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147화 (147/328)

147화 고구려의 요서 침공 (3)

북원장의 의문은 태자 책봉식이 끝난 후, 요동성에 전시 조정이 세워지자 풀렸다.

“폐, 폐하! 어찌 우리 고구려가 영주를 선제공격하나이까?”

요동성에 세워진 전시 조정에서 종리위두대형 북원장이 놀라 물었다.

“수의 침공로는 영주를 통해 요동으로 이어지니, 당연히 영주를 공략해야 요동이 안전하지 않겠소?”

태왕이 당연하다는 듯 답하자, 막리지 연태조가 앞으로 나와 태왕의 말을 받았다.

“하여, 대장군 강이식이 개마무사 일만 기와 말갈 기병 오만 기를 이끌고 영주를 공략토록 준비하였나이다.”

“마, 막리지! 기병만으로 어찌 성벽을 넘소?”

북원장이 또다시 놀라 물었다.

이에, 대장군 강이식이 허허 웃으며 말하였다.

“성은 넘지 않고 항복을 받을 것이외다.”

“영주 총관부는 수의 태자 양광이 지키고 있는데, 어찌 항복한단 말이오?”

이에, 새로 부임한 요동성주 고승이 강이식을 대신하여 부드러이 답하였다.

“일전에도 불 타던 영주성이 항복한 바 있으니, 못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고승은 고성의 장자로 온화한 성격에 비해 무용이 뛰어난 무장이었다.

“화공을 펼치실 생각이신 게요?”

북원장이 재차 묻자, 고승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답하지 않았다.

“그래, 언제로 정하였소?”

이번엔 태왕이 막리지 연태조에게 출전일을 물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였으니, 속히 출병하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태왕에게 고하는 자리임에도 출병일을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허나, 태왕은 개의치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더니, 병마원수 대장군 강이식에게 시선을 옮겼다.

강이식은 태왕이 시선과 함께 신료들의 눈들이 자신에게 모이자, 힘차게 답하였다.

“수의 황제 양견의 명을 받아, 주나후(周羅喉)가 수군총관(水軍摠管)이 되어 칠만 정병을 이끌고 바다로 나올 태비를 하고 있사옵니다. 이들을 우왕좌왕하게 만들기 위하여 신속한 전개가 필요하오니, 영주 공략을 명하여 주시옵소서!”

행군원수 한왕 양양이 이끈 삼십만 대군만 생각했던 신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의 칠만 정병이 바다를 건넌다면, 그 목적지는 평양성 아니오?”

사선종유가 당황해 물으니, 강이식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첩보에 의하면, 수의 수군은 식량 운송이 목적이라 하였으나, 실상은 우리를 방심케 하려는 수작으로, 칠만 정병의 수군이 평양 인근에 상륙한다면, 평양성은 이를 막아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여, 적의 발을 묶을 시기는 지금밖에 없습니다.”

주나후를 언급하자, 순간 북원장의 눈빛이 흔들렸다.

요서총관 을지문덕은 북원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하자, 피식 웃었다.

‘저자가 감히!’

북원장은 심히 불쾌하였으나, 내색하지 않고 끓어오르는 화를 눌렀다.

이때, 사선종유가 다시 강이식에게 물었다.

“그렇다한들, 어찌 겨울에 군을 움직여 영주를 공략한단 말이오? 수의 수군 역시 봄에 바다로 나올 터이니, 그때 우리도 움직이는 것이 옳지 않겠소이까?”

북방의 추위를 고려한다면 당연한 의견이었다.

허나, 오래도록 북방을 지켜온 강이식 또한 이를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출병을 주장했다.

“영주와 요동은 지척간이라 요하만 넘으면 되니, 염려치 않으셔도 되시오.”

“아무리 지척간이라도 요하를 건너, 수의 태자가 지키는 영주를 공략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외다. 차라리, 봄이 될 때까지 기다려 요하에서 적을 맞아 시간을 번 후, 요동벌에서 대회전을 벌여야 합니다.”

사선종유도 병법 꽤나 읽은 인물로 무척 주장이 강하였다.

이때, 왜소한 체구의 무장이 다리를 절며 나오더니, 환두대도를 뽑아 바닥에 꼽고는 사선종유에게 말하였다.

“태대사자 어른, 새로 대모달이 된 흑비걸이라 하옵니다. 소장 비록 부실한 다리로 인해 이처럼 볼품없사오나, 소장이 이끄는 개마무사는 불패의 무적이오니, 영주 공략은 염려치 않으셔도 되시옵니다.”

