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백십삼만의 정벌군과 백만의 후방 지원군 (1)
월국공 양소의 죽음을 전해 들은 황제 양광은 목놓아 울었다.
“나의 아버지여… 월국공이여! 어찌 나를 두고 가셨소. 월국공, 양소여!”
개소문은 양광이 양소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을 알고 있기에, 그의 울음이 거짓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대소 신료들 앞에서 곡을 멈추지 않는 황제 양광의 모습이 차츰 진실돼 보여 개소문의 마음을 무척 혼란스럽게 하였다.
‘이자가… 설마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인가? 자신이 자결을 명하고도 이토록 슬피 울 수 있는가? 이자는 도대체…….’
지쳐 쓰러질 지경에 이를 때까지 곡을 한 황제 양광이 겨우 마음을 가다듬어 명하였다.
“근위장 장형은 나를 대신하여 조문하며, 그대를 모두는 부족함이 없도록 예를 다해 장사를 치르도록 하라!”
이에 장형을 비롯한 모든 대소 신료들이 명을 받으니, 그제야 황제 양광이 눈물을 닦았다.
궁을 벗어난 우문술이 의아한 듯 근위장 장형에게 살며시 물었다.
“고령이시나, 정정하시던 분이… 어찌하여… 아시는 것 없소?”
이에, 장형이 바짝 붙어 나지막이 속삭였다.
“폐하를 알현하고 귀가하신 뒤 자결하셨다오.”
“뭐라? 그 말이 사실이오?”
우문술이 놀라 되물으니, 장형이 소리를 낮추라 손짓을 하며 말하였다.
“폐하의 서신도 받았다 하오. 그 후 대들보에 목을 맸다오.”
“허… 이런…….”
우문술이 말을 잇지 못하니, 장형이 그의 소매를 잡아끌며 말하였다.
“살고자 한다면 내 말은 모두 잊으시오. 그리고 폐하껜 그 어떤 말도 함부로 하지 않도록 주의 또 주의하시오. 폐하의 뜻을 따라야지, 의견을 내서는 아니 되오.”
이렇듯 황제 양광에게 충언을 고할 유일한 인물, 월국공 양소의 죽음으로 장형과 우문술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두려워 입을 닫았다.
* * *
밤이 깊어 대전에 단둘이 남게 된 황제 양광이 개소문에게 물었다.
“보았는가?”
“무엇을 말이오?”
“오늘 이 대전에 있던 자들 말이다.”
“그들이 어떻기에 묻는 거요?”
“갓쉰동, 너는 아직 어려 세상을 모르는구나. 저들은 나를 죽이려 들 것이다.”
“그들이? 어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오?”
개소문의 물음에 황제 양광이 분노로 두 눈을 이글거리며 답하였다.
“장형과 우문술은 나의 아버지, 선황을 시해한 자들이다. 그리고 이 대전에서 내게 굽신거리는 자들 역시 선황의 죽음에 분노하지 않은 간신배 역적들이다. 그런 자들이, 나 역시 죽이지 않을 리 없다.”
이에 개소문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하였다.
“선 황제 양견은 그대가 죽였소. 그럼에도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게요?”
“그렇다. 내가 부친을, 아비를 죽였다. 허나! 저자들이 정녕 충신이라면, 선황을 시해한 나를 벌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내게 굽신거리며 아첨만 떨 뿐이다. 이는 반드시! 내 목을 노리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것이 분명하다.”
개소문이 아무런 말도 못 하니, 황제 양광이 말을 이었다.
“보아라! 이 대전에 너와 나 단둘만 있지 않느냐? 어찌 황제를 지킴이 이리도 허술할 수 있단 말이더냐?”
이에 개소문이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그대가, 나 이외에 다른 이는 필요 없다 하여 근위장 장형이 호위를 백 보 밖으로 뺀 것이잖소.”
“그렇다! 나는 선황을 시해한 장형 그자가 두렵다. 그자와 그자가 이끈 호위들은 언제든 내 목을 노릴 수 있다. 갓쉰동, 너만이 나를 살리고, 나를 구할 수 있다. 너는 항상 내 곁에 있거라. 부디 나를 지켜다오.”
황제 양광의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다가 촉촉이 젖었다.
‘호위가 허술함을 탓하다가, 근위장 장형이 두렵다고 말하고는, 내게 자신을 지켜달라 말하는구나. 앞뒤가 맞지 않고, 감정 기복이 지나치도록 심하다.’
