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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215화 (215/328)

215화 수 세조 양황제 양광(隋 世祖 煬皇帝 楊廣) (6)

양광을 신뢰하지 않는 개소문과 달리, 양광은 진심으로 개소문을 신뢰하였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나를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갓쉰동 그 아이는, 일면식도 없는… 더구나 적대국의 태자인 나를 망설임 없이 구하였다. 이 아이는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다르다. 내가 신의를 지킨다면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양광에게 개소문은 자신을 황위에 올린 양소보다 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후 양광은 도주하였던 양용을 비롯하여 모든 형제와 이들을 따르던 귀족 세력을 무참히 살육하였다.

그리고 선 황제 양견과 독고황후의 세력을 견제하고, 장안성에 기반을 둔 귀족 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낙양 천도를 빠르게 진행하였다.

이 모든 과정은 황제 양광의 명을 받은 양소가 맡아 진행하였으니, 대소 신료들은 점차 양소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양소의 눈밖에 날 경우, 선 황제를 따르던 무리에 포함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낙양성이 재정비 되고, 장안성 인수궁 못지 않은 황궁이 우뚝서니, 비소서 황제 양광의 천도가 진행되었다.

낙양성에 들어선 양광은 선황제 양견이 중단하였던 대운하 공사를 재개하고, 만리장성의 복구 증축을 명하였다.

백성들의 저항이 예견되었으나, 신하 중 누구도 이견을 내는 이 없었다.

황제의 명을 받은 양소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소 신료를 독려하며 서두르니,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미 지난 고구려 정벌 당시부터 양광과 고구려 정벌에 관해 논의하였던 양소였기에, 대토목 공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낙양으로 천도하였으니, 대운하를 통한 물자 조달과 장성의 복구 증축이 마무리되면 바로 고구려 정벌이다.’

양소의 생각처럼, 낙양 천도부터 대운하 건설과 장성의 복구 증축은 모두 고구려 정벌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개소문은 황제 양광이 고구려 정벌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짐작조차 못 한 채 곁을 지키고 있었다.

하루는, 개소문이 황제 양광에게 말하였다.

“잠시 오태산에 다녀오고 싶소.”

이에 양광이 껄껄 웃으며 물었다.

“네가 나를 떠나면 누가 나를 지키겠느냐?”

개소문이 답하지 못하니, 황제 양광이 시원스럽게 말하였다.

“그래, 가자꾸나. 그 오태산이란 곳 나도 보고 싶구나.”

“황제, 그대도 가겠단 말이오?”

개소문이 놀라 물으니, 황제 양광이 빙그레 웃었다.

“내가 있는 곳에 너도 항상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를 떠나 오태산에 가야겠다고 말하니, 내 어찌 허락할 수 있겠느냐?”

“…….”

“하여, 내가 태원을 거쳐 오태산을 둘러볼 것이니, 너는 그저 내 곁을 지키면 되느니라. 하하하.”

이렇듯 황제 양광의 태원 행차가 진행되었다.

태원유수 이연은 황제를 맞기 위하여 따로 이궁을 건설하였다.

태원에 이궁이 건설될 무렵, 황제의 행차가 시작되었다.

낙양을 떠나 태원으로 향하는 황제의 행차는 그 수행 인원만도 삼십만에 달할 만큼 장대하였다.

태원유수 이연이 배적과 건성, 세민 등을 대동하고 마중나갔다.

말에서 내려 황제 앞에 머리를 조아린 이연과 배적, 건성, 세민 등을 내려다보며 황제 양광이 껄껄 웃었다.

“형님께서 이렇듯 마중나와 주시니 이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소. 하하하.”

호탕한 황제의 웃음에 살며시 고개를 든 세민의 시선에 호랑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개소문이 들어왔다.

‘아니, 저놈은 갓쉰동이 아니던가?’

세민만 놀란 것은 아니었다.

이연의 뒷열에서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던 황 교두 역시,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저, 저놈이 황제를 모시게 되었다니…….’

개소문의 이글거리는 두 눈은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고 달려와 목을 벨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참극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궁에 들어선 황제 양광은 호화로움에 대단히 만족하여 이연을 거듭 칭찬하였다.

“역시 형님이시오. 과연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진심이구려.”

“준비가 미흡하여 망극하옵나이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연의 말에 황제 양광이 더욱 흡족하여 껄껄 웃으며 말하였다.

“궁에는 항상 아름다운 여인들의 웃음이 피어나야 하는 법. 아니 그렇소?”