흑비걸은 커다란 둥근 단패에 치우천왕의 얼굴을 새겨 치우 흑비걸이라 불렸으며, 악전고투 속에서도 패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였다.

선대 태왕 사후, 새로 개편된 고구려군의 장수 중 온달과 더불어 젊고 용맹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다.

고작 모달로 출전했던 지난 전쟁과 달리 대모달로 승찬한 흑비걸의 눈에선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선대 태왕 때부터 명성을 드높였던 강이식은 이 젊고 패기 넘치는 장수가 마음에 드는지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온달과 더불어 흑비걸은 아직 단 한 차례도 패한 적 없는 장수이오니, 소장을 도와 영주에서도 불패를 이어갈 것이옵니다.”

이에, 태왕이 흡족해 흑비걸에게 명을 내렸다.

“온달 아우에 비해, 그 투지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대장군의 칭찬이 자자하였소. 대모달은 반드시 공을 세우시오.”

태왕의 명이 내려진 이상, 영주 공략은 진행 될 수밖에 없었다.

불만이 가득했으나, 사선종유는 감히 반발하지 못하고, 연태조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막리지, 검신 온달은 아직도 요양 중이오? 어찌 태왕 폐하께서 친히 군을 이끌고 요동성에 조정을 세우셨는데, 신성에서 오지도 않는 것이오?”

화살이 온달에게 향하자, 을지문덕이 연태조를 대신해 답하였다.

“수일 내로 신성에서 몸을 추스려 올 터이니, 노여워하지 마시옵소서. 허나,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아 출전은 어려울 듯 하오니, 이번 전쟁에선 대장군과 대모달의 무용을 믿어야 할 듯합니다.”

온달이 쾌차하지 못하였다는 말에 오부 귀족들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젊은 태왕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강이식과 온달을 비롯한 무장들의 존재가 가장 컸으니, 온달이 쾌차하지 못함을 이들이 반기는 것은 당연했다.

이날 회의는 영주 공략을 태왕이 명함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출병일이 언제인지 듣지 못한 듯한데… 혹시 들으셨소?”

회의장에서 나오던 사선종유가 발을 멈추고는 북원장을 붙잡고 물었다.

북원장도 생각해 보니, 출병일이 언제라 들은 기억이 없었다.

“글쎄올시다. 나도 들은 바가 없는 듯 하외다.”

그때, 막리지 연태조가 곁을 지나가자, 북원장이 그를 붙잡고 화를 내었다.

“이보시오 막리지! 아니, 출병일도 알려주지 않을 거면서, 왜 전시 조정을 요동성에 세워 신료들을 끌고 온 것이요? 도대체 회의는 왜 하는 거요?”

북원장의 항의가 귀찮은지 연태조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소매를 털어 손을 뿌리치고는 걸음을 옮기며 답하였다.

“그대들을 믿을 수 있었다면, 평양성에 두고 왔을 것이오. 뭔 수를 낼지 몰라 데려온 것이니, 그저 얌전히들 있으시구려.”

연태조의 말대로라면, 전시 조정의 목적은 정변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던 듯했다.

“아니, 저자가 감히!”

북원장이 노해 언성을 높이자, 발을 옮기던 연태조가 멈춰 돌아보았다.

“국장 어른, 지금은 전시 중이오니, 위계를 지키셔야 하옵니다.”

군권을 쥔 막리지의 위엄이 보였다.

출병일이 언제인지 몰라 답답해하던 북원장과 사선종유는 다음 날 아침,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아침 햇살을 따사로이 받으며,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모달 흑비걸이 선봉에 서고, 대장군 강이식이 중군을 이끌며 개마무사 일만 기와 말갈 기병 오만 기가 요동성을 나서고 있었다.

전날까지 회의에서 출병일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한 북원장이 이를 갈았다.

“감히! 나를 무시하다니, 이놈들이…….”

출병일 조차 알리지 않은 연태조와 무장들은 물론, 그의 분노는 태왕에게까지 향하고 있었다.

“이 젊은 놈이 나를 능멸하는 것인가? 고얀 놈 같으니.”

그때, 조의대형 명림신이 다가와 속삭였다.

“국장 어른, 주나후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이미 출병했는데, 알려봐야 뭔 소용인가?”