개소문은 측은한 마음에 말없이 황제 양광을 내려다보았다.
“너는 내가 실성했다 생각하는가?”
지나칠 정도로 영민한 황제 양광이 개소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에 개소문이 아무 답이 없으니, 양광은 실성한 듯 한참 동안 웃었다.
잠시 뒤, 웃음을 멈춘 황제 양광이 정색하며 말하였다.
“아비를 죽인 놈이 정상일 리 없다. 나 역시 잘 안다. 허나, 이것만은 믿어도 좋다. 나는 너를 믿는다.”
개소문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황제 양광을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이렇듯 다섯 자루의 칼을 메고, 양 허리에 칼을 찬 나는 두렵지 않소?”
“두렵지 않다. 항상 나와 너만 있으니, 너는 언제든 나를 죽일 수 있었다. 허나, 너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는 나를 두 번이나 살렸다. 너의 눈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네가 굳이 나를 죽일 리 없다.”
황제 양광이 단호히 말하며 환하게 웃으니, 개소문은 그저 담담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 * *
양소의 죽음 이후, 황제 양광은 각지의 충성을 확인하고자, 유람을 진행하였다.
관풍행전(觀風行殿)이란 이동식 궁전을 만들어 다녔으며, 그의 행차를 맞이하기 위하여 수백만 명의 백성들이 동원되어 대로를 만들고 장성을 보수하였다.
또한, 대운하가 완공되자, 운하를 따라 사십여 개의 궁전을 세우고 대로를 닦도록 하였다.
그리고 낙양 서쪽에 서원이란 정원을 만들도록 하였는데, 양광은 이 서원 안에 바다까지 만들게 하였다.
“호수나, 강이 아니오. 반드시 바다여야 하오.”
웃는 얼굴로 명하였으나, 그 누구도 이를 농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원에 수로를 만들어 바다와 연결하여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운하와도 연결시키니, 황제 양광이 이에 만족하였다.
“과연 바다로다. 훌륭하오. 바다로 이어진 수로에도 궁을 더 세우면 좋을 듯하오. 그리고 여기에 황제의 용주를 띄우고 운하를 따라 시찰을 다니면 참 좋을 듯하오.”
양광의 말은 곧 시행되었다.
바다와 이어진 수로엔 십여 개의 궁전이 건설되었고, 운하와 연결된 수로에 그 길이가 이백여 척에 사 층으로 구성된 용주가 띄워졌다.
황제 양광이 용주를 타고 운하 시찰을 나서니, 일대의 백성 팔만 명이 용주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동원되어 줄을 끌었다.
하루는, 운하를 깊게 파지 못한 곳에서 용주가 멈추니, 황제 양광이 웃으며 명하였다.
“이 지역 운하 공사에 참여한 이들을 모두 부르시구려.”
이에, 노역에 동원된 관리와 백성들이 두려워 떨며 모이니, 황제 양광이 봄바람 불듯 온화하고 따사롭게 말하였다.
“저들은 죽이고 싶지 않으니, 구덩이를 파고 산 채로 묻으시오. 절대로 죽여서 묻으면 아니 되오.”
황제 양광의 명에 따라 울부짖지 못하도록 재갈을 물리고 생매장이 진행되었다.
양광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갓쉰동, 저들의 눈을 보아라! 저들은 나를 증오하느니라. 내 백성들이 감히 나를 증오하느니라. 나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것들은 언젠가 내 목에 칼을 들이댈 터이니, 살려둬선 아니 된다.”
“증오는 백성들뿐만 아니라, 그대 역시 백성들을 증오하고 있소.”
“아니다. 나는 나를 증오하지 않는 이들은 결코 증오하지 않는다. 저들이 나를 증오하고 두려워하기에 벌을 내리는 것뿐이다.”
“그대가 폭정을 일삼으니, 백성들이 그대를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것이오.”
“그 역시도 틀렸다. 나는 충성을 다짐받고자 했을 뿐이다. 저들은 충성을 노역으로 증명하면 될 터인데도, 소홀히 하고는 오히려 내 탓을 할 뿐이다.”
황제 양광의 말에 개소문도 더는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사람이다. 이곳은 내 나라도 아니니, 관여할 바 없다.’
이때 황제의 용주로 북방의 반란 소식이 전해졌다.
장성 증축과 보수 공사에 끌려갔던 백성들이 노역을 견디지 못하고 도주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에 황제 양광이 빙그레 웃었다.
“그곳이 태원 위라 하였겠다. 군사를 보내지 마라. 이연 형님이 어찌 나오시는지 보겠노라.”
