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주유천하(周遊天下) (23)
온동을 살릴 희망이 보여 어득구가 바로 물었다.
“오태산에 가면 남궁 씨 형제를 만날 수 있는 게요?”
“그게, 만나면야… 살릴 수는 있을 것인데… 만나기가 쉽지는 않을 거요.”
“잘 안 만나주는 거요?”
“그게 아니고. 오태산은 높고도 아주 큰 산이거든. 만리장성이 그 산을 지나는데, 남궁 씨 형제들이 만리장성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오. 태원유수의 장자께서 수차례 군사들을 이끌고 뒤져도 못 찾았거든.”
“태원 유수의 장자가? 왜요?”
“그게, 나도 잘은 모르지만, 어떤 여자아이를 찾기 위해 남궁 씨 형제 둘이 침입을 했었다가 황 교두에게 패해 도망쳤는데, 그 뒤를 첫째 공자께서 쫓았으나 못 찾았다지?”
“혹시 오태산에 없는 거 아니오?”
어득구가 크게 실망하여 노인에게 물었다.
“아니야. 있어. 있는 건 틀림없어. 얼마 전에도 근처 마을에 나타나 사람들을 치료해 줬거든. 있기는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를 뿐인 게야. 실은 오태산에는 아주 크고 넓은 동굴이 수도 없이 있고… 만리장성 너머까지 산이 뻗어 있어서 못 찾을 뿐이야.”
“그렇다면 나도 못 찾을 수 있다는 말인데…….”
어득구가 낙심했고, 노인이 수레에 실린 온동을 들여다보며 혀를 찼다.
“쯧쯧, 숨이 겨우 붙어 있구먼. 어쨌든 이 아이를 살릴 길은 남궁 씨 형제를 찾는 길뿐이라오. 그들이라면 살릴 수 있어.”
“그들의 의술이 그리 출중하오?”
“의술도 출중하지만, 이 아이의 상처… 저 눈… 남궁 씨 형제도 황 교두에게 패해 저렇게 두 눈이 상했는데… 스스로 치유하여 목숨을 건졌다더군. 아마도 그를 만나면 이 아이의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게야.”
어득구가 죽은 듯 수레에 누운 온동을 내려다보며 말이 없으니, 노인이 한 마디 덧붙였다.
“이대로 두면 죽을 아이네. 설령 남궁 씨 형제를 몿 찾더라도 오태산으로 가 보시게나.”
“남궁 씨 형제라… 그래, 어차피 죽을 아이… 일단 오태산이나 가 보자.”
노인과 헤어진 어득구는 작은 희망을 품고 오태산을 향해 수레를 끌었다.
* * *
남궁 씨 형제들은 태원을 벗어나자마자 평양을 풀어주었고, 뒤 쫓아온 건성이 평양을 데리고 돌아갔다.
날이 밝아서야 돌아온 평양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던 차에 호랑이 수명을 기른 사병이 하녀에게 온동이 죽었다고 알리니, 심신이 지친 평양은 내다보지도 않고 온동의 시신을 태우라 명하였다.
이에, 어득구가 시신을 태우러 가는 척하며 온동을 구하게 되었으니, 그 누구도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남궁 씨 형제들의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어득구는 이런 사정을 알 리 없었으나, 온동을 살리기 위해 막연히 오태산을 향해 삼 일 밤낮으로 수레를 끌고 갔다.
수레에 실린 온동은 전혀 의식이 없었고, 갈수록 맥이 약해져만 갔다.
체온도 게속 떨어져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득구는 희망을 놓지 않고 죽은 시신이라도 남궁 씨 형제에게 보인 후 고구려로 돌아갈 마음이었기에 마침내 오태산 어귀에 당도할 수 있었다.
오태산은 노인의 설명처럼 만리장성이 지날 만큼 북방에 자리하였으며 높고도 장대하였다.
“이건성이 군사를 끌고도 찾지 못하였다면, 필경 만리장성 너머에 있을 것이다. 산이 높고 넓다고 하나 산일 뿐이야. 그들이 이곳에 있다면 반드시 만날 수 있어. 정말 온동을 치유할 능력이 있는지가 문제일 뿐이라고.”
산을 오르며 마치 자기 최면을 걸듯 어득구가 중얼거렸다.
* * *
개소문을 구하기 위해 당진평 일행의 뒤를 쫓던 왕박은 탁현 인근에 이르러 발을 멈춰야 했다.
앞서 뒤를 쫓던 장원기가 돌아와 왕박에게 말하였다.
“저놈들이 방향을 틀어 탁현에 들어갔습니다. 형님, 우린 탁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에 왕박도 개소문을 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도움을 받았으나, 이제는 갚을 방도가 없구나. 이 역시 그 아이의 운명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왕박은 개소문과 만났던 강을 바라보며 구슬피 노래를 불렀다.
