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주유천하(周遊天下) (10)
누런 산공독의 연기가 짙게 퍼진 장원 안에서도 개소문의 검광은 빛나며 강철의 검막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허허, 이놈 봐라?”
당진평이 채 부인의 시신에서 발을 떼며 개소문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아이, 온동이 벼락같이 소리치며 당진평을 향해 돌멩이를 날렸다.
“이 못된 놈!”
누런 연기를 뚫고 맹렬히 날아든 돌멩이가 정확히 당진평의 안면을 향했다.
히죽거리던 당진평의 안면이 놀라움에 굳어졌다.
피할 새도 없이 쏜살처럼 날아온 돌멩이를 향해 언지창이 몸을 날렸다.
퍽!
당진평의 앞으로 몸을 날린 언지창의 뒤통수에 정확히 돌멩이가 명중하였다.
상당한 타격이었으나, 언지창의 머리에는 조그만 상처도 없었다.
오히려 몸을 천천히 돌리며 온동을 차갑게 바라보는 언지창의 눈빛에는 여유마저 보였다.
몸을 돌과 쇠처럼 단단히 만들어 적을 제압하는 언가장의 가전비기로 수련하기 어려운 뒤통수마저 단련한 듯했다.
“너희는 산공독에 중독되었느니라. 내력이 흩어져 힘을 쓰지 못할 터이니, 힘들게 발악하지 말거라.”
감정을 담지 않고 담담히 언지창이 말하였으나, 개소문과 온동은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닥쳐라!”
온동이 크게 소리치며 또다시 돌을 날리니, 언지창이 무심히 서서 돌멩이를 얼굴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온동의 외침이 또다시 울렸다.
“얍!”
온동이 날린 돌멩이를 여유롭게 얼굴로 받아내던 언지창의 눈이 순간 당황해 커졌다.
두 번째 돌멩이가 곧게 날아들며 왼쪽 눈을 노리고 있었다.
못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급히 왼손을 들어 막아 보았지만, 첫 번째 돌맹이가 얼굴에 부딪치고 연달아 날아든 돌멩이가 여지없이 왼쪽 눈을 때렸다.
“억!”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은 언지창이 목에 힘을 주고 온동을 노려보았다.
두 번째 돌멩이를 막기 위해 왼손을 들어 올리느라 기가 흐트러져 첫 번째 돌멩이조차 막아 내지 못하였다.
게다가 단단히 만들지 못하는 눈이 두 번째 돌멩이에 맞아 충격이 상당하였다.
두 번째 돌멩이가 남긴 고통은 마치 왼쪽 눈이 부풀어 터질 듯 극심하였다.
혈관이 모두 터져 새빨갛게 물든 왼쪽 눈에서 맑은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크… 꼬마들이 제법이로구나.”
눈물 흘리면서도 애써 위엄을 차렸으나, 그 모습이 오히려 온동의 기세를 올리게 하였다.
“어디 또 피하지 않고 받아 보거라!”
온동이 잽싸게 돌을 주워 다시 날렸다.
이번엔 언지창도 얼굴로 막지 않고, 몸을 살짝 틀어 피하였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당진평이 피할 겨를도 없이 돌멩이를 맞이해야 했다.
“악!”
이마에 정확히 명중한 돌멩이가 툭 땅에 떨어지고, 당진평이 비틀비틀 휘청였다.
“뭣들 하느냐! 당장 저 꼬마들을 잡으란 말이다!”
겨우 중심을 잡아 몸을 바로 한 당진평이 격노해 소리쳤다.
이에 수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으나, 개소문이의 검막을 넘지는 못하였다.
“누구도 내 아우에게 손대지 못한다!”
평양성에 있는 동생 연정토와 온동의 나이가 동일해 개소문이는 온동을 친동생처럼 여기며 보살피고 있었다.
개소문이가 단단히 지키니,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온동이 다시 돌멩이를 주워 비검술을 발휘해 날렸다.
윙! 윙!
두 개의 돌멩이가 매섭게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니, 언지창과 단진평은 체면을 무릅쓰고 바닥을 굴러 피했다.
“아니, 도대체 산공독에 중독되었을 터인데… 어찌도…….”
돌멩이를 겨우 피한 당진평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에, 언지창이 낮게 소리 내어 답하였다.
“저 꼬마들은 내력이 별로 없소. 그러니, 산공독에 중독되고도 큰 타격이 없는 게요.”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지만, 개소문이는 실상 열한 살 아이였다.
