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검귀-141화 (141/328)

141화 갓쉰동 연개소문 (7)

아이답지 않게 과묵하지만, 개소문이는 어리숙하지 않았다.

팽무일의 야비하게 빛나는 조그만 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눈치챘으면서도 개소문이는 태연히 앉아 물었다.

“제자는 내게 다 배웠다고 믿는 것인가?”

개소문이의 물음에 팽무일은 순간 당황했다.

‘이놈이 허투로 보법과 심법을 가르쳐 준 것인가?’

파천심검과 달리 검증할 책이 없으니, 당황할 만했다.

“서, 설마… 사부께서 이 제자에게 허수를 전수하셨사옵니까?”

급격히 눈빛을 공손히 하고 묻자, 개소문이가 유쾌하게 껄껄 웃었다.

“하하하. 아니다. 어찌 사부가 제자에게 허수를 가르쳐 주겠느냐? 조의선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인데, 가당치도 않는 일이다.”

개소문이의 말에 팽무일을 가슴을 쓸어내리며 겨우 안심했다.

“사부께서 제자에게 너무 짓궂으시군요. 제자, 놀랐사옵니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눈빛은 또다시 야비하게 빛났다.

개소문이의 곁에 앉은 항가이는 수시로 변하는 팽무일의 눈빛에 어리둥절했다.

객잔 안 손님과 점원들도 이 묘한 분위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항가이는 팽무일과 개소문이가 나누는 고구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객잔 점원과 손님 다수는 이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묘하군.”

구석에 자리한 백의 여인이 중얼거리자, 마주 앉은 봉두난발한 사내도 개소문이와 팽무일에게 시선을 옮겼다.

“야수, 저 아이가 저 거북이 같은 사내의 스승이라는군. 그런데, 제자가 지금 스승에게 못된 짓을 하려나 보네.”

백의 여인이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즐기는 듯 봉두난발한 사내에게 나지막이 말하였다.

봉두난발한 사내는 배찰산에서 공손향을 지키며 도주한 야수였다.

그리고 백의 여인은 대원이라 일컫는 영주와 요동 일대의 대대로 세력을 지닌 공손 씨 일족으로, 야수가 배찰산에서 지켜 도주한 공손향이었다.

본래, 공손향은 북주와 돌궐 연합군이 고구려를 침공할 당시, 수의 영주총관부를 우문도웅이 취할 수 있도록 앞장 서 공을 세웠다.

이 일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도 영주로 돌아가지 못하다가, 영주자사이며, 요서총관인 위충과 연락이 닿아 다시 영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수의 문제 양견은 한왕 양양에게 고구려 침공을 명하며 따로 차남이자 태자인 양광에게 영주 총관을 맡기고, 위충에겐 영주자사겸 요서총관을 맡겼다.

헌데, 위충의 위 씨 일족과 공손향의 공손 씨 일족은 오랜 세월 이 일대에서 세력을 유지하며 공생하던 관계였다.

이런 연유로, 공손향은 수의 큰 죄를 짓고도 아무런 걱정 없이 위충의 비호를 받기 위해 영주로 향할 수 있었다.

귀가 밝은 야수도 이미 개소문이와 팽무일의 대화를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공. 녀. 님, 어찌… 저 어린것이… 저 거. 북. 이의 스승이 될. 수. 있을까요?”

야수가 무척이나 느리고 어눌한 말투로 의문을 표했다.

지나치도록 느릿느릿한 야수의 말을 참을성 있게 다 들은 공손향도 그 답을 지니고 있을 리 없었다.

“나야 모르지. 아무튼 조금 전에 뭔가를 가르친 것 같은데… 그걸 배우자마자, 저 거북이 사내가 태도를 확 바꾸더군. 참 재밌어.”

공손향과 야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개소문이와 팽무일의 신경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사부님의 그 말씀 이 제자가 믿어도 되는 것이지요?”

팽무일이 재차 묻자, 개소문이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다.”

개소문이의 답변에 팽무일은 결심을 굳혔다.

‘이놈에겐 더 볼 일이 없다. 보법과 심법을 부단히 수련하여 몸에 익히면 그만이다. 비록 방어뿐인 파천신검의 초식일지라도 내가 이미 익힌 팽가도법이 공격 수단을 대신할 것이니, 부족함은 없다. 이놈은 꽁꽁 묶어 태자에게 바쳐 공이나 세우자.’

개소문이가 온달과 관련이 있다 생각하여 개소문이를 수의 태자 양광에게 바칠 생각을 한 팽무일이 스스로 만족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제자는 어찌 웃는가?”

개소문이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탁자에 놓인 음식을 집기 위해 젓가락을 쥐었다.

