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04화 (204/328)

204화 주유천하(周遊天下) (18)

“형님! 피해요!”

개소문을 향해 온동이 다급히 외쳤으나, 세민의 주먹이 더욱 빨랐다.

퍽!

둔탁한 타격음이 일고, 개소문이 휘청였다.

당당히 서 있던 모습과 달리, 개소문은 열흘만에 의식이 돌아왔기에 팔다리 감각은 물론 시각과 청각마저도 크게 저하되어 있었다.

또다시 세민은 개소문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치고는 발을 들어 올려 개소문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개소문은 휘청이면서도 쓰러지지 않았지만, 세민의 공격을 피하기는커녕 막지도 못하였다.

“혀, 형님!”

온동은 개소문이 정신 차리도록 애타게 소리쳤다.

그러나 개소문은 그저 무방비 상태로 세민의 모든 공격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를 잘도 때렸겠다! 어떠냐 이놈아! 맛 좀 더 보거라!”

한껏 신이 난 세민이 쓰러지지 않는 개소문에게 바짝 붙어 연신 주먹을 날렸다.

의식이 없는지 비명조차 내지 않고 세민의 주먹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개소문의 눈동자가 맥없이 풀려 있었다.

‘틀렸어. 이대로는 형님도 도망칠 수 없어.’

개소문만이라도 도망치게 하려던 온동이 절망하여 크게 울부짖었다.

“형님! 제발 의식을 차리세요!”

이때,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는 개소문의 입술이 살짝 실룩거렸다.

마치 미소짓는 듯한 착각에 온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 설마?’

이 순간에도 얼굴이 퉁퉁 부은 세민이 분풀이를 하기 위해 개소문에게 쉬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피로 물든 개소문의 얼굴에 또다시 옅은 미소가 살짝 감돌더니 반쯤 감긴 눈이 매섭게 빛났다.

이에 황 교두가 급히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둘째 공자 물러서시오!”

그러나 휘청이던 개소문의 손이 더욱 빨랐다.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던 세민의 주먹을 왼손 손등으로 살짝 쳐올리더니 그대로 손목을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크게 당황한 채 끌려오는 세민의 놀란 눈을 비웃듯 개소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오른손이 곧게 뻗어 세민의 목을 강하게 옥죄었다.

“컥!”

숨도 쉬지 못할 고통에 세민이 신음을 토하자, 개소문은 빠르게 세민의 몸을 돌려세우고는 오른팔로 세민의 목을 감고 왼손으로 세민의 머리를 쥐었다.

“다가오지 마라! 목을 부러뜨릴 것이다!”

개소문의 외침에 바짝 다가왔던 황 교두가 급히 뒤로 물러났다.

“세민아!”

평양이 놀라 세민을 불러보았지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세민은 팔만 허우적거릴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온동! 동아! 괜찮으냐?”

개소문이 온동을 부르니, 황 교두의 시선도 온동에게로 향하였다.

“저는 괜찮아요. 형님 어서 도망가세요!”

“다 같이 가야지. 어찌 나만 갈 수 있느냐. 동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 형님이 모두 데리고 고구려로 갈 것이다.”

개소문이 장담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사이에도 개소문의 오른팔은 세민의 목을 계속 조이고 있었다.

“내 아우의 쇠사슬을 풀어라! 그리고 다른 이들도 풀어주거라!”

개소문의 외침에 평양이 급히 명을 내렸다.

“빨리, 쇠사슬을 풀어라!”

이에 황 교두가 명을 따르는 척 몸을 돌리다가 획 돌아서며 소매를 털었다.

순간 강한 바람이 세민의 목을 조르던 개소문의 안면을 강타하였다.

“컥!”

이마가 젖혀질 정도의 강한 타격에 개소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허공에 피를 뿜었다.

그리고 날듯 달려온 황 교두의 손끝이 개소문의 젖혀진 목에 내리꽂혔다.

“컥!”

또다시 허공을 항해 개소문이 붉은 선혈을 뿜고는 세민의 목을 감싼 채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정신이 아득한 고통 속에서도 세민의 목을 감싼 팔은 조금도 풀지 않고 있었다.

“이 망할…….”

당황한 황 교두가 개소문의 팔을 뜯어내다시피 꺾어 올렸다.

“이거나 처먹어라!”

온동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놀라 고개 돌린 황 교두의 이마로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딱!

두개골에 구멍이 뚫릴 듯한 충격에 황 교두의 안구가 쏙 들어갔다가 다시 튀어 나왔다.

“죽어!”

그리고 이어진 온동의 외침과 함께 또 다른 돌멩이가 황 교두의 입을 정확히 맞추며 앞니 두 개를 부러뜨렸다.