[長槊侵天半
긴 창 하늘을 찌르고,
輪刀耀日光
둥근 칼 햇빛에 번쩍이며,
上山吃獐鹿
산에서는 노루와 사슴을,
下山吃牛羊
마을에서는 소와 양을 잡아먹으며,
忽聞官軍至
관군이 전장에 도착했구나.
提刀向前蕩
칼 들고 적을 치러 나선다지만,
譬如遼東死
요동 개죽음을 깨달아라.
斬頭何所傷
머리 잘리고 온몸 상할 것을.]
왕박이 노래를 멈추고 몸을 돌리니, 장원기가 궁금해 물었다.
“형님이 종종 부르던 이 노래의 이름이 무엇이오?”
“이 강가에서 지은 노래인데… 무향요동량사가(无向辽东浪死歌)라 한다. 또다시 많은 생명이 불꽃처럼 타오르다 사라질 것이 서글프구나. 우린 이 죽음의 땅에서 멀어지도록 하자.”
왕박이 탁현을 등지고 떠난 뒤, 하루 지나 당진평이 개소문 일행을 수레에 싣고 탁현에서 나와 산동으로 방향을 정하였다.
“혹시나 해서 왔건만, 역시나 출병하셨구려. 이제 다시 전쟁이 시작될 터이니, 우린 산동으로 돌아가 태자 전하의 무사 귀환을 고대합시다.”
당진평의 말에 언지창이 그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니, 수레에 실린 개소문 일행은 의지와 상관없이 산동으로 끌려가야 했다.
* * *
한왕 양양은 지난겨울 전쟁 동안, 수많은 장수를 잃었고, 삼십만 군사의 대부분이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은 물론, 팔다리가 절단되는 고초를 겪었다.
이에 한왕 양양은 황제 양견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탁현은 물론, 인근 장정들까지 강제로 징집하여 부족한 군사를 메꿔야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삼십만 대군을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하여 결국,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린 군사들을 다시 끌고 출병해야 했다.
“동상으로 팔다리가 잘린 군사는 전장에 나설 수 없으나, 손가락과 발가락이 없는 군사는 전장으로 나갈 수 있느니라.”
한왕 양양의 지엄한 명에 팔다리가 멀쩡한 군사는 제 스스로 팔과 다리를 잘라 전장에 끌려가지 않고자 했다.
이에 노한 한왕 양양이 기강을 엄히 세우고자 팔다리가 잘린 군사들의 목을 모두 베고 출정하니, 탁현 일대엔 이들의 시신들을 묻은 묘가 파도처럼 굽이쳤다.
한왕 양양의 말처럼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린 군사들은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행군 속도가 느리고 상처가 덧나 짓물러 터져 자면서도 신음을 토하니, 멀쩡한 이들의 사기마저 땅에 쳐박게 하였다.
봄을 기다려 삼월이 되자마자 출병하였으니, 꽃도 피고 새도 울어야 할 시기였으나, 막상 만리장성을 넘어 요서에 접어드니, 아직도 겨울이었다.
그러나 지난겨울에 비해 추위는 심하지 않았고, 군량미를 포함한 보급물자를 가득 수레에 싣고 출병하였기에, 한왕 양양은 진군을 계속하였다.
대부분의 마소들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지난겨울 전쟁 동안 상하여 전장에 끌고 나올 수 없었기에, 군량미와 보급물자를 실은 수레를 군사들이 끌어야 했다.
행군 중, 날이 점점 풀리며 겨우내 쌓인 눈이 녹으니, 점차 땅이 질척거리기 시작하였다.
군사들은 더욱 지쳐만 갔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상한 군사들은 상처가 곪아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 뱉어내며 수레를 끌어야 했다.
이윽고 광활한 요서 평야에 도달하였으나, 고구려 군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에, 고구려 군이 점령하였던 영주성을 손쉽게 탈환하였으나, 이미 잿더미가 된 영주성 내엔 마땅히 쉴 곳조차 없었다.
우물엔 독을 풀었고, 비바람을 막아줄 벽과 지붕을 지닌 곳은 고구려 군이 모두 허물었기 때문이었다.
고구려 군이 영주성 내에 독충과 뱀마저 풀어놓고 철군하였으니, 독충과 뱀에 물려 쓰러지는 군사들마저 속출하였다.
그러나 지난겨울 전쟁에 비하면 상당한 전과를 세웠기에 한왕 양양은 크게 흡족하고 있었다.
“보아라! 고구려 군은 감히 우리의 진격을 막지 못하느니라!”
비록 잿더미로 변한 상태였으나 영주성을 탈환한 기분을 만끽한 한왕 양양은 이대로 요하마저 넘고자 하였다.
“행군 속도를 높여라! 요하를 넘어 요동으로 진군하라! 내가 요하를 넘으면, 요동성 전시조정의 고구려 왕이 머리를 조아릴 것이다.”
하룻밤도 보내지 않고 영주를 나서면서도 한왕 양양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이는 그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멀쩡하였고, 그가 마소를 대신하여 수레를 끌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한왕 양양과 달리, 작은 전투 한 번 치르지 않았음에도 군사들은 심신이 지쳐 발도 제대로 옮기지 못할 지경이었다.
