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겨울 전쟁 (26)
연태조를 구하고 다시 강이식을 돕기 위해 회군하는 온달의 마음은 무척이나 급하면서도 기뻤다.
연태조의 배려로 명의 오옥을 얻어, 중상 입은 경우를 치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온달과 마찬가지로 막바우 역시 마음이 급하고 기뻐 연신 속도를 높이라 명령을 가하였다.
“행군 속도를 늦추는 놈은 수나라 놈으로 간주할 것이다! 속도를 더 올려라!”
막바우의 명에 설원 위 눈을 솟아 올리며 기병 육천 기가 쉬지 않고 내달렸다.
이때, 우랑이 급히 말을 몰아 온달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동남 방면에서 쇳소리가 울리고 말울음도 들린다합니다.”
정찰 나갔던 군사의 보고를 우랑이 전하니, 온달이 잠시 동남 방면으로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거리는 어찌 되오?”
“고작 일다경이옵니다.”
말을 달려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거리라 말하니, 온달이 손을 들어 행군을 멈추게 하였다.
“우리 고구려와 수가 싸우는 것이오?”
“그것까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곧 추가 보고가 있을 것입니다.”
“일… 다경 거리라… 방향을 틀겠소. 속도를 높이되, 소리를 줄이라 하시오!”
온달이 명하니, 우랑과 막바우가 부장들을 불러 명을 내렸다.
이내 곧 방향을 동남 방면으로 돌린 온달이 앞서 말을 달리니, 막바우도 단단히 창을 쥐고 뒤 따랐다.
“경계를 철저히 하라! 근방에 수나라 군이 있다!”
우랑도 개마무사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며 속도를 높였다.
* * *
평강을 노리고 달려드는 수나라 군사들을 향해 경우가 세 대의 화살을 활에 먹여 날리며 소리쳤다.
“공주 마마!”
평강이 급히 몸을 돌려 경우에게 달려가니, 경우가 날린 화살이 그녀의 곁을 스치며 곧게 날아가 뒤좇던 수나라 군사들을 말에서 떨구었다.
그리고 연이어 경우의 활이 팽팽해지며 다시 화살을 날리니, 주인 잃은 말들이 늘어났다.
“윽!”
화살을 날릴 때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의 고통이 심해져 경우가 끝내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평강이 급히 경우를 부축하려던 순간, 말을 몰아온 수나라 군사가 창날로 경우의 어깨를 찔렀다.
“악!”
경우가 비명을 지르며 급히 몸을 틀어 활을 휘둘렀다.
붕!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며 활이 수나라 군사의 허벅지를 때렸다.
“악!”
창으로 찌르던 수나라 군사가 비명을 지르자, 경우가 화살을 쥐고 몸을 날려 말 위 수나라 군사의 가슴팍에 화살을 밀어 넣었다.
“으악!”
수나라 군사가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지자, 경우도 수나라 군사와 함께 나뒹굴었다.
이때, 두 명의 수나라 군사가 말을 몰아와 경우와 평강을 노리고 창을 찔러왔다.
겁에 질린 평강은 땅에 주저앉았고, 경우가 제 몸도 돌보지 않은 채 몸을 날려 평강을 찌르는 창날을 몸으로 막았다.
푹!
수나라 군사의 창날이 경우의 옆구리 깊이 들어왔다.
“아악!”
경우가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자신의 옆구리에 들어온 창을 쥐고는 몸을 비틀었다.
창이 틀어지자 수나라 군사가 말 위에서 떨어졌고, 경우는 창을 옆구리에서 빼내고는 아직도 자신을 노리고 창을 찔러 오는 또 다른 수나라 군사에게 던졌다.
푹!
곧게 날아간 창이 수나라 군사의 목에 박혔고, 그 기세에 수나라 군사가 창과 함께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 사이, 말 위에서 떨어진 수나라 군사가 재빨리 일어나, 칼을 빼어들고는 경우에게 달려들었다.
경우는 급히 화살통으로 손을 돌리고는 힘껏 화살을 뿌리듯 날렸다.
다섯 대의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 달려드는 수나라 군사의 눈과 목, 가슴에 꽂혔다.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수나라 군사가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경우님!”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평강이 일어나, 비틀거리는 경우를 부축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올루스 안에선 난전이 한창이었고, 평강과 경우를 노리고 달려드는 수나라 군사들은 끝이 없었다.
“공주님… 안으로… 안으로…….”
경우가 자신을 부축하는 평강의 손을 뿌리치고는 평강을 올루스 안으로 밀어 넣었다.
푹! 푹!
경우가 몸을 돌린 순간, 바람을 가르고 날아든 화살 두 대가 경우의 등에 박혔다.
“윽… 어서… 안으로…….”
