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고구려의 요서 침공 (7)
대장군 강이식의 패배는 요동성의 전시 조정을 들끓게 했다.
그중 태왕의 장인인 국장, 종리위두대형 북장원이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며 벌써부터 이 전쟁의 실패를 주장하고 있었다.
“폐하! 대장군 강이식이 막중한 책임을 허투로 여겨, 감히 일개 수졸이나 할 단기접전을 벌여 개전과 동시에 패전을 이끌었으니, 군법으로 엄히 다스려야하옵니다.”
태왕은 이제 시작인 요서 침공을 패전이라 단정 내리며, 전쟁을 조기에 끝내려 하는 장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장인께선 패전이니, 처벌할 놈 처벌하고, 수에 머리를 조아리란 말이시오?”
“폐하, 소국이 대국을 상대로 감히 전쟁을 벌이는 것은 옳지 않사옵니다. 다행스럽게도 영주에 수의 태자가 있사오니, 사신을 보내 강화를 요청하시옵고 속히 군을 물려 평양성으로 환궁하시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장모 모르게 평양성에 새로 첩이라도 두신 것이오?”
“폐, 폐하… 어찌?”
“아니, 그럼 도대체 왜 그리 서둘러 평양성으로 돌아가려 하시오?”
“수의 태자에게 항복을 고하고 전쟁을 마무리하면 환궁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온데…….”
“장인은 그만 하시오. 전쟁은 이제 막 시작인데, 국장께서 자꾸 항복이니, 환궁이니 언급하여 군의 사기를 떨궈서야 되시겠소?”
“폐, 폐하… 대장군 강이식이 패하여 정처 없이 패주 중이온데, 누구로 하여 전쟁을 계속할 수 있겠사옵니까?”
북장원의 발언에 태왕은 막리지 연태조로 시선을 옮겨 물었다.
“막리지도 우리 국장의 생각과 동일하시오?”
연태조는 태왕에게 고개 숙여 예를 표한 후, 고구려의 군권을 쥔 막리지로서 좌중을 돌아보며 엄히 소리쳤다.
“폐하! 소신 막리지 연태조 감히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하시오. 헌데, 나는 여기 있는데, 누굴 보고 말 하시는 게요? 허허허.”
태왕이 허허 웃으며 허락하자, 연태조가 몸을 돌려 태왕에게 정중히 허리 숙여 예를 표하고는 또다시 몸을 돌려 신료들과 무장 및 오부 귀족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폐하! 이 요동성엔 아직 오만의 정병이 있사오니, 소신 막리지 연태조가 직접 군을 이끌고 나아가 영주성을 함락하고 수의 태자를 사로잡아 감히 대국이라 칭하는 수의 황제 양견에게 항복을 받아내겠나이다.”
“속 시원한 발언이오. 나는 여기 있으니, 뒤돌아 마저 말하시구려. 허허허.”
태왕이 만족해 웃었다.
이 웃음은 곧 출전 허락을 명하는 것이니, 감히 다른 이가 나서서 이견을 내지 못하였다.
허나, 태왕의 장인 북장원만은 다른 이와 달리 태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폐하, 우리 고구려를 대표하는 무장인 대장군이 패하여 생사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이 상황에 전쟁을 계속 이어 나갈 수는 없사옵니다.”
태왕은 장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특유의 웃음으로 말을 이었다.
“허허허, 장인께선 참으로 매정하시구려.”
“폐, 폐하… 어찌?”
“대장군이 패하여 생사를 가늠하지 못한다면, 원군을 보내 구해 와야 하지 않소?”
“대장군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온데, 어찌 원군을 보내오리까?”
“그러니, 영주성을 치겠다고 막리지가 말하는 것 아니오? 영주성이 함락되어 수의 태자가 사로잡히면, 패주 중인 대장군도 무사할 것 아니오? 아니 그렇소? 허허허.”
북장원이 답을 못하자, 태왕은 막리지 연태조에게 시선을 옮겨 엄히 명하였다.
“막리지는 영주성을 공략하여, 수의 태자를 사로잡으라!”
“명을 받사옵니다.”
막리지 연태조가 힘차게 명을 받으니, 북장원을 비롯한 신료들은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젊은 태왕이라 선대 태왕을 모셔왔던 신료들과 오부 귀족들 중 무시하는 이가 적지 않았으나, 전시 조정이기에, 군을 장악한 태왕의 명에 감히 이견을 낼 수는 없었다.
회의는 곧 마무리 되었고, 얼굴이 붉어진 북장원의 뒤를 명림신이 따르며 속삭였다.
“주 총관에게 알리시겠나이까?”
“해야지.”
