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201화 (201/328)

201화 주유천하(周遊天下) (15)

남궁천의 고갯짓이 심상치 않자, 온동이 급히 나서며 소리쳤다.

“아니오! 우린 적이 아니에요!”

그러나 남궁천의 검이 조금 더 빨랐다.

개소문이를 향해 남궁천의 검이 바람을 갈랐다.

“안 돼!”

무기를 지니지 않은 개소문이가 걱정된 온동이 소리 질렀고, 야수도 박도를 뽑아 들고 몸을 날렸다.

남궁천의 검이 목에 닿으려던 순간, 개소문이는 파천신검 일 초식을 적수공권으로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남궁천의 검날이 매섭게 개소문이의 옷소매를 베었다.

펑!

파천신검을 펼친 개소문이의 옷소매는 마치 단단한 나무와도 같이 검날에 맞서며 굉음을 일으켰다.

소매 끝이 베인 개소문이 다시 두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다가, 백두검법의 심법으로 호흡을 가다듬고는 다시 파천신검의 이 초식을 펼쳐 몸을 지켰다.

펑!

또다시 남궁천의 검날에 옷소매가 베이며 굉음을 일으켰다.

검날이 파르르 떨리고, 남궁천이 의아해 고갯짓했다.

“어떤 무기냐?”

이에, 남궁웅이 다가와 말하였다.

“무기는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옷소매입니다.”

무기가 없다는 말에 남궁천이 의아해 고개를 갸웃하였다.

“무기가 없다? 얘야, 무기를 쥐겠느냐?”

“무기를 쥐지 않겠소. 나는 물론이요. 여기 누구든 무기를 들고 그대와 맞서 이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소.”

개소문이의 대답에 야수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야수도 삼백여 명의 사내들을 순식간에 벤 남궁천과 남궁웅을 상대로 이길 자신은 없었다.

“그. 아이를… 건. 드리지, 마라. 죽는다.”

남궁천, 남궁웅 두 형제를 결코 이길 수 없었으나, 물러설 야수도 아니었다.

두 자루 박도를 야수가 뽑아 드니, 그 소리에 남궁천이 고갯짓을 하며 집중하였다.

“아니오! 우린 적이 아니에요. 제발!”

온동이 급히 야수의 앞을 막고 서서 외쳤다.

“적이 아니면 어찌 우리 앞을 막는 것이냐? 금강대도를 탐하고, 아이를 달라 말하는데도 적이 아니라 믿으란 말이더냐?”

남궁천이 내력을 담아 묵직하게 물었다.

공기마저 내리누를 듯한 내력이었다.

“그 검은 우리 팽가장 장주의 신물이고, 그 아이는 내 조카요.”

겁을 잔뜩 먹은 팽무일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말하였다.

“조카?”

남궁천이 고개를 저으며 소리에 집중해 팽무일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그렇소. 그 아이는 내 조카요. 내… 동생 팽무성의 여식… 팽운이란 말이오.”

“그렇다면 그대가 팽무성의 형, 팽무일인가?”

남궁웅이 팽무일의 앞으로 바짝 다가와 물었다.

남궁웅의 왼손에는 아직도 금강대도가 쥐어 있었고, 등에는 세상모르고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그… 그렇소. 내가 팽무일이오.”

애써 두툼한 가슴팍을 내밀며 팽무일이 답하니, 남궁웅이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그렇군. 그 모습… 전에 본 적 있었어. 거북이 같은 몰골이라 기억이 나는군.”

조롱당해도 감히 맞설 능력이 못 되는 팽무일이었다.

“거북이도 좋고, 다 좋으니. 금강대도와 내 조카는 두고 가시오.”

기껏 용기 내어 팽무일이 말했으나, 돌아온 답은 너무도 차가웠다.

“안 돼.”

“어찌… 내 조카요! 남궁세가의 위명을 더럽힐 생각이시오? 어찌 우리 팽가장 장주의 신물을 탐한단 말이오?”

팽무일이 다시 용기 내어 소리쳤다.

이에, 남궁천이 발을 옮겨 다가오며 물었다.

“아우야, 팽무일이 무기를 지녔느냐?”

“아닙니다. 이 거북이는 무기가 없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살려줄 터이니, 비키라 하거라.”

두 형제의 대화에 팽무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찌 이토록 사람을 업신여길 수 있단 말이오! 당장 내 조카와 금강대도를 놓고 가시오!”

이에, 남궁천의 검이 팽무일의 목을 노리고 찔러 왔다.

“시끄러운 머리로고! 베어주마!”

여지없이 목이 날아가게 생긴 팽무일이 뒤로 몸을 날렸으나, 남궁천이 바짝 쫓아왔다.

경공술로도 남궁천을 이길 수 없는 팽무일이었다.

“으악!”

목에 검이 닿을 듯 다가오자 팽무일이 비명을 내질렀다.

펑!

