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149화 (149/328)

149화 고구려의 요서 침공 (5)

봉두난발한 머리를 휘날리며 질주해 오는 야수의 눈빛이 비수처럼 흑비걸의 가슴에 꽂혔다.

“저, 저놈은?”

강적을 만난, 흑비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자신이 뒤를 보인다면, 고구려군의 사기가 떨어지고 수의 기세만 올려주게 되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말을 몰아 야수를 맞이했다.

“짐승 같은 놈아! 오랜만이구나. 오늘 내가 네 목을 잘라 유여 장군의 한을 풀어 드려야겠구나.”

흑비걸이 호기롭게 외치며 환두대도를 휘두르니, 야수는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왼손의 박도로 막고는 오른손에 쥔 박도로 흑비걸의 머리를 노렸다.

아주 잠시 몸이 허공에 뜬 상태에서도 양손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방어와 공격을 펼치는 야수의 몸놀림에 흑비걸이 당황하여 급히 단패로 막고 재차 환두대도를 휘둘렀다.

야수가 가볍게 발을 놀려, 흑비걸의 말 머리를 밟아 또다시 도약을 하며 공격을 피하고는 높이 떠오른 상태에서 내리 꽂히듯 흑비걸의 안면을 노리고 두 자루 박도를 동시에 내리쳤다.

깡!

쾅!

환두대도와 단패로 흑비걸이 간신히 공격을 막자, 야수가 튕겨 나오는 박도의 방향을 틀어 한 자루는 흑비걸의 목을 다른 한자루는 흑비걸의 허리를 노리고 베어 들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목과 머리가 동시에 잘릴 위기에 처한 흑비걸이 급히 단패와 방패로 몸을 지켰다.

깡!

쾅!

또다시 쇠와 쇠가 부딪쳐 불꽃을 튀기고, 단패에서도 타격음이 일었다.

그리고,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흑비걸이 마침내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야수는 주인 잃은 말 잔등을 가볍게 발로 튕겨 재차 떠오르더니, 땅에 나뒹군 흑비걸의 가슴팍과 머리를 노리고 내리 꽂혔다.

“이 짐승 같은 놈!”

흑비걸의 부장 둘이 급히 말을 몰아 달려오며,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야수의 본능은 허공에 뜬 채로 몸을 틀어 화살을 피하였고, 이틈에 흑비걸은 몸을 굴려 야수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흑비걸을 향해 야수가 내달려 왔고, 주인을 지키고자 흑비걸의 말도 달려와 야수를 향해 앞발을 치켜들며 위협을 가했다.

“마, 말? 말이… 왜?”

자신을 공격하는 말을 멍하니 올려다보던 야수가 박도를 거두고, 뒤로 몸을 날려 말과 거리를 벌렸다.

그 사이에 흑비걸의 부장 둘은 야수를 향해 화살을 날리며 말을 몰고 와, 흑비걸의 앞을 지켰다.

말은 공격하지 않던 야수가 날아드는 화살을 박도로 가볍게 쳐내더니, 안광을 번뜩이며, 흑비걸과 두 명의 부장들을 향해 내달렸다.

“일단, 피하자!”

자신들만으로는 야수를 상대할 수 없다 판단한 흑비걸이 급히 말에 오르며, 진영으로 퇴각했다.

이에, 부장 둘도 말 머리를 돌리는데, 어느새 달려온 야수가 몸을 날리며 박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달려라!”

혼비백산한 부장들이 황급히 박차를 가하며 흑비걸의 뒤를 따라 도망치자, 위충 군의 진영에서 함성이 크게 일었다.

“모두, 저 장수를 도와라! 철없이 침공한 고구려 놈들의 버릇을 고쳐 놓거라!”

기세 오른 위충이 아직도 흑비걸과 두 명의 부장 뒤를 쫓는 야수를 가리키며 외쳤다.

어느새, 야수는 고구려군의 진영 깊숙이 뛰어들어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급격히 사기가 저하된 고구려군의 진영이 혼란스러워지고, 흑비걸과 두 명의 부장은 아직도 꽁무니를 빼고 있었다.

와아아아!

영주성 앞 드넓은 벌판에 위충 군의 함성이 울리고 삼만여 기의 기병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놈들은 무거운 철갑을 둘렀으나. 속도는 우리가 우위니, 두려워하지 마라!”

위충이 계속 독려하며 선두에서 말을 몰아 나가니, 뒤 따르는 군사들의 사기가 더욱 치솟았다.

이 순간에도, 흑비걸은 야수가 고구려 진영까지 쫓아와, 일만 기의 개마무사 속을 종횡무진하며 계속해 자신을 쫓으니, 황망하고 정신없어 도망치기 바빴다.

흑비걸과 두 명의 부장이 앞다퉈 도망치니, 고구려군의 진영은 일시에 무너지고 위충 군이 접근도 하기 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를 성벽 위에서 지켜보던 양광이 흐믓해, 양소에게 말하였다.

