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난공불락 요동성 (2)
“비밀리?”
경우가 의아해 물으나, 양만춘은 입을 굳게 닫고 더는 말이 없었다.
이에, 눈치 빠른 평강이 양만춘을 대신해 말하였다.
“조용한 곳에서 말씀 나누시지요.”
평강이 별채로 안내하니, 모두가 뒤를 따랐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양만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수의 황제는 반드시 우리 고구려의 수군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비사성을 공략할 것입니다.”
“비사성? 요동성이 아니고 비사성?”
막바우가 의아해 물으니, 양만춘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요동성도 공략할 것이지만, 비사성도 공략할 것이네.”
잠시 말을 끊은 양만춘이 모두와 시선을 일일이 맞춘 후, 말을 이었다.
“비사성 앞바다에서 수의 수군총관 주나후가 전사했던 일을 수의 황제는 반드시 기억하고 있기에, 대군에게 육로로 비사성을 공략하게 하여 우리 고구려의 수군을 무력화할 것입니다. 비사성이 무너지면, 수는 바다를 마음껏 헤집고 다니게 됩니다.”
“허면, 어찌해야 하오?”
막바우가 다시 물으니, 양만춘이 기다렸다는 듯 말하였다.
“모두, 안시성으로 가는 거네.”
“안시성? 비사성을 지킨다면서, 왜 안시성을 가?”
막바우의 물음에 양만춘이 답하기 전에, 경우가 대신 나서 답하였다.
“이 사람 막바우! 수의 대군이 육로로 비사성을 공략하려면, 반드시 안시성을 지나가야 한다네. 허니, 안시성만 지키면 비사성은 방비가 되는 것이네.”
그제야, 막바우도 이해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온달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주 혼자의 판단이시오? 아니면?”
평강이 방긋 웃으며 양만춘을 대신하여 말하였다.
“평소 성주의 성정이라면, 결코 혼자 판단으로 우리를 찾아오지 않으셨을 겁니다.”
이에 온달도 고개를 끄덕이니, 양만춘이 소리 낮춰 말하였다.
“장군께선 내일 회의에서 모두를 이끌고 적봉진으로 향하신다고 말씀하십시오.”
“오호라! 적봉진으로 가는 척한 후, 안시성에 눌러앉아 적을 맞아 싸운다 이 소리로군.”
막바우가 신이나 말하니, 양만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경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허면, 강화는?”
“강화는 있을 것이네. 허나, 우리의 방비가 무너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화가 있을 것이라 하셨네.”
양만춘의 대답에 평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을지 공께선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강화를 맺고자 하시는군요.”
영민한 평강의 말에 양만춘이 고개를 끄덕이니, 막바우가 놀라 물었다.
“허면, 이 계책이 모두 을지 공의 머리에서 나온 거라고?”
“그렇네.”
양만춘이 선선히 답하니, 막바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그럼 우리 장군님께도 사전에 귀띔이라도 해주지 이게 뭐야? 어디 시골 변두리 성주에게서 말을 전해 듣게 하고.”
“어허 이 사람, 막바우!”
온달이 급히 막바우의 말을 끊고는 양만춘에게 대신 사죄하였다.
“성주 용서하시오. 막바우는 장군이 되어도 여전히 거칠구려.”
“용서라니요. 어디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오니, 괘념치 마십시오.”
사람 좋은 양만춘이 웃어넘기니, 막바우도 미안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물었다.
“헌데, 성주는 언제 또 을지 공의 눈에 들어서 우리 장군님보다 더 총애를 받게 된 거요?”
이에, 경우가 보다못해 막바우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하였다.
“우리 장군님이나, 그대는 연기가 부족하여 금세 표가 나고, 무척 어색할 터라 사전에 언질을 안 준 것 아닌가!”
“그 말도 일리가 있군. 헌데, 성주도 연기는 못할 터인데?”
막바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양만춘을 가리키며 이견을 대었다.
이에, 경우가 답답한지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양만춘 성주는 변방, 시골 변두리 성주라 평양성 내에선 얼굴도 모르니, 애써 연기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걸 모르나 그래.”
“경우 자네 말이 일리가 있구먼. 하긴, 여기 평양성 내에선 안시성이 어디 있는지도 모를 터이니…….”
막바우 마저 동의하니, 괜히 부끄러운 양만춘이 허허 웃었다.
* * *
낙양에서 출병한 수의 군세는 천여 리에 달하였다.
이동식 궁전인 관풍행전을 꾸려 날이 저물기 전에 궁전을 세우길 반복한 탓에 행군 속도는 더뎠으나, 황제 양광은 결코 조급해하지 않았다.
물자는 충분히 조달될 것이었고, 감히 맞설 적은 없다 여긴 것이다.