태연히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개소문이를 바라보며 팽무일이 천연덕스럽게 답하였다.

“역시, 아이는 아이로군요 사부님.”

팽가장의 무공은 검술이 유명했지만, 권법과 장법도 훌륭하였다.

팽무성은 검이 없이도, 절정의 무공을 펼친 바 있었다.

팽무일은 팽무성에 비해 그 실력이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어린아이를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생각하며 손을 들어올렸다.

“사부께선 다시 묶이셔야겠사옵니다!”

별안간 개소문이를 향해 손을 날리며 팽무일이 소리쳤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개소문이도 만만치 않았다.

팽무일이 날린 손을 젓가락으로 툭 치며 일어난 개소문이가 엄히 호통을 쳤다.

“감히! 어찌 사부에게 무례를 저지르느냐!”

자신의 일격이 허무히 막힌 팽무일이 기가 막혀 개소문이를 바라보았다.

‘아니, 이놈이? 어찌 나의 일장을 젓가락 따위로?’

홍산 위에서 손쉽게 제압했던 개소문이가 고작 이십여 일 만에 일취월장하니, 팽무일의 놀람은 당연하였다.

“사, 사부? 그 사이… 저 모르게 어찌?”

팽무일이 당황해 버벅거리며 묻자, 개소문이가 노인처럼 껄껄껄 웃었다.

전혀 아이답지 않은 웃음이었다.

“하하하. 제자야, 원래 아아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법이란다. 보거라.”

자신만만히 말한 개소문이가 자세를 잡으니, 파천신검의 일 초식 품세였다.

“헉!”

팽무일이 더욱 놀라 개소문이의 자세를 뚫어져라 살폈다.

“이, 이것은… 파, 파천신검? 사부가 어찌?”

“어리석은 제자야. 네가 익힌 파천신검은, 이 사부도 당연히 익혀야 네게 가르치지 않겠느냐?”

제법 위엄 있게 말하는 개소문이의 당당한 태도에 객잔 안 손님들과 점원들이 소리쳐 칭찬하며 갈채를 보냈다.

“이야! 저 소년 장사가 보통이 아니네.”

“그러게, 저 소년 장사가 거북이의 사부인가 본데, 버릇없는 제자는 혼쭐이 나야하지.”

“소영웅! 못된 제자의 버릇을 고쳐주시구려!”

여기저기서 개소문이를 응원하자, 괜히 불안해지는 항가이였다.

“아니, 왜? 밥 잘 처묵다가 갑자기 싸움질이야? 팽 선생! 왜 그러시는 거요?”

그러나 신경이 날카로워진 팽무일은 항가이의 물음에 답할 여유가 없었다.

“빌어먹을 시끄럽게 떠드는 놈들은 이 꼬맹이를 꽁꽁 묶은 후 몽땅 싸잡아 때려줄 것이다!”

객잔 안 손님과 점원들을 향해 버럭 소리 지른 팽무일이 개소문이를 잡기 위해 몸을 날렸다.

경공만큼은 절정 고수 못지않다고 자부하였기에, 순식간에 개소문이의 코앞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사부!”

여전히 사부라 부르면서도 팽무일은 개소문이의 목을 노리고 험악하게 손을 날렸다.

단번에 목을 잡아 무릎을 꿇릴 생각인 것이다.

탁!

그러나 제자리에 선 개소문이의 젓가락이 또다시 팽무일의 손을 가볍게 쳐 내었다.

“악!”

개소문이는 단지 방어 초식을 펼쳤지만, 방어를 위해 쳐낸 팽무일의 손은 퉁퉁 부어 있었다.

공격 초식이 아님에도 방어를 위해 펼친 초식의 위세는 가히 쇠를 가르고 바위를 부술 듯 대단하였다.

“고, 고작… 고작 젓가락 따위로?”

팽무일이 크게 노해 더욱 맹렬히 주먹을 날렸다.

깊지 않은 내력이었지만, 벽을 부수고 바위를 쪼갤 기세였다.

개소문이가 미끄러지듯 보법을 펼치며 옆으로 피하자, 팽무일의 주먹이 탁자를 내리쳤다.

쾅!

두 동강이 난 탁자가 튀어 올랐다.

순간, 개소문이가 빠르게 몸을 날려, 허공에 뜬 탁자 위에 사뿐히 앉더니, 탁자 다리를 뽑아들고는 바닥에 가볍게 내려섰다.

“못된 제자의 버르장머리는 매로 고쳐야 하는 법! 네게 무예를 가르치기 전 내가 이미 말했듯이, 나는 사부로서 제자가 잘못된 길을 걷지 않도록 훈육을 하겠노라.”

