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수 세조 양황제 양견(隋 世祖 煬皇帝 楊廣) (1)
강한 바람에 울부짖듯 펄럭이는 삼족오기를 등지고 강이식과 온달이 말에 올라 태산처럼 지키고 서 있었다.
요하에 당도하기 전부터 전의를 상실한 수나라 군사들은 그저 뒤돌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전쟁이란 전장의 군사들에겐 선택권이 없는 법.
“거기 양양이 있느냐? 왔으면 속히 앞으로 나와 어르신께 절을 올리거라! 하하하.”
강이식이 또 한 번 도발하니, 그저 듣고만 있을 한왕 양양이 아니었다.
“저 시건방진 주둥이는 도대체 무엇하는 물건인가?”
한왕 양양이 노기를 드러내며 물으니, 제갈여가 나서 답하였다.
“호랑이 수염을 기른 놈은 검귀라 불리는 고구려의 대장군 강이식이옵고, 그 옆에 체구가 큰 놈이 바로 검신이라 불리는 온달이옵니다.”
“그래 본 것도 같구나. 검귀와 검신이라… 헌데, 강이식은 검을 들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검귀라 불리는 게요?”
한왕 양양이 의아해 물으며 손가락으로 강이식을 가리켰다.
그의 말처럼 강이식은 낭아봉을 쥐고 있었다.
“소인도 그 연유는 모르옵니다만, 저놈이 쇠몽둥이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필경 검을 숨겨 지니고 있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제갈여는 어찌 되었든, 검귀란 칭호와 연관 지어 강이식이 검을 사용할 것이라 추측했다.
“음… 그렇겠군. 검귀라 불리는 놈이니, 쇠몽둥이가 아닌 검을 사용하겠지. 누가 나가서 저 시건방진 놈의 주둥이를 조용히 시키겠는가?”
한왕 양양이 주위를 돌아보며 말하니, 채휘가 장창을 쥐고 앞으로 나왔다.
“소장 선봉의 중책을 맡았사오니, 제가 나서 강이식의 목을 가져오겠나이다.”
채휘는 명궁이라 불리는 장수로 이미 말 등에 활을 올려놓고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좋다! 그대의 실력을 보여주시게!”
한왕이 크게 만족하니, 채휘가 곧장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요택을 지나며 채휘의 말도 상당히 지쳤기에, 털의 윤기가 없고 무척 야윈 상태였다.
요하를 사이에 두고 채휘가 강이식과 온달을 장창으로 가리키며 소리쳐 물었다.
“고작 두 놈이 마중 나온 게냐?”
채휘의 도발에 강이식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개미 떼 상대로 우리 둘이면 충분하다. 잘근잘근 씹어먹어 줄 터이니, 어서 오너라!”
“오냐! 내가 강을 건너갈 터이니, 거기서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거라!”
채휘가 기세 좋게 말을 몰아 요하를 건너기 시작하니, 강이식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였다.
“형님!”
온달이 급히 강이식을 불러 세우고는 누렁이를 몰아 앞으로 나아가며 말하였다.
“한왕의 졸개 따위를 어찌 고구려의 대장군이 상대하십니까.”
온달의 말에 강이식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졸개야! 내 아우가 나를 대신하여 나설 터이니, 너무 서운해 마라! 하하하.”
강이식의 조롱에 채휘가 얼굴이 붉어져 화를 내며 말을 달렸다.
“네 이놈들! 감히 뚫린 입이라고!”
말을 달리며 장창을 잠시 말 등에 올려놓고는 빠르게 활을 들어 두 대의 화살을 날렸다.
핑!
두 대의 화살이 마치 한 대의 화살처럼 동시에 시위를 떠나더니, 갈라져 강이식과 온달에게 향하였다.
이와 동시에 채휘도 화살을 쫓아 내달리며 장찰을 다시 쥐었다.
무척이나 신묘하고, 재빠른 연속 동작이었다.
온달은 여전히 누렁이를 몰아 요하 가운데로 나오며 자신을 향해 곧장 날아드는 화살을 향해 운철대검을 휘둘렀다.
붕!
시커멓고 거대한 운철대검이 허공을 때리니,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붕괴되듯 파열음이 일며 날아들던 화살을 떨구었다.
그리고, 강이식도 왼손을 뻗어 바로 앞까지 날아든 화살을 가볍게 쥐니 이 신묘한 재주에 수나라 군사들이 탄식을 내뱉었다.
갈수록 사기만 떨어지니, 한왕 양양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채 장군! 당장 목을 가져오시오!”
한왕 양양의 재촉에 채휘가 더욱 속도를 높여 달리니, 온달도 누렁이를 멈추지 않고 달리며 운철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아직 채휘와 거리가 삼, 사장 정도 떨어져 있었으나, 운철대검이 허공을 베자, 강한 파동이 일며 채휘를 향해 검기가 날아들었다.
