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190화 (190/328)

190화 주유천하(周遊天下) (4)

제갈여가 야수의 어깨에 박힌 소리비도를 비틀어 빼자, 살이 튀고 피가 흩날렸다.

휘청거리는 야수의 얼굴로 단목순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두 눈의 혈관이 터져나온 핏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턱에 맺혔다.

이때, 이십팔숙의 스물여덟 자루 검이 하나처럼 일시에 야수를 노렸다.

급히 몸을 틀어 피해보지만, 여섯 자루의 검이 동시에 야수의 어깨와 가슴, 등을 깊게 베었다.

“이, 하찮은. 것들이.”

야수가 이를 바드득 갈며 주위를 에워싼 적들을 노려보았다.

시뻘겋게 물들어 가는 상의 못지않게 혈관이 터진 야수의 두 눈이 마치 타오르듯 붉게 이글거렸다.

“너희. 따위. 백만이라도. 상관… 없다.”

두 자루 박도를 고쳐 쥔 야수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며 공손향을 바라보았다.

야수의 시선이 자신을 믿고 뒤에 있으라는 듯 느껴진 공손향이 우문도웅을 부축해 야수의 뒤로 이동하였다.

“나도 그대를 돕겠소.”

이미 야수와는 구면인 해권이 월도를 쥐고 야수의 우측을 지켰다.

이에, 쇼락도 아무 말 없이 야수의 좌측으로 발을 옮기며 가볍게 월도를 가로로 휘둘렀다.

익숙하지 않은 병장기였으나, 다룰 만한지 쇼락이 주위 적들을 노려보았다.

이에, 팽무일은 사위를 경계하며 야수의 뒤로 쓱 발을 옮겼다.

‘좋아! 이놈들이 시선을 끌면 기회를 보아서 도망치는 거야.’

야수를 중심으로 진을 갖추니, 한 몸처럼 움직이던 이십팔숙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에워싸고 진숙이 그 중앙에 섰다.

그 누구도 빠져가게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내가. 길을, 뚫을… 것이오.”

야수가 힘겹게 말하였으나 기새만큼은 매우 당당하였다.

두려움 없는 야수의 기세에 팽무일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제길, 내가 무예 수련만 게을리하지 않았어도 팽가도법으로 길을 만들 수 있었을 거늘…….”

무척이나 아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개소문이를 통해 파천신검을 익혔으나, 수련이 부족하여 사방을 에워싼 적의 공격을 막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공격 초식이 전무한 파산신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자신이 익힌 무예를 함께 펼치려 해도 파천신검의 심법과 보법이 익숙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역시, 믿을 것은 내 경공술뿐인가?”

살길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행군원수부의 군사들뿐만 아니라 무예 고수들까지 에워싸고 있어 이 또한 쉽지 않았다.

“결국… 여기까지인가?”

팽무일이 한탄을 하는 동안에도 야수는 이십팔숙의 검을 막으며 진숙을 향해 박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한 몸처럼 움직이는 이십팔숙이 일제히 허공에 떠오르며 야수와 거리를 벌리자, 어느 틈에 단목순이 무한보를 펼치며 빠르게 접근해 야수의 가슴에 검을 박았다.

“컥!”

야수가 신음을 토하며 단목순의 정수리를 노려 박도를 내리쳤다,

기겁한 단목순이 야수의 가슴에서 검을 뽑으며 뒤로 물러나자, 어느 틈엔가 다가온 제갈여가 소매를 흔들었다.

“은하침통!”

팽가장의 비극을 떠올린 온동이 또다시 소리치며 신발을 벗어 날렸다.

딱!

은하침통을 날리려던 제갈여의 이마에 정확히 명중한 신발이 바닥에 떨어졌고, 분노와 수치심에 제갈여의 눈이 일그러졌다.

“누구냐!”

제갈여의 외침에 놀란 군중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온동과 거리를 벌리니, 제갈여의 눈에 두 아이가 들어왔다.

