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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213화 (213/328)

213화 수 세조 양황제 양견(隋 世祖 煬皇帝 楊廣) (4)

당진평이 이끄는 형제단은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였다.

자결을 명하는 황제 양견의 서신을 받은 한왕 양양은 크게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허나 이미 이보다 앞서 우문지급에게 전언을 들은 태자 양광은 담담하였다.

“황후마마 모르게 은밀히 보내신 서신이오.”

태자 양광이 서신을 탁자에 올려놓으며 말하니, 양소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왕이 전하를 찾아올 것이옵니다. 그리고 장안성에서 비보가 있겠지요.”

양소의 말대로 겁에 질린 한왕 양양이 태자 양광의 처소를 방문하였다.

“형님! 아니, 태자 전하… 소인 어찌하오면 좋습니까? 어찌하오리까?”

무릎 꿇고 우는 한왕 양양에게 태자 양광이 탁자 위의 서신을 들어 건네었다.

“나도 받았느니라. 너무 슬퍼 마라. 너의 죽음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형님… 따르시렵니까? 자결하란 명을 받아들이십니까?”

“받아야지. 그럼 거역하겠느냐?”

“혀, 형님… 황제 폐하의 아니 아버지의 이 자결하란 명은… 너무 가혹한 처사이옵니다. 정녕 따르시겠나이까?”

“허면, 따르지 않고 다른 수가 있더냐?”

태자 양광이 물으니, 한왕 양양이 차마 심중의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이에, 태자 양광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마치 웃는 듯하여 한왕 양양이 의아해 바라보니, 태자 양광이 가볍게 웃으며 말하였다.

“후… 당장 죽으란 명은 없었으니, 며칠 두고 보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좋은 날을 택해보도록 하자.”

고개를 떨군 채 한왕 양양이 물러나니, 양소가 입을 열었다.

“한왕은 담이 작아 태자 전하의 적이 될 수 없습니다.”

“나 역시 그리 생각하오.”

이에 양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당 장주가 태자 전하께서 장안성에 당도하시면 바로 뵙기를 청하였나이다. 아마도 자리가 마련된 모양이옵니다.”

“장안성이라…….”

자결을 명 받은 태자가 장안성으로 향함은 황제 양견의 명을 거역한 대역죄에 해당하였다.

물론 은밀한 서신이었기에, 대소 신료들은 알 리 없으나, 필경 황제의 진노를 피하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자 양광과 양소는 장안성 입성을 자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장안성에서 비보가 날아들며 장안성 입성이 가능해졌다.

독고황후가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운명을 달리한 것이다.

황후의 죽음으로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태자 양광과 한왕 양양은 속히 장안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잠시나마 목숨을 보전하게 된 한왕 양양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였다.

이에, 태자 양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였다.

“상중이니, 너무 좋아 웃지 말거라.”

한와 양양이 곧바로 얼굴을 굳히니, 태자 양광이 만족한 듯 어깨를 다독였다.

“이제, 상을 치르러 가도록 하자.”

태자 양광은 마치 독고황후의 죽음을 예견한 듯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 * *

국상을 치루는 장안성은 울음바다였고, 인수궁 역시 울음으로 가득하였다.

패전의 책임을 지고 처분을 기다려야 할 태자와 한왕이 인수궁에 들어섰으나, 이를 이상히 여길 이는 없었다.

상중에 죄를 묻지 않음은 당연하였고, 양용과 더불어 양광과 양양도 상복을 입고 상을 치를 수 있었다.

황제 양견은 갑작스러운 독고황후의 죽음으로 무척 당혹스러운 듯 보였으나, 이내 곧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밤이 되어 상중에도 불구하고 선화부인의 처소로 발을 옮겼다.

황제의 지위를 떠나 상주가 지켜야 할 예가 아니었으나, 그 누구도 감히 황제 양견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하였다.

이에, 평소 행실이 바르지 못하였던 양용 역시 다시 태자 책봉을 기대하며 인수궁을 벗어나 유흥을 즐기니, 대소 신료들도 슬그머니 상복을 벗는 이가 늘었다.

오직 독고황후를 모시던 최희와 수련 그리고 선우천만이 북받치는 슬픔을 억누르며 상을 치를 뿐이었다.

황제 양견보다 더 막강한 세를 지녔던 독고황후의 죽음을 반기는 이들이 이토록 많음을 눈으로 확인하며 태자 양광이 혼잣말을 하였다.

“어머니께서 소자에게 시간을 마련하여 주시어,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부디 영면하시옵소서. 다음 생에서는 여장부가 아닌 평범한 아낙네가 되시옵기를 기원하옵나이다.”