황제 양광의 물음에 양소가 빙그레 웃으며 답하였다.

“이궁을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들로 채우겠나이다.”

흡족한 양광이 고개를 끄덕이니, 양소의 지시로 군사들이 일대 여인들을 살피기 시작하였다.

나이와 관계없고, 신분과 혼인 유무도 따지지 않은 채, 일대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모두 이궁으로 끌려와야 했다.

이들은 이후, 황제 양광이 낙양으로 환궁한 뒤에도 이궁에 남아 있어야 했으니, 일대의 원성이 자자했다.

한편 이궁에서 연회가 열리고, 황제 양광이 이연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갓쉰동이라 하오. 형님께서도 만난 일이 있으실 터인데, 아시겠소?”

이연이 황제의 곁을 장승처럼 서서 지키는 개소문을 올려다보고는 공손히 답하였다.

“고구려의 위장군 온달과 일전을 벌이던 당시, 저 아이를 본 일이 있사옵나이다.”

“어떻소? 저 아이의 무예가 대단하지 않더이까?”

“소년 장수라 불릴 만큼 출중하였습니다.”

이연이 공손히 답하니, 황제 양광이 만족해 껄껄 웃었다.

“저 아이가 공손성의 목도 베었다오. 하하하. 또한, 내 목숨을 구한 일도 있었다오. 하하하.”

황제 양광이 거듭 개소문을 칭찬하니, 이연도 웃으며 연신 개소문을 치하하였다.

“과연 일등공신이옵니다. 훌륭하고 가상한 소년 장수이옵니다.”

황제 양광과 태원유수 이연이 개소문을 칭찬하는 가운데, 세민과 황 교두의 마음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안하기만 하였다.

‘갓쉰동 저놈이 황제를 모시고 나타날 줄이야… 황 교두는 물론 내 목도 저놈 손에 달렸구나. 우리 둘의 목만으로 화가 끝나면 다행이나,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까지 화가 미치면 안 될 터인데…….’

곤경에 처한 세민이 비오듯 땀을 흘리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개소문은 그저 바라만 볼 따름이었다.

‘아직 내 스스로 황 교두와 겨뤄 이길 수 없으니, 이번에는 오태산만 살피고 돌아가겠다.’

개소문은 황제의 힘을 등에 업고, 황 교두를 처단할 생각이 없었으나, 이를 알지 못하는 세민과 황 교두는 그저 비오듯 땀만 흘릴 뿐이었다.

며칠 뒤, 황제의 행차가 오태산으로 향하니, 태원유수 이연도 황제의 행차를 수행하였다.

오태산에 당도한 황제 양광이 명하였다.

“이곳에서 찾고자 하는 이들이 있느니라.”

이에 세민과 황 교두는 살며시 시선을 개소문에게 보냈다.

‘저놈이… 황제가 저놈을 도와 찾는구나. 저놈의 권세가 이다지도…….’

그러나 개소문은 세민의 시선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황제 양광의 명으로 오태산 수색이 시작되었다.

* * *

한 달간 수색이 진행되었으나, 남궁 씨 형제와 독고영, 팽운 등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갓쉰동아, 네가 찾는 이들은 아마도 이곳을 떠난 모양이로구나.”

황제 양광이 부드럽게 위로하니, 개소문도 더는 수색 진행을 요구할 수 없었다.

“이만 돌아갑시다.”

개소문의 말에 황제 양광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이 오태산에 없다 하여 이 세상에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특별히 사람을 풀어 찾도록 할 터이니, 너무 상심치 말거라.”

아마도 당진평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 듯하였다.

이에 개소문이 고개를 끄덕여 답하니, 다시 환궁이 시작되었다.

개소문에 대한 황제 양광의 총애를 눈으로 직접 본 세민과 황 교두는 더욱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다.

태원유수 이연이 황제의 행차를 배웅 나오니, 개소문의 시선이 두려워 식은땀만 흘리는 세민과 황 교두에게 향하였다.

감정을 담지 않은 개소문의 시선에 세민과 황 교두는 더욱 두려워하였다.

황제 양광이 피식 웃으며 손짓하여 세민을 불렀다.

“너는 이 아이를 잘 알 것이다. 이 아이 갓쉰동은 네게 원한이 없다고 하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훗날 무예를 갈고닦아 황 교두와 겨뤄보고 싶다 하니, 좋은 날 좋은 곳에 자리를 마련해 보거라.”

“망극하나이다.”

이에 세민이 엎드려 명을 받았다.