“하여, 고구려 내부에선 강화 논의가 있었다고?”
고구려 내부에 심어둔 간자로부터 소식이 전해지자, 황제 양광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렇사옵니다. 고구려는 폐하께서 친히 대군을 이끌고 출전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앞다퉈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하옵니다.”
좌장군 우문술이 답하니, 황제 양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군이다. 고구려가 강화를 맺고자 안달함도 당연하도다.”
“이는 오직 폐하께옵서만 가능한 일이옵나이다.”
우장군 우중문이 오직 양광만이 이토록 강대한 대군을 신속히 모을 수 있음을 강조하며 아첨하니, 이에 질세라 좌장군 우문술도 소리 높여 말하였다.
“말썽 많던 돌궐도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나이다. 폐하를 두려워함이니, 고구려의 태왕이 엎드려 그간의 죄를 뉘우칠 일만 남았나이다.”
이에, 황제 양광이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용서를 구한다면, 너그러이 받아줄 것이다. 신라와 백제에도 사신을 보내어 알리거라.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고구려의 국경을 어지럽히지 말라 전하라. 고구려의 국경이 곧 우리 수의 국경이 될 터이니, 주의 또 주의하라 이르거라.”
이에, 곧 백제와 신라에 사신이 보내졌다.
“보아라! 우리 군의 사기를… 우리 수의 백만 대군으로 고구려 전역을 덮어 굴복시킬 것이다.”
황제 양광의 다짐처럼 백십삼만의 대군은 사기가 드높았다.
“행군 중 배불리 먹고, 푹 자게 하여 지치지 않게 하라!”
대군이 지치지 않도록 황제 양광이 명하니, 오월이 되어 요하에 당도하였다.
오월의 요하는 강물이 제법 불어 있었다.
이에, 황제 양광은 우문개에게 부교 건설 책임을 맡겼다.
“너는 속히 부교를 건설하여, 대군이 건널 수 있게 하라.”
이에, 우문계가 군사 오만을 이끌고 대군의 도하를 도울 부교 건설에 나섰다.
이전 전쟁과 달리 요하 건너에 진을 치고 있어야 할 고구려 군이 보이지 않으니, 부교 건설은 순조로웠다.
“감히 나의 백만 대군에 맞설 용기 따위는 없는 게로군.”
황제 양광이 요하 건너를 바라보며 만족해 미소지었다.
부교 건설을 시작한 지 삼 일째 되자, 우문개가 황제 양광에게 아뢰었다.
“대군이 도하할 부교가 완공되었나이다.”
이에, 황제 양광이 크게 흡족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애썼다. 백만의 대군이 건널 부교를 이토록 빨리 만들다니, 고생하였도다.”
황제 양광이 관풍행전 밖으로 나가 살펴보니, 과연 부교가 완공되어 있었다.
넓게 진을 펼친 백십삼만 대군이 그 진을 유지한 채 도하할 수 있도록 부교가 요하를 가득 메우니, 일대 장관이었다.
“오늘은 푹 쉬고, 배불리 먹으라. 내일 날이 밝으면 도하를 강행할 것이다.”
전장의 세세한 일까지 만기친람하는 황제 양광의 명에 따라 휴식이 취해졌다.
그리고 다음 날.
날이 밝으니, 아침 일찍 배를 든든히 채운 수의 백십삼만 대군이 도하를 시작하였다.
“진을 유지한 채 도하하라!”
황제 양광이 고구려의 기습을 우려해 진을 유지한 채 도하를 명하니, 좌장군 우문술과 우장군 우중문이 부장들에게 다시 명하여 도하가 시작되었다.
“와아아!”
백십삼만 대군이 천지를 뒤흔들 함성과 함께 부교에 올라 요하를 건넜다.
이를 지켜보던 황제 양광은 가슴이 벅차고 피가 끓어올라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래! 이대로 요동성을 점령하고, 국내성도 점령하며, 평양성까지 내려가 고구려 왕을 무릎 꿇릴 것이야!”
그러나, 그의 기쁨은 이내 곧 강 건너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구려군의 의해 분노로 바뀌고 말았다.
“와아아!”
수의 대군에 맞서 더욱 우렁차게 함성을 지르며 모습을 드러낸 고구려 군이 부교를 건너는 수의 대군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부교를 고정한 줄을 끊어라! 불화살을 날려 부교를 불태워라!”
대장군 강이식이 낭아봉을 높이 치켜들고 외치더니, 부교를 고정한 줄을 끊기 위해 말을 달렸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로 불붙은 화살들이 날아 부교 위에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막아라!”
우문개가 부교를 지키기 위해 소리쳤으나, 폭풍처럼 밀려든 개마무사들이 수나라 군사들을 짓밟았다.