“헉! 이런!”
한 번도 본 적 없는 검기에 기겁한 채휘가 장창을 휘둘러 대항하였다.
그러나 형체가 없는 검기를 장창이 막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채휘의 장창을 무시한 채 날아든 검기에 채휘의 흉곽이 으스러지듯 패였다.
일그러진 갑주를 움켜쥔 채휘의 두 눈에 거대한 운철대검을 높이 치켜들고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오는 온달의 모습이 어렸다.
본능적으로 장창을 일자로 뻗어 온달의 목을 노렸으나, 그보다 먼저 온달의 운철대검이 채휘의 몸뚱이를 뭉개버렸다.
툭!
채휘뿐만 아니라 그를 태웠던 말까지 뭉개 버린 온달이 요하 한가운데 서서 수나라 진영을 노려보았다.
“내게 볼 일이 있는 자, 누가 더 있는가?”
온달의 물음에 수나라 장수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에 제갈여가 빙그레 웃으며 오랜 벗 단목순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어서 나가 공을 세우시게.’
말하지 않았으나, 이미 의중을 파악한 단목순이 앞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나오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진숙이었다.
“나는 광동 진가장의 진숙이다! 그대가 과연 검신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면 내게 가르침을 내려보거라!”
진숙이 백마에 올라 크게 소리치고는 월도를 휘두르며 온달을 향해 돌진하였다.
“허허, 다가오기도 전에 벌써 휘두르는 건가?”
강이식이 온달을 흉내내며 허공을 베는 진숙을 비웃으니, 이 소리에 격분한 이십팔숙이 모두 월도를 쥐고 말을 달려 나왔다.
“오냐! 몽땅 오거라! 하하하.”
강이식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이십팔숙을 맞아 요하 한가운데로 말을 몰았다.
깡!
진숙의 월도와 온달의 운철대검이 불꽃을 튀겼고, 그와 동시에 이십팔숙 속으로 뛰어든 강이식이 낭아봉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힘껏 내리쳤다.
강이식의 낭아봉에 맞아 쓰러지는 이십팔숙의 비명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온달과 맞선 진숙의 월도는 운철대검에 의해 허무하게 두 동강이 났다.
이에, 토번국에서 온 금화법왕이 금환을 쥐고 말도 타지 않은 채 요하를 건너니, 어느새 진숙의 머리를 뭉갠 온달이 앞을 막고 상대하였다.
이때, 단목순도 무한보를 펼치며 날듯이 온달을 노렸다.
금화법왕과 단목순을 동시에 대적하게 되었으나 온달은 전혀 개의치 않고, 파산귀검 초식을 펼쳐 강물을 후려쳤다.
물줄기가 하늘로 솟더니 일자로 뻗어 곧게 단목순을 향해 날아갔고, 어느새 방향을 튼 운철대검이 금환을 으깨고는 금화법왕마저 날려 버렸다.
“으악!”
허공을 날아 처박히는 금화법왕의 비명에 한왕의 미간이 구겨졌다.
“온달! 감히 나를 욕보이는 것이더냐!”
물줄기를 뒤집어쓴 단목순이 팔십이식유성환상검을 허공에서 펼치며 온달의 전신을 온통 검기로 가두었다.
바람조차 가둘 검망에도 온달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오직 운철대검을 믿고 검망의 중심 단목순을 노렸다.
깡깡깡!
쇠와 쇠가 연달아 부딪치는 파열음이 일더니, 단목순의 검이 온달의 운철대검을 견뎌내지 못하고 날아갔다.
이에 기가 질린 단목순은 그저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는 운철대검을 허망하게 올려다볼 뿐이었다.
“단목순!”
이때 벗을 구하기 위해 제갈여가 천기신행을 펼쳐 순식간에 온달 앞으로 날아들었다.
일순 제갈여의 소매가 펄럭이니, 독을 품은 은빛 침들이 햇살에 빛나며 온달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소리비도를 뽑아 든 제갈여가 단목순을 자신의 뒤로 잡아끌고는 온달을 향해 몸을 솟구쳤다.
그러나, 온달이 파산귀검 초식을 펼치며 운철대검으로 허공을 베니, 장막이 찢기듯 대기가 갈라지며 날아들던 은빛 침들을 단목순에게 되돌려 보냈다.
“으악!”
은빛 침에 눈과 목을 찔린 단목순이 비명을 지르고, 운철대검의 검기에 밀려 제갈여가 맥없이 소리비도를 떨구었다.
그리고, 매정한 운철대검은 망연자실한 제갈여의 어깨를 후려쳐 뼈를 으깨었다.
“아악!”
제갈여의 처참한 비명에 온달이 누렁이를 돌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강가로 돌아갔고, 이십팔숙을 모두 요하에 눕힌 강이식이 그를 맞이했다.