북장원이 짧게 답하자, 명림신이 명을 받아 수의 수군 총관 주나후에게 사람을 보내기 위해 몸을 돌렸다.
이때, 북장원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명림신을 불러 세웠다.
“이보게.”
“말씀하시옵소서.”
“이 건은 아직 알리지 않는 게 좋겠네.”
“어찌?”
“나는 감히 대국에 맞서 싸우는 무장들이 싫을 따름이지, 우리 고구려의 패망을 원하지는 않네. 연태조, 그자가 수의 태자를 사로잡는다면 이 전쟁도 조기 종식 될 것이니, 기다려 보세나.”
태왕의 장인으로서 권세를 누리는 그였기에, 고구려의 패망을 바라지 않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주 총관이 이 사실을 알면 무척 서운해 할 것이옵니다.”
“내가 그자가 서운 할 것을 두려워 해, 우리 고구려를 배신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전쟁이 조기 종식된다면, 우리 고구려에도 평화가 찾아 올 것이니, 연태조를 믿어 보세나.”
주나후가 수의 수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평양성 내의 태자 건무를 죽이길 바라던 북장원이었기에, 명림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살며시 물었다.
“태자를 바꾸시지 않으실 것이옵니까?”
“주나후만 건무의 목을 딸 수 있는 것은 아닐세. 아직 태왕은 젊으니, 건무의 목은 두고 봐도 되네. 아직 태기도 없으니 좀 기다려 보세나.”
북왕후의 태기도 없는 이 상황에서 사선후궁이 행여 태기라도 있을 경우를 고려한다면, 태자로 건무가 남아 있는 것도 북장원에겐 좋은 일이었다.
‘왕후께서 태기만 있으셔도, 당장 건무의 목을 칠 것인데…….’
북장원이 지그시 눈을 감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을지문덕과 연태조는 총관부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합하께선 대장군의 출정이 내년 봄이 아닌, 올 가을에 이루어진 연유를 아시옵니까?”
을지문덕의 물음에, 연태조가 눈살을 찌푸렸다.
“막리지인 내게조차 그 연유는 알리지 않고 진행된 것인데, 내가 사람 속에 들어갈 수도 없고 어찌 알겠소?”
연태조의 말에 을지문덕이 빙그레 웃었다.
“막리지 합하의 장자가 수의 태자 양광의 목숨을 구했다고 들었사옵니다.”
“폐하께서도 아시오?”
“그렇사옵니다.”
“내 아들 개소문이 때문에 출정이 앞당겨진 게요?”
“그렇사옵니다.”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하하.”
연태조의 물음에 을지문덕은 크게 웃더니 부드럽게 답하였다.
“폐하께서 말씀하시옵기를, ‘막리지는 충심으로 나를 섬기고 고구려를 사랑한다. 허나, 세상 사람들은 그가 권력욕이 많고 야욕이 크다하여, 그를 두려워하고 의심한다. 사실 세상 누구도 권력을 갖기 싫은 이는 없을 터인데도 유독 연태조만 의심하고 그의 말과 행동 모두를 곡해한다. 그런데, 이젠 그의 아들마저 오해와 편견에 시달리게 생겼구나. 나는 막리지를 믿는다.’라고 하셨지요.”
연태조는 그동안 가슴 깊이 쌓아둔 울분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폐하께서 정말 그리 말씀하시었소?”
“제가 감히 폐하의 말씀을 합하께 허언으로 전하겠나이까?”
“헌데, 나를 믿으시면서 폐하께선 어찌 대장군의 출정을 서두르신 것이오?”
“합하의 장자 일은 우리 서부총관부가 소문을 막고 있사오나, 곧 오부 귀족들에게도 전해질 것입니다. 오부 귀족들은 폐하처럼 합하를 믿지는 않을 것이기에, 소문이 돌기 전에 출정을 앞당긴 것이지요.”
을지문덕의 답변에 연태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대도 폐하와 같은 생각이시오?”
자신을 믿냐는 연태조의 물음에 을지문덕은 빙긋 웃으며 답하였다.
“제가 합하를 믿지 않기에, 출정 연유를 대장군이 출정한 뒤에 전하는 것 아니겠사옵니까?”
“헌데, 믿지도 않는 내가 오만의 정병을 이끌고 출정하는 것이 두렵지 않소? 군을 회군하거나, 수의 태자에게 투항하여 화살을 돌릴지도 모르는데.”
“두렵사옵니다.”
“헌데, 내가 오만 정병을 이끌고 출정하는 것을 어찌 반대하지 않은 게요?”
