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30화 (230/328)

230화 살수대첩 (1)

황제 양광의 명에 따라 좌장군 우문술과 우장군 우중문은 십이군을 나누어 요동성의 동과 서로 진군을 시작하였다.

요동에는 모두 이십 개의 성이 있었고, 요동성을 제외한 모든 성이 산성이었다.

“그 크기가 요동성에 비할 바가 못 되는 보잘것없는 성들이로구나.”

각 성들의 규모와 위치를 보고 받은 우문술이 이렇듯 내뱉으며 승리를 자신했다.

이에 우문술은 요동성 서쪽에 자리한 산성들을 일시에 함락시키기 위해 군을 다시 나누었다.

“우문화급 네게 십만 정병을 맡기니, 비사성까지 진격하도록 하라.”

비사성으로 향하는 길엔 반드시 안시성을 점령해야 했으나, 크기가 작고 잘 알려지지 않았기에 우문술을 비롯한 휘하 장수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빠르게 진격하여 길을 내겠나이다.”

우문화급이 기세 좋게 답하니, 그 모습이 매우 듭직해 우문술을 기쁘게 하였다.

신속히 군은 나누어졌고, 우문화급의 진격은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그러나, 안시성 앞에 다다르자 기세 좋던 우문화급이 크게 당황하여 무심코 중얼거렸다.

“아니, 뭔 성이 저렇단 말인가?”

영성자산의 능선을 따라 외성이 세워졌고, 본성은 산의 계곡에 세워져 있었으니, 산 전체가 산성인 셈이었다.

또한 산 전체에 능선을 따라 비스듬히 성을 세운 구조 탓에 산 아래에서 성안을 살필 수 있었다.

“보통은 성안의 구조와 모습은 가리는 것이 당연할진데, 어찌하여 저 성은 대놓고 성안 모습을 드러낸단 말인가?”

그저 시선을 영성자산으로 올리기만 하여도 산의 중심 계곡에 비스듬히 자리한 본성까지 시야에 들어왔으니, 당황할 만했다.

“고구려 놈들이 지나친 자신감으로 성을 저따위로 세웠거나, 수성의 기본도 되어 있지 않아 안주하기 쉬운 곳에 대충 성벽을 올려 쌓은 모양입니다.”

우문지급이 이렇듯 말하니, 우문화급도 동의하였다.

“하찮은 놈들이로다. 외성은 제법 규모가 있으나, 산 전체에 성벽을 올려 안시성의 군세로는 모두 방어하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성 앞에 진을 치고, 군을 정비하여 일거에 함락시키도록 하자.”

두 형제가 이토록 자신하니, 승리는 이미 수나라 군에 있는 듯하였다.

* * *

“성 앞에 진을 펼친 수의 군세는 십만이라 합니다.”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지도를 펼쳐 우문화급이 진을 펼친 지점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에 평강이 지도의 요하 부근을 살피며 말하였다.

“십만이면 군량미 소모가 상당하겠군요. 저들의 보급은 요하를 넘어올까요? 아니면, 수의 본대를 거쳐 올까요?”

“낙양에서 출발한 보급부대가 본대를 거쳐 저들에게 오면 보급로가 길어집니다. 아마도 보급부대가 갈라져 각각의 진영에 물자를 전달하겠지요.”

경우가 빠르게 답하니, 평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역시 여기로군요.”

평강이 요하의 서쪽 지류를 가리키니, 양만춘과 경우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의 보급은 요하의 서쪽 지류에서 갈라져 요동 이십여 성 앞에 진을 펼친 수나라 군에 물자를 전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쪽 지류와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우리 안시성이지요.”

평강이 의미심장하게 말하니, 막바우가 침을 꼴깍 삼켰다.

이에, 평강이 빙그레 웃으며 서둘러 말을 이었다.

“우리 앞에 진을 펼친 장수가 우문화급이라 하였나요? 아마도 그 장수는 보급로가 길어지는 것을 우려해, 우리 안시성을 빠르게 제압한 후, 비사성으로 향하려 할 것입니다.”

“…….”

“서두르면 실수가 있는 법이지요. 저들이 안시성에 공세를 퍼부을 때 우리는 군을 일부 빼어, 이곳에 매복하여 적의 보급을 불태워야겠습니다.”

평강이 가리킨 곳은 수의 보급이 갈라지는 요하의 서쪽 지류였다.

막바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 물었다.

“하온데, 적의 보급 물자를 꼭 태워야 하나요? 여기로 가져오면 든든할 터인데…….”

이에, 경우가 오만상을 쓰며 막바우에게 지청구를 하였다.

“뭔 소리야? 막바우 자네가 모두 짊어지고 올 겐가? 괜한 욕심 부리다가 단명하는 거라고.”