“살려 주는 건가?”
강이식의 물음에 온달은 그저 옅은 미소로만 답하였다.
제갈여와 단목순이 처참한 몰골로 돌아오니, 한왕 양양은 기도 안 차 호통쳤다.
“이… 이… 이 무슨! 온달을 대적하라고 초청한 그대들이 몽땅 달려들고도… 아니! 절정의 무예 고수라 하여 초청을 하였거늘… 내 그대의 재주를 얼마나 믿었건만… 어찌 이다지도 허무히…….”
제갈여를 비롯한 절정의 고수들이 이미 보여줄 수 있는 재주는 다 보여주고도 제대로 맞서지 못하니, 조피골을 비롯한 다른 무예 고수들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이에 공지열이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전장은 무림인들이 무예를 겨루는 곳이 아니옵니다. 본디, 전장은 병법을 익힌 장수가 지략과 용병술을 펼치는 곳이옵니다.”
이에, 한왕 양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 장군의 말이 옳다. 적은 고작 둘이다. 전군 요하를 건너라!”
한왕 양양의 명에 어깨를 감싸며 제갈여가 아뢰었다.
“온달과 강이식만 있을 리 만무하옵니다. 적은 우리를 도발하여 강을 건너게 하려는 수작이옵니다. 필경, 강기슭에 적이 매복하고 있을 것이옵니다.”
“닥쳐라! 사기를 저하한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한왕의 호통에 제갈여가 입을 다물고 물러나 오랜 벗 단목순의 상처를 치유하였다.
“모두 요하를 건너라! 삼십만 대군이 일시에 요하를 건너 요동으로 들어갈 것이다!”
한왕 양양의 지엄한 명에 수나라 삼십만 대군이 일시에 요하를 건너기 시작하였다.
“와아아아!”
있는 힘껏 함성을 지르며 수나라 군사들이 강을 건너기 시작하니, 강이식과 온달의 얼굴에 비장함이 어렸다.
이어서 수나라 진영의 궁수들이 강 건너 강이식과 온달을 향해 화살을 날렸으나, 사거리가 짧은 수나라 군의 화살은 요하를 넘지 못하였다.
“하하하, 보았는가? 요하가 얼마나 넓은지를? 하하하.”
강이식이 이를 비웃으니, 한왕 양양이 말을 몰아 요하를 건너며 발작하듯 소리쳤다.
“당장 강을 건너라! 서둘러라! 이따위 요하는 개천에 불과하다!”
이에, 공지열이 한왕을 호위하며 군사들을 독려했다.
“매복에 대비해 넓게 펼쳐 강을 건넌다! 길게 펼쳐라! 결코 적에게 둘러싸이지 않을 것이다!”
한왕 양양이 직접 군을 이끌고 요하를 건너기 시작하니, 빠르게 도하가 진행되었다.
삼십만 대군이 일시에 강물을 튀기며 돌진해오는 광경에도 강이식과 온달 제자리를 지키며 적을 맞이할 태세를 갖출 뿐이었다.
“저 두 놈의 목에 황금 백 냥을 걸겠노라!”
요하 한가운데를 지나며 한왕 양양이 소리치니, 수나라 군사들이 기뻐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이 함성에 맞서 강이식이 낭아봉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백 냥이라니 고맙구나! 나는 한왕 양양의 머리에 은전 한 닢을 걸겠노라! 누가 목을 따올 것이냐?”
“뭐라? 저놈이 감히!”
한왕이 노해 소리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강이식과 온달의 등 뒤에서 함성이 일었다.
강기슭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구려 군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대장군 내가 따오겠소! 은전 한 닢 잊지 마시오!”
흑비걸이 개마무사 일만 기를 이끌고 맹렬히 돌진하니, 요하가 크게 요동쳤다.
그리고 북과 남쪽 강기슭에서도 함성이 일며 고구려 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쪽에선 말갈 기병을 상장군 주용이 이끌었고, 남쪽 강기슭에선 막바우가 개마무사를 이끌고 나타났다.
남과 북에서 나타난 고구려 군이 오히려 요하를 건너며 보병 일색의 수나라 군을 마구 짓밟으니, 넓게 펼친 채 요하를 건너던 수나라 군사들은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였다.
요하 한가운데서 맹렬하게 몰아치는 고구려 군의 개마기병전술(鎧馬騎兵戰術)에 압도된 수나라 군사들은 퇴각 명령도 내리기 전에 몸을 돌려 도망치기 바빴다.
이에 강이식과 온달의 등 뒤에서 이번엔 카사르와 호타크가 부족 전사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내더니, 마치 사냥놀이를 즐기듯 마음껏 화살을 날렸다.
모두가 명사수인 북방 초원의 민족들은 결코 사냥감을 놓치지 않고, 헛되이 화살을 낭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