요서에서 요동으로 이어진 황야는 지난겨울 내린 눈이 녹기 시작하여 늪지가 형성되었고, 이 늪지가 요하까지 이어졌으니, 고구려인과 말갈, 거란인들은 이를 요택이라 불렀다.
봄이 오면 날이 풀리어 세상 만물이 생기가 돌고 날씨는 더없이 화창하리라 여겼던 만리장성 이남 군사들로서는 끝없이 펼쳐진 요택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습지엔 갖가지 벌레들이 들끓었고, 수레는 너무도 무거웠다.
행군 속도는 현격히 떨어지고, 늪에 빠진 수레를 끌어내느라 군사들은 기진맥진하여 밤을 맞이해야 했다.
불을 지필 마른 땅조차 없는 습지였기에, 밤이 깊어지면 군사들은 벌레와 한기에 시달려 잠도 청할 수 없었다.
차가운 달이 머리 위에 떠오르자,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長槊侵天半
긴 창 하늘을 찌르고,
輪刀耀日光
둥근 칼 햇빛에 번쩍이며,
上山吃獐鹿
산에서는 노루와 사슴을,
下山吃牛羊
마을에서는 소와 양을 잡아먹으며,
忽聞官軍至
관군이 전장에 도착했구나.
提刀向前蕩
칼 들고 적을 치러 나선다지만,
譬如遼東死
요동 개죽음을 깨달아라.
斬頭何所傷
머리 잘리고 온몸 상할 것을.]
왕박이 지은 무향요동량사가(无向辽东浪死歌)였다.
아마도 이 군사는 탁현 어딘가에서 이 노래를 듣고 외웠던 모양이었다.
이에, 밤잠을 못 이루던 다른 군사가 마음이 동하여 이 노래를 배우니, 요택에 들어선 지 삼 일째 되는 밤엔 군영 전체에서 무향요동량사가(无向辽东浪死歌)가 울려 펴졌다.
요택에 들어서면서 한왕 양양 역시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차에, 무향요동량사가(无向辽东浪死歌)를 접하니, 크게 격노하고 말았다.
“이 노래를 부른 놈들을 모두 잡아들여 목을 베거라!”
한왕 양양의 지엄한 명에 밤사이, 목이 잘린 시신들이 요택에 널리게 되었다.
날이 밝아도 불을 지필 마른 땅이 없어 따듯한 밥을 짓지 못하니, 군사들은 생쌀을 씹어야 했다.
이제 와 요택 밖으로 물러나고자 해도, 요하가 가까운지 영주가 가까운지 가늠하기 어려운 한왕은 계속 진군을 강행하였다.
“주나후 총관도 바다를 건너 지금쯤 평양성에 당도했을 것이다. 우리도 더욱 진군 속도를 높여 요하를 넘어야 위아래에서 고구려를 압박할 수 있느니라!”
한왕 양양이 더욱 행군 속도를 높이라 명하니, 수레를 끌다 쓰러지는 군사들이 속출하였다.
그리고 밤이 오면, 눈을 피하여 하나둘 군영을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한왕 양양이 격노하여 각 진영 끝마다 살수군을 배치하였는데, 이들 살수군은 군영을 이탈하는 군사들의 목을 가차 없이 베었다.
요택에 들어선지 보름 째가 되자, 봄을 알리는 단비가 내렸다.
이로써 겨우내 얼었던 땅들이 모두 풀리고, 대지에 초록이 물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택은 더욱 수렁이 깊어만 갔고, 한왕의 행군원수부 군사들은 항상 몸이 젖어 생살이 물러터졌다.
단비가 내린 뒤, 요택은 더욱 넓어져 요하 바로 앞까지 습지를 이루었다.
한왕 양양의 말도 이 습지에 마침내 무릎을 꿇고 쓰러지니, 한왕은 수레에 올라 군사들이 끌게 하였다.
그러나, 한왕이 탄 수레라 하여, 무사히 늪을 지날 수는 없었다.
수레가 늪에 빠지니,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며 겨우 기어서 나온 한왕은 더 이상 수레에 오르지 않았다.
한왕 양양마저 걷기 시작하니, 행군 속도는 더욱 느려졌고, 요택에 들어선 지 이십여 일이 지나 겨우 요하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눈으로는 요하가 보였으나, 발을 잡아끄는 요택의 집요함에 아직도 하루 이상 더 헤매고서야 이 끔찍한 습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불어터진 몸뚱이를 끌고 간신히 요하 앞에 당도하니, 요하 너머 삼족오 기가 바람에 펄렁이며, 대장군 강이식과 온달이 이들을 맞이하였다.
“요하가 얼마나 넓은지, 이제 느끼게 해주겠노라!”
한왕 양양을 맞이하며 대장군 강이식이 불호령을 내리니, 수나라 군사들은 벼락을 맞은 듯 모두 몸이 얼어 부르르 떨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