“넌?”

일 년 전, 팽가장과 한왕 행군원수부의 연회를 떠올린 제갈여가 온동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는 게냐?”

제갈여의 물음에, 온동이 대답 대신 돌멩이 두 개를 쥐어 양손에 들었다.

이 광경에 태자 양광이 온동과 제갈여를 번갈아 보며 피식 웃었다.

“용감하면서도 돌팔매질 같은 재미있는 재주를 지닌 아이로군. 헌데, 저런 어린아이를 상대하기엔 제갈세가의 명성이 너무 높지 않은가?”

태자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제갈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때, 양소가 온동의 곁에 선 열대여섯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소년을 유심히 살피더니, 태자 양광에게 나지막이 말하였다.

“전하, 저 소년은 우리와 인연이 있습니다.”

이에, 태자 양광이 검은색 복색에 다섯 자루의 검을 등에 매고 두 자루 검을 허리에 찬 소년 장수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이에 비해 체구가 열대여섯로 보였으나, 아직 열한 살 아이인 개소문이었다.

“갓쉰동…….”

지난 해 자신을 구해 주었던 바로 그 소년임을 깨닫고 태자 양광이 놀라 중얼거렸다.

“전하, 저 아이는 전하와 연이 있사옵기에, 살아서 나간다면 반드시 황제 폐하의 노여움이 전하께 미칠 것입니다. 이곳에서 죽여 분란의 단초를 없애야 합니다.”

황제 양견이 개소문이와 태자의 관계를 의심하여 죄를 물으리라 예상해 양소가 말하였으나, 태자 양광은 단호히 잘라 답하였다.

“은원에는 반드시 합당한 결과가 있는 법. 양현감!”

태자의 부름에 양현감이 몸을 낮춰 답하였다.

“하명하소서.”

이에 태자 양광이 목소리 낮춰 명을 내렸다.

“준마 여덟 필을 대기해 놓거라.”

명을 받은 양현감이 주위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사라졌다.

“전하, 저들을 이곳에서 구할 방도는 없사오며, 있다한들… 반드시 전하께 해가 되는 일이옵니다.”

양소의 만류에도 태자 양광은 고개를 저어 말하였다.

“살고 죽고는 저들 몫이고, 나는 그저 말만 준비해 줄 뿐이오.”

이에 양소가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개소문이와 온동에게로 옮겼다.

‘제발 그냥 이곳에서 죽거라.’

양소의 바람대로 군사들이 두 아이의 뒤를 막고 소리비도를 쥔 제갈여가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야수와 이십팔숙이 불꽃을 튀기며 검과 도를 맞부딪치는 가운데 제갈여가 온동을 가리키며 한왕 양양에게 소리쳐 말하였다.

“한왕 전하, 이 아이를 기억하시나이까? 온달의 일가인 온동이란 아이이옵니다.”

이에, 한왕 양양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명하였다.

“당장 저 아이를 사로잡아 오너라! 온달의 일가라면 이가 갈린다. 산 채로 살점을 떼어 내고, 뼈를 갈아 마실 테다!”

자신을 향해 끔찍한 소리를 하는 한왕을 힐끔 쳐다보고는 온동이 냅다 돌멩이를 날렸다.

휭!

가볍게 바람을 가른 돌멩이가 한왕의 코를 맞췄다.

“으악!”

코를 부여잡은 한왕이 나뒹굴었고, 호위하던 문술을 비롯한 장수들이 놀라 한왕에게 달려갔다.

“무엇하냐! 살을 날려라!”

문술이 급히 명을 내렸다.

이에,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겨누고, 창잡이들이 달려나갔다.

이때 한왕이 이를 바드득 갈며 일어나 소리쳤다.

“아니! 죽여선 안 된다. 산 채로 잡아오너라!”

분노와 수치심으로 가득 찬 한왕의 눈빛에 문술이 바로 명을 내렸다.