굉음이 일고, 팽무일의 앞을 어느새 개소문이 지키고 섰다.

개소문의 소매는 남궁천의 검날에 베어 펄럭였고, 남궁천의 검날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또 너냐?”

남궁천의 물음에 개소문이 적수공권으로 몸을 단단히 지키며 답하였다.

“금강대도와 아이를 두고 가시오. 검은 그대들의 것이 아니고, 아이는 혈육이 맡아야 하오.”

“혈육? 혈육은 맞으나, 팽무일은 결코 금강대도를 지닐 수 없고, 아이 또한 맡길 수 없다. 내 동생 남궁민이 지키다가 옥에 갇힌 아이와 검이다. 결코 팽무일 같은 불한당에게 맡길 수는 없다.”

팽무일에 대한 소문을 들은 모양이었다.

“우리는 팽 장주의 여식과 금강대도를 찾고 있었소. 넘기지 않는다면 길도 열어 주지 않겠소.”

개소문이 작정한 듯 파천신검 초식을 펼치며 보폭을 밟으니, 남궁천이 피식 웃었다.

“아우야, 저 아이의 기개가 가상하고 매우 용감하구나. 무기를 지니지 않았다면 죽이지는 말거라.”

“앞을 막지 못하도록 다리를 자르고, 허튼소리를 못 하도록 혀를 자르겠습니다.”

남궁웅이 답하며 무심히 검을 휘둘렀다.

가볍게 허공을 가른 금강대도가 바닥을 스치듯 미끄러지더니, 솟구쳐 오르며 개소문이의 다리를 노렸다.

개소문이 급히 파천신검의 삼 초식과 일 초식을 연이어 펼치며 백두검법 보법을 동시에 밟아 솟구쳤다.

금강대도가 개소문이의 발밑을 지나더니, 획 방향을 틀어 올라왔다.

이에, 개소문이가 놀라 허공에서 검날을 살짝 밟아 또 한 번 솟구쳤다.

“매우 가벼운 몸놀림이로다!”

남궁천이 칭찬하며 뛰어올라 개소문이를 향해 검을 찔러 왔다.

이에, 개소문이 허공에서 파천신검 사 초식을 펼치며 맞섰다.

펑!

또 한번 개소문이의 옷소매가 잘리고, 그 충격에 개소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남궁천도 파르르 떨리는 검날에 얼굴을 찌푸리고는 바닥에 내려섰다.

“대단한 아이로다. 살인이 이토록 어렵기는 참으로 오랜만이군.”

“형님, 오늘 밤 해야 할 살인이 많습니다.”

남궁웅이 바닥에 나뒹군 개소문이를 힐끔 쳐다보고는 남궁천에게 말하였다.

이에,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켜 세운 개소문에게 말하였다.

“우리 형제가 오늘 더 많은 살인을 해야 하니 바쁘다. 시간을 쪼개어 너희와 이야기 나눌 수도 없고, 죽이자니 오래 걸려 난감하구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갓쉰동이요.”

“갓쉰동이라… 아쉽지만 너희 목숨은 다음에 거두마. 악살을 면하고 싶거든 언제든 오태산으로 오거라!”

남궁천이 악살소멸부를 날리니, 정확히 개소문의 손에 내려앉았다.

“이것은?”

개소문이 악살소멸부에서 시선을 떼어 고개 들었을 때는 이미 남궁천과 남궁웅이 개소문의 머리를 뛰어넘은 뒤였다.

날듯 달려가는 남궁천과 남궁웅의 뒷모습을 개소문이 멍하니 바라보니, 팽무일이 울분을 터트렸다.

“망할 놈들이 정말 말보다도 빠르구나!”

경공이 뛰어난 팽무일과 야수조차 따라잡지 못할 솜씨였을뿐더러 따라잡은들 앞을 막을 수도 없었다.

야수가 개소문이와 온동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분. 하지만…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너희가. 싸운다. 면, 나는 싸울. 것이다.”

이에, 팽무일이 기겁하며 말하였다.

“아니야. 싸워선 못 이겨. 꾀를 써야지. 저들은 필경 행군원수부로 향할 거라고. 우리가 말을 달려 행군원수부에 먼저 가서 알리자고. 저들이 혹여 잡혀 옥에 갇히면… 그때 기회가 있을 거라고.”

팽무일이 머리를 쥐어짜 계책을 내었으나, 개소문이 잘라 말하였다.

“아니다. 우리는 태원에서 영이를 구한 후, 오태산으로 가서 저들을 만나 겨룰 것이다.”

“뭐라고? 사부,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싸워서는 못 이긴다니까.”

팽무일이 죽는소리를 해도 개소문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에 온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형님 말씀이 옳아요. 우리는 태원에 가서 영이를 구한 후 오태산으로 가는 게 좋을 듯해요.”

“뭐라? 이 꼬마까지?”