비록 보법을 제대로 밟지 못하고 심법도 흐트러졌으나 비검술을 발휘해 날린 온동의 돌멩이는 상당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ㅤㅌㅞㅅ!”

부러진 앞니 두 개를 뱉어낸 황 교두가 온동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더니, 개소문의 팔을 마저 풀고는 세민을 끄집어 올렸다.

축 늘어진 세민이 켁켁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자 평양이 겨우 안심하여 소리쳐 명하였다.

“당장 이놈들의 목을 베라!”

평양의 명에 사내들이 달려들어 온동의 조그만 몸을 밟아 저항하지 못하도록 짓눌렀다.

그리고 개소문에게도 사내들이 달려들어 칼을 치켜들었다.

단칼에 목이 잘릴 처지에도 개소문은 컥컥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누님 안 되오. 안 됩니다.”

겨우 숨을 고른 세민이 손을 내저으며 말하였다.

“저놈… 갓쉰동에게 두 번이나 패하였소. 누님, 나는 저놈과 다시 겨루고 싶소.”

자존심 강한 세민의 눈에서 치열한 경쟁의식이 타오르고 있었다.

“얘야, 세민아. 너는 저 흉악한 놈을 직접 상대할 신분이 아니란다. 굳이 네가 나설 일도 없단다.”

평양이 부드럽게 말하였으나, 세민은 강하게 고개 저어 말하였다.

“나는 다음엔 결코 지지 않을 것이란 말이오! 다음엔… 멀쩡한 저놈과 정정당당히 맞붙어 이기고 말겠소.”

이에 더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한 평양이 한숨을 내쉬며 명하였다.

“저 갓쉰동이란 놈을 우리에 가두고 치료해 주거라. 먹을 것도 주고, 씻을 물도 주거라. 건강해지면 세민이가 다시 겨뤄 이길 것이다.”

평양의 명에 사내들이 쓰러진 개소문의 팔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끌고 갔다.

멀어져가는 개소문을 바라보던 세민이 황 교두에게 말하였다.

“황 교두는 할 일이 있지 않소?”

말없이 세민을 내려놓은 황 교두가 온동에게로 발을 옮겼다.

평양이 온동을 내려다보는 황 교두에게 단호히 명하였다.

“황 교두는 도망친 죄인의 눈을 뽑아 본을 보이시오.”

이에, 황 교두의 두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구부러졌다.

“안 됩니다. 안 돼요!”

멀리서 독고영이 울부짖으며 달려왔고, 그 뒤를 송현이 쫓아 오고 있었다.

“온동 오라버니! 제발 온동 오라버니를 살려주세요!”

독고영이 고운 옷을 입고, 잘 빗은 머리를 하고 있어 온동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영아… 영아… 다행이다. 잘 있었구나.’

독고영을 바라보던 온동의 두 눈에 눈물이 고여 흘렀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냉혹한 황 교두의 두 손가락이 온동의 큰 눈망울을 파고들었다.

“아악!”

안구가 터져 나가는 고통에 온동이 비명을 질렀고, 온동의 두 눈에선 피눈물이 흘렀다.

“온동 오라버니!”

독고영이 놀라 부르짖다가 온동의 처참한 몰골에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뒤따라온 송현이 독고영의 가녀린 몸을 안으니, 평양이 냉소하며 명하였다.

“너는 무엇하는 년이더냐? 당장 독고영을 데려가거라!”

이에 송현이 그저 머리만 숙여 대답을 대신하고는 혼절한 독고영을 안고 바삐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저놈은 아버지와 공손성 총관의 대군 속에서 도망친 죄인이다. 우리가 붙잡아 실추된 명예를 세울 수 있으니,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무척이나 기뻐하실 것이다. 토굴 속에 가두고 사흘에 한 번 먹을 것을 주거라!”

평양의 명에 사내들이 온동을 번쩍 들어 토굴로 데려갔다.

“이놈들은 어찌 처분하시겠습니까?”

황 교두가 팽무일, 야수, 쇼락, 공손향 등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들은 한왕 전하께 바칠 놈들이다. 갓쉰동 옆 우리에 가두고 죽지 않을 만큼 먹을 것을 주거라.”

사내들이 평양의 명을 받아 두 다리가 부러진 이들을 번쩍 들어 옮겼다.

* * *

개소문의 의식이 돌아왔을 땐 이틀이 지나 있었다.

굵은 쇠창살로 만든 좁은 우리 안에 갇힌 개소문이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우리 안에도 인기척이 있었다.

“일어… 났는가?”

야수가 쇠창살에 몸을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다른 이들은? 내 아우 동이는?”

개소문이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온동을 찾았으나, 그 어떤 우리 속에도 온동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온동… 나는… 그. 아이를… 지키지 못하였다.”

야수가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답하였다.