그리고 세민이 뒤로 물러나다가 살며시 개소문에게 말하였다.

“귀인을 알아뵙지 못한 죄 죽어 마땅하오나. 이렇듯 은혜를 베푸시오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이에 개소문이 아무런 답도 하지 않으니, 세민은 그저 무안해 뒷걸음질로 물러날 뿐이었다.

이때, 세민의 나이 열다섯 살이었으나, 장정 못지않은 체구였다.

그러나 동년배인 개소문에 비하면 어깨밖에 닿지 않을 정도로 왜소해 보였으니, 이 두 소년 장수를 지켜보던 황제 양광은 괜히 기분 좋아 껄껄 웃었다.

‘태원유수 이연의 아들이 소년 장수라 유명하였으나, 나의 갓쉰동에 비해 그저 어린아이로밖에 보이지 않는구나. 하하하, 과연 나의 갓쉰동이야 말로 일대의 영웅호걸이 될 것이다.’

마치 자신의 혈육이라도 되는 듯 개소문의 모든 것이 자랑스럽고 기쁜 황제 양광이었다.

* * *

황제의 행차가 오태산을 떠나자, 산중턱 석굴 안에서 어득구가 나오며 중얼거렸다.

“수의 황제까지 너희를 찾다니, 이게 어찌된 일이더냐?”

이에, 검은색 천으로 두 눈을 가린 온동이 어두운 석굴 안에서 나와 어득구의 곁에 서며 오히려 되물었다.

“황제 행차 속에 개소문 형님이 계시다는 말씀이 사실이옵니까?”

이에 어득구가 답하기도 전에 석굴 안에서 남궁민이 나오며 답하였다.

“그렇다. 황제의 행차가 오기 전, 내가 아랫마을에서 들었단다.”

“듣는 것으로 진의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온동이 다시 물으니, 어득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래, 온동 네 말이 옳다. 내가 살며시 다녀와야겠구나. 며칠만 기다려 보거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온동이 어득구의 목소리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말하였다.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 듯하였다.

“염려 말거라. 잠입은 나의 장기이니라.”

어득구가 행장을 꾸리니, 동굴 안에서 독고영이 어린여자 아이의 손을 쥐고 나왔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는 팽무성의 여식 팽운이었다.

이제 열두 살이 된 독고영이 자신보다 두 살 많은 온동에게 말하였다.

“오라버니, 우리 이제… 고구려로 가요. 황제가 누구를 데리고 왔든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잖아요.”

독고영의 말에 길을 떠나려던 어득구가 망설이며 온동을 바라보았다.

이에 온동이 독고영의 목소리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말하였다.

“영아, 두 분 사부님들이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는데, 어찌 고구려로 갈 수 있겠느냐. 그리고 황제 행차 속에 개소문 형님이 계셨다고 하니, 확인도 해봐야겠구나.”

“오라버니…….”

“영아, 어득구 어르신이 개소문 형님의 행방만 확인하시고 돌아오시면, 두 분 사부님을 기다려 떠나도록 하자꾸나.”

온동이 부드럽게 다독여 말하니, 독고영도 더는 재촉하지 못하였다.

이에, 어득구가 독고영의 눈치를 보며 온동에게 말하였다.

“그럼 후딱 다녀올 터이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오래 걸리지 않을 게야!”

* * *

태원을 떠난 황제의 행차는 조양에 들렸다.

황제의 행차를 수행하는 군사로 변장한 어득구는 몰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개소문의 행방을 찾았다.

개소문은 항상 황제의 곁을 지키고 있었기에, 어득구는 황제 처소까지 숨어들어야 했다.

어둠을 틈타, 발소리를 줄이며 지붕과 지붕 사이를 건넌 어득구가 황제 처소 위에 살며시 앉아 기회를 엿보았다.

‘제길 경계가 삼엄하군. 살며시 안만 들여다보면 될 건데… 차라리 오늘은 물러나고, 수행원 중 한 명을 붙잡아 물어볼까?’

그러나 조금 숙고해 보니, 군사들 중 개소문에 대해 아는 이가 없을 듯하였고, 지위가 높은 수행인 중 누군가를 붙잡아 묻는 일 또한 공연히 일을 크게 벌일 듯하여 꺼려졌다.

‘일 크게 벌일 것 없어. 내가 두 눈으로 확인하면 그만이야. 이런 일 어디 한두 번인가? 괜찮아 할 수 있어.’

수도 없이 해왔던 잠입이었으나, 오늘은 그에게 일진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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