개소문이가 오랜만에 장황히 길게 말하였지만, 팽무일을 때리겠다는 뜻이었다.

“이… 이 시건방진 사부 같으니!”

팽무일도 마침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사부! 용서하시오!”

팽무일이 거침없이 찔러 들어가며 소리쳤다.

그러나 팽무일의 팽가도법을 개소문이는 탁자 다리로 가볍게 쳐 내며, 오히려 팽무일의 앞으로 쓱 다가왔다.

“방어는 파천신검이! 공격은 비검술이!”

바짝 다가온 개소문이가 벼락 치듯 외치며 젓가락을 날리자, 코앞에서 날린 젓가락을 피하기 위해 팽무일은 벌러덩 뒤로 누울 수밖에 없었다.

개소문이의 비검술을 피하기 위해 객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팽무일의 모습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와하하하!”

“저 거북이가 구르는 것 좀 봐라!”

항가이도 이 민망한 광경에 부끄러워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그간 잘 지내다가 갑자기 싸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역시 저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었어. 그러니, 팽 선생이 그동안 극진힌 모신 건데… 오늘은 왜 이 지랄인 거야?”

개소문이의 비검술도 여느 조의선인 못지않게 훌륭하였지만, 데굴데굴 구르며 피하는 팽무일의 재주 역시 만만치 않았다.

팽무일은 급한 마음에 파천신검 방어 초식에 보법과 심법을 더해 방어를 펼치지는 못하였지만, 그나마 경공이 출중하여 바닥을 구르면서라도 개소문이가 날리는 젓가락을 피할 수 있었다.

개소문이는 팽무일을 쫓으며 옆 탁자의 젓가락을 잡아 들고는 연거푸 날렸다.

팽무일은 몸을 일으킬 겨를도 없이 날아드는 젓가락을 피하기 위해 다시 몸을 구르며 피하기 바빴다.

쿵!

그러나 누군가의 발이 팽무일의 머리를 밟아 눌러 더는 피하지 못하게 했다.

“악! 누구냐? 누가 감히!”

팽무일이 노해 소리치며 힘주어 머리를 빼내려 했지만, 발에 밟힌 머리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팽무일의 머리를 밟은 사내가 금세 쫓아온 개소문이에게 팽무일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어. 어린… 사. 사부. 여. 여기… 거북이 제자… 때리시오.”

느릿느릿하며 어눌한 말투의 야수였다.

“대협, 고맙습니다.”

개소문이가 머리 숙여 야수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탁자 다리로 팽무일의 엉덩이를 힘껏 후려쳤다.

“이놈! 어디 감히! 사부가 아무리 나이가 어린들 어찌 제자가 사부를 능멸할 수 있는 것이냐! 못된 버릇은 더 크기 전에 고쳐야 하느니. 사랑의 매라 생각하여 달게 받거라!”

기분이 좋은지, 오늘따라 개소문이의 말이 무척이나 장황했다.

빡!

팽무일의 엉덩이에서 찰진 소리가 울리고, 덩달아 팽무일의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 항가이! 나 좀 구해주시오!”

그러나 팽무일에 비해 무예가 형편없는 항가이가 감히 개소문이와 맞설 수는 없었다.

“미, 미안하오! 팽 선생 나중에 봅시다!”

동지를 버리고 도망치기로는 세상 그 누구보다 뛰어난 항가이가 여지없이 객잔 밖으로 내뺐다.

항가이는 내달리면서도 팽무성의 비명과 그의 엉덩이에서 울리는 찰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왜 갑자기 싸우다가… 영주에 다 와서 이게 뭔 꼴이야.”

팽무일을 원망하며 내달리던 항가이의 발이 갑자기 뚝 멈추었다.

소와 말이 끄는 수레와, 양떼.

그리고 말에 오른 가죽옷을 걸친 사내들.

영주 앞에서 만나기로 한 자신의 부족민들이었다.

남녀노소 천여 명이나 되는 그의 부족이 언덕 밑에 길게 늘어서 영주로 향하고 있었다.

전사만 삼백여 명으로, 이미 대족장이 된 카사르나 호타크를 대적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렇듯 비참하게 도망 다니지는 않아도 될 든든한 수였다.

“왔구나! 왔어! 이제 팽 선생을 구한 후, 영주로 가서 수의 태자 밑에서 출세를 하는 거야! 하하하.”

전사들을 이끌고 팽무일을 구하기로 마음먹은 항가이가 미친 듯이 언덕 아래로 내달리며 소리쳤다.

“나다! 멈춰라! 내가 왔다! 내가 여기 있다! 하하하.”

0