“위충 총관이 망신만 당하고 돌아오나 했더니, 저런 귀한 장수가 있어 전세가 역전 되었습니다 그려. 허허허.”

그러나, 기뻐하는 양광과 달리 양소의 눈매는 무척이나 서늘했다.

“양현감은 당장 군을 몰아 위충 총관을 돕거라!”

“명을 받사옵니다. 성문을 열어라! 총관의 승리를 돕도록 하자!”

부친의 명을 기다렸다는 듯 성벽 아래에서 대기하던 양현감이 급히 답하며 군을 몰아 나갔다.

“군사, 위충 총관이 걱정되어 그러시오? 그렇다면 호각을 불어 퇴각시키면 되지 않소?”

양소가 적의 매복을 우려하는 듯해 양광이 물었다.

“호각을 분들 들리겠습니까? 뒤따르는 지원군이 있으니, 큰 탈은 없을 것입니다.”

“군사는 적의 유인책이라 보는 것이오?”

“너무 쉽게 진영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패주하는 적의 피해가 없사옵니다.”

양소가 벌판을 가리키니, 그의 말대로 고구려군의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유인책이라…….”

양광도 비로소 뭔가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들판 끝에서 흙먼지가 일더니, 말발굽 소리가 성벽 위까지 전해졌다.

“고, 고구려의… 본진?”

양광이 중얼거리자, 양소가 고개를 저었다.

“본진은 아니옵고, 강이식이 이끈 중군이옵니다.”

양소는 정확히 본진과 중군을 구분해 말하였다.

“하긴, 아직 출병하지 않은 요동성의 고구려군이 당연히 본진이겠지.”

양광도 양소의 말에 동의하며 시선을 들판 끝으로 고정하였다.

흙먼지는 점점 자욱해지며, 위충 군과 정면충돌하기 직전이었다.

* * *

기세 올라 고구려군을 맹렬히 추격하던 위충은 들판을 흙먼지로 뒤덮으며 질주해 오는 고구려군에 놀라 손을 들어 군을 재정비했다.

훈련이 충실한 덕에 위충 군이 빠르게 진영을 갖추기 시작하자, 맹렬히 질주해 오던 고구려 군도 넓게 진영을 펼치며 질주를 멈추었다.

야수도 발을 멈춰 강이식이 이끌고 온 말갈 기병 오만 기를 노려보았고, 이틈에 겨우 목숨을 건진 흑비걸이 부장들과 함께 군을 재정비하기 위해 서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사방에서 뿔나팔이 울리며 뿔뿔이 흩어졌던 개마무사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위충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직 영주성이 보이는구나.”

시야가 탁 트인 덕에 영주성이 보였으나, 호각 소리는 들리지 않을 거리였다.

“이대로 군을 물리면, 놈들이 뒤를 잡아 몰아칠 것인데…….”

영주성을 응시하며 고심하던 위충의 시야에 영주성 방향에서 흙먼지가 들어왔다.

“저것은?”

필경, 자신을 지원하기 위해 오는 양현감의 군사가 분명했다.

보병 위주의 병력이었지만, 배후의 지원군이 있다는 것은 고구려군이 결코 포위 섬멸전을 펼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뒤는 양현감이 지키며, 우리를 지원하러 오고 있다. 여기까지 패주하던 놈들이니, 두려워 할 것 없다!”

위충의 외침에 잠시 위축되었던 군사들이 기세 올려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뒤를 지키며 지원하는 양현감의 존재만으로도 결전을 치룰 용기를 얻은 것이다.

이때, 고구려 진영에서 낭아봉을 쥔 거한이 말을 몰아 나오는데, 한눈에도 그가 고구려의 병마원수 대장군 검귀 강이식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나는 강이식이다! 검귀란 칭호를 빼앗아 얻었으나, 마땅한 검이 없어 이렇듯 쇠몽둥이를 사용하니, 양해 바란다. 하하하.”

위충은 강이식이 매우 호기롭게 앞으로 나오자, 자신도 이대로 있을 수 없다 생각하여 말을 몰아 나가며 소리쳤다.

“무엇을 양해하란 말이더냐?”

위충의 물음에 강이식이 빙그레 웃으며 느긋하게 답하였다.

“칼로 잘 썰어줘야 시신이 예쁜데, 내가 쇠몽둥이로 피떡을 만들 터이니, 미안해서 그런다. 하하하.”

“뭐? 뭣이라? 이런 시건방진 놈이!”

위충이 노해 버럭 소리를 질렀으나, 강이식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타이르듯 말하였다.

“너는 누군데, 초면에 성질이냐? 전장에도 예와 격식은 있는 법인데, 우리 통성명이나 하고 죽이자.”

강이식의 당당한 태도에 질 수 없다 생각한 위충이 가슴을 펴고 호기롭게 외쳤다.

“영주자사이며 요서총관 위충 어른이시다. 예를 갖추거라!”

“오호라, 이전에 뒈진 놈을 대신해 새로 영주자사가 된 위충이로구나. 그런데, 저 조그만 영주성에 총관이 둘이나 되는 게냐? 무척이나 번잡스럽겠구나. 내가 오늘 하나를 죽여 영주성의 지휘 체계를 일원화해주마.”