또한 온동은 고작 여덟 살이었으니, 산공독에 중독되어 치명상을 입을 만큼의 내력이 쌓일 세월이 아니었다.
그나마, 온동보다 나이가 많은 개소문이가 수련을 조금 더 오래하여 내력이 조금이나마 더 많기에, 온동보다는 산공독에 내력이 조금 흩어지고, 내상도 조금 있었다.
그러나 천성이 고통을 내색하지 않고, 타고난 완력을 백분 발휘하여 오직 힘으로 파천신검을 펼치니, 검광이 누런 연기 속에서 빛을 발하며 단단한 검막을 만들고 있었다.
당진평도 그제야 두 아이를 상대로 산공독은 크게 치명적이지 않음을 깨닫고는 급히 소매를 털어 올리며 소리쳤다.
“꼬마들과 거리를 벌려라!”
이에, 연개소문에게 달려들었던 수하들이 일제히 뒤로 몸을 날려 피하였다.
이어서, 당진평의 외침이 누런 연기를 흩날렸다.
“만천화우!”
허공에서 꽃향기가 두 아이를 향해 향긋하게 내려앉더니, 무수한 독침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에 개소문이 급히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리며 파천신검 초식을 허공에 펼쳤다.
“파천신검!”
개소문이의 외침과 함께 검막이 비처럼 내리던 독침들을 모두 튕겨 내기 시작하였다.
팅! 팅! 팅!
가벼운 쇠가 묵직한 쇠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한동안 계속되더니, 마침내 누런 산공독 독무마저도 흩어 놓으며 멈추었다.
그리고, 비틀비틀 몸을 휘청이며 야수가 장원 안으로 들어오더니, 묵직한 두 자루 박도를 고쳐 쥐었다.
“무사. 했… 는가?”
더듬더듬 야수가 물으니, 개소문과 온동이 반가워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팽무일도 독무가 흩어진 장원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 놓으니, 본래 회색빛이었던 언지창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저자는 팽가장의 장자… 탕아, 팽무일?’
당진평도 팽무일과 야수를 훑어보고는 다시 개소문이에게 시선을 옮겨 물었다.
“나의 만천화우를 막아 내다니, 제법이로구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나는 갓쉰동이다!”
개소문이 천둥치듯 소리치며 오른손에 든 검을 날렸다.
곧게 뻗으며 날아든 검을 바라보며 당진평은 피하지도 않고 피식 웃었고, 언지창이 팔을 단단히 하여 가볍게 쳐내었다.
“방어는 제법이지만, 너는 저 꼬마보다 공격 수단이 약하구나. 너도 아느냐?”
당진평이 조롱하듯 물었다.
온동은 파산귀검의 보법을 밟고 심법을 이용하여 비검술을 펼쳤고, 이와 달리 개소문이는 오직 조의선인에서 익힌 비검술로만 검을 날리니 위력이 약함은 당연하였다.
“나도 안다. 내 아우는 천하의 둘도 없는 기재로 훗날 너희들은 감히 마주하지도 못할 것이다!”
개소문이 호기롭게 소리치며 온동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당진평은 개소문의 외침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갓쉰동이라… 그래, 태자 전하를 구한 것이 바로 너였구나.”
무심히 중얼거린 당진평이 개소문 일행을 에워싸고 칼을 겨눈 수하들에게 소리쳐 명하였다.
“공이 있는 아이다. 이 아이들의 목숨은 오늘 거두진 않겠다. 이만 돌아간다.”
개소문과 온동이 어리둥절하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야수와 팽무일도 곁에 서서 방비를 하였다.
그러나 당진평은 전혀 개의치 않고 성큼성큼 발을 옮겨 개소문의 곁을 지나 장문으로 향하였다.
“시신들은 너희가 알아서 하거라.”
당진평이 무심히 말하며 장문을 나서니, 수하들이 급히 향로를 들고 뒤를 따랐다.
언지창도 개소문과 온동을 힐끔 보고는 팽무일의 곁을 지나 장문으로 향하였다.
“얘들아…….”
장문 앞에 선 언지창이 몸을 돌려 말하였다.
“너희의 재주가 상당하나, 그 재주만으로는 오늘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느니라. 갈고닦으면 더 발전이 있을 터이나, 수련을 통하여 내력이 쌓이면 결코 산공독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옥상옥이라 하였으니,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명심하거라.”