“오만 정병은 우리 고구려의 군사이오니, 합하께서 다른 마음을 품으셨다 해도, 그저 합하의 목만 취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이미 준비가 되어 있사오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자신의 목을 벨 방도가 마련되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을지문덕을 연태조가 말없이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껄껄껄 웃었다.
“총관은 참으로 재밌는 사람이오. 나도 대실호연처럼 될 수 있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바른 길만 가야겠구려.”
“정답이옵니다.”
“헌데, 총관은 내가 수의 태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 믿으시오?”
연태조의 물음에 을지문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옵니다.”
“내 아들 개소문이가 태자를 살려주었기에, 나도 태자를 놓아 줄 것이란 게요?”
“아니옵니다.”
“허면?”
“수의 태자를 사로잡은들 수의 황제 양견은 화친을 청하지 않을 것이니, 수의 태자 양광을 사로잡아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수의 태자를 사로잡아도 화친은 없다라? 어찌 그렇소?”
“태자 양광을 황제 양견이 싫어하기 때문이지요. 한왕 양양에게 대군을 맡기고, 태자를 영주성에 보내 지키고 있으라 명한 것은, 태자가 죽어도 괜찮기 때문이지요.”
“음… 어쨌든 영주성은 함락해야 하지만, 태자를 사로잡은들 전쟁은 계속 이어지겠구려.”
“그렇사오니, 영주성은 함락하고 태자는 놓아주십시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을지문덕이 담담히 말하자, 연태조가 놀라 말을 잇지 못하였다.
“아니, 어찌?”
“태자가 만리장성도 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도망 다녀야, 수의 전략이 흐트러지옵니다. 하니, 막리지께선 영주성은 함락하시옵고, 태자는 잘 도망치게 하셔야 되옵니다.”
“토끼몰이라… 헌데 요서 일대에서 태자를 토끼몰이 할 이는 대체 누구요? 혹시?”
을지문덕에게 묻던 연태조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합하께서도 마음에 두신 바로 그 사람이옵니다.”
* * *
날이 밝자, 위충은 바로 군을 몰아 구릉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야수도 선두에 서서 구릉을 뛰어 오르니, 이를 내려다보고 있던 강이식이 빙그레 웃었다.
“저놈이 또 오네.”
“대장군의 낭아봉은 제 꺼 마냥 아주 잘 들고 있군요.”
공별도 곁에 서서 야수를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낭아봉이야 또 있으니, 팔아먹든 들고 다니든 저놈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도 이제 움직이세.”
강이식이 몸을 돌려 말에 오르니, 기다렸다는 듯 황우가 남쪽 방향으로 말을 몰아 내려가며 소리쳤다.
“제가 포위를 뚫겠나이다!”
황우가 택한 도주로는 야수가 올라오는 북쪽과는 정반대였으며, 영주성과도 반대 방향이었기에, 상대적으로 포위가 허술했다.
또한 말갈 기병들은 말을 타고 험준한 산맥도 질주하였기에, 이런 작은 구릉 따위는 평지를 달리듯 내달릴 수 있었다.
황우가 선두에 서서 말갈 기병을 몰아 돌파를 시도하니, 힘들게 구릉을 오르던 수의 군사들이 그의 창에 목이 찔리고 몸이 꿰뚫려 쓰러졌다.
강이식도 새로운 낭아봉을 쥐고 말을 달리며 마구 휘두르니, 그의 낭아봉에 수나라 군사들과 그들의 말들이 허공에 떠오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놈들이 도주합니다!”
공손향이 고구려군이 사라지는 구릉 위를 가리키며 위충에게 외쳤다.
“서둘러라! 도망치게 하여선 안 된다!”
위충과 공손향은 북쪽에서 오르기 시작하였기에, 강이식의 뒤를 쫓기 위해선 어쨌든 구릉 위를 올라야 했다.
낭아봉을 쥐고 힘겹게 구릉 위까지 뛰어오른 야수가 숨을 고르며, 남쪽 방향을 내려다보니, 어느새 고구려군은 포위망을 뚫고 도주한 뒤였다.
“포, 포위가 허술했어.”
야수의 중얼거림을 받아 공손향이 답하였다.
“남쪽까지 포위망을 강화할 만큼의 병력은 없었으니… 그러나, 저놈들이 요동성이 있는 서쪽이나 영주성이 있는 북쪽이 아닌 남쪽으로 도주로를 정한 이상 사지를 헤맬 수밖에 없을 걸세.”
그녀의 말처럼 남쪽은 수의 영토가 계속 되었고, 그 끝은 만리장성이 막고 있으며, 탁현엔 한왕이 삼십만 대군까지 이끌고 있기에, 사방에서 적을 맞아 싸워야 하는 형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