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31화 (231/328)

231화 살수대첩 (2)

온동이 안시성의 외성 북서문에 오르니, 양만춘이 놀라 달려왔다.

“아니, 네가 어찌 올라온 게냐?”

양만춘은 앞을 볼 수 없는 온동이 걱정되어 말하였으나, 온동 역시 고집이 대단하였다.

“저도 싸우겠습니다.”

“속히 내려가거라. 여기서 네 몸이 상하면, 나는 두 분을 뵐 면목이 없어지느니라.”

양만춘이 온동의 등을 떠밀던 그 순간, 성루를 지키던 대식이 양만춘을 대신하여 소리쳐 명하였다.

“궁수들은 살을 날리고, 부월수들은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

이에, 성벽을 내려다보며 궁수들이 화살을 날리고, 기악이 부월수들에게 명을 내렸다.

“파천진을 펼쳐,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

평지에서 넓게 펼치던 진과 달리, 성벽 위에서 펼친 파천진은 서로 호응하며 지키기 용이하지는 않았으나, 좌우 양옆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제법 단단한 방어진이었다.

부월수 삼 인이 한 조를 이루고, 세 개의 조가 한 대가 되어 진을 펼치니, 이 파천진이 안시성 북서문 성벽 위를 가득 메웠다.

“막아라! 그 누구도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기악의 외침에 부월수들이 긴 장대로 성벽에 걸쳐진 사다리를 밀어내고, 성벽에 걸린 밧줄을 도끼로 끊었다.

그리고, 이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화살을 중장보병들이 방패를 들어 올려 막아주며 서로 도왔다.

“나는 가서 군을 지휘해야 한다. 너는 속히 내려가거라!”

양만춘이 온동에게 엄히 말하고는 급히 성루로 돌아가 대식과 함께 적진을 살피고, 성벽 위를 돌보며 지휘하였다.

이에 온동은 자신의 앞을 막던 양만춘이 사라지자, 바람에 실린 소리에 집중하여, 한 발 한 발 성벽 위로 발을 옮겼다.

이 모습을 성루에서 지휘하던 양만춘이 보고는 급히 소리쳐 명하였다.

“당장 저 아이를 성벽 아래로 끌고 내려가라!”

근처에 있던 기룡이 명을 받아 온동에게 달려갔다.

이때, 수의 진영에서 날린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고, 중장보병의 방패로 보호받지 못한 기룡의 머리가 위험해졌다.

“숙여요!”

온동이 짧게 외치며, 오직 소리만 쫓아 허공에 몸을 날리더니 쇠지팡이에서 검을 뽑아 원을 그리듯 머리 위로 휘둘렀다.

투두둑.

온동의 검이 닿지도 않을 거리의 화살까지 부러져 성벽 위에 떨어졌다.

이어서 온동이 사다리를 타고 성벽 위로 오르는 수나라 군사에게 달려가 목을 베고는 아래로 뻗은 사다리를 망설임 없이 베었다.

“파산귀검!”

온동의 외침과 함께 검기가 일고, 강한 바람이 사다리를 훑으며 아래로 향하니, 사다리에 매달린 수나라 군사들의 팔다리가 잘리어 비명을 타고 날리었다.

이 광경에 대식이 양만춘에게 살며시 말하였다.

“그냥 위에 둬도 되지 않겠습니까? 눈이 성한 군사 백보다 나을 것 같은데…….”

양만춘도 더는 온동을 내려보내지 못하고, 영리한 기훈에게 눈짓으로 온동을 잘 지키라 명하였다.

이에, 기훈이 기룡과 함께 온동의 좌우에 서서 마치 진을 펼치듯 지켰다.

* * *

공격을 펼친 지 반나절이 지나도록 안시성의 북서 성문을 열지 못하니, 답답한 우문화급이 북을 올려 군사들을 물렸다.

“생각보다 단단하구나.”

우문화급의 말에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된 우문지급이 답하였다.

“성문은 단단하고, 성벽 위 방비가 무척이나 거셉니다. 허나, 계속 몰아붙이면 반드시 성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군사들을 독려하느라 목이 쉰 우문지급이 무척 불만 가득해 말하니, 우문화급이 동생을 다독였다.

“우리의 목표는 고작 이런 성이 아니란다. 비사성 함락이 목표이기에, 군사들을 아껴야 하느니라.”

이에 우문지급도 더는 이견을 내지 못하였다.

우문화급이 동생의 어깨를 두드려 마음을 추스르게 하고는 말을 이었다.

“아우야, 이 형에게 좋은 계책이 있으니, 들어보거라.”

“형님 말씀하십시오.”

“저 성을 보거라.”

우문화급이 안시성을 가리키니, 한눈에 외성과 본성이 들어왔다.

“보이느냐? 이렇듯 성 내의 모습이 잘 보여 작전을 세우기 쉬운 성도 드믈구나. 하하하.”

우문화급이 껄껄 웃으며, 북서문에 비해 산세가 험한 외성의 동문을 가리켰다.

“저곳은 산의 능선에 성벽을 쌓아 우리의 공격이 없으리라 고구려 군이 예상한 듯하구나.”