성정이 올곧은 개소문이는 언지창이 단지 체면을 구기지 않기 위해 허언하는 것이 아니라 여겼다.
“적의 말이지만 어른의 고언이라 생각하여 새겨듣겠소.”
개소문이 예의 바르게 답하니, 언지창이 피식 웃고는 장문을 나섰다.
언지창이 밖으로 나가자, 그제야 팽무일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 소리 하였다.
“저놈, 눈이 시뻘겋게 되고도 큰소리치네. 하여튼 체면 차리는 것은 언가만 한 것들도 없지.”
이에, 내력이 소진된 야수가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하였다.
“안에서. 어떤… 사투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저자들이. 진심을 다했다면, 우리는… 살. 수 없었다. 너희들은… 즉시. 내력을… 가다듬어라.”
아이들이 상대였기에, 당진평과 언지창이 진심을 다해 겨루지 않았음을 한눈에 파악한 야수가 산공독에 중독된 내력을 치유하기 위해 숨을 골랐다.
각자의 심법으로 운기조식하여 중독된 내력을 치유하지 않을 시, 내력을 모두 소진하고 치명적인 내상마저 입을 수 있었다.
개소문과 온동은 내력이 약해 당장은 피해가 크지 않았지만, 서둘러 치유하지 않으면 훗날 수련을 통해 내력을 쌓기 어려울 수 있었다.
팽무일이 야수를 대신하여 두 아이에게 운기조식하는 법을 일러주었다.
이에 온동과 개소문이는 각자 익힌 심법으로 산공독에 중독을 풀기 시작하였다.
팽무일도 가부좌를 틀고 산공독을 체내에서 뽑아내고는 바로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공손향을 데려와야겠구나.”
실성한 공손향이 홀로 있음을 떠올린 팽무일이 장문 밖으로 나가니, 개소문과 온동도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채 부인과 노진평님을 묻어드려야겠습니다.”
온동의 말에 개소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공손향을 데리고 들어온 팽무일도 노가장에서 시신을 나르며 도왔다.
채 부인과 노진평의 묘를 우문도웅의 묘 옆에 세우고, 하오문의 졸개들은 모두 한 구덩이에 묻었다.
노가장 내의 시신을 모두 수습할 때까지도 쇼락은 돌아오지 않았다.
“형님, 쇼락님이…….”
온동이 쇼락을 걱정하니, 개소문이 온동의 등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반드시 돌아오실 것이야. 아우는 너무 심려치 말게. 오실 때까지 우린 이곳에서 기다리는 게 좋겠네.”
그러나 개소문의 말과 달리, 날이 밝아올 때까지도 쇼락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이 되고도 쇼락이 돌아오지 않으니, 허기진 배를 어루만지며 팽무일이 말하였다.
“배고파서, 여기 더 머물기도 어려울 듯한데… 산을 내려가 쇼락을 찾던지, 태원으로 가서 독고 씨 계집아이를 찾던지 합시다. 온 씨 꼬마, 내 말이 어때?”
이에 온동이 답을 하지 못하니, 개소문이 대신 말하였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아니, 사부! 언제 관군이 들이닥칠지도 모르고, 어제 그 언가 놈이랑 당가 놈이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여기 계속 있자고요? 아니, 난 그렇게는 못하지.”
개소문이 눈살을 찌푸리며 꾸짖으려 할 때, 장문 밖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쇼락님이다!”
온동이 반가워 소리치니, 아니나 다를까 쇼락이 들어왔다.
“온동, 외팔이 검객이… 갓난아이를 안고 갔다. 그 뒤를 행군원수부에서 봤던 놈이 쫓았고, 내가 그놈의 뒤를 쫓았다.”
외팔이 검객이란 말에 온동이 고개를 갸웃했다.
“남궁세가의 남궁민 대협이시면… 두 팔이 온전하실 터인데… 누구지? 그래서 어찌되었습니까?”
“외팔이 검객이 나의 말보다 빨라 놓쳤다. 더 추적할 수는 있었으나, 악인으로 생각되지 않아 돌아온 것이다.”
쇼락의 말에 내심 안심하면서도 팽운이 걱정된 온동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였다.
이에, 팽무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 외팔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하오문의 졸개들을 벤 자가 남궁세가의 일원이라면, 어디로 갔는지 알 것도 같다.”
“어디로 갔나요?”
온동이 바로 물으니, 팽무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하였다.
“그거야 당연히 남궁세가로 갔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