막바우가 풀이 죽어 입을 다무니, 온달이 등을 두드려 주며 입을 열었다.

“괜찮네. 나도 불태우기 아까운 마음이네. 허나, 별수 있겠나? 헌데, 저들의 보급부대 규모가 상당할 터인데…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취합한 정보는 있소?”

온달의 물음에 평강이 소매에서 서신을 꺼내어 온달에게 건네었다.

“막리지 을지문덕 공께서 보내신 서신이옵니다.”

온달이 서신을 펼쳐 빠르게 읽고는 바로 양만춘에게 건네었다.

서신을 다 읽은 양만춘이 입을 꾹 다무니, 막바우가 답답하여 바로 물었다.

“아니, 읽었으면 뭔 설명을 해야지. 그렇게 입 다물고 있으면 되오? 은근히 사람 속 터지게 하는 재주가 있다니까?”

막바우가 성질을 부리니, 그제야 양만춘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야, 두 분이 설명하실 줄 알고 그랬지. 막리지께서 적의 보급 규모를 파악하시어 서신을 보내신 것인데, 적은 수나라 각지에서 백만의 군사로 보급부대를 꾸렸으나, 요동까지 보급을 수송하는 부대는 이십오만에 불과하단 정보네.”

“불과하다니, 이십오만이 적어요? 아니, 성주는 뭔 통이 그리 크시오?”

막바우의 말처럼 이십오만의 군사는 결코 적지 않은 수였다.

막바우에게 야단맞는 양만춘이 안쓰러운 평강이 다시 말을 보태어 설명하였다.

“바로 그 이십오만의 수송부대가, 이 요하 서쪽 지류에서 이십여 곳으로 갈리지지요.”

이에, 막바우가 열 손가락을 접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물었다.

“아하! 이십오만이… 스무 개로 나뉜다는 말씀이시군요? 허면… 대충 몇이란 말인가? 만이천오백쯤 되나요?”

막바우의 셈이 빠르니, 경우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자네가? 이리도 똑똑했던가?”

“시끄러! 나도 이 정도 셈은 한다고!”

경우와 막바우가 언성을 높일 기미가 보이자, 경우의 아비 대식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디서, 함부로 날뛰는 게냐? 이런 버르장머리를 보았나. 쯧쯧.”

대식의 꾸중에 막바우와 경우가 얌전해지자, 양만춘이 입을 열었다.

“적의 수송군이 갈라지지 않고, 이십오만을 유지한 채 각 진영으로 보급을 운송하면 어찌하옵니까?”

이에 평강이 자신 있게 답하였다.

“적의 수송군은 이십오만에 달하기에, 그들이 먹는 군량미만 해도 상당하지요. 보급을 아끼기 위해 최대한 빠른 보급로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강이 잠시 말을 멈춘 후 지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십오만을 유지한 채 스무 곳이 넘는 진을 모두 다니기엔 시일도 오래 걸릴뿐더러 소비하는 보급이 감당 안 되지요. 저들은 최대한 빨리 보급을 전달하고 다시 돌아가 보급을 운송해야 하기에, 반드시 이 지점에서 갈라질 것입니다.”

평강의 말이라면 무조건 신뢰하는 온달이 고개를 끄덕이 물었다.

“공주의 말이 그렇다면, 그렇겠지요. 헌데, 적의 보급 책임자는 누구라 하오?”

“영주자사이자, 에부상서인 양현감이라 합니다.”

“양현감이라면… 양소의 장자로군.”

“그렇습니다. 이번 수의 보급은 자결한 양소의 여섯 아들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알겠소. 제아무리 이십오만 대군이라 하여도, 스무 개로 갈라졌다 하니, 최대한 빠르게 급습하여 모두 요절 내보도록 합시다.”

비록 보급을 스무 개로 나뉘었다 하여도, 온달의 이 말은 너무도 자신감이 과해 보였다.

대식이 불안하여 이견을 내려 하였으나, 그의 여식 경우는 이미 승리를 거머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막바우 역시 조금도 두려운 기색 없이 중얼거렸다.

“쉽네. 수의 일만이천오백 군사 스무 개만 박살 내면 되는 거였잖아.”

이에 대식은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양만춘이 대신의 어깨를 다독이며 온달에게 머리 숙여 말하였다.

“부디, 불패장군 온달님의 그 위명 그대로 적을 요절내어 주시옵소서.”

“애쓰겠소. 성주도 안시성에서 우문화급을 묶어 주시오.”

* * *

온달 일행이 양현감의 보급부대를 급습할 계획을 세우던 그 시각, 양현감의 둘째 동생 양적선이 황제 양광을 알현하고 있었다.

