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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검귀-184화 (184/328)

184화 겨울 전쟁 (24)

한눈에도 경우의 상태는 갈수록 매우 위중해지고 있었다.

자신의 손이 닿는 어깨와 팔 그리고 가슴에 박힌 화살은 경우가 스스로 뽑았고, 등에 박힌 화살은 평강이 힘을 쥐어짜 뽑아야 했었다.

팔과 어깨의 상처는 의관에게 보여 꿰맬 수 있었으나, 등과 가슴 그리고 허벅지에 생긴 상처는 제대로 치유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평강으로선 지혈하고 깨끗한 천으로 감는 것이 고작이었다.

“경우님, 의관에게 보여야 합니다. 상처를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고열로 시달리는 경우의 이마를 식혀 주며 평강이 말하였다.

“공주님, 안…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겨울이라… 크게 곪지는 않을 터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조금… 조금 쉬면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간신히 입을 벌려 말한 경우가 힘겹게 눈을 감았다.

숨 쉬기도 무척 힘든 모양이었다.

“단순한 부상이 아닌 것 같아요. 의관에게 보여야 합니다.”

평강이 애써 단호하게 말하고 일어섰으나, 경우가 손을 뻗어 평강의 옷자락을 쥐었다.

“안… 됩니다. 안…….”

말도 채 끝내지 못한 채 경우가 의식을 잃으니, 평강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경우의 곁에 앉았다.

“대장군께 말씀드려 경우님을 안시성으로 이송시켜 달라 해야겠구나. 여기서는 경우님의 고집을 꺾을 수 없으니, 치유할 수도 없을 거야.”

* * *

경우의 게르에서 나온 평강이 강이식을 찾아가니, 마침 연태조에게 전령을 보내고 있었다.

연태조가 의식이 없음을 모르는 강이식이 여러 당부를 전하였다.

“임유관 인근 선북쪽에 진을 치고 있다 하였으니, 조심히 다녀오거라. 적의 보급을 급습하되, 절반은 통과시켜야 한다고 전하거라.”

전령에게 단단히 당부한 강이식이 평강에게 시선을 옮겨 물었다.

“제게 따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게르 밖으로 나가는 전령을 바라보며 평강이 말하였다.

“적의 보급이 부족하지는 않으나, 결코 여유롭지도 않아야 할 것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급습은 하되 일부는 통과시켜 보급 물자가 한왕에게 전달되게 해야 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하온데?”

강이식이 다시 물으니, 평강이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경우님을 안시성으로 이송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의 의관들로는 안 될 상황인 모양이군요. 알겠습니다.”

이미 뭔가를 알고 있는지, 경우의 상태를 깊게 묻지 않고 선선히 승낙하였다.

“감읍드립니다.”

“공주 마마, 하오나 여기서는 이송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앞이 수의 진영인지라… 어차피 올루스를 욺직야 하니, 동쪽으로 올루스가 이동한 후, 그곳에서 이송하도록 하시지요.”

“따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강이식의 배려에 평강이 감사를 표하였다.

* * *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고구려 군은 빠르게 이동을 시작하였다.

올루스는 동쪽으로 이동하고, 상장군 주용은 동북 방면으로, 대모달 흑비걸과 요동성주 고승은 서북 방면으로 움직였다.

카사르와 호타크도 제각각 동과 서로 전사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아직도 그치지 않은 눈이 이들의 이동 흔적을 덮고 있었다.

삼천의 말갈기병과 함께 남은 강이식이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일은 눈이 그칠 터이니, 저들의 공세가 시작되겠지.”

* * *

수나라 진영에서 분주한 움직임이 있었다.

제갈여가 두 손으로 쟁반을 들고 와 한왕에게 바치며 말하였다.

“전하, 이것을 보시옵소서.”

한왕이 쟁반을 들여다보니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담겨 있었다.

“이게 무엇이오? 눈 아니오?”

“그렇사옵니다. 내리는 눈을 받은 것이옵니다.”

“헌데?”

“어제는 눈이 두 개, 세 개 서로 엮이고 뭉쳐 내렸사온데, 오늘은 보시듯 하나이옵니다. 본디, 눈이 서로 뭉쳐 내려 눈송이가 되면 큰 눈이 되오나, 이렇듯 눈송이가 작아지면 내리던 눈이 그 위세를 다했음을 의미하옵니다.”

“위세가 다했다라… 참으로 좋은 소식이오. 출병 준비를 해야겠구려.”

한왕도 크게 깨닫고 빙그레 웃었다.

“전하, 한 가지 더 아뢰올 것이 있사옵니다.”

“말하시구려.”

“우리는 보급으로 무척이나 고달픔을 겪었사온데, 저들은 말까지 먹이고 있사옵니다.”

“그렇소만, 그게 어떻다는 게요?”