피 한 모금 토한 경우가 필사적으로 평강을 게르 안에 밀어 넣고는 그 앞에 서서 화살 두 대를 각기 양손에 쥐었다.
온몸이 피에 젖고, 그 못지않게 식은땀이 전신을 흠뻑 적셨다.
두 다리는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로 휘청였고, 어느새 흐려지는 두 눈은 이제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평강을 지키기 위한 투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오라! 오너라! 모두 저승길 동무 삼겠노라!”
두 대의 화살을 쥔 경우가 포효하며 달려드는 수나라 군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화살로 적의 얼굴을 후려치고, 목과 눈을 찌르며 한참 동안 춤추듯 몸을 날린 경우의 배로 날카로운 쇠붙이가 들어왔다.
푹!
“커헉…….”
뜨거운 피가 창날이 들어온 배에서 꿀럭꿀럭 흘러나왔다.
그리고 쑥 창날이 뽑히자, 샘이 솟구치듯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악!”
경우가 비명을 지르며 큰대자로 쓰러지자, 수나라 군사 셋이 게르를 향해 달려갔다.
“아직… 아직은… 아직은… 내 앞을 지날 수 없다!”
큰 대자로 쓰러졌던 경우가 포효하듯 소리치며 몸을 일으키고는 바닥에 떨어진 활을 쥐고 몸을 날렸다.
허공에 뜬 경우의 몸에서 피가 흩날렸고, 경우의 외침에 몸을 돌린 수나라 군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어렸다.
온몸을 피로 물들이고, 찢기고 뚫린 몸뚱이로 허공에 피를 흩날리며 활을 휘두르는 경우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 상처 입은 야수 같았다.
“으아악!”
“아악!”
경우가 휘두른 활에 얼굴을 맞은 수나라 군사들이 살점을 허공에 뿌리며 나뒹굴었고, 이에 기겁한 수나라 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간신히 평강의 게르를 지킨 경우가 활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땅에 떨어진 검을 쥐었다.
“아무도… 아무도… 내 앞을 지날 수는 없다.”
이미 반쯤 감긴 눈으로 중얼거리며 경우가 힘겹게 전방을 바라보았다.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지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으나, 정작 그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해져 청각의 이상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차츰 시야가 흐려지며, 고구려 군과 수나라군, 올루스의 남녀노소들의 모습이 그저 형체와 빛으로만 보이기 시작하였다.
“빛이 사리지고… 형체만… 남으면 어떠… 한가. 다가… 오는… 모든… 것을… 그저 베면 될 뿐.”
힘겹게 중얼거리던 경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형체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도 할 수 없었으나, 평강을 지키기 위해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죽어라! 죽어라!”
고함을 지르며 마구 검을 휘두르던 경우의 몸을 누군가 와락 끌어안았다.
“놔라! 죽어라!”
경우가 자신을 끌어안은 상대를 칼로 베려 했으나, 강한 힘이 그녀의 칼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억양이 경우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야. 막바우. 경우, 이 친구야… 나라고 막바우.”
그제야 주위 소리가 다시 경우에게 들리기 시작하였고, 흐려졌던 시야도 다시 밝아졌다.
“왜. 이제, 온 거냐? 하여튼, 한가한 친구야.”
막바우에게 지청구를 하더니, 경우가 머리를 떨구고 의식을 잃었다.
이때, 올루스 안까지 군을 몰아온 소장황의 시야에 경우와 막바우가 들어왔다.
“그럴싸한 천막이로다. 분명 꽤 중요한 놈이 저 안에 있을 게야.”
월도를 치켜든 소장황이 말을 몰아 달려드니, 수하 장수 셋과 군사 십여 명이 그 뒤를 따랐다.
이에, 막바우가 경우를 자신의 뒤에 고이 눕히고는 창을 쥐고 소리쳤다.
“다 싸잡아 찢어 죽여주마! 오너라!”
“오냐! 가고 있느니라! 하하하.”
소장황이 막바우를 비웃으며 월도를 힘껏 내리쳤다.
그리고 소장황의 수하 장수 셋도 막바우를 향해 힘껏 창을 찔러 왔다.
막바우는 자신의 몸을 지키는 대신 소장황을 향해 창을 곧게 찔렀다.
“미련한 놈! 뒈질 줄도 모르고!”
소장황이 급히 월도를 돌려 막바우의 창을 막았다.
그 사이 소장황의 수하 장수들의 창날이 막바우의 몸에 닿고 있었다.
이때, 막바우의 배후에서 온달이 누렁이를 바삐 몰아 달려오며 막바우를 불렀다.
“막바우 피하시게!”
온달의 외침에 막바우가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휭!