밤이 깊자, 태자 양광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인수궁을 벗어나 상복을 벗었다.

언제나 함께하는 양소가 태자를 인도해 장안성 남문 객잔에 들어서니, 텅 빈 객잔 안에서 당진평이 황급히 나와 맞이하였다.

“당 장주는 소유한 객잔이 몇 개나 되오?”

태자 양광의 물음에, 당진평이 머리를 조아려 답하였다.

“소인도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하나이다.”

“세상 모든 재물을 당 장주 그대가 쓸어 담겠구려. 허허허.”

태자의 농에도 당진평은 그저 머리를 조아려 자리를 안내할 뿐이었다.

태자와 양소가 자리에 앉자, 객잔 안에서 사내 둘이 쇠사슬에 손발이 묶이고 목마저 쇠사슬이 채워진 개소문을 끌고 나왔다.

강제로 개소문을 바닥에 앉히자, 당진평이 태자와 개소문 사이에 서며 말하였다.

“태자 전하시다. 절을 올리거라.”

“나의 태자가 아니다. 절을 강요하지 마라.”

개소문의 대답에 당진평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태자 양광은 개의치 않고 껄껄 웃었다.

“나는 너를 안다. 너도 나를 기억하느냐?”

“나는 그대를 구한 일이 있었다. 그 일을 기억한다면, 더 이상 모욕을 주지 말고 목을 베기 바란다.”

“나는 은인의 목을 벨 생각이 없다. 너라면 은인의 목을 베겠느냐?”

태자 양광이 부드럽게 물으니, 개소문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양광을 조금도 신뢰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당 장주를 통해 네가 겪은 일을 모두 들었다. 어린 나이에 고초가 심하였겠구나.”

“내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오?”

개소문이 의심의 눈초리로 물으니, 태자 양광이 껄껄 웃으며 답하였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든다. 나와 함께 하지 않겠느냐?”

“내가 그대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오?”

“평화의 시대다. 나는 황제가 되어 너의 고구려와 평화를 유지하고 싶다.”

“평화?”

“그렇다. 평화다. 지난 전쟁은 내가 원한 전쟁이 아니었다. 전쟁의 참담함을 두 눈으로 지켜본 내가 황위에 올라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 한다. 너도 나와 함께 하겠느냐?”

이에 개소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보니, 태자 양광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찾고자 하는 아이가 있다고 들었다. 내가 너를 돕겠느니라. 너도 나를 돕겠느냐?”

“그대에겐 따르는 이가 많을 터인데, 어찌 나와 함께 하고자 말하는 게요?”

개소문의 물음에 태자 양광이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내겐 마땅한 군대가 아직 없다. 따르는 이도 몇 되지 않는다. 세력이 미미하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믿고 따를 이들을 찾고자 한다. 내가 황위에 오를 수 있도록 네가 돕는다면, 나 역시 너를 도울 것이니… 좋은 거래가 되지 않겠느냐?”

이에 개소문의 눈빛이 흔들리자, 기다렸다는 듯 태자 양광이 말을 이었다.

“공손성의 목을 벨 기회를 주겠다. 그리고 내가 황위에 오르면 오태산을 뒤져 네가 찾고자 하는 아이를 반드시! 반드시… 찾아주겠다.”

공손성의 목과 팽 장주의 딸을 언급하니, 마침내 개소문이 입을 열었다.

“황 교두, 그자와도 겨루게 해주시오. 내 반드시 아우의 복수를 하고 싶소.”

“그자의 목을 원하느냐? 원한다면 그자의 목을 네게 주겠다. 목을 원하느냐?”

태자 양광의 물음에 개소문이 고개를 저었다.

“죽은 자의 목은 필요 없소. 내가 그자의 목을 직접 벨 것이오.”

“하하하, 대단한 기개로다. 허나, 이연의 수하 황 교두는 네가 어찌 해 볼 상대가 아니구나. 헛되이 목숨만 버리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그를 이길 수 없다 하여, 일 년, 이 년, 십 년 뒤에도 그를 이기지 못하란 법은 없소. 내가 실력을 키워 그자와 겨룰 수 있게 해주시오.”

개소문의 두 눈에 복수심이 불타고 있었다.

태자 양광이 고개를 끄덕여 답하였다.

“좋다. 이제부터 너는 나를 따르고, 내가 황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돕거라. 나 역시도 성심을 다해 너를 돕겠느니라.”

이에, 개소문이 머리를 끄덕여 답하니 만족한 태자 양광이 당진평에게 쇠사슬을 풀어주라 명하였다.

몸이 자유로워진 개소문이 자리에서 일어나 태자 양광에게 물었다.