그리고 뒤이어 달려온 부월수들이 부교를 고정한 줄을 끊었다.
이에 부교가 출렁이고 화염에 휩싸이니, 수의 대군이 놀라 허둥지둥 대었다.
수나라 군사들은 불길을 피해 요하에 뛰어들기도 하였고, 줄이 끊어져 부교가 출렁이자, 휘청대다 요하에 떨어지기도 하였다.
이에, 황제 양광이 격분하여 소리쳤다.
“군을 물리라! 진을 다시 펼쳐라!”
좌장군 우문술과 우장군 우중문이 황제의 명에 따라 서둘러 군을 물리니, 출렁이던 부교가 불에 타 떠내려갔다.
떠내려가는 부교를 지켜보던 황제 양광이 시선을 강 건너로 돌리니, 대장군 강이식이 활에 화살을 먹여 날렸다.
쉬이익!
거침없이 날아오는 화살에 호위병들이 급히 방패를 들고 달려오니, 황제 양광이 손을 들어 제지하였다.
“둬라!”
곧게 날아온 화살이 양광의 등 뒤 관풍행전 기둥에 박혔다.
이에 양광이 손수 화살을 뽑아 들어 보니, 서신이 매여 있었다.
[황제, 요동성에서 뵙겠소.]
강이식이 보내온 서신에 황제 양광의 입에 미소가 번졌다.
“고구려의 대장군 강이식도 이제 쉰을 바라볼 나이일 터인데, 아직도 호승심이 대단하구나. 그래, 요동성에서 어찌 나와 마주할지 궁금하도다.”
이때, 우문술이 부교 건설 책임자 우문개를 잡아 와 무릎 꿇리며 말하였다.
“폐하, 이 모든 것은! 우문개가 부교 건설과 방비에 소홀한 탓이옵니다.”
이에 황제 양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천검을 빼어 들고 앞으로 나섰다.
“건설만 하면 끝이 아니다. 방비도 하고, 적의 급습도 대비해야 하거늘, 너는 어찌 경계가 소홀했던 것이더냐?”
황제 양광의 물음에 우문개가 변명하고자 입을 열었으나, 이미 목과 몸이 분리되어 소리가 새어 나오지 못하였다.
우문개의 목을 벤 황제 양광이 부책임자, 사홍에게 부교를 다시 건설하라 명하였다.
이에 사홍은 우문화급의 도움을 받아 요하 건너 경계를 삼엄히 하며 부교를 건설하였다.
부교가 다시 건설되자 도하가 시작되었다.
고구려의 대장군 강이식이 이를 놓치지 않고 급습하였으나, 이미 경계를 담당하고 있던 우문화급이 오만 군사를 이끌고 막았다.
이에 수의 백만 대군이 무사히 도하를 하니, 강이식은 일만 군사를 잃고 요동성으로 패주할 수밖에 없었다.
우문술의 장자 우문화급이 오만 군사를 이끌고 뒤를 쫓으려 하였으나, 황제 양광이 북을 올려 제지하였다.
“급할 것 없다. 천천히 진격하면 되느니라. 고구려는 패주하면서도 뒤돌아 역습을 잘하느니라. 서두르지 않으면 실수도 없느니라. 도하에 내 공이 크기에 이를 아껴 말하는 것이다.”
황제 양광이 젊은 장수 우문화급에게 미소를 담아 말하였다.
이에 우문화급이 감격하여 넙죽 땅에 엎드리니, 황제 양광이 껄껄 웃었다.
“요하를 마침내 건너는구나. 대장군 강이식이 내게 요하를 내어주었구나. 하하하.”
마침내 황제 양광이 이끈 수의 백십삼만 대군이 요동에 들어서 진을 펼쳤다.
말을 달려 반나절이면 당도할 요동성이었으나, 황제 양광의 명에 따라 결코 서두르지 않은 것이다.
수의 진 중에 높이 솟은 관풍행전에서 황제 양광이 명하였다.
“공성병기를 조립하고, 보급이 유지되도록 요하의 부교를 지켜라.”
이에 수나라군은 수송해온 재료로 충차와 발석차, 정란 등 공성병기를 조립하기 시작하였다.
“요동성을 제아무리 단단히 방비할지라도 결코 삼 일을 버티진 못할 것이다.”
진 앞에 길게 늘어선 공성병기를 바라보며 황제 양광이 장담하니 좌장군 우문술이 황제 양광 만세를 외쳤다.
이에, 황제 양광이 만족하여 크게 소리쳐 명하였다.
“전군 진격하라! 요동성이 지척이다. 진군의 발걸음으로 천지를 진동케 하라!”
황제 양광의 명에, 백십삼만 대군이 공성병기를 앞세워 진격을 시작하니 과연 천지가 진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