“왜 동이만… 왜 온동만 없는 거요?”

답답한 개소문이 다시 물으니, 그제야 야수가 개소문에게 시선을 옮겼다.

“온. 동은… 눈이 뽑혀… 토. 굴에… 갇혔다.”

“토굴? 그곳이 어디요? 온동을… 동이를 구해야 하오. 그곳이 어디요?”

자신도 우리에 갇힌 신세이면서도 개소문은 온동을 구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에, 팽무일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철창에 기대며 개소문에게 말하였다.

“우리도 토굴 속에 있었지만, 그곳이 어딘지는 몰라. 의식도 없었고, 의식이 있다고 해도 너무 오래 어둠 속에 있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뭐 그래도 이 집구석 어딘가에 있겠지만, 사부… 우리 꼴을 보고 누굴 구할 생각을 해야지. 허허허.”

정강이뼈가 부러져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자신의 몰골을 가리키며 팽무일이 허허 웃었다.

“사부, 오랜만에 의식을 차렸으니… 좀 쉬자고. 지금은 쉬는 것 말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마. 좀 쉬자. 허허허.”

팽무일의 입은 웃음 지었으나,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거리고 있었다.

웃음 짓는 팽무일의 옆 우리 안에 쇼락이 누워 개소문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 우리 속에 공손향이 잠을 자고 있었다.

“사부… 우리 넷은 다리가 부러졌어. 양다리 모두 그 황 교두란 놈이 밟아 부러뜨렸지. 온동을 구하고자 해도 구할 능력도 없고, 이 우리조차 벗어날 처지도 못 된다고. 사부… 일단 쉬어. 좀 쉬다 보면 뭔 수가 생길 수도 있어. 그때까지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라고.”

팽무일이 부드럽게 개소문을 다독였다.

팽무일의 이런 어른스러운 모습은 개소문에겐 처음이었다.

개소문이 그저 고개만 끄덕여 답하니, 야수가 나지막이 말하였다.

“온동. 그 아이가… 찾던, 독고영을… 보았다. 잘 있었더군. 붙잡혀…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뭐라? 보았다고?”

개소문이 놀라 물으니, 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잘 차려… 입었더군. 어쩌면… 구하지 않는 게… 그. 아이에게 좋을지도… 그러나, 나는 구할. 것이다. 구하러 왔으니,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반드시… 구해 온동이. 원하던…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야수의 단호한 태도에 개소문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사내들이 통에 음식 찌꺼기를 담아왔다.

“너희 때문에 돼지에게 돌아갈 몫이 줄었다. 돼지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며 잘들 처먹거라.”

국자로 음식을 퍼 쇠창살 안에 뿌리며 사내가 히죽 웃었다.

수저와 그릇도 없이 그저 바닥에 뿌려진 음식 찌꺼기를 손으로 긁어 야수가 입에 가져갔다.

팽무일과 쇼락은 역겨워 손도 대지 않았고, 공손향은 여전히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먹. 어. 먹어야… 힘을 낼. 수 있다.”

역한 내가 풍기는 음식 찌꺼기를 입에 욱여넣으며 야수가 개소문에게 말하였다.

개소문도 손으로 음식 찌꺼기를 긁어 입에 가져가 욱여넣고는 돌아가는 사내에게 물었다.

“온동… 내 아우 온동은 어떻소?”

개소문의 물음에 걸음을 멈춘 사내가 등도 돌리지 않은 채 답하였다.

“어떻긴… 죽었지. 당연한 걸 왜 물어?”

“죽…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개소문이 놀라 다그쳐 물었다.

“두 눈이 터지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빛도 없는 토굴 속에 갇혔는데… 너 같으면 살겠냐? 너희는 살릴 생각으로 우리 안에 가둔 거라 고마운 줄 알라고.”

냉정히 답한 사내가 휘파람을 불며 멀어져 갔다.

“죽… 죽어? 내… 아우… 온동이 죽어? 그 착한 것이 왜? 도대체 왜?”

온동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개소문은 그저 음식 찌꺼기를 손으로 긁어 담아 입에 가져가며 연신 중얼거렸다.

“먹어야 해. 먹고 힘을 내야… 우리 동이를 찾을 수 있어. 동이도 찾고… 동이가 그토록 구하고 싶어 하던… 독고영도 구하고… 그리고 팽 장주의 여식도 구하고… 먹어야 해. 먹고 힘내야 해.”

음식 찌꺼기를 우걱우걱 씹으며 개소문이 중얼거리니, 팽무일도 음식 찌꺼기에 손을 뻗어 입에 가져갔다.

“제길, 먹을 만하군. 먹을 만해! 빌어먹게 맛있다고! 망할! 맛있어!”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팽무일은 연신 음식 찌꺼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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