“그대는 언제 황위에 오를 것이오? 황제가 아직 굳건한데, 시일이 오래 걸리는 것 아니오?”

“황제께서 강건하시다면, 강건하시지 않도록 하면 된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개소문은 태자 양광의 말 속에 담긴 뜻을 대번에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나의 황제도 아니니, 그가 하루라도 빨리 강건하지 않기를 바라오.”

이에 태자 양광은 말없이 그저 미소로 답하였다.

* * *

객잔을 떠나 인수궁으로 향하며 태자 양광이 양소에게 물었다.

“이연 형님에게 거사를 알려야 하지 않겠소?”

“저 아이가 걸리옵니다.”

양소가 뒤따르는 개소문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에 태자 양광이 고개 돌려 개소문을 바라보고는 껄껄 웃었다.

“하하하, 이연 형님과 저 아이는 원한이 없소. 그저 다만 황 교두와 불편한 관계일 뿐. 갓쉰동아! 내 말이 맞지 않느냐?”

개소문 역시 이연과는 원한이 없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이연이란 자와 원한은 없소. 그자의 아이들과도 원한은 없소. 그저 못된 아이일 뿐… 그 아이들을 벌할 생각은 없소. 나는 내 아우와 나를 돕던 이들을 죽인 황 교두만 죽이면 되오.”

이에 만족한 태자 양광이 양소에게 말하였다.

“이연 형님에게도 사람을 보내어 뵙자고 합시다. 아, 그 형님도 상을 치르기 위해 인수궁으로 오시겠구려.”

“태원을 단단히 지키란 황제 폐하의 지엄한 명에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양소가 답하니, 태자 양광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형님이 필요한데… 잠시 오셔서 뵙자고 사람을 보내도록 하시구려.”

그러나, 양소는 왠지 개소문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저 아이 때문에 이연과 사이가 틀어질 수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절대로 이연과 저 아이를 만나게 해선 안 된다.’

개소문에게서 시선을 뗀 양소가 태자 양광에게 나지막이 말하였다.

“이연에게는 제가 따로 서신을 보내겠나이다.”

태자 양광도 더는 재촉하지 않고 걸음을 옮기며 개소문에게 말하였다.

“너는 요서에서 나를 지켰듯이 인수궁 안에서 나를 지키면 된다. 항상 내 곁을 떠나지 마라.”

이에, 개소문이 단호한 어투로 답하였다.

“나는 그대에게 얻고자 하는 것이 있기에 떠나지 않을 것이오. 그대는 약조만 지켜주기 바라오.”

“본래 약조란 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허나, 나는 너에게 약속한 것들을 지킬 것이다. 나에겐 너무도 쉬운 일이기에, 어길 필요가 없다.”

태자 양광의 답변에 개소문이 다시 말하였다.

“산동에 갇힌 내 벗들도 치료하여 주기 바라오.”

“그들은 이미 치료를 받고 있을 것이다. 네가 산동에 돌아가면 당 장주가 그들을 풀어줄 것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태자 양광이 시원시원 답하니, 개소문도 내심 안심하는 기색이었다.

* * *

궁으로 돌아온 태자 양광은 바로 우문술과 장형을 자신의 처소로 불렀다.

장형은 이미 양소와 오랜 대화를 나눈 상태였기에, 태자 양광과 뜻을 함께하였다.

“이틀 뒤, 공손성이 인수궁에 들어올 것입니다.”

우문술이 공손성을 언급하자, 태자 양광과 개소문의 눈빛이 일순 빛났다.

황제의 최측근이자, 강력한 군대를 지닌 공손성이었기에 태자 양광이 경계함은 당연하였고, 개소문은 온동을 대신하여 그의 목을 노리고 있었기에 내심 반긴 것이다.

이에 침묵을 지키던 양소가 입을 열었다.

“공손성이 입궁하기 전에 거사를 치러야 합니다. 내일이 적기이옵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말에 장형과 우문술이 놀라 말하였다.

“시기가 너무 촉박합니다.”

“준비가… 거사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한 준비가 미비합니다.”

그러나 양소는 단호하였다.

“이 일은 준비하면 끝도 없이 해야 할 일이오. 준비보다 시기가 우선이니, 내일 거사를 치러야 실기하지 않소.”

“허나!”

장형과 우문술이 이견을 내려 했으나, 태자 양광이 손을 들어 이들의 말을 끊었다.

“내일이 아니면, 나는 살아 있지 못할 것이오. 공손성이 입궁한 뒤엔 기회란 없다오. 그대들은 내가 죽은 뒤에 거사를 도모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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