강이식의 빈정거림에 위충이 격노해 소리쳤다.

“누가 저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느냐!”

이에 위충의 수하들이 나서기도 전에 강이식이 말을 받아 소리쳤다.

“고구려의 대장군을 상대함에, 서로 지위는 맞춰야 하지 않겠느냐? 그냥 네가 나오너라.”

강이식이 계속해 조롱하자, 참다못한 위충의 휘하 장수들이 저마다 강이식의 목을 베겠다고 소리쳤다.

그 중, 멋들어지게 쌍검을 허리에 차고, 한 손에 방천화극을 쥔 장수가 피처럼 붉은 땀을 흘리는 말을 몰아 앞으로 나오니, 위충이 반겨 소리쳤다.

“오호, 왕소칠 장군!”

왕소칠의 고향은 서량으로 아홉 형제 중 일곱 째였다.

이들 형제 모두 무용이 뛰어났는데, 양광이 양소와 함께 진을 멸하자 수의 양견에게 귀순하였다.

왕소칠을 제외한 여덟 형제는 현재 탁현의 행군원수부 한왕 양양 휘하에 있었다.

왕소칠은 평소 여포를 흠모해 방천화극을 잘 다루었고, 적토마라 불리는 한혈보마마저 구해 멋을 부렸다.

그가 허리춤에 찬 쌍검은 근접전에서 사용하는 병장기가 아닌, 멀리 떨어진 적을 향해 날리는 비검이었으니, 이를 미리 알지 못한 적은 그와 겨루기도 전에 목과 머리가 뚫려 절명하기 일쑤였다.

“왕소칠 장군이라면, 일합도 겨루기 전에 저놈은 염라대왕을 알현하겠구려.”

위충이 매우 흐뭇해 격려하니, 왕소칠이 한껏 멋을 부리며 강이식을 향해 나아갔다.

“총관 나오라 했거늘, 어디서 졸개가 나오는 게냐?”

강이식이 왕소칠을 놀리며 물으니, 왕소칠이 피식 웃으며 박차를 가해 달려왔다.

왕소칠이 방천화극을 비켜 쥐고 말을 달려 나오는 기세가 매우 용맹해 보여 고구려 군과 수의 군 모두 숨을 죽여 바라보았다.

오직 강이식만이 여유롭게 왕소칠을 기다려 줄 뿐이었다.

“고구려 대장군께 인사도 안 올리고 마구 덤비는 게냐?”

강이식의 물음에도 왕소칠은 말을 재촉하며 그와의 거리를 잴 뿐이었다.

왕소칠은 사정거리까지 빠르게 접근하면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날릴 요령으로 더욱 속도를 가해 질주하며 거리를 좁혀왔다.

“과묵한 놈이로세. 옛다, 이거나 받거라.”

왕소칠과 거리가 좁혀지자, 강이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별안간 낭아봉을 힘껏 날렸다.

피이이웅.

허공을 찢으며 낭아봉이 빠르게 날아드니,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오던 왕소칠이 당황해 급히 말 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강한 바람마저 실고 온 낭아봉의 기세에 질린 말이 앞다리를 들며 따르지 않았다.

“제발 움직여라!”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격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낭아봉은 앞다리를 치켜 든 말 바로 앞에 박히며 흙먼지를 날렸고, 왕소칠은 겨우 말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 어느새 말을 몰아온 강이식이 흙먼지를 뚫고 주먹을 날리며 호통을 쳤다.

“이놈! 어른께 인사는 하고 죽거라!”

강이식이 날린 주먹은 공교롭게도 놀라 머리를 치켜든 말의 목을 후려쳤다.

일격에 목이 부러진 말은 비명도 못 지르고 목을 꺾으며 쓰러졌고, 왕소칠은 그 충격에 말과 함께 쓰러졌다.

“아니지!”

이때, 강이식이 손을 뻗어 말에서 떨어지는 왕소칠의 목덜미를 낚아채고는 가볍게 들어올렸다.

강한 손아귀 힘에 왕소칠이 혼절하자, 강이식은 땅에 꽂힌 낭아봉을 뽑아 들고는 위충을 향해 일갈을 내뱉었다.

“이놈 말고 다른 놈은 없는 게냐? 그냥 네가 나오면 안 되는 게냐?”

믿었던 왕소칠마저 허무히 사로잡히자, 위충이 당황해 뒤를 돌아보았다.

강이식의 목을 베겠다고 소리쳤던 장수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모두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위충이 분통을 터트릴 때, 공손향의 고운 음성이 그의 노기를 가라앉혔다.

“야수! 저자의 목을 따오시게!”

공손향의 명에 야수가 머뭇거림 없이 맹렬히 내달리기 시작했다.

강이식도 야수가 만만치 않다 생각했는지, 왕소칠의 목을 꺾어 숨통을 끊어 놓고는 낭아봉을 치켜들고 말을 몰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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