팽무일이 어떤 소리를 해도 온동은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대협객이신 남궁민 대협을 저들이 구해 오태산에서 기다린다면, 반드시 남궁민 대협께서 사리분별하시어 팽운을 우리에게 맡기실 거야. 금강대도는 팽운이 성장하면 지녀도 되니, 그동안 남궁민 대협께서 잘 보관하고 계셔도 돼.’

이렇듯 총명한 온동이 생각을 정리해 개소문과 함께 걸음을 옮기니, 불만 가득한 팽무일로서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망할 꼬마들 같으니. 어쨌든 금강대도를 찾아야 하니… 빌어먹을 사부 따라가는 수밖에. 패 죽일 사부 같으니…….”

구시렁거리는 팽무일에게 개소문이 불쑥 뒤돌아 물었다.

“제자야, 그런데 오태산이 어디더냐?”

“어디긴? 우리가 가는 태원 동북쪽 오대산이 오태산이지. 몰라서 물어? 멍청한 사부 같으니라고.”

* * *

남궁을 떠나 다시 옷을 바꿔 입고 변장을 한 개소문 일행은 달이 바뀌어 태원 인근에 당도하였다.

“곧 날이 저물 터이니, 산을 넘지 말고 저 객잔에서 묶고 갑시다.”

팽무일이 허름한 객잔을 가리켰다.

인적이 뜸한 곳에 자리한 객잔엔 손님이라고는 개소문 일행이 전부였다.

“아이고, 어디서 오셨습니까요?”

오랜만에 손님을 받는지 객잔 주인의 입이 귀에 걸렸다.

“어디서 왔는지는 왜 궁금해? 방 있지?”

팽무일이 거칠게 물으니, 객잔 주인이 머쓱해 답하였다.

“방이야 많이 있습지요. 그런데 식사들은 하셨습니까요?”

“밥? 먹어야지. 술과 고기도 좀 내오고.”

팽무일이 대뜸 탁자에 자리를 잡고는 개소문에게 어서 앉으라 손짓하였다.

잠시 뒤, 음식을 내오며 객잔 주인이 너스레를 떨었다.

“소문 들으셨습니까?”

“뭔 소문?”

팽무일이 고기를 씹으며 물었다.

“한왕 전하의 행군원수부에선 쉬쉬하지만, 옥을 깨고 죄인이 달아났다지 뭡니까?”

필경 남궁 씨 형제들 소행이 분명하였다.

팽무일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허… 그런 일이… 어떤 놈들이래?”

“폐족이 된 남궁 씨 형제들이라지요. 아주 대단했다고 하던데… 행군원수부에선 함구령 중이랍니다요.”

“함구령은 왜?”

“그게… 아무래도 알려져 봐야 망신이고. 큰 전쟁 전이라 사기에도 영향 있어서 그런 듯합니다.”

“음… 그렇군. 큰 전쟁을 앞두었으니, 알려져서 좋을 거야 없겠지.”

팽무일이 고개를 끄덕이니, 객잔 주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요. 이들 형제가 파옥하기 전에 앞서 남궁에서 행군원수부 휘하 무예 고수 삼백 명의 목을 베었다지요.”

“어… 그런 일도 있었는가?”

팽무일이 짐짓 모른 척 물었다.

이에, 객잔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답하였다.

“이 일도 함구하라는 한왕 전하의 명이 있었다지요. 헌데, 그날 남궁 씨 형제들과 맞서고도 목이 베이지 않은 소년 장수가 있었다지 뭡니까?”

객잔 주인이 언급한 소년 장수는 개소문이었으니, 팽무일이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래? 뭐 목이 안 잘릴 수도 있지. 자네는 가서 술 좀 더 가져오게나.”

“아… 네 그러지요.”

술을 가지러 몸을 돌리며 객잔 주인이 마저 말하였다.

“갓쉰동이라 하던데, 영주에서 태자 전하를 구하고, 공손성 총관에게서 죄인을 구해 도망치더니, 행군원수부에서도 참형 당할 죄인들을 구해 달아난 그 소년 장수라지요. 요즘 그 소년 장수 이야기로 온통 떠들썩하답니다요.”

“가서 술 가져오라고!”

팽무일이 버럭 소리를 질러도 객잔 주인은 제 할 말을 다 하며 걸음을 옮겼다.

“아, 예 갑니다요. 가요. 아무튼 그 소년 장수의 무예가 천하제일이라지요? 그러니, 남궁 씨 형제들과 맞서도 지지 않은 게지요. 황제 폐하께선 그런 장수를 얻으셔야 고구려를 정벌할 것인데.”

장황히 말하며 부엌으로 들어가는 객잔 주인의 등을 말없이 바라보던 개소문이 머쓱해 온동에게 시선을 옮겼다.

“소문이 과하게 났구나.”

“과한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사실이잖아요. 거짓은 없습니다.”

팽무일도 생각해 보니, 온동의 말대로 거짓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사실이긴 하네.”

괜히 자신까지 우쭐해지는 팽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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