“새, 생포하라! 죽이지 마라! 살을 날리지 마라!”

“전하! 제가 잡아오겠나이다.”

한왕의 분노를 파악한 제갈여가 눈치 빠르게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소리비도가 검광을 뿌리며 온동의 조그만 머리를 노렸다.

이때 개소문이가 온동을 자신의 등 뒤로 끌어 세우고는 두 자루 검을 뽑아 들며 말하였다.

“아우는 물러나 있게.”

제갈여의 소리비도와 개소문이의 검이 부딪치며 불꽃을 튀겼다.

열대여섯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소년에게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제갈여가 더욱 분노해 소리쳤다.

“감히!”

다시 소리비도가 개소문이의 머리를 노려 찔러들어 가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온동을 노렸다.

그러나, 개소문이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파천신검을 펼쳐 자신을 방어하며 백두검법의 보법을 밟아 몸을 움직여 온동의 앞을 지켰다.

또다시 공격이 막히자, 제갈여의 얼굴이 점점 더 붉게 달아올라 마치 피를 뿜어내는 듯하였다.

“이 시건방진 놈이!”

이번엔 제갈여가 개소문이에게 집중해 소리비도를 찌르며 왼손 소매를 털었다.

“은하침통!”

온동이 소리치며 왼손을 휘두르니, 손에 쥔 돌멩이가 제갈여를 향해 날아갔다.

“악!”

은하침통을 날리기는커녕 온동이 날린 돌멩이에 관자놀이를 맞은 제갈여가 눈을 까뒤집고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입에 거품까지 문 모습이 이미 의식을 잃은 듯했다.

“여! 제갈여!”

단목순이 쓰러진 벗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고, 개소문이가 온동의 손을 쥐고 쇼락을 구하기 위해 앞으로 발을 옮겼다.

“이 맹랑한 놈들이!”

제갈여를 안은 단목순이 크게 외치더니, 무한보를 펼쳐 개소문이의 앞을 막았다.

제갈여를 안아 들고도 가볍게 몸을 놀리는 단목순의 무예에 개소문이가 감탄하였다.

“대단한 경공이로다.”

“이 조그만 놈이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이냐?”

그러나 일부러 어른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닌, 말투와 성품 자체가 애늙은이스러운 개소문이가 오히려 비웃으며 꾸짖었다.

“칭찬을 해주어도 지랄이로다. 망령난 놈이로세. 늙은이 노망은 고기가 약이고, 젊은 놈 노망은 매가 약이라 했으니, 매 좀 맞거라!”

단목순이 기가 막혀 제갈여를 안은 채 몸을 날리며 발길질을 하였다.

그러나 개소문이는 가볍게 보법을 밟으며 단목순을 비켜 앞으로 나아가더니, 온동을 불렀다.

“아우!”

이에, 온동이 조그만 돌멩이를 발로 걷어차 단목순에게 날렸다.

마치 손으로 날린 것처럼 정확히 날아든 돌멩이에 기겁한 단목순이 급히 뒤로 훌쩍 몸을 날리니, 온동이 남은 신발 한 짝을 쥐고는 비도술을 발휘해 날렸다.

빠르고 곧게 날아든 신발을 막기 위해 단목순이 오랜 벗인 제갈여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온동이 날린 신발이 더욱 빨랐다.

퍽!

단목순의 입이 터져 피가 흐르고, 앞니가 부러지며 다리의 힘도 풀려 휘청댔다.

이 틈을 노려 개소문이는 온동의 손을 쥐고 빠르게 발을 놀리며 쇼락을 향했고, 이 두 아이를 사로잡기 위해 군사들이 몰려들었다.

그 사이, 야수는 진숙과 이십팔숙의 검에 수차례 더 찔리고 베였으며, 야수를 돕던 쇼락과 해권도 온몸을 피로 물들이고 있었다.