묵직한 그 무엇인가가 허공을 후려치며 막바우의 머리를 스쳐 지나더니, 막바우를 노리고 달려들던 소장황의 수하 장수 셋을 향해 날아갔다.
이어서 뼈마디가 부러지는 끔찍한 소리가 들리고, 처참한 비명도 울렸다.
“아악!”
“으악”
막바우가 고개 들어 보니, 온달의 운철대검에 맞은 소장황의 수하 장수 셋이 머리와 가슴이 뭉개져 땅에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소장황을 지키기 위해 달려온 수나라 군사들이 기겁해 도망치고 있었으며, 망연자실한 소장황만이 홀로 멍하니 말 위에 있을 뿐이었다.
“에라이!”
급히 정신 차린 막바우가 창을 들어 소장황을 향해 찌르니, 소장황도 그제야 정신 차려 막바우의 창을 월도를 막고는 오히려 반격을 가해 왔다.
이때, 온달이 누렁이를 몰아오더니, 시커먼 철궁을 빼어들고는 바람을 갈랐다.
휭!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철궁이 소장황의 얼굴을 후려쳤다.
“크아악!”
코가 뭉개지고, 이빨은 물론이요.
턱까지 빠진 소장황이 벌러덩 말 위에서 떨어지니, 막바우가 비호처럼 날아 창날을 소장황의 목에 박았다.
잠시 뒤, 사방에서 승리의 함성이 울리고 우랑이 개마무사들을 이끌고 온달의 앞에 섰다.
“모두 격퇴하였습니다만, 올루스의 위치가 적에게 노출되었으니, 속히 이동해야 합니다.”
침착한 우랑이 향후 벌어질 일까지 예상하여 말하였다.
이에, 온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바우가 안아 들고 있는 경우를 바라보았다.
“일단 치료부터하고 이동합시다. 오옥을 데려오시오!”
온달이 소리쳐 명하니, 이 소리에 평강이 게르 안에서 나왔다.
“장군님!”
평강이 달려와 온달의 품에 안기려다가, 막바우가 안아 들고 있는 경우에게로 시선을 옮겨 발을 멈추었다.
“막바우 장군, 경우님을 속히 제 게르 안으로 옮겨 주십시오.”
평강의 요청에 막바우가 경우를 안고 게르 안으로 들어갔다.
“경우 이 친구… 뭐 이리 가벼운 게야? 허구헌날 깨작거리며 밥 처먹더니, 몸이 이리 부실하지.”
공연한 소리를 하며 막바우가 경우를 침상에 눕히자, 평강이 급히 말하였다.
“모두 나가주십시오. 경우님을 치유해야 합니다.”
의관에게 보이지 않고 자신이 경우의 상처를 돌보려 한 것이었다.
이때, 오옥이 다가와 경우를 들여다보고는 온달에게 말하였다.
“모두 나가주십시오. 치유는 저와 이분께서 하실 것입니다.”
평강의 신분을 모르는 오옥이 이분이라 칭하니, 막바우가 한 소리 하려 했으나, 온달이 손을 잡아끌며 데리고 나갔다.
“우리는 오 의관이 치유하도록 나가세. 정신없게 하면 아니 되네.”
이에 평강과 단 둘이 남은 오옥이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저는 병자의 비밀을 지킬 줄 아는 의관입니다. 안심하십시오.”
그제야 평강도 안심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다행스럽게도 경우님이 의식을 잃으셨군요. 아마도 의식이 있었다면 절대로 의관에게 치료받지 않을 것인데… 깨어나기 전에 속히 치유하소서.”
평강이 돕고 오옥이 치유하는 동안, 온달과 막바우는 게르 앞을 서성였다.
밤이 깊어서야 시술이 끝났는지, 기진맥진한 평강이 밖으로 나왔다.
“이제 그만 들어오소서.”
온달과 막바우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온몸을 흰 천으로 둘둘 감은 경우가 고이 잠들어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은 오옥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하였다.
“매우 많이 꿰매고 또 꿰매었습니다. 당분간 피가 부족하여 어지러움 증상이 있을 터이나, 생명에는 큰 지장 없을 것이옵니다.”
이에 온달과 막바우가 기뻐 오옥의 손을 동시에 쥐며 말하였다.
“오 의관 고생하셨소.”
“정말 명의로세! 고생하였소. 그런데 우린 왜 나가 있으라한 게요?”
막바우의 물음에 오옥이 빙그레 웃었다.
“장군님의 그 쇠징치는 듯한 목소리에 상처를 꿰매는 제 손이 실수할까 두려워 그런 것이니, 양해하여 주십시오.”
“하긴, 내 목소리가 좀 많이 크지. 허허허.”
어떤 소리를 들어도, 괜히 기분 좋은 막바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