제갈여가 출병을 반대한다 생각한 한왕이 언짢은 기색으로 물었다.

“이상하지 않으시옵니까?”

“뭐가 말이오?”

“보급이 풍족한 것 말이옵니다.”

“그거야, 영주성을 저들이 취하여 요동성에서 보급로를 확보한 덕분이겠지.”

“우리의 배후를 공격한 고구려 군은 요동성에서 보급을 받았을지도 모르오나, 우리의 앞을 막은 고구려 군에겐 불가한 일이옵니다.”

제강여의 말에 한왕도 잠시 생각에 잠기고는 무릎을 탁치며 일어섰다.

“아하! 우리 앞의 고구려 놈들은 보급을 지니고 움직였던 게야!”

“그렇사옵니다. 아주 충분한 물자를 지니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래, 말까지 먹일 만큼!”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 놈들입니다. 반드시 일전을 벌이기 전에 움직임이 느린 보급부대를 먼저 이동시킬 것입니다.”

“그래! 놈들은 그동안 보급부대를 노출시키지 않았어.”

한왕과 제갈여가 의견을 일치하자 서로 마주보고는 환하게 웃었다.

“전하, 아주 은밀히 척후병을 보내소서. 결코 고구려 놈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은밀히… 하여, 반드시 고구려 놈들이 보급을 어디서 받고 있는지 알아내야 하옵니다.”

“그래, 적의 곳간을 털어 우리 배를 두드려 봅시다!”

한왕 양양이 즉시 사방으로 정찰을 보내며 엄히 명하였다.

“결코 고구려 놈들에게 들켜선 안 된다. 눈 속을 두더지처럼 기어 다니더라도 들켜선 안 되니, 각별히 주의하고 또 주의하거라!”

* * *

을지문덕의 예견처럼 다음 날이 되자, 눈이 그치고 유난히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강이식의 마음 한 편에 불안감이 싹 텄다.

“시야를 가려주던 눈이 그치니, 다시 전쟁이 시작되겠구나.”

수나라 군에게서 자신들을 가려주던 눈의 장막이 사라짐은, 곧 수의 공세가 시작됨을 의미하였다.

“준비하라! 적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강이식이 말에 오르며 외치자, 삼천의 말갈기병들도 일제히 말에 올라 일전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정면으로 대지에서 눈을 쏘아 올리며 수나라 군이 진격해 오고 있었다.

동과 서로 넓게 진을 펼친 채 진격해 오는 수의 군세에 공별이 강이식의 곁으로 다가와 말하였다.

“적이 진을 넓게 펼쳐 우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적도 바보는 아니니, 이미 정찰하여 우리 위치와 군세를 파악하고 있었을 게야. 저리 넓게 펼치니 빠져나갈 구석이 없군.”

“화살을 날려 발을 묶을까요?”

“아니, 아직 더 다가오게 하자. 오래 싸워야 하니, 이제부턴 화살도 살살 아껴가며 싸워야 하느니라.”

“아낄 것을 아끼셔야.”

“그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강이식과 공별이 대화하는 사이에도 수나라 군은 진격을 계속하여 어느새 서로 화살이 닿을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제 살을 날릴까요?”

공별의 물음에 강이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공별이 손을 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살을 날려라!”

이와 동시에, 수나라 군에서도 호각이 울리며 궁수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오더니 하늘 높이 화살을 쏘아 올렸다.

푸른 하늘을 양측이 쏘아 올린 화살이 가득 메우더니, 서로 갈라져 남과 북으로 매섭게 내리기 시작하였다.

“물러나라! 거리를 벌리며 배사한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화살비에 강이식이 소리치며 말 머리를 급히 돌렸다.

이에 삼천의 말갈기병들은 일사분란하게 물러나며 배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말갈기병들이 급히 벗어난 자리로 내리는 화살비를 뚫고 삼천 대의 화살이 수나라 진으로 날아들었다.

이에 수의 진에서는 중장보병들이 궁수들의 앞으로 나와 방패로 화살을 막았다.

그리고는 궁수들이 재차 화살을 날림과 동시에, 장창병을 선두로 보군이 돌진을 시작하였다.

“와아아아!”

천지가 떠나갈 듯 함성이 울리고, 수나라 군이 돌격해 오니, 말갈기병들이 더욱 거리를 벌리며 배사를 가하였다.

선두의 장창병들이 화살에 맞기 시작하자, 중장보병들이 다시 앞으로 나와 방패로 막으며 진을 갖추었다.

그리고는 다시 중장보병과 장창병이 바짝 붙어 진격하였다.

“저놈들이 우리를 저 산으로 몰아버릴 모양입니다.”

공별이 배후의 산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안 그래도 만리장성을 넘나들며 지위진을 펼칠 생각이었으니… 저들이 원하는 대로 물러나주지.”

강이식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하였다.