“쇼락 장군!”

개소문이가 소리쳐 쇼락을 부르니, 힘겹게 시선을 돌린 쇼락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때, 이십팔숙이 원을 그리듯 빠르게 주위를 돌더니, 일제히 검을 앞으로 뻗으며 몸을 날렸다.

“막아!”

해권이 급히 소리치며 월도를 휘둘러 방비하였지만, 스물여덟 자루의 검이 사위에서 찔러들어 와 모두 막아내지는 못하였다.

“악!”

해권의 옆구리와 등에 검이 박히고, 쇼락도 어깨와 복부를 베어 피를 뿌렸다.

야수는 자신을 노린 이십팔숙의 검을 박도로 모두 쳐냈으나, 뒤이어 찔러온 진숙의 검에 팔을 베이고 말았다.

“퉷!”

입에 가득 고인 피를 뱉은 야수가 검에 베인 팔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휘둘러 진숙의 목에 박도를 들이밀었다.

야수의 반격에 진숙이 땅을 굴러 피하며 거리를 벌리자, 이십팔숙이 야수의 앞을 막아서며 일제히 검을 뻗었다.

스물여덟 자루의 검이 내뿜는 검광에 야수의 눈이 일그러졌다.

야수가 검광에 에워싸여 온몸이 베이고 뚫릴 위급한 순간.

이십팔숙의 등 뒤로 검과 창, 화살과 도끼 심지어 활까지 날아들었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숱한 병장기에 이십팔숙이 놀라 급히 몸을 솟구쳤으나, 날아든 병장기의 속도가 더욱 빨랐다.

“아악!”

“악!”

병장기에 맞고, 찔린 이십팔숙이 땅에 처박히며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온동이 몸을 굴려 군사들이 떨군 병장기들을 줍는 즉시 마구 날리면서 쇼락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앞을 막는 군사들을 개소문이는 파천신검을 펼쳐 자신과 온동의 몸을 지키며, 백두검법을 동시에 펼쳤다.

쓰러진 군사들이 떨군 병장기는 온동이 줍는 즉시 날리고, 개소문이도 다섯 자루의 검과 두 자루의 검을 비검술로 날리고는 땅에 떨어진 병장기를 주워 비도술을 펼쳐 날렸다.

해권은 두 아이가 펼치는 비검술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찌… 저 아이들이… 무상비검술을…….”

몇 해 전, 배찰산에서 온달이 펼쳤던 무쌍비검술을 떠올린 것이다.

개소문이는 파천신검의 단점을 보강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익힌 조의선인의 백두검법과 비검술을 함께 수련했다.

이들 무예는 보법과 심법이 유사하여 하나의 무공처럼 궁합이 매우 잘 맞았다.

팽무일은 공격 초식이 전무한 파천신검을 백두검법과 비검술로 보강한 개소문이를 반기며 소리쳤다.

“사부! 내게도 전수해 주시오! 여기 사부의 제자가 있소!”

이에 개소문이가 야수와 쇼락의 앞을 지키며 위엄 있게 말하였다.

“제자야, 네가 나를 성심으로 따르고 정도를 걷는다면 이미 조의선인에 귀의한 네게 백두검법을 가르치지 않을 리 없느니라. 속히 앞으로 나와 이 사부를 돕거라.”

“여부가 있나이까.”

팽무일이 신바람을 내며 가볍게 몸을 솟구치니, 비록 다리에 부상을 입었어도 경공술은 여전하여 사뿐히 땅에 내려섰다.

“우리가 뚫고 나갈 터이니, 그대들은 바짝 붙어 따르시오.”

개소문이가 단단히 주의를 주며 이십팔숙이 떨군 검을 양손에 쥐었다.

온동도 개소문이를 따라 검을 쥐고는 파산귀검 초식을 힘껏 펼치니, 달려들던 군사들의 발밑이 일 자나 패이며 흙과 돌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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