북원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아니옵니다. 어디 영주가 공성전을 벌일 수 없는 기병에게 함락되겠습니까? 시일은 충분하오니, 주나후에게 알려 수군으로 평양성을 쳐 태자 건무의 목을 베라 하시옵소서.”

명림신이 다시 속삭이자, 북원장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래! 기병 일색으론 공성전을 벌일 수 없지. 건무의 목을 치고 평양성이 함락되면 태왕도 항복을 하고 이 전쟁도 끝나겠지. 소국이 대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옳지 않아.”

“하오면, 사람을 보내겠나이다.”

“서두르게. 시건방진 것들의 목을 베어 바쳐 황제께 평화를 얻도록 하자.”

이로써, 종리위두대형 북원장의 명을 받아 종리대형 명림신이 수의 수군총관 주나후에게 보낼 걸사표를 작성하였다.

* * *

흑비걸이 선봉으로 일만 기의 개마무사를 이끌고 요하를 건너니, 수의 정찰병들도 빠르게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영주총관부에선 총관인 태자 양광을 비롯해, 요서 총관 위충과 양광의 책사 양소가 무장들을 이끌고 작전 회의를 진행하였다.

“적은 선봉 일만과 중군 오만으로 구성되었으나, 기병 일색으로 공성 능력은 전무하옵니다.”

양소가 먼저 운을 띄웠다.

양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고 있는데, 전쟁이라니… 무척이나 거친 놈들이구려. 우린 따뜻한 이 성안에서 놈들을 맞아 버티며, 한왕이 군을 이끌고 오기를 기다립시다. 날도 추운데, 고구려군이 고생스럽겠소이다. 허허.”

양광의 비웃음에, 위충이 이견을 내었다.

“일전에 이 영주성이 불 탄 바 있사옵니다. 단지 수성만으로는 성을 지킬 수 없사오니, 제가 군을 이끌고 나가 놈들을 격퇴하겠나이다.”

그러나 양광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오. 저들은 기병 일색이고 공성무기도 전무하지 않소? 무엇으로 이 성을 공략할 것이며, 무엇으로 이 성을 불 태우겠소? 우리 임무는 영주를 지키는 것이니, 임무에 충실합시다.”

태자 양광이 반대하였으나, 위충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 공손향님께서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공녀님이 말씀 좀 해보시오.”

위충이 공손향을 가리키며 영주가 불 타던 상황을 설명하라 말하였다.

“소녀도 직접 본 것은 아니오나, 당시 고구려의 건무와 평강이 북방 초원의 비렁뱅이들을 이끌고 와 투석기와 포차를 이 앞에서 조립하여 영주성을 불 태운 바 있사옵니다.”

“무엇이라? 공성무기를 끌고 온 것이 아니라, 이 앞에서 조립하였다고?”

양광이 놀라 물으니, 공손향이 차분히 답하였다.

“그러하옵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적을 우습게 여기다가 성이 불에 타 허둥지둥 공격하다가 패하였으니, 이를 되풀이 하여선 아니 되옵니다.”

양광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양소를 바라보니, 잠시 침묵을 지키던 양소가 위충에게 물었다.

“적은 개마무사 일만 기와 말갈 기병 오만 기인데, 총관께서 격퇴하실 수 있겠소이까?”

“우리에겐 요서 총관부 정병 삼만 기병과 영주 총관부 정병 삼만여 명이 있소이다. 적은 선봉과 중군 도합 육만이나 각계 격파한다면, 두려워 할 것 없사옵니다.”

“…….”

“소장이 요서 총관부 정병 삼만 기를 이끌고 적의 선봉을 격퇴한 후, 여세를 몰아 강이식의 본진마저 격퇴한다면 고구려 왕은 태자 전하께 화의를 청할 것이옵니다. 하면, 이 전쟁의 모든 공은 태자 전하의 몫이옵니다.”

한왕 양양이 삼십만 대군을 이끌고 출병하기 전에 고구려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는 말에 양광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전쟁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닌 법.

양소가 불안해 다시 물었다.

“총관 정녕 가능하시겠소?”

“소장이 패한다면 그땐 성을 지키며 한왕 전하를 기다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적들이 이 성 앞에서 포차를 조립할 시간은 주지 않을 터이니, 심려치 마십시오.”

양소도 고구려군이 공성병기를 조립하지 못한다면 수성은 자신 있었다.

“태자 전하, 총관의 출병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양소마저 위충의 말에 동의하자, 양광도 크게 기뻐 허락하였다.

“부디, 큰 공을 세우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