우문화급의 말처럼 안시성은 북서문 방면을 제외하고는 삼면이 산의 능선을 따라 성벽을 세웠기에, 수의 군사들이 공격을 펼치기 어려웠다.

“형님, 고구려의 방비가 약하다고 하나, 산이 가파르고 성벽은 높아 우리도 공략하기 어렵습니다.”

우문지급이 이견을 말하였으나, 우문화급은 여전히 자신만만하였다.

“아우야, 아니다. 대군이 사다리를 걸치고 오르기는 어려우나, 돌격대가 밧줄을 걸어 오르기는 충분하단다.”

“돌격대라 하오면?”

우문지급이 물으니, 우문화급이 미소 지으며 답하였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네가 다시 공세를 펼쳐 고구려 군의 시선을 끌거라. 나는 일만의 돌격대를 이끌고 조용히 이동하여 동쪽 성문을 열겠다. 그리고, 그대로 본성까지 돌격하여 안시성을 불태우고 고구려 군이 집중된 외성… 저 북서문의 배후를 들이치겠다.”

“좋은 계책입니다!”

우문지급이 탄복하여 말하니, 곧 실행에 옮겨졌다.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리자, 우문지급이 군을 몰아 더욱 거세게 북서문 공략에 나섰다.

고구려 군이 북서문에 집중하니, 우문화급이 조용히 일만 군사를 이끌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북서문으로 수나라 군사들이 공격을 펼치니, 대식이 적의 군세를 파악하기 위해 명하였다.

“불화살을 날려 성벽 아래를 밝혀라!”

궁수들이 불화살을 날리고, 발석거가 짚과 기름통을 날려 북서문 앞에 펼쳐진 평원에 불길을 일으켰다.

환하게 밝혀진 평원엔 수의 군사들이 횃불도 밝히지 않은 채,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충차를 불태우고, 사다리를 든 놈들을 겨냥해 살을 날리시오.”

양만춘이 명하니, 성루에서 끓은 기름과 횃불을 던져 성문에 달라붙은 충차를 태웠다.

“사다리가 성벽에 닿지 않도록 화살을 날려라!”

궁수들이 일제히 대식의 명에 따라 사다리를 든 수나라 군사들에게 집중하여 화살을 날렸다.

쓰러지는 수의 군사들이 늘어났으나, 뒤따른 군사들이 다시 사다리를 들고 성벽에 대고는 빠르게 올라왔다.

“밀어라!”

기악이 부월수들에게 명하여, 장대로 사다리를 밀어내고 성벽 위에 오른 수나라 군사들의 앞을 막게 하였다.

우문지급의 독려에 수나라 군사들이 맹공을 펼쳤으나, 북서문의 방어를 무너뜨리지 못한 채 희생만 늘리고 있었다.

이때, 바람이 전하는 소리에 집중하던 온동이 자신의 곁을 지키는 기훈에게 소리쳐 말하였다.

“동쪽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뭐라?”

기훈이 놀라 물었으나, 온동은 앞도 보지 못하면서도 동문을 향해 빠르게 내달리며 외쳤다.

“속히 군을 이끌고 오십시오!”

양만춘이 의아해 돌아보니, 영리한 기훈이 달려와 아뢰었다.

“온동은 천부적으로 귀가 밝은 아이입니다. 온동이 적봉진에서 적의 야습을 알아챈 일도 있사오니, 믿어주십시오.”

“동문에도 지키는 군사들이 있으니, 북서문에서 많은 군사를 내어줄 수는 없다. 부월수 오백과 노궁수 삼백을 데려가거라.”

북서문도 수의 맹공을 막아야 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에, 기훈이 급히 명을 받아 기룡과 함께 군사들을 이끌고 동문으로 향하였다.

* * *

우문화급의 판단대로 동문은 상대적으로 지키는 고구려 군사가 적었다.

소리 죽여 가파른 능선을 올라 동문에 다다른 우문화급이 살며시 손을 들어 명하였다.

“밧줄을 걸고 올라라.”

이에, 수의 돌격대 일만이 발소리도 내지 않은 채 성벽에 바짝 붙더니, 갈고리를 매단 밧줄을 성벽 위로 던져 걸었다.

동문을 지키던 고구려 군사들이 성벽에 갈고리가 걸리는 소리에 크게 놀라 북을 올리며 밧줄을 끊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만 개의 밧줄을 끊기엔 역부족이었다.

“올라라! 적의 수는 보잘것없느니라!”

우문화급이 직접 밧줄을 타고 오르며 소리치니, 수의 돌격대 일만이 함성을 지르며 성벽 위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고작 오백의 군사가 지키는 동문은 이내 곧 수나라 군에게 함락될 듯하였다.

이때, 온동이 낭떠러지 같은 성벽 끝을 아슬아슬 내달리며 성벽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파산귀검!”

외침과 함께 온동의 검이 검광을 일으켜 어두운 성벽 위를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 온동의 검끝에서 검기가 일며 성벽 끝을 타고 길게 쭉 뻗어 나갔다.

