요동에서 고구려의 전력을 묶는 동안 내호아가 평양성을 급습해 함락시킨다면, 이 또한 전략의 승리라 말할 수 있소. 다들 따르기 바라고, 속히 내호아에게 명을 전하도록 하시오.”
이때,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설세웅이 일어나 황제 양광에게 아뢰었다.
“폐하, 아뢸 것이 있사옵나이다.”
“설 장군은 말하시오.”
평소 설세웅의 무용과 강직함을 황제 양광도 인정하였기에, 선선히 응하였다.
“폐하께옵서 세우신 전략은 빈틈이 없사옵니다. 허나.”
“허나?”
“수군만으로 평양성을 공략한다면, 압록강 이남의 성들이 군을 돌려 평양성을 구원할 것이옵니다.”
“허면?”
“따로 별동대를 꾸려 요동벌에서부터 평양성까지 육로로 돌파를 강행하면, 압록강 이남의 산성에서 감히 평양성을 구원하기 위해 군을 돌리지 못할 것이옵니다.”
이에, 황제 양광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였다.
“과연 설 장군이로다. 그대의 말이 옳구나.”
설세웅을 치하한 황제 양광이 장수들을 돌아보며 명하였다.
“좌우 장군을 별동대 수장으로 함께 임명할 터이니, 삼십만을 이끌고 평양성까지 진격하도록 하시오!”
우문술과 우중문이 급히 명을 받아 머리를 조아리니, 황제 양광이 다시 명하였다.
“설 장군, 그대도 별동대에 참여하여, 부디 공을 세우도록 하시오.”
이에, 설세웅이 머리를 숙여 예를 표하며 명을 받았다.
“즉시, 내호아에게 명을 전하고, 그대들은 별동대를 꾸려 진격할 채비를 하시오!”
황제 양광의 명이 내려지고, 장수들이 모두 물러나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황제 양광은 백만 대군을 이끌고도 요동의 성 하나 점령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왠지 마음이 울적하구나.”
깊어 가는 밤에, 홀로 불을 밝히며 잠 못 이루니, 마음은 점점 더 울적해져만 갔다.
이때, 진영 곳곳에서 구슬픈 노래가 들려왔다.
“아니, 이 노래는 무엇인가?”
황제 양광처럼 잠 못 드는 군사들이 부르는 노래가 분명한데, 듣고 있기 무척 거북하였다.
노래는 모두 두 곡으로 하나는 익히 들어 아는 노래였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처음 접한 노래였으나, 노랫말만 다를 뿐 곡조는 같았다.
“이 노래는 지난겨울 전쟁 때 들었던 무향요동낭사가인데, 다른 하나는… 처음 듣는구나.”
황제 양광이 급히 장수들을 불러 꾸짖었다.
“어찌하여, 이따위 노래가 들리는 것이더냐? 하나는 무향요동낭사가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 듣는 노래인데, 어찌 생겨난 것이더냐?”
이에, 우중문이 나서 말하였다.
“두 노래 모두 곡조는 무향요동낭사가로, 새로 생겨난 저 노래는 안시성 공략에서 돌아온 우문화급의 군사들이 부르고 있사옵니다.”
“뭐라 우문화급이?”
황제 양광이 분을 참지 못하여 우문화급을 노려보며 물었다.
“너는 어찌 성을 점령하기는커녕 이따위 노래를 배워와 사기를 저하시키는 게냐?”
황제 양광은 우문화급의 변명 따위는 들을 생각조차 없이 엄히 꾸짖고는 분을 참지 못하여 우문화급에게 달려가 가슴팍을 발로 걷어찼다.
우문화급이 신음을 토하며 바닥에 쓰러지자 황제 양광이 우문화급의 머리를 짓밟으며 명하였다.
“이놈을 끌고 나가 목을 베어 군기를 바로 잡거라!”
이에, 우문술이 황제 양광의 발아래 엎드려 사정하였다.
“폐하, 살려주십시오. 제 아들이 무능하여 안시성을 굴복시키지 못하였으나, 이는 반드시 공으로서 갚도록 하겠나이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에, 우중문도 황제 양광의 발아래 엎드려 아뢰었다.
“장수들에게 명하여 군 기강을 해하는 노래를 부르지 못하도록 단속하겠나이다. 우문화급은 어린 장수이오니, 부디 벌보단 공을 세울 기회를 주시옵소서.”
좌우 장군이 이토록 사정하니, 황제 양광도 더는 화를 낼 수 없었다.
“좋다! 이놈의 명줄은 끊지 않겠노라. 허나, 공을 세우지 못한다면 언제든 과를 물어 참형에 처할 것이니라.”
이에, 우문화급이 예를 올려 황제에게 감사를 표하고 물러났다.
‘공을 세우지 못하면, 필경 황제는 내 목을 벨 것이다. 반드시 공을 세워야 하나, 공을 세우지 못할 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이때부터 우문화급은 살기 위해 역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 * *
요동에서 별동대가 꾸려지는 동안, 임유관에서 대기하던 내호아에게도 명이 전해졌다.
“천여 척의 병선에 십만의 수군이 마련되어 있다. 출병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으니, 요동에서 별동대가 출병할 시기나 잘 맞추면 좋겠구나.”
내호아가 전령에게 이렇듯 말하니, 전령이 바로 황제에게 아뢰기 위해 길을 나섰다.
“비사성의 고구려 수군을 이대로 남겨 둔 채, 평양 인근에 상륙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옵니다.”
부장 하어진이 소리 죽여 이견을 아뢰니, 내호아가 빙그레 웃었다.
“황제의 명을 어기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하, 하오나… 주나후 총관의 전례가 있사오니, 결코 고구려의 수군을 얕봐선 아니 되옵니다.”
“주나후는 비사성을 공략하러 나섰다가 패한 것이다. 우리는 비사성 곁엔 가지도 않을 것이니, 괜찮다.”
그러나, 하어진은 계속 주장을 펼쳤다.
“우리가 비사성 곁으로 가지 않는다고 하여, 우리가 평양 인근에 상륙하도록 고구려 수군이 두고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허면, 하 장군은 고구려 수군이 두려워 황제의 명을 따르지 않겠단 말인가?”
이에, 하어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어찌 황제의 명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다만 위험 요소를 없애고자 하는 것이옵니다.”
“허면?”
“고구려 수군 기지인 비사성을 육로로 점령토록 황제 폐하께 전령을 보내시옵소서. 고구려의 수군을 바다에서 전멸시킬 필요는 없사옵니다.”
하어진의 의견이 옳다고 판단한 내호아가 바로 장수를 불러 명하였다.
“그대는 이 서신을 반드시 황제 폐하께 올리시오! 결코 늦어서는 아니 되오.”
이에 서신을 받은 장수가 소중히 품에 넣으며 머리 숙여 명을 받으니, 그제야 하어진도 안심하였다.
“이제, 평양성은 총관께서 함락시키실 수 있사옵니다.”
“내게 하 장군과 같은 책사가 있으니, 내 무엇이 두려우리오. 단숨에 바다를 건너 평양성을 점령할 생각에 피가 끓어오르는구려. 허허허.”
벌써부터 승리를 거머쥔 듯 내호아의 만면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수의 황제 양광의 백만 대군에 맞서 고구려의 거의 모든 병력이 요동에 집결했으니, 평양성은 방비하는 병력이 극히 적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내호아는 평양성 인근에 무사히 수의 수군 십만 명을 상륙시키기만 하면 평양성 점령은 식은 죽 먹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엔 온달과 강이식만큼이나 무력이 뛰어난 장수가 평양성에 있었으니, 바로 태왕의 동생이자 태자인 고건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