“폐하, 보급을 스무 개로 나뉘어 운송하는 것은 적의 공격에 취약하옵니다.”

“하여?”

황제 양광이 불쾌한 기색으로 물었다.

“하여… 군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이곳 본진으로 보급을 전하고자 하옵나이다.”

“뭐라? 감히 내 명을 거역하겠다는 말이더냐? 네 형, 양현감이 그리 결정을 내린 것이더냐?”

“폐, 폐하… 보급을 운송하는 군이 흩어질 경우…….”

“닥쳐라! 지금 우리가 백만 대군으로 고구려의 요동 각 성을 모두 막고 있는데, 어디서 적이 솟아나 보급을 급습한단 말이더냐? 혹여, 비적 떼에 보급을 뺏긴단 말은 아니겠지?”

황제 양광의 조롱에 양적선이 얼굴을 붉히며 답을 못하니, 막사 안 장수들이 껄껄 웃었다.

“내 비록 요동성을 아직 굴복시키지 못하고 있으나, 어찌 너희가 나를 업신여길 수 있는가?”

“폐… 폐하… 그런 뜻이 아니옵고…….”

“닥치라 하였느니라.”

양적선이 입을 꾹 다무니, 황제 양광이 엄히 꾸짖었다.

“너희가 나를 업신여기지 않는다면, 우리가 장악한 이 요동에서 어찌 급습을 걱정하는 게냐? 너희는 내 명에 따라, 속히 보급을 각 진영에 전하고, 다시 예양으로 돌아가 보급을 가져오면 되느니라.”

이에, 양적선이 황제 양광에게 예를 올리고는 급히 양현감에게로 돌아갔다.

* * *

요하 서쪽 지류를 지척에 둔 양현감은 동생 양적선이 돌아와 황제 양광의 명을 전해 듣고는 장탄식을 하였다.

“군은 갈리지면, 약해지는 법이거늘… 영민하신 폐하께서 어찌 이런 판단을…….”

그러나 황제의 명은 지엄하였고, 양현감은 이를 거역할 힘이 없었다.

이에, 여섯째 동생 양인행이 꾀를 내었다.

“형님, 군을 스무 개로 쪼개어 보급을 나르고자 하여도, 이를 책임질 장수가 부족합니다. 하여.”

“하여?”

“군을 여섯으로 나누고, 우리 여섯 형제가 각기 보급을 책임지고 서에서 동으로 빠르게 나르면 어떻겠습니까? 보급만 원활하다면 황제 폐하께서는 모르실 것이오며, 책임을 묻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양현감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양인행의 말처럼 스무 개로 군을 쪼개도 맡길 장수가 부족하였고, 스무 개보다 여섯으로 나뉜 군이 고구려 군의 공격에 맞서기 좋을 듯하였다.

“황제 폐하의 명이 지엄하나, 보급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위험을 감내할 수는 없다. 인행의 말이 옳으니, 군은 여섯으로 나누도록 하겠다.”

이에, 여섯 형제가 각기 군을 맡아 보급을 운송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요하 서쪽 지류에 당도하니, 여섯으로 나뉜 군이 요하를 건너기 위해 각기 부교를 건설하게 되었다.

“나는 황제께서 계신 요동성 앞으로 향하겠다. 너희는 조심 또 조심하거라.”

양현감이 물이 불어난 요하를 바라보며 다섯 동생들에게 당부하였다.

이틀에 걸친 공사 끝에 부교가 완성되니, 일시에 여석 군이 도하를 강행하였다.

이때까지 이들의 앞을 막는 고구려 군은 전무하여, 황제 양광의 말처럼 요동을 수의 군사들이 장악한 듯 보였다.

* * *

양현감이 요하를 건너기 하루 전, 안시성 앞에 진을 펼친 우문화급이 동생 우문지급에게 공성을 명하였다.

이에, 기세 좋게 우문지급이 삼만의 군을 이끌고 안시성이 평원과 맞닿은 유일한 지점인 북서문으로 공세를 펼쳤다.

이를 기다려, 안시성 외성 남서문에서 온달이 막바우, 경우와 함께 개마무사 오천 기와 궁기병 일만 기를 이끌고 은밀히 출병하였다.

이들의 목적지는 당연히 요하 서쪽 지류였고, 스무 개로 갈라진 수의 보급부대였다.

“각, 일만이천오백… 쉽다고. 하하하.”

막바우가 손가락으로 셈을 하며 웃으니, 경우가 짜증을 부렸다.

“그만 좀 세라고! 한번 칭찬해주니, 끝이 없네. 어휴.”

허나, 막바우의의 계산과 달리, 수의 보급은 여섯으로 나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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