“으아악!”

성벽 위로 손을 올리던 수나라 군사들이 비명을 지르고, 성벽에 건 밧줄이 잘렸다.

온동은 계속 성벽 위를 내달리며 연달아 파산귀검을 펼쳤고, 온동의 검에선 검광과 검기가 뻗어 나와 성벽에 걸린 밧줄과 성벽 위에 오르던 수나라 군사들의 사지를 잘랐다.

“파산귀검!”

온동의 외침은 끝없이 이어졌고,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이때, 기룡과 기훈이 군사들을 이끌고 와 방어를 펼쳤다.

“기훈, 너는 온동의 뒤를 따르며 지켜라!”

기룡이 도끼를 휘둘러 성벽 위에 걸린 밧줄을 자르고는 소리쳐 말하였다.

이에, 기훈이 위태롭게 낭떠러지 같은 성벽 끝을 내달리는 온동의 뒤를 쫓았다.

“화살을 날리고, 밧줄을 잘라라! 성벽에 오른 놈의 머리를 으깨라!”

기룡이 소리쳐 군사들을 독려하였고, 온동은 동문 성벽 끝까지 내달리며 파산귀검을 펼쳐 밧줄을 잘랐다.

“온동! 어서 내려오너라! 위험하다.”

급히 온동의 뒤를 쫓은 기훈이 손을 뻗어 온동을 붙잡으며 말하였다.

이미 수나라 돌격대가 준비해온 밧줄은 모두 온동의 파산귀검에 잘린 뒤였기에, 더는 성벽을 넘는 수나라 군사들이 없었다.

일만의 수나라 군사들은 모두 성벽 아래로 떨어져 어두운 산비탈을 굴렀다.

그리고 그 속에 우문화급도 있었으니, 일만의 돌격대가 오직 온동 한 명에게 패한 셈이다.

* * *

새벽이 되자, 북이 올려 북서문을 공격하던 수나라 군사들이 퇴각하였다.

“형님!”

온통 흙투성이가 된 우문화급의 몰골에 우문지급이 놀라 달려왔다.

“어찌 된 일입니까?”

우문지급이 형의 몰골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적의 매복이 있었다. 놈들은 방비가 약한 동문을 우리가 공격하리라 예상하여 미리 매복하고 기다린 듯하구나.”

“허면, 일부러 방비가 약한 듯 보인 것이란 말이군요. 이런…….”

우문지급이 탄식을 하니, 우문화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놈들은 일부러 방비가 약한 듯하여 우리를 유인한 것이다. 놈들은 우리가 성벽에 밧줄을 걸고 오를 때를 기다려 일시에 밧줄을 끊었느니라.”

“이런 교활한…….”

우문지급이 분통을 터트리니, 우문화급이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져 가다듬으며 말하였다.

“일단, 성을 에워싸고 적이 굶주리길 기다려 보자꾸나.”

성벽은 높고 단단하며, 성벽 위 방비는 거셌으니, 우문지급으로선 달리 이견이 없었다.

* * *

요하의 서쪽 지류를 건넌 양현감 형제들은 각기 군을 이끌고 보급을 전하기 위해 서둘러 행군하였다.

양현감의 둘째 동생 양적선은 안시성 앞에 진을 펼친 우문화급의 군을 시작으로 세 곳의 진에 보급을 전달해야 했다.

“갈 길이 바쁘다. 서둘러라!”

양적선이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행군 속도를 높이라 독려하였다.

이때, 요하의 갈대밭이 흔들리더니, 바람결에 화기가 느껴졌다.

“뭐지?”

갑자기 시커먼 연기가 갈대밭 속에서 솟더니, 빠르게 번지며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화, 화공이다! 다시 강을 건너라!”

불길을 피하기 위해 양적선이 급히 소리쳐 명하였다.

그러나 보급을 싣은 수레를 돌리기도 전에 갈대밭의 불길이 밀려왔고, 이보다 더 빠르게 불길을 뚫고, 고구려의 철기병 개마무사가 들이닥쳤다.

“몰아쳐라! 우리의 뒤는 불길이니, 이대로 적들을 짓밟고 요하를 건너라!”

불길을 뚫고 나타난 온달이 운철대검을 휘둘러 보급을 가득 실은 수레를 박살 내고는 그대로 개마무사를 몰아 수나라 군사들을 짓밟았다.

보급을 수송하던 사만의 군사가 제대로 맞서지도 못한 채 요하를 건너기 전에 모두 쓰러졌고, 이들의 몸을 불길이 뒤덮었다.

온달이 막바우와 함께 개마무사를 이끌고 요하를 건너자, 불길 너머에서 경우가 궁기병을 이끌고 나타났다.

“장군! 적의 수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경우의 외침에 막바우가 소리쳐 답하였다.

“일만이천오백! 쉽다고!”

“뭐래? 저 모자란 인간이 진짜…….”

경우가 어처구니없어 중얼거렸으나, 기세 오른 막바우가 소리쳐 재촉했다.

“이대로 동쪽으로 내달리며 박살 내자고! 고작 일만이천오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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