반란 소식을 접하고도 용주는 운하를 따라 황하에서 장강까지 내려가니, 마침내 태원에서 소식이 전해왔다.
“당국공 이연께서 친히 군을 이끌고 반란 세력을 모두 토벌하였나이다.”
소식을 전하는 근위장 장형에게 황제 양광이 웃으며 말하였다.
“보아라! 황명이 없음에도 이토록 충성을 다하는 이가 있느니라. 너희는 이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는 껄껄 웃으며 명하였다.
“뱃놀이는 이제 그만하고 싶구나. 반란이 일어난 곳을 시찰할 터이니, 길을 닦고, 앞을 막는 산에 굴을 뚫어 지날 수 있도록 하라.”
이에, 백만여 명의 백성들이 동원되어 태항산에 굴을 뚫어 황제의 행차가 지날 수 있도록 대로를 닦아야 했다.
이처럼 황제 양광은 문무백관은 물론 백성들의 충성을 노역으로 확인코자 하였으니, 이를 견디지 못한 백성들은 스스로 손과 발을 잘라 노역을 피하기에 이르렀다.
* * *
유람을 다니며 충성을 확인한 황제 양광은 이제 눈을 장성 밖으로 돌리기 시작하였다.
“나라 안에 우환은 이제 없는 듯하다. 모두가 내게 충성을 다하며, 모두가 행복해하는구나. 허나, 아직도 나를 따르지 못해 불행한 이들이 있으니, 이 어찌 애달프다 아니 하겠는가?”
이에, 북방의 골칫거리 돌궐 정벌을 명하는 한편 고구려에도 사신을 보냈다.
“나는 지난 전쟁을 치르며, 돌궐을 어찌 대해야 하는지 깨달은 바가 크다. 금산까지 진격하여 감히 장성을 넘어 난동부리지 못하도록 두려움을 안겨 주거라!”
돌궐 정벌의 목적은 오직, 돌궐의 중심 금산 공략이었다.
“기마 민족인 돌궐을 상대로 드넓은 초원을 헤맬 필요 없다. 오직 중심으로 진격하여 돌궐과 돌궐에 복속된 것들이 뭉치지 못하게 하여, 그 세력만 꺾으면 된다.”
황제 양광의 이 계책은 적중하였다.
뿔뿔이 흩어진 기마 민족은 결국 감히 수나라에 맞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영민한 황제 양광의 뜻대로 진행되는 듯하였다.
허나, 고구려에 보낸 사신은 번번이 원하는 답을 받아오지 못하였다.
* * *
황제 양광이 세 번째 보낸 사신에게 고구려 태왕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황궁에 입조하여 머리를 조아리라?”
말로만 듣던 강이식이 호랑이 눈으로 노려보고, 온달이 시커먼 검을 들고 서니, 이들의 서슬 퍼런 기세에 질린 수의 사신이 두려워 떨며 답하였다.
“그, 그렇사옵니다.”
“그대가 세 번째인 것은 아시오?”
“알고 있사옵니다.”
“이전에 왔던 사신들은 모두 무탈하신 게요?”
이에 사신이 답하지 못하니, 태왕이 애처로운 시선으로 사신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허허, 안타깝도다. 내가 머리만 조아리면 우리 고구려와 수가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하였소?”
“그렇사옵니다. 전하.”
묻는 말에 공손히 답하는 수의 사신이 기특한지 고구려 태왕이 껄껄 웃었다.
“허허, 답은 참 잘도 하시는구려.”
이에, 모든 대소 신료들이 따라 웃으니 수의 사신도 눈치를 보며 소리 낮춰 웃었다.
‘내가 오늘 살아 돌아가긴 틀렸구나.’
수의 사신이 이처럼 생각하며 웃으니, 입은 억지로 웃음을 내고 있으나 얼굴은 오만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웃은 태왕은 사신이 애처로워 미소를 담아 말하였다.
“살려 보낼 터이니, 얼굴 좀 피고 너무 떨지 마시구려. 그대는 가서 전하시오. 나는 바쁘니 수의 황제가 입궁하여 나를 알현하면 좋을 듯하오. 그대는 빠짐없이 전하여, 번거롭게 다른 사신이 다시 오는 일 없도록 하시오.”
고구려 태왕이 좋은 말로 타이르듯 돌려보내 목숨은 건졌으나, 수의 사신은 황제 양광 앞에서 또 한 번 시련을 겪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