이때, 뿔 나팔이 울리며 서와 동에서 카사르와 호타크의 전사들이 수나라 군 진의 좌와 우를 급습하고, 서북과 동북 방면에서도 상장군 주용과 대모달 흑비걸, 요동성주 고승등이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이미 예상했다는 듯 넓게 펼쳐진 수의 진 각 측면에선 중장보병들이 방패로 앞을 막고, 기병 돌진에 대비하여 장창병들이 창을 비스듬히 앞으로 세운 채 맞섰다.

그리고 그 뒤에서 궁수들이 하늘 높이 화살을 날리니, 사방에서 급습을 가하던 고구려와 북방 전사들은 급히 말 머리를 돌려야 했다.

넓게 펼친 수의 이 진형은 기동력이 느리지만, 기병을 상대로 단단하면서도 공격력이 매우 높았다.

강이식의 말갈기병들은 계속하여 뒤로 물러나야 했고, 사방에서 급습하던 고구려 군과 북방의 전사들 역시 밀리고 있었다.

이에, 수의 진영에서 호각과 함께 북이 울리니, 진문이 열리고 기다렸다는 듯 기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서남북 사위에서 쏟아져 나온 수의 기병들이 고구려와 북방의 전사들을 향해 돌진하였다.

하늘에선 화살비가 내리고 땅에선 수의 기병들이 돌격해 오니, 고구려와 북방의 전사들은 기겁하여 패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수의 진 중앙에서 진문이 열리더니 기병들이 쏟아져 나와 뒤로 밀려나던 강이식의 말갈기병들을 향하여 돌격하였다.

문술이 이끈 기병으로 그간 굶주린 말들이었으나, 오늘은 아침부터 배불리 먹인 상태였다.

이 한순간을 위하여, 군사들에게 돌아갈 배급을 군마들에게 먹이고 전투를 치르니, 수나라 군도 오늘 전투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수나라 군의 말들은 그간의 굶주림에서 벗어나 배를 채운 덕에 매우 생기 있는 상태였다.

물론, 오랜 굶주림으로 체력이 약해져 장기간의 전투는 불가능했기에, 단숨에 휘몰아쳐야 했다.

“이 한 순간을 위하여, 그동안 아끼고 아끼던 말들이다. 돌진하라!”

한왕 양양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 *

고구려와 수나라가 전투를 벌이는 설원에서 이십 리 떨어진 구릉 아래에 올루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높지 않은 구릉들이 사면에 펼쳐져 올루스를 수나라 군의 시야에서 가리기 쉬웠고, 구릉들이 나름 강풍도 막아주어 추위도 피할 수 있는 좋은 지세였다.

하지만, 이곳까지 뿔 나팔과 호각, 북소리가 전해지지 않았으나, 왠지 모를 살기가 일대에 돌고 있었다.

하나 둘, 불쑥 불쑥 구릉 위로 말 머리들이 올라오더니, 구릉 아래에 자리한 올르스를 내려다보기 시작하였다.

“저것들이로군. 빌어먹을 고구려 놈들에게 먹을 것을 저것들이 보급하고 있던 게야.”

소장황이 매섭게 올루스를 노려보며 중얼거리더니, 손을 들어올렸다.

이에, 호각이 울리고 일제히 구릉 아래 올루스를 향해 돌격을 시작하였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라 평강이 게르 밖으로 나와 보니, 올르스의 사면을 빙 두른 구릉 위에서 수의 기병들이 돌진해 오고 있었다.

“공주 마마! 게르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기악이 커다란 도끼를 들고 나오며 평강에게 외치고는 부월수들을 이끌고 올루스의 앞을 지켰다.

기범, 기룡, 기훈 등도 나와 부월수들을 이끌고 각각 올루스의 측면들을 지키기 시작하였다.

동서남북 사위를 기 씨 사형제가 부월수들과 함께 파천진을 펼치며 수나라 기병의 돌진을 막고, 카사르 부족민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레를 끌고나와 방벽을 세웠다.

그러나, 이미 쏜살같이 돌진해 온 수나라 군의 일부가 올루스 안까지 난입을 하니, 사방에서 비명이 울리고 난전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미쳐 게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평강이 이 광경에 놀라 발이 굳으니, 그녀를 노리고 수나라 군이 말을 몰아왔다.

“고, 공주… 공주 마마…….”

이때, 게르 안에서 경우가 비틀비틀 걸어 나와 힘겹게 살을 날려 평강을 노리고 덮쳐 오던 수나라 군을 말에서 떨구었다.

그러나, 쓰러진 수나라 군사의 뒤로 더욱 많은 수나라 군사들이 평강을 노리고 말을 몰아왔다.

이에, 더욱 겁에 질려 발이 굳은 평강이 절망하여 탄식을 하였다.

“아, 어찌하여… 이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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